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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해전사 - 7년 전쟁, 바다에서 거둔 승리의 기록
이민웅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현직 해군이 임진왜란 중 해전만을 분석한 글이다.
논문을 수정해서 썼기 때문에 출처도 분명하고 비약이 많지 않아 읽기 편했다.
임진왜란과 이순신은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지나치게 영웅시 되어 오히려 전쟁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되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이순신은 미화시키기 않아도 충분히 뛰어난 위인이고 매력적이며 무엇보다 인간적이기 그지 없는 인물이다.
오히려 이순신의 성인화 작업이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감소시키고 박제화 된 위인으로 격하시킨다는 느낌마저 든다.
앞서 읽은 <이순신의 두 얼굴>이라는 책에서는, 이순신의 실각을 그의 판단착오로 봤다.
반간계에 정부가 속았다기 보다는, 지나치게 신중한 나머지 기회를 놓친 이순신을 정부가 경질한 것으로 판단했다.
어쨌든 가토가 도해하여 정유재란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니까.
그 전에 이순신이 광해군의 과거 시험을 거부했다거나, 왜영 방화 사건의 공적을 가로챘다고 오해를 산 일 등 전쟁 중 군부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조정 분위기가 있었음을 중요하게 다뤘다.
반면 이 책에서는 널리 알려진 평가대로 조선 정부가 일본의 반간계에 당했다고 판단한다.
그 근거로 일본 측에서 발간된 임진란 관련 서적에서 반간계의 성공을 거론했다는 점을 든다.
어떤 게 진실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중요한 점은, 어쨌든 전쟁 중에 가장 뛰어난 업적을 거두고 있던 최고 지휘자를 경질한 것은 최종 결정권자인 국왕 선조의 완전한 패착이었고 그 결과가 참담한 조선 수군의 전멸인 칠천량 해전으로 나타났으니, 이 사건을 계기로 이순신의 위대함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겠다.
비단 이 책 뿐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등을 봐도 그렇고 실제 난중일기를 읽어 봐도 이순신은 꽤나 강직하고 자기확신이 강하며 주관이 뚜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꼿꼿한 조선 선비의 면모가 무장의 강인함과 더불어 유감없이 발휘되는 느낌이다.
결정을 내릴 때는 최대한 신중하게, 한 번 내린 결정은 어떤 난관이 있어도 밀고 나가는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정치력은 부족했기 때문에 난중이 아니었다면 그의 진면모가 드러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명량해전을 분석한 글이 흥미로웠다.
물밑에 철쇠를 걸었다는 의견은 전설로 치부하고 그보다는 협수로를 이용한 작전과, 일본의 큰 함대인 아다케 대신 규모가 작은 세키부네만 상대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 전쟁에 참가한 전선은 총 133척, 뒷쪽에 늘어선 배까지 합하면 300여 척인데 명량이 워낙 해협이 좁고 물살이 가팔랐기 때문에 칠천량 해전과는 달리 큰 군선인 아다케가 투입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순신은 판옥선 열 세 척으로 해협을 가로막고서 일본군을 맞아 세키부네 31척을 분멸하는 전과를 올린다.
극도로 불리한 상황이었으나 지형을 이용하여 믿기 어려운 승리를 거둔 그의 지략이 돋보이는 해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감동적인 부분은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 수군이 전멸하자 정부에서는 교전 자체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순신에게 해전을 포기하고 육군을 도와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그 유명한 상소, 신에게는 아직 열 두 척의 배가 있다는 상소를 올리고 군사들에게도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고 격려한다.
그 용기와 기개, 배짱이 놀라울 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고, 그는 또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 자만심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실제로 이순신은 군기를 엄격하게 잡는다.
조선 수군은 백성들이 기피하는 천역이었는데 전염병에 기아까지 겹치자 도망자가 속출한다.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한 것도 도망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탈영병은 전부 처형함으로써 군기를 잡고 부족한 병력은 친족에게라도 군역을 지움으로써 반드시 채워 넣었다.
또 기아가 속출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휴전 기간 내내 군선을 목표량 만큼 만들어 냈고 실제 그 목표를 달성한 곳은 그가 지휘한 전라좌수영 뿐이었다고 한다.
무서운 집념과 엄격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런 지휘자였기 때문에 그의 군영으로 백성들이 모여 들어 명량 해전 때 군민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특히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해 둔전을 성공적으로 경영함으로써 오직 수군만이 군량 공급을 할 수 있어 감찰하러 나온 이원익이 탄복했다고 하니, 과연 명장이 아닐 수 없다.
원균과의 불화는 이 책에도 자세히 나온다.
아마도 그는 신중하고 엄격한 이순신과는 반대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기생을 불러 들여 물의를 일으키고 부하들에게도 잔혹했으며 신의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을 보여 선조의 신임을 얻는다.
그는 윤두수 등과 인척 관계였다고 한다.
꼿꼿한 선비 타입인 이순신과는 반대되는, 전형적인 무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그런 단순하고 우직한 점이 선조로 하여금, 복잡다단한 이순신 보다 더 상대하기 쉽고 편하게 신뢰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을까 싶다.
확실히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 이순신에 대한 선조의 신임은 부족한 점이 큰데 여러 정황을 보더라도 선조는 전쟁을 이끌 지도자감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신뢰했던 원균에게 지휘권을 맡겨 놓고서도 현지의 판단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수군 진격을 명령한 점은, 결국 칠천량 해전의 대패로 이어져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고 만다.
저자는 일선 지휘자의 판단을 무시한 조정의 지휘 계통 혼란도 중요한 패전의 원인으로 꼽는다.
한마디로 정부는 조선 수군의 전반적인 상황을 너무 낙관한 통에 이순신에게도 그렇고 원균에게도 무조건적인 수군 단독 저지를 주장했던 것이다.
반면 일선에서 전선을 책임진 지휘관들은 이순신 뿐 아니라 원균마저도 수군 단독으로 일본군을 막기는 역부족이므로 육군과 함께 싸울 것을 주장하지만, 이순신은 실각하고 원균은 빨리 나가지 않는다고 도원수 권율에게 끌려가 곤장을 맞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무신을 우대하지 않는 조선의 전통적인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타고난 무인들이었던 일본군과 맞서 싸우기가 지략적인 면에서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한 가지 간과했던 점은 일본 역시 수군이 주력 부대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근대 이전에 해전이 주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육지를 코 앞에 둔 해안가에서 벌어진 해전이기도 하다.
일본은 해적질의 역사가 깊어서 얼핏 생각하면 수군도 강력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작고 빠른 배를 타고 돌진해 상대의 배에 올라타 일대일 격파를 벌이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에 큰 군선인 판옥선과 화포에 당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오히려 조선 수군은 일본 해적들의 오랜 침략 때문에 군선을 만들고 화포를 개발해 왔다.
태종 때 거북선이 개발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그들은 수군을 보급선으로 이용했는데 이순신의 활약으로 보급로가 끊겨 육지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맞기도 한다.
임진왜란은 근대 이전 동아시아의 세 나라가 참전한 국제전이었고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연구가 더 활발하게 전개되어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