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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문식·김정호 지음 / 김영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오래 전에 비슷한 종류의 책이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대충 훑어 보기만 하고 이제서야 읽게 됐다.
침대에 누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던 중 눈에 띄어 골랐는데 정작 책은 도서관에서 독서대 펴고 앉아 집중적으로 읽었고 열심히 읽을 만한 보람이 있었다.
얼마 전에 방문한 창덕궁의 길라잡이 설명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동안은 궁궐의 명칭이 나와도 아무 생각없이 넘어갔는데 한 번 방문해서 설명을 들은 곳이라 책에 나오면 무척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머지 궁들도 시간을 내서 꼭 가 보고 싶다.
조선 왕세자 교육은 아마도 조선 최고의 엘리트 교육 혹은 영재 교육이었을 것이다.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는 의식까지 있었던 걸 보면 확실히 조선은 유학을 국가의 기조로 숭상했던 것 같다.
학자 군주야 말로 조선왕조가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이었을 듯.
왕은 정치가이나 권력자였으니, 학문을 전업으로 하는 유생들이나 신하들을 학문적으로 제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보다 한 단계 위에서 스승으로서의 군주의 면모를 보여 준 영조와 정조의 학문적 성취는 참으로 대단했던 것 같다.
정조는 개인 문집만 해도 백 여 권이 넘을 정도로 학자의 면모를 보여 준다.
이 책에는 자세히 안 나왔지만 얼마 전 박물관에서 본 <왕의 글이 있는 그림전>에서도 그림을 사랑하는 숙종의 우아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조선의 왕 하면 신하들에게 휘둘리기나 하고 후궁들만 끼고 돌 것 같은 이미지인데 생각보다 품격있고 격조 있는 점잖은 선비들이었던 것 같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속설은 워낙 많아 왕의 자손을 낳기 위한 궁중 여인들의 노력은 참으로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
제일 황당한 것은 이른바 길일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합궁일을 따로 정해 두는 것이니, 실제로 좋지 않은 날을 이것저것 제하다 보면 한 달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했다고 한다.
여성의 가임 기간이 배란일 기준으로 앞뒤 사나흘에 불과한데 배란일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 합궁일을 제한하게 되면 왕비가 수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고 보면 정비에게서 가장 많은 자식을 얻은 세종대왕은 소헌왕후와 정말 부부 금슬이 좋았던 모양이다.
세종대왕은 인간적으로도 무척 정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보통 독상을 받아 혼자 식사하는 법인데 그는 항상 여러 아들들을 데리고 같이 밥을 먹었다고 한다.
겨우 서너살 때부터 원자보양청이라 하여 영재교육을 시작한 조선 왕조의 왕세자 교육을 보면, 오늘날의 교육 열풍이 과연 전통이구나 싶기도 하다.
선천적으로 학문을 좋아했던 인종이나 정조 같은 기특한 학생들이면 부모나 사부나 가르치는 기쁨이 있었을텐데, 대부분의 평범한 왕세자들은 진도에 맞춰 따라가기가 꽤나 버거웠을 것 같다.
유모를 봉보부인으로 우대한 전통이나, 사부에게도 배우기 전 깍듯이 절을 했던 걸 보면 과연 조선은 인의예지의 나라였음이 분명하다.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영조의 어머니가 무수리였던 반면, 경종의 어머니는 정식 나인이었고 장희빈의 큰아버지는 당대의 부호였다.
비록 사약을 받아 죽기는 했으나 한 때는 왕비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던 인물이니,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와 비교하는 것은 잘못인 것 같다.
둘 다 똑같은 무수리 출신이라고 기술한 점은 고쳐야 할 부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