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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모두 나보다 잘나 보이는 날엔
우에하라 다카시 지음, 이은주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제목이 마음에 들어 별 기대 없이 집어든 책인데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알싸한 감동을 받았다.
사실 이 제목보다는, 오히려 혼자라고 느낄 때, 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다고 생각될 때, 뭐 이런 식으로 바꾸는 게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잘난 친구에게 치여 상대적으로 비참한 느낌이 들 때를 묘사한 글이 아니라, 그 잘난 친구마저 하나도 없고 정말 세상에 혼자 던져진 외로운 사람들의 쓸쓸한 일상을 기록한 글이다.
일본은 르포 문학이 발달했다더니, 과연 그렇다.
이 책도 작가가 비슷한 사정을 가진 여러 사람들을 취재해서 엮은 책이다.
그래서 문장력이 아주 우수하거나 통일성이 있지는 않고, 가볍게 지하철 안에서 읽을 수 있게 잡지 수준으로 평이하게 쓰여졌다.
그렇지만 내용 자체는 찡 하다.
남들과 수다떠는 걸 좋아하고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이면서도, 정작 시끌벅적 하게 어울리는 걸 싫어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나는, 여기 나온 사람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으면서도 혼자 있는 게 좋다.
약간의 오타쿠적인 경향이 있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일본은 이런 은둔형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 하나의 문화를 형성한 느낌이 든다.
작가가 남자라서 그런지, 여자보다는 사회에서 소외된 남자들을 주로 인터뷰 했다.
그래서 이혼녀보다 이혼남의 사연이 더 많이 소개된다.
이혼은 여자한테만 비참한 줄 알았더니, 남자들 역시 별로 할 게 못 되는 쓸쓸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남자든 여자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으면 왠지 쓸쓸해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니 독신이라고 해서 애인마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어찌 보면 독신이야 말로 애인이 필수인지도 모른다.
얼굴이 아주 못생긴 여자가 직장 다니면서 독신 생활을 하는 얘기가 나온다.
친구도 별로 없고 애인도 없고 돈벌이는 안정적이기 때문에 원룸에서 혼자 심플하게 살아간다.
이런 게 드라마나 소설에 나오면 퍽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으로 그려질텐데, 그래서 가사일에 치이는 아줌마들에게는 화려한 싱글로 비출텐데, 역시 현실이다 보니 외롭고 퍽퍽하기 그지없는 적나라한 일상이 노출된다.
혼자이기 때문에 얘기할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것도 귀찮아서 날마다 혼자 저녁을 사먹는다.
독서는 그녀의 유일한 취미다.
사실 나도 결혼하지 않고 좋아하는 책 보면서 가볍게 살고 싶다는 충동을 종종 갖는데 왠지 그녀의 삶을 보면서 따라 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인간은 교류하지 않으면 고립될 수 밖에 없고, 아무래도 혼자는 정신적 평안함을 유지하기가 힘든 것 같다.
보통 의지나 자아로는 안 될 것 같다.
제일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역시 실명한 친구 얘기다.
책을 너무 좋아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차라리 장님보다는 귀머거리가 되는 게 나을텐데, 하고 저자는 안타까워 한다.
그 마음, 너무나 이해된다.
나는 가끔 내가 시력을 상실하면 어쩌나, 그래서 책을 못 보면 어떻게 하나 이런 불안감에 빠진다.
밀턴이나 세종대왕도 말년에 시력을 잃지 않았던가?
생각만 해도 너무 암담하고, 정말 내 신체 중에 어떤 부분을 잃어야 한다면 눈 대신 팔다리를 잃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시력을 상실한 이 친구는, 이제 책 대신 음악을 듣는다.
인간은 자기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낸다는 저자의 마지막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정말 나도 눈을 읽게 되면 그 때부터는 귀를 열게 될까?
아, 너무 무섭다.
앞으로 흔들리는 차 안에서는 책 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