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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 특별전 : 화가들의 천국 - 천국의 이미지
디디에 오탱제 외 지음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도판이 훌륭하다.
미술 관련 서적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역시 현장에서 직접 관람한 후 책으로 다시 보는 것만큼 감동이 큰 것도 없다.
사실 옛날에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다 본 그림을 뭐하러 책으로 또 봐, 이러면서 안 샀는데 데이비드 핀이라는 사진 작가가 쓴 미술관 관람 길잡이를 본 후 생각이 바뀌었다.
어설프게 사진 찍으려고 애쓸 게 아니라 차라리 도록을 사서 미술관에서 느낀 감동을 오래 간직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아마 사진작가로서 일반인들의 어설픈 사진찍기가 (그것도 몰래!) 안타까워서 한 충고였을 것이다.
그 책을 읽은 후로 다음부터는 가능하면 전시회에 다녀온 후 도록을 사고 있다.
정말 관람 후에 도록을 다시 보면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동이 되살아 나고, 대충 보고 지나친 그림들도 세심하게 감상하게 된다.
도록을 먼저 보고 전시회장에 가는 건 내 경우에는 별로 안 좋은 것 같다.
예습하는 건 현장에서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 신선함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좀 식상해진다.
대신 집에 와서 도록으로 복습하는 건 좀 더 기억에 오래 남기고 무엇보다 그 때 느꼈던 감동을 재음미 한다는 점에서 좋은 방법 같다.
사실 이 대도록도 살까 말까 무지 망설였던 거다.
소도록으로 만족할까 하다가, 전시회 그림의 절반 밖에 없다는 말에 하는 수 없이 대도록으로 구입했다.
더불어 엽서도 몇 장 사서 사무실 벽에 붙여 놨더니 볼 때마다 뿌듯하다.
제일 좋았던 그림 두 장을 샀는데 하나는 보나르의 아몬드 나무였고 또 하나는 마티스의 폴리네시아, 바다이다.
사실 이번 전시회 때 새롭게 발견한 화가들이 많다.
먼저 보나르, 어떤 미술책에서 읽은 건데 보나르는 동료 인상파 화가들에 비해 평단의 인정도 덜 받고 한 마디로 좀 덜 유명한 화가라고 해서 (아마 모네와 비교했던 것 같다) 일류는 아닌가 보다 생각했는데 막상 그의 그림을 직접 보니 역시 책에 이름은 아무나 남기는 게 아니구나 실감했다.
그의 붓터치, 정교한 색감, 형상을 특별히 나타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멀리서 보면 완벽한 하나의 형상으로 다가오는 그 묘사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록을 보니 그는 이 아몬드 나무 그림을 이젤에 세우지도 않고 벽에 붙여 놓은 채 여러 번 덧칠을 해서 완성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정교한 그림, 이를테면 라파엘로나 뒤러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막상 전시회장에 가서 직접 볼 때는 칸딘스키나 인상주의 화가들의 강렬한 색감, 리듬감 있는 색이 훨씬 감동적으로 와 닿는다.
이번에 소개된 칸딘스키 그림은 썩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지난 번 러시아 거장전에 왔던 그림을 보는 순간, 아 정말 음악 같다, 그림이 춤춘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온 보나르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을 보는 순간, 아 바로 이 그림이구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랄까?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들을 그려냈다는 문장이 대체 뭘 의미하는지 분명히 깨닫는 기분이었다.
피카소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브라크의 그림들도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특히 녹색과 회색, 갈색 등의 색감을 정말 잘 이용하는 화가였다.
나는 요즘 그림의 본질은 묘사라기 보다는 붓질과 물감으로 표현되는 색에 있지 않나 싶다.
대상의 정교한 묘사를 거부한 현대 화가들의 반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티스도 새롭게 발견한 화가다.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 마티스 그림들을 싫어했다.
함께 거론되는 천재 화가 피카소에 비해 창의적이지도 않고 마치 학생들의 그림인 것처럼 묘사력도 형편없고 대체 왜 위대한 화가인지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온 그림들을 보면서 왜 그를 색의 천재라고 부르는지 이해하게 됐다.
모든 그림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보는 순간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들이 많았다.
어쩜 이런 색깔들을 자유자재로 배치하는지, 특히 그가 장식미술의 대가임을 확인한 게 바로 폴리네시아 연작이었다.
이 그림은 마치 디자인 도형 같은데 콜라주 작품이다.
종이를 오려 붙어 바다와 하늘을 표현했다.
이 그림을 가방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걸 봤는데 보통 명화는 디자인으로 이용되면 촌스러운데 비해 마티스의 그림을 이용한 캔버스백은 정말 세련되고 예뻤다.
가격만 비싸지 않았다면 당장 구입했을 것이다.
무려 28만원!
판넬로 만든 것도 예뻐서 한참 눈독만 들이다가 엽서로 만족했다.
아마 그는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장식미술가나 일러스트레이터로 명성을 떨쳤을 것 같다.
굳이 예술가가 아니라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산업미술가가 됐을 것 같다.
원래 변호사였는데 모로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화가로 전업했다고 한다.
요즘 드는 생각이, 화가들은 정밀한 손재주 외에도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 창의성이 아닐까 하는 거다.
남의 그림 베끼는 모사가들과 예술가의 차이는 기술에 있는 게 아니라 상상력에 있지 않을까?
나는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을 볼 때마다 그 발상의 독특함에 늘 감탄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사진 예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사진 몇 점이 소개됐지만 대체 뭘 감상하라는 건지 난감했다.
비디오 아트도 마찬가지.
왠 여자가 절벽에서 첼로를 연주하는데 잠 와서 보다가 나왔다.
어떤 남자가 비디오 안에서 뭐라뭐라 중얼거리는 것도 마찬가지.
솔직히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왜 예술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대신 올리브 잎으로 장식한 설치 미술은 후각을 자극해서 그랬나, 무척 좋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까지 현대 미술을 즐기기에는 내 미적 수준이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
즐겁게 본 전시회였고 도록으로 다시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퐁피두 센터에 갔을 때 대충 본 게 아쉽다.
이런 전시회들이 더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