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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조선에 살다 - 구한말 미국 선교사의 시골 체험기
제이콥 로버트 무스 지음, 문무홍 옮김 / 푸른역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흥미롭게 몇 장 읽다가 도서관에서 빌리게 된 책이다.
서점에서 읽을 때는 잠깐 읽는 거라 그런지 퍽 흥미로웠는데 막상 책을 빌려서 전체를 읽다 보니 처음만큼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저자의 말대로 조선을 잠깐 유람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히 시골에서 25년 동안 조선인들과 함께 살았다는 점이 기록에 대한 신뢰를 더해 준다.
그렇지만 외국인이라는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고 특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한 나라의 문화를 평가했다는 점은 책의 약점으로 작용할 것 같다.
이런 투의 서술, 이를테면 문명화되지 못해서 여자나 아이들과 같은 약자들이 관습에 억압받고 학대당하는 모습을 안타까워 하는 식의 서술은 우리가 아프리카나 이슬람 문화를 묘사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다.
그래도 중동은 오일 달러로 무시하기 힘든 부자가 됐기 때문에 덜 하지만 아프리카 기행문이나 체험기를 보면 아프리카 소녀들의 학대받는 모습에 다들 동정심을 보인다. (조혼이나 교육 기회 박탈, 일부다처제 등)
그 때는 문명화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당연한 연민의 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19세기 말, 우리 조상들을 서양인 선교사가 그런 눈으로 봤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우월감이나 동정심 등은 보편적인 정서라는 생각이 든다.
인종차별이라는 게 아무 쓸데가 없는 무의미한 행위라는 것이 명백하다.
왜냐면 한 민족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냐, 정의감이 있느냐, 평등하냐 등의 문제는 순전히 사회 발전의 정도, 경제력의 차이 등에서 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아프리카 사회에 대해 묘사하는 책들은 훗날 그들이 세계화의 일원이 되어 비슷하게 발전해 갈 때 마치 구한말 미국 선교사들의 책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과거를 비춰주는 기록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지 역시 가장 가슴 아프게 읽은 부분은 역시 여자들의 억압받는 상황이었다.
일부일처제가 당연시 되는 미국 사회에서 온 선교사의 눈에 조선인들의 일부다처제는 마치 우리가 오늘날 이슬람 여인들을 가엾게 보는 것처럼 수구적이고 야만적인 관습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는 여성들이 어린 나이에 시집와 시어머니에게 절대 복종하면서 끝없는 가사일에 시달리고 남편과 결코 겸상할 수 없으며 폭력에 시달리고 아들을 낳아야만 비로소 대접을 받는다고 정확하게 기술한다.
진보의 척도는 약자들이 얼마나 대등한 대우를 받느냐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이슬람이나 아프리카의 사회도 그렇고 구한말 역시 가장 고통받는 계층은 노비나 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딸을 낳으면 슬퍼하고 심지어 이름을 섭섭이로 짓는다면서 선교사는 조선의 가엾은 소녀들을 동정한다.
그래도 중국처럼 여아를 죽이지는 않는다고 기술한다.
아이들 사진이 실렸는데 이제 겨우 열 살 남짓한 남자 아이는 지게를 지고 있고 여자 아이들은 물동이를 지고 예외없이 다들 간난아기를 업고 있다.
부모는 일하러 나가고 동생들은 언니의 등에 업혀 키워진다.
근대의 형벌 제도는 저자의 묘사처럼 끔찍했던 것 같다.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신체형이나 고문은 당연시 됐다.
채찍이 사람을 개조할 것 같으면 조선인들은 모두 성인군자가 됐을 거라는 저자의 일갈이 씁쓸했다.
주리트는 사진이 나왔는데 고문받는 이의 표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장례 문화에 대한 관찰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유교는 조상 숭배라는 종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들만이 제사를 모실 수 있고 죽은 후 제사 여부에 따라 내세의 복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에 남아 선호사상이 극심하다고 분석했다.
일리있는 지적 같다.
이방인의 눈으로, 더군다나 이른바 문명국,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온 선교사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의 근대는 어쩔 수 없이 인권의식이 부족하고 약자들이 억압받는 사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눈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을 뿐더러 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과거를 바라봐야 비로소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재밌게 읽은 책이고 사진도 많이 실려서 흥미롭게 봤다.
저자가 조선에 대한 애정이 많고 (아마도 선교사의 사명감인 듯) 오래 체류해서 그런지 엘리자베스 비숍의 저서보다 더 흥미롭고 정확하게 관찰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