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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즐거움 -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현 외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일본 학자가 쓴 <지적 생활의 방법> 이라는 책을 인상깊게 본 적이 있는데 절판이라 아쉬운 마음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후 일일이 사진을 찍어 원하는 부분을 저장해 놨다.
서점에서 <지적 즐거움> 이란 책을 보고 그 책과 비슷한 내용일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다.
휴가 동안 의미있는 책 한 권을 읽은 셈이다.
서양 사람, 거기다가 19세기 사람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아무래도 20세기의 같은 동양인이 쓴 <지적 생활의 방법>이 현실적으로는 더 유용했다.
<지적 생활의 방법>은 실제적인 조언을 했다면, <지적 즐거움>은 좀 더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다.
그렇지만 이 책 역시 대단히 현실적인 시각으로 냉정한 충고를 하기 때문에 유용했다.
간단히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1. 제일 중요한 건 역시 건강과 돈이다.
너무 책에 몰두하다 보면 육체적 활동을 소홀히 하게 되고, 건강에 무리가 가면 당연히 집중력도 떨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적당한 운동이 필수다.
19세기 영국 지식인 출신답게 사냥이나 산책 등을 좋은 대안으로 권한다.
육체와 정신은 하나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2. 돈은 누가 뭐라 해도 교양을 쌓고 싶은 이들에게 기본 조건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저절로 교양이 쌓이는 건 아니지만, 여가를 즐길 여유가 없는 가난한 이들은 책을 들여다 볼 시간도 없고 경험을 쌓을 수도 없다.
안타깝지만 오직 일만 하는 농민들에게 지적 생활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한다.
<지적 생활의 방법> 에서도 재산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3. 결혼은 지적 생활의 중요한 요소인데, 배우자가 자신의 지적 생활을 지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바람직한 아내는 세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돈이 많아서 남편의 지적 생활을 지지해 주거나, 남편의 지적 활동에는 무관심한 대신 나머지 가정일을 완벽하게 처리함으로써 방해 요인을 없애 주거나, 서로의 지적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교양이 있거나.
보통 전통적인 한국의 아내상은 두 번째 타입으로, 남편이 공부하는 것 외에는 신경을 쓰지 않도록 알아서 집안 단속하고 남편 일에는 전혀 끼어들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남편은 가정 생활 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내가 바라는 이상형은 당연히 세 번째다.
서로의 지적 생활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배우자라면 얼마나 결혼 생활이 이상적이겠는가?
배우자를 지지자로 얻지 못한다면 당신은 돈도 안 되는 공부에만 몰두하는 이상한 괴짜라는 세상의 평판에 점점 더 예민해지고 움츠러 들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자를 울타리로 만들라고 충고한다.
이 책의 저자는 남자 입장에서만 설명했는데, <지적 생활의 방법>에서는 여자의 경우 아예 결혼을 안 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더 현실적인 충고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과연 여자가 살림하고 애 키우면서 자신의 교양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4. 교제는 적당히 해라.
너무 빠져들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전혀 관심도 안 가지고 은둔하게 되면 대화 상대를 잃기 때문에 외곬수가 될 위험이 있다.
시시콜콜한 속물들 밖에 없을지라도 그 중 누구 한 사람은 아마도 당신이 수준 높은 얘기를 건네길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 그런 동료를 만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연예인 가십거리 대신 혹은 명품이나 외제 화장품 대신 문학작품에 대해 논할 친구가 있다면!
내 경우에는 알라딘을 제외하고는 주변에 책에 관심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지적 생활은 어쩌면 홀로 걸어가야 하는 외로운 길인지도 모르겠다.
5. 너무 방대한 양을 파고 들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것저것 얕게 파다 보면 이도저도 안 된다.
그러니 가능하면 한 가지 분야게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생산성 있는 작품을 내 놓는 게 좋다.
저자는 지적 생활자를 취미로 과학이나 문학 등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딜레탕트는 살짝 경멸하는 태도를 취한다.
생산적인 결과물이 없다면 치기어린 어설픈 관심에 불과하다는 것.
좋은 결과물을 내 놓는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게 없겠으나, 단지 관심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선택의 문제는 항상 존재한다.
46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내용이 평이해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상당히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충고가 많아서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한국 사람이 쓴 비슷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