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전쟁사 - 고대 동서양 문명의 대격돌
헤로도토스 지음, 우위펀 엮음, 강은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표지도 예쁘고 디자인이나 편집도 읽는 이의 마음을 뺏는 좋은 책이다.
서점에서 신간 서적으로 접한 후 읽으려고 마음 먹은 책인데 마침 도서관에 입고가 됐길래 얼른 집어 들었다.
사실 처음 부분은 각 나라의 전설 같은 걸 늘어 놓는지라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그가 말하는 민족과 나라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황당한 전설과 신화로 얽혀 있어 도저히 역사라고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역사학자가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사>를 해석해 주는 책을 택할 걸 그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당시 상황을 전혀 모르는데 원저로 읽는다는 건 상당히 지루한 일 같았다.
그러나 뒷쪽으로 가면서 드디어 페르시아 전쟁사가 나오자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막연히 그리스 민주주의가 페르시아의 전제정을 이겼다는 식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이, 생생하게 살아서 뚜렷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뒤에 해설에서는 헤로도토스가 아테네 민주정을 찬양하면서 동양의 전제정을 물리쳤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적어도 내가 본문을 읽기에는 그런 해석이야말로 현대의 관점에 과거를 비춰 보는 관점이 아닐까 싶다.
헤로도토스는 전쟁사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면서 대제국 페르시아의 위대함에 대해서도 본문을 아끼지 않고 할애한다.
그는 결코 아테네를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찬양하지도 않았다.
다만 작은 나라가 큰 제국을 맞아 훌륭하게 자신들의 땅을 지켜냈음을 자랑스럽게 적었을 뿐이다.
헤로도토스는 상당히 개방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고, 이오니아 사람이라는 출신 배경 때문인지 몰라도 아테네에 대해 큰 애국심을 가진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열린 태도가 <페르시아 전쟁사>를 위대한 고전으로 남긴 것 같다.
페르시아의 침공에 맞서 그리스 연합군들이 분전했으나 실제로 주력 부대는 아테네였고, 스파르타는 매우 부수적인 역할만 한 게 나온다.
300명의 전사를 이끌고 집단 전사한 테르모필레 전투 때문인지 나는 스파르타가 굉장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매우 소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전쟁 이후 아테네가 지배력을 행사하게 됐음은 너무 당연하다.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 그리고 아테네의 민주정이란 오늘날의 대중민주주의와는 개념이 매우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지역적 특성 때문에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고립되어 각자의 정치와 사회를 발전시켜 나갔기 때문에 대제국을 이룬 페르시아에 비해 결코 위대하다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구약성서에도 보면 초기에 혼란했을 때는 판관들이 정치를 하다가 사회가 성숙하자 비로소 왕을 세우지 않았던가?
서구의 민주주의와 동양의 전제주의가 맞선 싸움이라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또 엄밀히 말해서 페르시아를 동양으로, 혹은 아시아로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저 교류하는 민족 중 하나였고 오늘날 의미의 동서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나는 책을 읽으면서 페르시아의 놀라운 영토와 지배력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립박물관에서 있었던 <페르시아전>에서도 느낀 바지만 고대 사회에서 그 정도의 넓은 영토에 수많은 민족들을 복속시켰다는 것은, 비록 아테네 침공에 실패했다 할지라도 제국의 위용에 큰 손상은 안 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페르시아를 아예 멸망시켜 버린 마케도니아의 영웅 알렉산드로스의 위용을 칭송하는 게 이치에 맞을 것 같다.

항상 낯설게 느껴지던 리디아나 트라키아, 이오니아 등이 대체 어디를 가르키는지 그리고 그 곳에 살던 민족은 누구인지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실체가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편집자의 해설도 매우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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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오브 시베리아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 줄리아 오몬드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오래 전 아마도 대학교 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 너무 길어 보다가 잤던 영화다.
그런데도 유독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안드레이가 기차를 타고 호송될 때 사관학교 동료들이 그가 탄 객차를 찾지 못하자 역에서 오페라의 한 곡조를 합창하던 장면이었다.
그 때 그 아리아가 어찌나 기억에 생생한지 한동안 대체 그 노래가 뭔가 무척 궁금해 했는데 이제 다시 들어 보니 <휘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제일 대표적인 아리아였다.
나도 모르게 따라서 흥얼거렸다.
이런 아리아를 원어로 따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드레이와 그의 동료들, 혹은 제인처럼 말이다.

그 때는 줄리아 오몬드가 너무 못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꽤 귀엽고 활짝 웃는 모습이 전형적인 미국 아가씨답다.
안드레이로 나온 배우도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질투로 인생을 망치고 만 열정적이면서도 순수한 러시아 젊은이 역을 잘 소화해낸다.
비록 아무리 영화라 해도 스무 살 어린 생도로는 안 보일 만큼 나이가 먹었지만.
극장에서 볼 때는 대체 이게 뭔 영화인지 전혀 감동이 없었는데 이번에 DVD로 볼 때는 안드레이가 호송되는 역장면에서 많이 울었다.
동료들의 따뜻하지만 안타까운 배웅, 어머니와 그를 사랑하던 하녀 두리샤의 눈물, 그의 상관이었던 대위, 그리고 그를 죽음의 나락으로 밀어 넣고 만 아름다운 제인...
대체 삶이란 혹은 운명이란 뭘까?
황제의 암살범을 잡고 당당하게 황제 앞에서 임관을 한 이 젊은 장교는 왜 족쇄가 채워진 채 형벌의 땅 시베리아로 끌려 가는 것일까?
제인이 한 말, 행복할 때는 내가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생은 채워지길 기다리는 그릇 같은 거라는 말, 너무나 동감한다.
어떤 행복이 혹은 불행이, 슬픔이 또 기쁨이 올지 아무도 모른다.
삶이 우리를 이끄는 그 힘은 누구도 모른다.
다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든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 뿐.

하녀 두리샤를 왜 그렇게 자주 보여주나 했더니, 나중에 그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그녀와 결혼해 아이를 둘이나 낳는다.
사실 제인도 아이를 가진 채 그와 헤어졌다.
그는 러시아 여행이 금지됐기 때문에 그에게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맥클레인과 결혼까지 한다.
그리고 10년 후 드디어 그 앞에 나타나려 했으나 그만 두리샤와 아이들을 먼저 접하고 만다.
그녀는 오열하면서 안드레이를 보지 않고 도망치나 10년의 세월 동안 안드레이가 혼자 살 거라 생각한 건 너무 자기 위주의 생각 아닐까?
사실 그 장면이 이해가 안 갔다.
왜 두리샤는 아이들과 함께 헛간으로 숨었을까?
강도라 생각해서?
제인은 아마도 그녀와 아이들의 존재를 알아 차린 듯 한데 역시 그녀는 못 본 체 도망치고 만다.
혼자서 아들을 군인으로 키워 낸 제인은 드디어 아들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 주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휘가로의 결혼>을 배경음악으로 잘 활용한 멋진 영화였다.
러시아적인 풍습과 자연 배경도 종종 등장해 재밌었다.
안드레이가 제인에게 배신감을 느껴 숨을 몰아쉬면서 이성을 잃은 장면은 얼핏 보기에 간질 발작처럼 느껴졌다.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는 안드레이는 다분히 위험 요인이 많은 젊은이였다.
한 번의 사랑에 인생을 걸고 만 이 치기어린 순진한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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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박성래 지음 / 교보문고(교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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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좀 오래 된 책이라 그런지 요즘 책과는 다른 약간 촌스런 느낌을 준다.
일본인을 일본어 표현 대신 한자로 부른 것도 그렇고 논지를 전개하는 형식도 세련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쩌면 저자의 최근 작품은 좀 더 발전된 주장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정통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니 단지 민족주의에 치우져 민족 과학을 주장하는 건 아닐 것이다.
저자의 정의대로라면, 민족과학이란 서구의 과학 지식을 받아들여 우리 식으로 소화해 내자는, 국내 과학 발전 추구인 것 같다.
일본이 네덜란드로부터 난학을 받아들여 자체적으로 과학 기술을 양성해 낸 것처럼 말이다.
일본의 개방적인 태도는, 어쩌면 중국 문화권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성리학 수준이 조선보다 떨어졌기 때문에 성리학의 위상이 일본 내에서 조선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인정권이 수백년 통치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조선처럼 학자가 관료가 되고 왕이 되는 게 아니라 칼을 잡은 사람이 권력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한문을 거의 알지 못했다고 한다.
성리학의 상대적인 약화가 난학을 보다 빨리 수용하게 된 배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근대사에서 읽은 내용들이 종종 등장해 반가웠다.
특이한 점은 도쿠가와 막부 역시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기독교를 박해했으면서도 나가사키의 한 항구는 열어줘 계속 통상을 했다는 사실이다.
과학과 종교의 구별을 확실히 했던 셈이다.
반면 조선에서는 서학을 기독교와 서양 기술 등으로 뭉뚱그려 정치적 박해를 가했으니 아쉬운 대목이다.
아마도 일본이 조선과는 달리 오래 전부터 중국 뿐 아니라 동남 아시아 등과 교역을 해 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다.
완전한 농업 국가였던 조선과는 상당히 다른 사회구조를 가졌고 이런 점들이 고대 사회에서는 한국에 뒤지는 결과를 낳았으나 시대 조류가 바뀌면서 흥기할 기회를 잡은 것 같다.

측우기와 자격루, 첨성대 등은 대체 언제부터 민족과학의 상징으로 등장하게 됐을까?
저자는 유길준을 그 시조로 본다.
그 전에는 과학기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자랑의 근원으로 삼지 않았다.
조선이 망해가면서 특히 나라를 잃은 후로는 박은식 등에 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자부심의 원천으로 과거의 발명품들을 동원했다.
이른바 민족의 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봐도 20세기 초부터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동경이 형성됐던 것 같다.
비록 저자의 한탄처럼 분위기만 잡아갔지 실제적인 교육이나 투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왜 세종 때만 과학기술이 발달했을까?
사실 나도 이 점이 항상 궁금했고 남들처럼 왕이 워낙 똑똑해서였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세종 때 기틀을 잡아서 다음 시대부터는 별다른 혁신 없이 쭉 그대로 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대만 유난히 과학이 발달한 게 아니라 그 시대에 기반을 다져 놓은 걸 그 다음 시대에도 똑같이 유지했으므로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리있는 말 같다.
사회 자체가 워낙 정적이었으므로 특별한 변화나 혁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적어도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이 보여 준 그 놀라운 천재성은 적어도 한글 창제 하나만 가지고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책에 소개된 여러 기술적 혁신들을 보니 더욱더 세종이라는 인간과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놀라게 된다.
확실히 그는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었을 것 같다.

조선 시대 화포의 발달은 꽤나 주목할 만 하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명군의 지원도 있었지만 전적으로 화포 덕분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연전연승을 이룬 이순신의 전선은 조총 같은 화승총에 의존한 일본군에 비해 월등한 화력을 자랑했다.
화력의 위상은 임진왜란에서 특히 빛난다.
최무선에 의해 처음 화포가 제작된 후 여러 번 개량이 이뤄졌다.
근대적인 무기 발달로 나가지는 못했으나 서구 세력의 침략 이전에는 충분히 한 나라를 방어할 만 했을 것이다.
일제 식민 시대에 고등교육이 형편없었다는 자료들이 속속 들어나 안타깝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 내에서 종합대학을 졸업한 과학 기술자는 거의 없었고 외국에서 학위를 받는다 해도 개인적인 인맥에 의존해서지 시스템 적으로는 뒷받침이 전혀 안 됐다고 한다.
어차피 식민지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니 일본인에게 그런 정책적 관용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으나 식민지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손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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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클래식 - 조우석의 인문학으로 읽는 클래식 음악 이야기
조우석 지음 / 동아시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클래식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궁금해 집어 든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아닌데 싶다.
클래식의 문화 권력화를 비판한 것까지는 좋은데, 바흐나 모짜르트 등의 음악 자체를 멜랑콜리 하다느니 깊이가 없다느니 하는 말장난을 친 것이 결국은 책의 품위를 깎아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자체를 비난한다는 건 그 사회적 맥락을 비판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대로 스스로 느끼는 것, 아무런 편견 없이 자기 좋을대로 듣는 게 최고라면 클래식 애호가들 역시 자기만의 감상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 작품 자체를 재즈 등에 비해 죽은 음악이라고 비난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대체 그 기준은 무엇이고 과연 작가가 그것을 이처럼 원색적이고 노골적으로 판단할 깜냥이 되는 사람인가?
특히 국악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대금에 비하면 플룻은 앵앵거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교한 건 천박하기 그지 없다.
국악의 아름다움은 국악 자체로써 강조하면 되는 일이다.
모짜르트 이팩트나 천재 신화를 비판하는 건 나름 의의가 있는 일이나, 모짜르트 자체가 별 거 아니라느니 그 음악이 깊이 없는 달콤한 과자에 불과하다느니 라는 식으로 나오는 건 경청할 가치가 없는 소리다.

이 책에서 공감했던 부분은 서양 고전 음악의 권력화를 비난하는 부분이었다.
천재란 사람들의 과도한 기대가 만들어 낸 발명품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마이클 셔먼의 책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대체 모짜르트가 단 한 번의 수정도 없이 처음부터 완벽한 악보를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냔 말이다.
주체성을 갖고 내 식대로 듣는 것, 어쩌면 예술을 감상하는 모든 감상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지도 모른다.
임동창이라는 퓨전 국악인이 소개되는데 이런 적극적으로 자신감 있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 너무 오버해서 서양 클래식 듣는 사람은 죄다 서구 제국주의에 종속되어 있다는 식으로 매도하면 그 때부터는 방향을 잃고 만다.
서구 사회도 그렇지만 요즘은 대중음악에 비해 클래식이 하도 밀리고 있어서 그나마 젊은이들 사이에서 클래식을 듣자는 바람이 부는 걸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서구에서는 노인네들이나 공연장에 가는데 우리나라는 서구 선망 때문에 젊은이들이 저런 한심한 음악을 들으러 간다고 비난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극단적인 논리에 한숨이 나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국악이나 재즈 혹은 민속음악이 클래식 보다 우월하다는데 이런 비교 자체가 벌써 문제가 있지 않을까?
클래식이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면 그것도 틀린 주장이나 반대로 그들보다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냔 말이다.

나는 어떤 예술이든 사회적 위상이나 이른바 권력 속성에 좌우될 필요 없이 자기만의 눈과 귀로 즐겨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책을 읽은 것은 지적이고 교양있는 척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 요즘 책 많이 읽는다면 오히려 따분한 사람으로 본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그 완벽한 충족감과 지식욕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클래식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귀에 듣기 좋고 가끔 생기는 감정의 고양이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이다.
루벤스나 뒤러의 그림을 열심히 들여다 보는 게 지적인 체 하려고 일부러 고생스럽게 아무 감동도 없는데 하는 일이겠는가?
마음으로부터 느끼는 감동, 속에서 올라오는 울컥 하는 기분, 나도 모르게 고양되는 의식들.
직업적으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스스로 느끼는 그런 강렬한 미적 체험의 즐거움 때문에 기꺼이 돈과 시간을 들여 예술품을 감상할 것이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재즈나 국악에도 관심이 생기긴 했다.
다양성의 원리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일이므로 보다 많은 민속 음악들이 소개되고 각 분야에 자극을 줘서 새로운 형식들이 많이 등장하면 좋겠다.
한 가지 더 비판하고 싶은 것은 저자의 그 과도한 오리엔탈리즘 극복 의식이 오히려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으로 흐르고 심지어 보편적인 정서나 과학까지 무시하는 옥시덴탈리즘은 아닌지 하는 점이다.
의학은 그저 의학일 뿐이다.
인간의 몸을 보는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사회적인 그런 담론의 수준이 아니고 실제로 몸의 작용과 기능, 질병의 원인과 병인론에 대해 살펴본다면 민족의학이나 서양의학이니 하는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어설픈 사회학자들이 의학에 대해 관념론적인 시각을 들이대면 참 한숨이 나온다.
의학에 대해 공부를 좀 하고 떠벌였음 좋겠다.
민족의학, 민족음악 이런 구별짓기 자체가 벌써 보편성을 무너뜨리고 차별적인 시선을 만드는 시도는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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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두 얼굴
김태훈 지음 / 창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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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이고 재밌게 읽은 책이다.
참고문헌이나 각주 하나 없이 온전히 지문만으로 720페이지를 채운  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시각으로 쓰여진 책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보통 내 독서 속도가 한 시간에 60페이지 전후인데 이 책은 100페이지까지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문장이나 내용이 쉽고 재밌다.
아마 사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썼다면 보다 전문적이고 문장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여튼 나처럼 일반인이 교양서로 읽기에 적당한 책으로 마치 소설을 읽는 것과도 유사했다.
마지막에 이순신의 경력을 분석한 장은 꽤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었다.
당시 벼슬을 현재의 공무원 직위와 비교한 점이 특이하고, 이순신의 억울한 파직이나 파격적인 승진 등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나름대로 비평한 부분도 신선했다.
이런 부분이 바로 일반인의 새로운 시각이 아닐까 싶다.
물론 현재의 관점으로 당시를 본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해석할 때는 사료와 별 상관이 없는 당시 정세나 문화, 풍습 등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진실에 가까운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에 꽂혀 다시보기를 하는 중이라, 여기 나온 전투들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드라마만 볼 때나, 책만 볼 때와는 다른 독특한 문자와 영상의 결합이었다.
사실 이 책은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고,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서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반해서 보다 자세히 알고 싶은 욕구에 다시 집어든 책이기도 하다.
제목은 <이순신의 두 얼굴>이라고 다소 자극적으로 붙였지만 실제 내용은 이순신의 상황을 보다 현실적으로 분석한 정도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가 파직을 당했다면 일반적으로 상급자가 탐욕스럽고 우매해서 파직시켰다는 식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요즘 현실과 비추어 봤을 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정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식으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확실히 그는 드라마에 나오는대로 꽤 과묵하고 진중하며 대담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실 드라마를 보면서 이순신이 너무 침묵을 지켜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 여러 일화들을 살펴 봐도 그는 꽤나 고집스럽고 주관이 확실하며 시시껄렁하게 농담따먹기를 한다거나 허세를 부리는 식의 위선을 굉장히 싫어했을 것 같다.
방향이 정해질 때까지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고, 한 번 정하면 죽음을 불사하고 밀고 나가는, 전형적인 무관의 성격 같다.
드라마가 보여 주는 이순신의 이미지와 많이 흡사하다.
그러고 보면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 작가가 꽤 연구를 많이 한 것 같다.

책과 드라마의 재밌는 차이점은, 이순신의 실각을 보는 관점이다.
드라마에서는 당연히 이순신에게 무리한 부산 출격을 요구한 정부, 특히 선조를 비난하지만, 책에서는 오히려 이순신의 지나친 신중함이 그를 권좌에서 끌어 내린 것으로 해석한다.
어쨌든 가토는 첩보에 입수된 대로 그 시각에 도해를 했고, 이순신은 왕명을 거역했으니 말이다.
전격적으로 체포를 명령한 드라마와는 달리, 책에서는 조정이 꽤나 신중하게 갑론을박 했음을 보여 준다.
실록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니 신뢰할 수 있다.
뜻밖에도 처음부터 무조건 체포를 주장한 것을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이순신 체포에 가장 열성적으로 나오는 윤두수, 윤근수 형제는 원균과 반목하고 있으니 원균을 통제사로 임명하고 이순신은 전라 좌수사로 체직시키자는 의견을 낸다.
원균과의 관계는 난중일기에도 무수히 드러나지만, 상부에 올린 공식 보고서에서도 가감없이 나온다.
조정에서도 둘의 불화를 많이 염려하였고 이순신이 심지어 통제사가 된 후 원균 때문에 사임하겠다는 초강수까지 두기도 한다.
조정에서는 한쪽 편을 드는 대신, 원균을 수사에서 병사로 자리를 옮겨 앉게 함으로써 무마한다.
이순신의 강직한 성품과 역시 꼿꼿한 원균이 꽤나 대립했던 것 같은데, 궁극적으로 봤을 때 이순신이 상관임에도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계속한 원균의 성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여튼 처음에는 부산 진격을 거부한, 어찌 보면 항명을 한 이순신을 조정에서는 품계를 낮추자는 온건한 의논을 한다.
뜻밖에도 유성룡이 적극적으로 나서 이순신을 비난하기도 하는데, 자신이 천거한 사람이 왕명을 거역하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다 보니 그 역시 보신책으로 역공세를 편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전라좌수사로 내려 앉게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곧 사간원 등에서 들고 일어나 이순신은 압송된다.
어쩌면 대전에서만 대신들이 점잖은 논의를 하고, 뒤에서 여론을 일으킨 건지도 모른다.
하여튼 선조는 드라마와는 달리, 이순신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갖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나라를 전쟁에서 건진 영웅에게 호의를 갖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어쩌면 지방의 무관 따위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여러 번 승리를 거두니 그런 놈도 있었구나 하고 겨우 관심을 갖게 됐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이순신이 항명하여 압송이 논의됐을 때 유성룡에게 그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서 심지어 글을 할 줄 아는가, 이런 초보적인 질문까지 하니 말이다.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나라에서 더구나 문신들이 지배하는 조정인데, 국왕이 지방의 장수 하나에 극한 질투감을 보인다는 건 역시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설정 같다.

하여튼 이순신은 갑자기 여론이 악화되면서 서울로 불려 올라 간다.
전쟁 중에 수군 최고 지휘관을 경질하는 건 상당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조정에서는 그가 왜군의 부산 진입을 막지 못한 것을 정유재란의 결정적 시작으로 판단했고 더군다나 왕명을 우습게 안 죄를 엄중히 추국한다.
이것은 이순신의 신중하고 대범한 성격 탓이가도 한 것 같다.
그는 난중일기와 선조실록의 여러 자료에서 어지간해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 신중론을 편다.
그래서 초반에 원균이 왜군에게 패한 후 구원을 요청하는데도 명령을 받지 못했다고 도와주지 않음으로써 그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아마 현장지휘관의 판단으로 봤을 때 부산 진격은 무리수가 많다고 생각하여 왕명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판단을 믿고 거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그의 대범함이 나온다.
아무리 현지 판단이 그렇다 해도 왕에게서 내려온 명령을 거부하는 건 일종의 항명이니 하는 시늉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는 왜군이 바다를 건너 오는 동안 절대로 함대를 움직이지 않는 극히 신중한 자세를 편다.
보통 진중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그 사건이 있기 얼마 전 위험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광해군이 난중에 무과를 실시하려고 하는데 자신 휘하의 수군을 한 명도 안 보내고 일종의 보이콧을 한 것이다.
광해군은 당시 분조를 이끌며 전선에서 왕의 대행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수군에게 불리하다 하여 과거를 거부한 것은 굉장히 도발적인 행위일 뿐더러 전시였기 때문에 용납됐을 것이다.
광해군은 당장 처벌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 꾸짖었으나 결국 이순신의 요청대로 진중에서 시험을 보되, 말타기 등과 같은 수군에게 불필요한 시험은 안 보는 걸로 결론을 짓는다.
당시는 그냥저냥 넘어갔으나 이순신이 몰리게 되자 이 때 사건도 큰 악재로 작용한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그는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대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왕명도 거부하는 굉장한 배포와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부당하다고 여기면 상관에게 맞서는 장면이 난중일기나 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결정할 때는 오래 생각하고 목표가 서면 뒤도 보지 않고 돌격하는 것, 그런 신중함과 대범함이 그를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조선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순신은 냉철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그의 일기에는, 법을 어겼다 하여 곤장을 친 예가 무수히 나온다.
또 군사가 부족하여 친척이나 이웃이 대신 메꾸는 관례를 나라에서 민심 때문에 금지하자 전쟁 중에는 허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한다.
그에게는 적의 섬멸이라는 대의가 우선이었을 것이고, 이런 점은 그가 단지 인기에 영합하는 리더가 아닌 냉철하고 무서운 지휘자임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영웅적인 면모가 더욱 돋보일 뿐더러 모든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전쟁 중에 첩을 얻어 주위를 소란하게 한 원균과는 달리, (넬슨 역시 해밀턴 부인과 간통을 저지른 사건이 책에 등장한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마저 멀리한 자제심을 보인다.
꽤나 엄숙하고 무서운 사람이었을 것 같다.
군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명량해전처럼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는 심지어 대장선이 가장 앞장 서 적을 공격하는 대범함과 솔선수범을 보여 준 이순신, 확실히 승리하는 이에게는 그만한 능력과 위대함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

드라마에서 보여 준 이순신의 이미지와, 사료를 바탕으로 그려낸 이순신의 이미지가 거의 일치하여 읽는 내내 흐뭇하고 즐거웠다.
이순신의 두 얼굴이 아니라, 영웅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 준 셈이다.
한 가지 특이할 만한 사실은, 끔찍한 고문을 당한 드라마와는 달리 책에서는 아마도 심한 고문은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한 점이다.
김탁환 소설을 봐도 고문 장면은 꽤나 실감나게 그려지고 그가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고 묘사한다.
아마 소설의 끔찍한 장면을 드라마에서 영상으로 재현한 것 같은데 나도 그 장면을 보면서 너무 잔인해 저렇게 심하게 구타를 하고도 과연 살 수 있을까 염려가 됐었다.
당시는 항생제나 수액도 없었을텐데 감염 문제는 대체 어떻게 해결을 했을지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저자는 이순신이 28일 동안 하옥된 후 즉시 백의종군 길을 떠난 걸로 보아 심하게 몸을 상하지는 않았을 거라 추론한다.
일기를 봐도 하옥된 일에 대한 심회나 원망 따위는 나와 있지 않다.
내 생각으로는 너무나 치욕스러워 아예 기록을 안 한 건 아닐까 싶다.
하여튼 그가 그 후로도 특별한 문제 없이 전쟁을 수행한 걸 보면 52세라는 나이를 생각해도 그렇고 결국 조정에서 사형 대신 살려 보냈으니 극악무도한 고문을 가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김덕령처럼 옥사했을 것이다.
아마도 수군통제사이자 전쟁영웅이라는 그의 카리스마와 과거의 전공이 많이 참작되어 어느 정도는 일반 잡범들과는 달리 예우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만 항명죄로 끌려온 죄인이고 사형이 논의될 지경이었으므로, 또 조선 시대의 끔찍한 형벌 제도를 생각해 보면 하옥 후 취조가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수군 최고 지휘자에서 (그냥 지휘자도 아니고 모든 해전을 승리로 장식한 이 전쟁 영웅이) 고문을 받는 죄인이 되고 결국은 일개 병졸로 떨어졌다는 그 사실 자체가 모욕스럽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지 모른다.
영웅은 생명보다 명예가 더 우선이지 않은가?
하여튼 원균이 패한 후 바로 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점이나, 백의종군 할 당시에 권율도 그를 예우하여 군관을 따로 붙여 준 걸 보면 그의 위상이 절대 곤두박질 친 건 아님이 분명하다.

드라마에서 본 김명민의 이미지가 그대로 책 속의 이순신에 투영되어 즐거운 독서가 됐다.
작가가 이순신의 캐릭터를 잘 잡아 냈고 배우가 훌륭하게 소화해 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의 위대한 영웅을 눈에 보일 듯 실체가 잡히게 만든 것 같다.
회사원이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게 성실하게 사료 분석을 하고 꼼꼼하게 집필한 저자의 노력에도 박수를 보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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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 2013-11-14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책을 읽었습니만 리뷰를 잘 쓰셨네요. 제 블로그에 책 소개란이 있는데 거기에 옮겨갑니다.
주인장의 허락도 없이 옮겨가서 미안합니다. 원치 않으시면 제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삭제해 드리겠습니다.

karamos@naver.com 입니다.
http://blog.naver.com/karamos 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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