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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트렌드 - 세상의 룰을 바꾸는 특별한 1%의 법칙
마크 펜, 킨니 잘레스니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해냄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흥미를 느껴 빌린 책이다.
표지가 퍽 예뻤던 것 같은데 역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겉표지가 날아가 버렸다.
도서관 책은 반드시 표지를 벗겨야 하나?
북디자인이 갈수록 화려해지는 이 시점에서, 참 안타까운 일이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많은 분량이지만 실상은 아주 쉽게 잘 넘어간다.
저자가 글도 쉽게 잘 쓰지만 내용 자체가 워낙 평이하고 흥미로워 금방 넘어간다.
보통 나의 책 읽는 속도는 한 시간에 60페이지 전후이고 좀 쉬운 책은 80 페이지까지도 읽는데 이 책은 한 시간에 100 페이지도 가능하다.
어제 100 페이지 정도 남겨 놓고 너무 졸려서 결국 손을 들고 말았지만 하여튼 쉽게 쓰이고 비교적 문장력이 고른 편이라 빨리 읽을 수 있다.
내용도 흥미롭다.
이제 세계는 관용의 정신이 존중되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 폭이 넓어졌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애쓴다.
20세기 초반에나 유행했을 것 같은 고리타분한 뜨개질이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다시 유행하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마치 DIY 족처럼, 소녀들은 악세사리를 스스로 만들듯 니트도 직접 뜬다.
기계화가 놀라울 정도로 진행하면서도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수공예품도 대인기다.
결국은 구매력 있는 계층으로 성장하느냐 마는냐가 변화를 이끄는 핵심 같다.
1996년도 선거에서 저자는 사커맘이라는 집단을 정의했다고 한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있는 중산층 여성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 사커맘들이 중요한 투표 집단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당연히 교육이나 안전 같은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국방, 안보 같은 문제만 떠들어대는 후보에게 사커맘들은 투표하지 않는다.
히스패닉 계층도 마찬가지다.
불법 이민자들이 주를 이루면서 사회 하층 계층을 차지하나 워낙 수가 많아져 이제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구매 집단으로 성장했다.
영어만 쓰느냐, 이중 국어제가 되느냐 등의 신념적인 문제는 정치인이나 학자들에게 맡겨 놓고, 회사들은 스페인어로 광고한다.
마치 LA 타운에서는 한국어만 써도 살아갈 수 있듯 이제 히스패닉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영어 한 마디도 못 해도 스페인어로만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게 됐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공감도 이들에게 힘이 되어 이민법 개정을 위해 호의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마치 60년대 흑인 차별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분노했듯, 이제 불법 이민자들이라 할지라도 동정표를 살 수 있게 됐다.
시대는 참 빠르게 변하고 있고 저자의 말대로 거대한 흐름 보다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작은 변화들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단 1%의 집단만 형성할 수 있다면 당신은 사회에 변화를 가할 수 있다.
구매력 있는 집단,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이 되려면 1%로 충분하다.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보자면 50만명만 있으면 된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가 아닌 것이다.
정책 입안자나 선거 캠프 홍보관련자들이 더욱 바빠지게 됐다.
다원화 되는 사회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제일 충격적인 것은 성 정체성마저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성애 외에는 공개적으로 드러내기가 힘들지만, 미국에서는 동성애는 물론 양성애, 트렌스젠더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성 정체성을 표기하라고 한다.
숨겨진 게이나 레즈비언들이 앞다투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고 덕분에 젊은 여성들은 더더욱 남자 파트너를 만나기 힘들어졌다.
레즈비언보다 게이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브로큰백 마운틴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모양이다.
홈스쿨링에 대한 트렌드는 종교적 근본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낳는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더이상 부모들이 학교에만 애들을 맡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홈스쿨링을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진화론으로부터 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이런 행태를 생각하면 애들을 위해서라도 과학 교육을 강제해야지 않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홈스쿨링의 70% 이상이 중하층 계층이라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우호적이다.
성경에 나온 그대로 이스라엘의 성공을 예수 재림과 비슷하게 보는 것이다.
한국 교회 역시 이스라엘을 성경과 동일시 한다.
현대 이스라엘과 고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이 과연 같은 의미일까?
한 나라가 이렇게까지 전세계인의 호의를 살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그것이 인류애라든지 약자에 대한 연민 같은 보편적인 가치의 구현이 아니라 독선적이고 편협한 근본주의의 결과라는 게 참 슬프다.
재밌는 내용이 참 많고 거의 대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미국 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보니 100% 한국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라, 한국 사회의 트렌드를 분석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대충 직관적으로 때려 잡는 그런 책 말고 정확한 통계와 조사에 근거한 본격적인 분석책이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 개인의 선택이 최고로 존중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나의 취향이나 신념이 소수자에 속한다고 슬퍼할 필요 없이 보다 적극적으로 동지들을 찾아 나서야겠다.
심지어 재소자, 동성애자들도 권리를 요구하는 판에 약가 독특한 취향 정도야 얼마든지 마음껏 드러낼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