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의 신비 - 세상을 만든 문자 알파벳. 알파벳은 어떻게 태어나, 어떤 상징과 마법의 힘을 갖게 되었나
마르크 알랭 우아크냉 지음, 변광배 외 옮김 / 살림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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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알파벳과 히브리어의 관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얼핏 상형문자가 실은 음절문자 즉 발음기호로써 작용했다는 얘기는 들어 봤으나 히브리어가 알파벳의 모체 역할을 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다.
과학잡지 뉴턴에서 원 시나이 문자라는 걸 처음 발견한 후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는데 이 책을 보니까 감이 잡힌다.
뉴턴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
그 유명한 알파는 황소를 뜻하는 알렙이라는 단어에서 왔다.
황소, 농경과 유목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을 것이다.
황소의 뿔 모양을 단순화 시킨 게 바로 알파벳 첫글자 A 다.
글자는 180도 변형을 하는데, 옛날에는 밭가는 방식으로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썼기 때문에 한쪽으로만 쓰는 그리스 문자에서 좌우 변형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B는 집을 의미한다.
C가 실은 G와 관계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원래는 G를 표현한 건데 그리스인들이 유성음 발음을 못했기 때문에 C를 k 발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G와 Z도 유연관계에 있고 처음에는 Z를 버렸지만 나중에 라틴 문자 이후 다시 Z를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자리에 끼어들이 못하고 맨 마지막으로 갔다고 한다.
더 신기한 것은 자음이 모음으로 변한 과정이다.
원래는 자음으로만 이뤄졌는데 여러 변형 과정을 거쳐 A 나 I 등이 모음으로 작용한다.
처음부터 자음과 모음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자음이 필요에 의해 모음으로 변해 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알파벳과 전혀 다른 역사를 갖는 한글도 잠깐 언급된다.
워낙에 영어 열풍이 불어 정말 어느 시점에는 한글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면서도, 세종대왕의 글자 창제는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놀라운 발명품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서양 문자들이다 보니 근원적이고 생략적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히브리어와 알파벳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 좋은 책이었다.
<문자의 역사>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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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윈이 중요한가 - 진화하는 창조론자들에 맞서는 다윈주의자들의 반격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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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셔머의 책은 읽기 쉬우면서도 주장이나 논거가 명확해 나처럼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회의주의적 시선을 견지한 사람들에게 잘 어울린다.
리처드 도킨스는 글을 잘 쓰지만 가끔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는데, 마이클 셔머는 보다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다윈이 중요한가?
나는 이미 확신범이기 때문에 진화론에 대해 더 논의하고 말 게 없지만 여전히 창조론을 주장하면서 전도를 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다시 한 번 읽게 됐다.
중요한 것은, 진화론의 실수가 창조론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고, 창조론을 주장하려면 진화론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 특히 전문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론과 논거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간 고리가 없네, 다운타운인 같은 사기극이 있었네, 이런 식의 비난이 창조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또 셔머가 주장한 바대로 창조론은 극히 일부의 종교적 관점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친다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위반하는 일이 된다.
창조론은 복음주의, 더 정확히 성경 무오류설을 주장하는 일부 극단적인 기독교인들의 주장일 뿐이다.
물론 그것은 과학 이론이 아니고 하나의 신앙, 교조일 뿐이다.
만약 창조론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친다면, 이슬람이나 불교도 학생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학교에서 듣는 꼴이 된다.
나는 오히려 복음주의 교파의 창조론자들이 과학자들에게 창조론을 들이밀게 아니라 다른 교파나 종교인들에게 창조론을 알리려고 애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들은 종교 이론에 별 관심이 없는 집단이다.

신앙은 혹은 종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과학 따위로 정의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범신론적으로 갈 수도 있겠으나, 자연의 비밀을 풀어 가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과학을 가지고 어떻게 신의 깊이와 위대함을 측정하겠는가?
오히려 근본주의자들이 기독교 신의 위상을 깍아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성경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경전이고 성경무오류설을 주장할수록 기독교의 위신은 추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보다 영적이고 심오한 진리를 과학이 아닌 우리의 정신 세계에서 찾는 게 신의 위대함을 지키는 길이 아닐까?
대한민국은 그나마 기독교 근본주의가 노골적으로 강요되지 않는 사회라 다행스럽지만 오늘날 부시를 위시한 미국 정치계의 아부성 발언들은 한 사회의 종교의 자유를 크게 위협한다는 생각이 든다.
왜 기독교만, 그 중에서도 하필 복음주의 교리만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단 말인가?
모든 종교가 기본적으로 배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의 극단적인 배타성은 특별히 경계해야 마땅한 위험한 열정이고, 미국처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선진 국가에서 빨리 종교의 망령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이런 책이 좀 많이 팔려야 한다.
스켑틱 한국어판이 나오면 나도 구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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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견하는 한국사 - 단군신화부터 고려시대까지
이한 지음, 조진옥 그림 / 뜨인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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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의 한계가 종종 보인다.
문제만 던져 놓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안 보인다.
아마도 전문적으로 역사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의 한계인 것 같다.
이를테면 광개토대왕비에 대한 논쟁도 위작설 등이 있다는 식으로 문제만 던져 놓고 잘 해결되야 할텐데 안타깝다, 이런 식으로 끝나고 만다.
책 자체는 기획력 있고 일러스트레이션이 많이 실려 재밌지만 이런 무책임한 결론을 볼 때마다 무척 아쉬웠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인지 고구려나 발해, 고려 등에 대해서도 비교적 친숙하게 자세한 내용까지 알게 됐고 거기에 대한 연구도 대중의 관심을 받다 보니 활발해진 것 같다.
사극이 잘못된 역사 인식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지만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나름 의의가 있다.
오히려 사극을 정통 역사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자세가 더 문제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비교적 덜 알려진 고대사와 고려사를 나름 재밌게 풀어 써 즐거운 독서가 됐다.
확실히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디자인의 역할이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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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즐거운 지식여행 5
게르트루트 레네르트 지음, 박수진 옮김 / 예경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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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문화의 사회사>에 비하면 상당히 디테일하고 직접적인 내용을 다룬 책이다.
책의 판형이 작다 보니 복식에 대한 사진과 그림을 충분히 싣지 못해 아쉬운 점이 있다.
설명은 꽤 자세한데 서양의 복식 문화에 대해 기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구체적인 부분을 손으로 짚어 주지 않는 이상 감이 잘 안 잡힌다.
복식에 관한 책은 필히 사진이 많이 있어야 하고, 가능하면 세부적인 사항까지 자세히 짚어 주는 책이 좋을 것 같다.
마치 우리의 한복을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이런 식으로 자세히 나누면서 세부 명칭들을 그림 대신 말로만 설명하는 식이다.
내용 자체는 이 시리즈가 다 그렇듯 성실한 편이다.
덕분에 서양 복식에 대해 약간의 감은 잡았다.
또 파리를 위시한 현대 디자이너들의 창의성과 혁신을 확인했는데 역시 샤넬이나 디올의 아이디어는 신선하고 놀랍다.
달리 패션의 제국을 이룬 게 아닌 모양이다.
다음에는 사진이 좀 더 많이 나온 복식사를 읽어 보고 싶다.
사회적 의미가 아니라 할지라도 디테일한 복식의 변천사도 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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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교양을 읽는다
버튼 펠드먼 지음, 전제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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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페이지가 넘는, 상당히 두꺼운 책이다.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꽤 많은 시간을 요하는 책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알라딘에서 서평단 모집할 때 신청했다가 떨어진 책이기도 하다.
원 제목이 뭐였을지 궁금하다.
적어도 노벨상과 교양 따위를 엮는 제목은 아니었을 것 같다.
왜냐면 이 책은 노벨상을 상당히 까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상이나 물리학상 등에 대해 받을 만 하다, 형편없다 등의 평가를 하려면 저자가 어느 정도 수준이 되야 한다고 보면, 이 책은 꽤나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편이다.
물리학이야 워낙 천재들의 분야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평할 엄두가 안 나고, 대신 문학상의 경우는 펄 벅의 작품이 함량 미달이라는 얘기는 전부터 들었었다.
<대지>를 인상깊게 읽은 터라 좀 의아했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상주의에 문학상을 수여하라는 노벨의 취지와 부합하기 때문에 줬다고 본다.
노벨상은 지나치게 앞서가는 모더니즘이나 과격한 사상은 배격한다고 한다.
앙드레 말로 같은 경우는 드골주의자였기 때문에 스웨덴 학술원으로부터 배격당했다.
<파리대왕>의 골딩도 부적절한 수상자로 꼽힌다는 점은 의외다.
<파리대왕> 후기를 쓴 번역자는, 영어권 최고의 문장가라고 찬사를 보냈기 때문에 서구권에서 굉장한 인정을 받는 작가인 줄 알았다.
2000년에 발간된 책이라 작년에 수상자가 된 도로시 레싱은 당연히 받았어야 하나 못 받은 케이스로 되어 있다.
해럴드 핀터 역시 마찬가지.
역시 다 받을 만한 사람들이 받은 것 같다.
중국어권에서 한 명도 못 받았다고 나온데 내가 알기로는 가오싱젠이 파리로 망명하긴 했지만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알고 있다.
번역의 문제 때문에 보다 다양한 문학 작품을 알리는데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두 사람의 문학상 수상자를 갖은 것은 꽤나 고무적이다.
항상 소세키나 미시마 유키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이 책에서도 충분히 받을만한 사람으로 언급되고 있다.

제일 열심히 읽은 분야는 물리학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사람들은 천재가 아닌가 싶다.
내가 알고 있는 과학자들은 모두 190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사람들이고, 양자와 전자, 중성자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솔직히 무슨 얘기인지 감이 안 잡힌다.
그저 파인만처럼 유명세 있는 과학자나 가쉽거리 삼아 좀 알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과학을 하는 화학이나 의학 분야가 훨씬 쉽고 재밌다.
물리학자들은 마치 세상의 비밀을 푸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하면 화학자나 생리학자들은 얼마나 인간적이고 앙증맞은지!
뒷쪽에 나오는 경제학과 평화상 부분은 시사적인 내용이 많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평화상에 김대중 대통령이 나올까 싶었는데 특별한 언급이 없어서 아쉬웠고 상 받으려고 애쓴다며 약간 비난조로 언급된 지미 카터 대통령은 결국 이 책이 나온 후 받고야 말았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나온 존 내시는 게임 이론으로 경제학상을 받았는데 병이 발작해 35년간 아무런 연구도 할 수 없었으며 지금은 무슨 대학에서 시간제 연구원으로 일한다는 슬픈 소식도 들었다.

책은 상당히 노벨상 제도와 수상자들, 또 심사위원들에 대해 까는 얘기들이 많긴 한데 대신 꽤 냉철하고 분석적으로 그들의 업적을 잘 설명하기도 한다.
아마도 저자는 노벨상이라는 명성에 주눅들어 무조건 추종하는 그런 매스미디어의 행태가 못마땅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한 번 느끼는 바지만 일본은 역시 따라가기 힘든 선진국이고 한국의 황석영이나 고은 등이 과연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단지 번역이 제대로 안 되서 덜 알려진 것일 뿐인지, 아니면 세계적인 대가들의 반열에 오르긴 부족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상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지역 안배 이런 차원을 떠나서 인류라는 보편적인 틀 안에서, 훌륭한 작품들과 작가들이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작가과 상의 가치가 동시에 높아지길 바란다.
노벨상이 지나친 공명심과 경쟁심을 유발한다고 하지만, 적어도 과학의 발전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이 노벨이라는 사람의 유언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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