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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2월
평점 :
고종석, 내가 사랑하는 에세이스트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같은 정치적 저서를 읽는 것 보다, 이런 개인적인 수필을 읽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고종석의 어설픈 정치 논리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는데, 역시 그의 장기는 미려한 글솜씨다.
사물을 바라보는 그 섬세한 눈길과, 적재적소에 콕 집어서 구사하는 문장력은 언제 읽어도 맛깔스럽다.
이 글들은 인터넷 신문에서도 가끔 연재 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언젠가는 책으로 나오겠거니 했더니만 역시나 한 권으로 묶어져 나왔다.
처음 고종석의 에세이를 읽었을 때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잘 읽었다.
대부분의 글들이 유럽기자취재단의 일원으로 투어를 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 같다.
각국의 기자들이 모여 여러 지방을 돌면서 기사를 쓰는, 일종의 저널리즘 교류 같은 건데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타국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제도 같다.
동북아시아 연합 같은 걸 구상하기에는 각 나라의 역사와 상처가 너무 크지만, 한중일이 언젠가는 유럽연합처럼 자유롭게 교류하고 서로의 문화에 동질감을 느낄 날이 오면 좋겠다.
유럽이 기독교라는 보편 요소가 있듯, 한중일도 유교와 한자 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고종석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금 여행에 대한 충동이 새록새록 생겨났다.
떠나고 싶다는 것,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여행은 신나고 즐거울 것이다.
유럽처럼 한 달의 유급휴가를 쓸 날이 온다면 우리도 다들 배낭을 메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나겠지.
지금도 짧게나마 연휴를 이용해 동남아시아라도 나갔다 오곤 하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에게 유럽이나 미국은 지리적으로 너무나 먼 나라다.
옛날에 신문 기사에서 유럽 사람들은 휴가를 위해서 돈을 모으고 휴가 때 저축한 돈을 다 써 버린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아마도 90년대 초반이나 됐을 것 같은데, 그 때는 무슨 그런 사람들이 다 있나, 저축은 미래를 대비하는 건데 놀러가서 다 써 버리다니, 참 인생을 막 사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고 그만큼 잘 살기 때문에 여가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부연 설명 따위는 없어서 어린 마음에 유럽 사람들은 놀고 먹기 좋아하는 게으른 민족이구나 생각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주5일제가 일반화 되고 연휴면 가까운 외국 정도는 가볍게 나갔다 오는 걸로 여기는 시대가 왔으니 격세지감이다.
물론 나는 지금도 일요일까지 일하는 사람이지만 하여튼 말이다.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여행이 행복하고 즐거운 것은 낯선 곳에 대한 동경 뿐 아니라 문화적, 인문학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서구 중심의 세계화라고 비판해도 할 수 없다.
위대한 문학가와 화가들, 음악가들의 생가가 있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작품을 통해 느꼈던 감동을, 직접 현지에서 느끼고 싶은 욕망이 여행을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문화강대국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파리의 골목골목을 맛깔나게 설명하는 글솜씨 때문에 정말 막연히 파리에 대한 동경이 생긴다.
미술관이나 기타 관광지는 다 제쳐 두고 그냥 막연히 이 거리 저 거리 걸으면서 이국적 향취를 마음껏 느끼고 싶다.
여행갔다 와서 책써서 경비를 충당할 능력도 못 되니, 결국은 내 주머니에서 탈탈 털는 수 밖에 없는 입장이고 보면, 이런저런 이국의 도시들은 그냥 눈으로, 머릿속으로만 상상 속에서 즐기게 된다.
그렇지만 비록 실제로 못 가본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나도 이 거리를 걸어 봐야지 하는 꿈은 갖는다.
꿈꾸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는 즐겁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