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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ㅣ Mr. Know 세계문학 5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나 읽으려고 벼르던 책인가!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첫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항상 실패했던 책이다.
자연에 대한 감상을 늘어 놓고 서간체였기 때문에 애틋한 사랑 얘기가 얼른 나오지 않아 집중하기 힘들었다.
알고 보니 원래 이 소설이 자연을 예찬하는 이른바 질풍 노도의 시기 문학이라고 한다.
이성주의, 합리주의,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 낭만주의의 정수라고 할까?
하여튼 구구절절한 사랑 얘기가 얼른 안 나와 도무지 재미를 느끼지 못해 맨날 읽다가 내팽개친, 그렇지만 언젠가는 꼭 읽고 싶은 의무감 같은 책이었다.
서점에서 미스터 노 시리즈로 이 책을 만났을 때, 바로 이거다 싶어서 얼른 집어 들었다.
표지가 어쩜 그렇게 예쁠까!
고전은 그 시대의 언어로 재해석 되야 한다는 말도 맞지만, 책 커버에 나온 것처럼 디자인이나 판형 등도 매 시대마다 새롭게 출간되야 함을 느끼게 한 책이다.
종이질도 무척 가볍고 한 손에 쥐고 읽기 쉬울 만큼 책 사이즈도 아주 맘에 들었다.
다만 역시 240페이지에 불과한 책이 7800원이라는 가격은 비싼 감이 들었고 (민음사에서 나온 같은 책은 할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5천원) 번역도 썩 매끄럽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이 번역한 책을 읽어 보고 싶다.
혹은 이 책 자체가 과장되고 수사적인 문체로 되어 있는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내가 생각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3 시간 동안 읽었는데 가벼운 로맨스는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닥터 지바고처럼 사랑 얘기는 뒷전이고 러시아 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방황하는 개인의 갈등을 표출한 것도 아니었다.
괴테가 겨우 스물 다섯에 이 소설을 썼다는 게 충분히 믿어진다.
스물 다섯이면, 나보다도 어린 나이니 충분히 이런 감정에 빠질 것이라고 이해된다.
괴테도 나중에 이런 감상적인 소설을 쓴 걸 부끄럽게 여겼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도 나이가 들면 아마 이런 감정은 젊은 시절의 치기어린 것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많이 공감하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자살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하니, 아마도 대중의 공감을 살만한 어떤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을 것 같다.
지금의 우리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분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정말 나폴레옹은 이 책을 전장에서도 읽었을까?
대체 어떤 점에 그토록 빠져 들었던 것일까?
혹시 한국어로 번역되서 내가 그 맛을 못 느끼는 건 아닐까?
사실 나는 크게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베르테르의 선택은 너무나 극단적이다.
첫 장에서 베르테르는 사랑하는 연인이 죽은 후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빌하임이라는 마을로 요양을 온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로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무리 사랑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지만 이렇게 쉽게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게 말이 되나?
이 시기를 잘 넘겼으면 아마 베르테르는 또다른 연인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베르테르의 문제는 로테가 살고 있는 마을로 다시 돌아갔다는 데 있다.
로테에게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돌아온 후 베르테르는 그 곳을 떠나 어떤 백작의 관리로 일한다.
그 곳에서 일이 잘 안 풀리자 다시 로테의 마을로 돌아온다.
그리고 결혼 생활을 하는 로테에 대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만약 백작의 관리로 승승장구 했다면?
아마 그는 로테에 대한 마음을 차츰 잊어갔을 것이다.
일이 안 풀리고, 어떤 대안으로써 다시 로테의 마을로 돌아간 게 문제였다.
스물 다섯 젊은이의 치기라고 할까?
소설에서 로테와의 관계가 마음으로는 어느 정도 통했으나 실제적인 연애는 거의 없었음을 보여 준다.
겨우 베르테르의 강압적인 키스 한 번 뿐!
로테가 베르테르에 대해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있었음은 분명하지만 열렬히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베르테르 혼자 짝사랑 한 것에 불과하다.
로테는 알베르트와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둘 사이에서 홀로 괴로워 하는 베르테르는 삼각관계라고 착각한 후 결국 스스로 빠지기로 결심한다.
그 선택이 자살이라니,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나!
소설 속의 베르테르는 성격이 참 마음에 든다.
불쾌한 기분, 우울한 기분도 다 병이라고 보는 베르테르는, 질병을 치유하듯 그런 기분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자신의 불쾌한 기분 때문에 남에게 그런 기분을 전이시키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한다.
보통 기분은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질병의 일종으로 보고 역시 치료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본다는 그의 관점이 마음에 든다.
기분은 전염되기 쉽기 때문에 스스로의 기분을 좋게 유지해야 남에게 피해를 안 준다는 그의 논리가 마음에 든다.
이렇게 긍정적이고 올바른 생각은 갖는 사람이 대체 자살이라니, 이 무슨 극단적인 선택이란 말인가?
로테가 있는 마을을 떠나 다른 일을 찾았다면 아마 베르테르는 곧 자신의 긍정적인 성격을 회복하고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통 로테라고 하면 샤를로테의 애칭 같은데, 여기서 주인공의 이름은 로헤텐이었다.
원래 괴테가 반한 실제의 여인 이름은 샤를로테였다고 한다.
일부러 바꾼 모양이다.
70대의 나이로 10대 소녀에게 프로포즈를 한 괴테의 애정 편력에 비춰 볼 때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한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더더욱 못미덥다.
더구나 단순히 짝사랑만 가지고 말이다.
독일어 소설은 좀 지루한 느낌이 든다.
사실 인문사회 서적도 그렇다.
독일 특유의 어떤 분위기가 있는데 영국, 미국적인 것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언어의 강렬함도 그렇고.
하여튼 벼르던 소설을 읽어 버려서 마음이 홀가분 하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사람이 번역한 책으로 다시 읽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