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채널 : 리얼 스토리 - 트로이 전쟁 - 히스토리/큐 채널 프로모션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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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끔 케이블에서 히스토리 채널을 보곤 하는데, DVD로 빌려서 보니 새로운 느낌이다.
이런 다큐멘터리가 더 많이 보급되면 좋겠다.
과천 도서관에서 DVD를 빌려 주는 정책으로 바뀌는 덕에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게 됐다.
DVD야 말로 두 번 보기 힘들다는 걸 생각해 보면, 책 보다도 DVD의 대여가 더 자주 이뤄져야 할 것 같다.
이런 교양 다큐멘터리를 빌려 주는 체인점이 있으면 좋겠는데, 영화 대여점은 있어도 교양물 찾기는 참 힘들다.
그렇다고 하나에 2만원이 넘는 걸 양껏 사서 볼 수도 없고 이런 DVD는 세일도 안 하니 도서관에서 대여를 해 주지 않으면 결국 접할 기회가 없다.

하인리히 슐리만으로 대표되는 트로이 전쟁은, 아직도 그 실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 슐리만 이야기를 하도 인상깊게 들어 나는 당연히 사실인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금도 트로이라는 국가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고 전쟁도 과연 실재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많다고 한다.
일리아드는 그저 창작품일 뿐일까?
수천년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있긴 있었을 것 같은데, 증거가 명확하지 않으니 완전한 역사로 인정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장님에다가 문맹이었던 호메로스의 단독 저작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다른 책에서 전체적인 구조로 봤을 때 단일 작가의 솜씨임이 분명하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어 일단은 나는 호메로스 개인의 작품으로 믿고 싶다.
어쩌면 음유시인 따위가 (이 dvd에서는 연예인 정도로 표현했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없다는 것 자체가 편견이 아닌가 싶다.
하여튼 수많은 이들이 터키 땅에 매달려 발굴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트로이의 실체는 불분명 하다.
청동기 시대의 대규모 전투, 1천 척의 배가 이 소아시아 반도를 향해 몰려 들었고 무려 10년에 걸친 싸움에다가, 목마라는 기막힌 아이디어로 승리를 얻어낸 영웅들의 이야기!
기원전 1250년 경이라고 하니 그보다 더 오래된 이집트 시대를 생각해 보면 이런 규모의 전투도 당연히 가능했을 것 같다.

영상으로 본 덕분에 고고학 발굴이라는 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새삼 느꼈다.
곡갱이와 삽을 들고 허리를 구부리고 땅을 파 들어가는 지지멸멸한 작업들!
인디애나 존스와 같은 모험은 진짜 고고학 발굴에서는 없는 것 같다.
단 하나의 쇠조각이라도 번호를 매기고 연대를 밝히며 소중히 다루는 학자들의 모습에서 일종의 경외심을 느꼈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들의 기원을 밝히는데 얼마나 집요하고 열정적인가!
결국 인간이 그저 자연계를 구성하는 동물의 한 종류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이런 창의적이고 호기심 어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뭔가 다르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하여튼 일리아드를 읽어 주는 고고학자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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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들) - 인간의 본성을 만드는 것은 유전자인가, 문화인가?
폴 R. 에얼릭 지음, 전방욱 옮김 / 이마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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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페이지 남짓 되는 꽤 두꺼운 책이지만, 내용은 비교적 평이하다.
지난 번에 읽은 비슷한 스타일의 <호모 쿠아에렌스>보다 더 쉽게 읽힌다.

본성과 양육의 논쟁은, 어쩌면 논쟁 자체가 무의미한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빈 서판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행동 양식을 일일이 지정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영구배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쓸데없는 논쟁은, 어설픈 인문학자들이나 대중 저술가들이 문제를 위한 문제, 식으로 야기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유전자는 환경의 영향에 따라 다양한 표현형질을 발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성격 어떤 기질을 갖느냐는 각자의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어렸을 때 언어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언어 습득이 불가능해진다.
지적 자극을 많이 받으면 표현될 수 있는 재능도 늘어날 것이다.
물론 유전자라는 한계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영재교육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인종이 얼마나 잘못된 분류인지, 차별을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지 새삼 느꼈다.
피부색을 기준으로 종을 나눈다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일까?
차별을 정당화 시키기 위한 유사과학에 불과하다.
다름을 억압과 증오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편협한 행동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대선 후보가 된 오바마를 들겠다.
케냐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미국 문화에서 자라나 당당히 대선 후보까지 되지 않았는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동질성을 생각해 본다면 민족이나 피부색으로 나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떤 범주로도 단일하게 묶일 수 있는 집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의식이나 윤리가 뇌의 진화라는 생각은 이제 주류 의견이 된 것 같다.
여전히 정신의 특별함과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가치를 깍아 먹는 소리겠지만 결국 자아나 의식, 윤리, 양심 이런 추상적인 개념은 뇌의 진화 덕분인 것 같다.
그러니 몸이 죽고 나면 영혼은 저 세상으로 간다는 생각도 그저 망상에 불과할 뿐.
과학 서적을 읽으면 읽을수록 교회나 신앙에 대한 회의가 든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혹은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이 정말 우리가 믿고 있는 바로 그 교리, 그 신조인지는 정말 모르겠다.
죽으면 그저 사라질 뿐이고, 천국과 지옥, 영혼불멸 같은 것은 우리의 머릿속에나 있는 게 아닐까?

꽤 분량이 나가는 책이라 쉽게 읽지는 못했다.
당직 서고 나서 유난히 피곤했던 차라 100% 흡수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비교적 재밌게 읽은 책이라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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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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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내가 사랑하는 에세이스트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같은 정치적 저서를 읽는 것 보다, 이런 개인적인 수필을 읽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고종석의 어설픈 정치 논리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는데, 역시 그의 장기는 미려한 글솜씨다.
사물을 바라보는 그 섬세한 눈길과, 적재적소에 콕 집어서 구사하는 문장력은 언제 읽어도 맛깔스럽다.
이 글들은 인터넷 신문에서도 가끔 연재 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언젠가는 책으로 나오겠거니 했더니만 역시나 한 권으로 묶어져 나왔다.
처음 고종석의 에세이를 읽었을 때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잘 읽었다.
대부분의 글들이 유럽기자취재단의 일원으로 투어를 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 같다.
각국의 기자들이 모여 여러 지방을 돌면서 기사를 쓰는, 일종의 저널리즘 교류 같은 건데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타국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제도 같다.
동북아시아 연합 같은 걸 구상하기에는 각 나라의 역사와 상처가 너무 크지만, 한중일이 언젠가는 유럽연합처럼 자유롭게 교류하고 서로의 문화에 동질감을 느낄 날이 오면 좋겠다.
유럽이 기독교라는 보편 요소가 있듯, 한중일도 유교와 한자 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고종석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금 여행에 대한 충동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떠나고 싶다는 것,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여행은 신나고 즐거울 것이다.
유럽처럼 한 달의 유급휴가를 쓸 날이 온다면 우리도 다들 배낭을 메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나겠지.
지금도 짧게나마 연휴를 이용해 동남아시아라도 나갔다 오곤 하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에게 유럽이나 미국은 지리적으로 너무나 먼 나라다.
옛날에 신문 기사에서 유럽 사람들은 휴가를 위해서 돈을 모으고 휴가 때 저축한 돈을 다 써 버린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아마도 90년대 초반이나 됐을 것 같은데, 그 때는 무슨 그런 사람들이 다 있나, 저축은 미래를 대비하는 건데 놀러가서 다 써 버리다니, 참 인생을 막 사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고 그만큼 잘 살기 때문에 여가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부연 설명 따위는 없어서 어린 마음에 유럽 사람들은 놀고 먹기 좋아하는 게으른 민족이구나 생각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주5일제가 일반화 되고 연휴면 가까운 외국 정도는 가볍게 나갔다 오는 걸로 여기는 시대가 왔으니 격세지감이다.
물론 나는 지금도 일요일까지 일하는 사람이지만 하여튼 말이다.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여행이 행복하고 즐거운 것은 낯선 곳에 대한 동경 뿐 아니라 문화적, 인문학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서구 중심의 세계화라고 비판해도 할 수 없다.
위대한 문학가와 화가들, 음악가들의 생가가 있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작품을 통해 느꼈던 감동을, 직접 현지에서 느끼고 싶은 욕망이 여행을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문화강대국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파리의 골목골목을 맛깔나게 설명하는 글솜씨 때문에 정말 막연히 파리에 대한 동경이 생긴다.
미술관이나 기타 관광지는 다 제쳐 두고 그냥 막연히 이 거리 저 거리 걸으면서 이국적 향취를 마음껏 느끼고 싶다.
여행갔다 와서 책써서 경비를 충당할 능력도 못 되니, 결국은 내 주머니에서 탈탈 털는 수 밖에 없는 입장이고 보면, 이런저런 이국의 도시들은 그냥 눈으로, 머릿속으로만 상상 속에서 즐기게 된다.
그렇지만 비록 실제로 못 가본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나도 이 거리를 걸어 봐야지 하는 꿈은 갖는다.
꿈꾸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는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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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비밀문자 -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
브리지트 맥더모트 지음, 권영진 옮김 / 예경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대영박물관이 만든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은 완전히 상형문자 문법책 수준이라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상형문자를 읽고 싶다는 갈망은 항상 존재했었다.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그림문자로 프톨레마이오스 같은 단어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은 문법적인 부분과 이집트 문화를 적당히 조화시켜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상형문자는 무덤이나 보석 등에 장식적인 의미로 첨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화려한 문양을 직접 칼라로 보지 않으면 매력이 반감된다.
그래서 저자도 책을 올컬러로 펴냈다.
옛날에는 그저 막연히 기묘한 글자라는 생각 밖에 없었는데 그림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상형문자를 크게 확대시켜 놓고 그 뜻을 해독하다 보니, 장식적인 효과가 기막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서체인지!
한자에 대해서도 늘 감탄하는 바지만, 상형문자는 한자보다 더욱 장식미가 뛰언 서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나타내기 힘들어 폐기됐겠지만 말이다.

상형문자의 비밀은 아마도 단순히 표의문자가 아니라 알파벳 역할까지 겸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자음만 표시하기 때문에 모음은 콥트어와 비교해 추측한다고 한다.
자음만 표기하다 보면 동음이의어가 많기 생기게 되는데, 이 때는 한정사를 써서 뜻을 분명히 했다.
이를테면 공부하다, 를 자음만 쓰면 ㄱㅂㅎㄷ 이 된다.
이렇게 되면 가방이라는 단어와 헷갈릴 수 있다.
그래서 그 옆에 글을 쓰고 있는 서기의 모습을 그려 놓는 것이다.
그러면 ㄱㅂ 이라는 자음이 뭔가를 쓴다는 의미, 즉 공부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한정사야 말로 장식미도 살리면서 뜻도 분명히 밝힐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쓰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읽어야 하는지의 문제는, 새나 사람의 머리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문장에는 한 쪽 방향의 그림만 있기 때문에 그 쪽으로 읽으면 된다.
그래서 대비되는 문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양옆에 늘어놓는 기교도 부린다.
위에서 아래로 읽는 세로쓰기도 있지만, 아래에서 위로 쓰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기왕이면 모음까지 표기해 놨으면 더 완벽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히브리어도 모음이 없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다.
모음이야 말로 그리스인들의 발명품이 아닌가 싶다.

사실 제대로 상형문자를 읽지는 못했다.
한글의 ㄱㄴㄷ 처럼 음가 24개를 외우면 되는데 문법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니 좀 지루해졌다.
그렇지만 이제 상형문자를 보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뜻하는 바가 있는 하나의 글자로써 인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올컬러라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열심히 읽는 사람이라면 간단한 문구 정도는 상형문자로 표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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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 씽킹
제롬 그루프먼 지음, 이문희 옮김 / 해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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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쓴 것 같다.
제대로 환자를 본다는 것, 과연 어떤 것일까?
프로토콜에 맞춰 진료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러나 또 알고리즘에만 함몰되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한다.
아다시피 의료는 통계인 것, 그러므로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객관적인 근거 중심의 의학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상황을 죄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러므로 의사 개인의 실력과 직관력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 할지라도 전체적인 의학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개인의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의학은 성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모든 상황에 대한 완벽한 준비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의사의 판단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기계가 대신 진료할 날은 아마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런 고민을 하는 의사라면 좋은 의사임이 분명할 것이다.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기, 그러나 너무 특이한 것만 찾으려다 보면 일반적인 접근법에서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균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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