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년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김택민 지음 / 신서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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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재밌게 읽은 책이다.
500 페이지 남짓하는 분량의 압박이 있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비교적 술술 넘어가는 편이다.
저자의 말대로, 전공자들 보다는 일반인이 읽기 쉽도록 자세한 논증은 생략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그렇지만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역사서의 기사들은, 솔직히 좀 지루했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교양서를 원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원전을 날것 그대로 알고 싶다기 보다는, 저자의 해석이 가미된, 한 마디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결론을 원하는데, 저자가 비교적 자기 의견을 일관되게 밝히긴 했으나 인용된 기사 분량이 너무 많아 (더군다나 반복되는 게 많아서) 나중에는 집중력이 좀 떨어졌다.
특히 식인 풍습에 관한 章은 기대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즉 굉장히 흥미진진한 소재라고 믿었는데) 해석보다는, 주로 사기의 기사를 인용하는 수준에 그처 솔직히 책 전체에서 가장 지루했다.
아다시피 역사서의 기사들은, 특히 한문으로 된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상세한 묘사보다는 죄다 당위적인 설명, 이를테면 죽는 이가 속출했다더라, 사람을 잡아 먹었다더라, 이런 식으로 똑같은 표현이 하도 많이 반복되서 아무리 다양한 준거를 밝힌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얘기가 그 얘기처럼 느껴져 금방 식상했다.
내가 임용한 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단편적인 기사를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시각화시켜 이해하기 쉽게 흥미진진하게 풀어 내기 때문이다.
물론 이덕일처럼 너무 나가서 무슨 추리소설 읽는 것처럼 되버리면 안 되지만 말이다.
이 책도 나름 재밌고 저자의 성질한 고증이 돋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나 기타 역사서들을 굉장히 신뢰하는데, 여불위가 진시황제의 아버지라는 소문에 대해서도, 사마천처럼 훌륭한 역사가가 기록한 것이라고 신뢰하는 입장을 취한다.
내가 다른 책에서 읽기로는, 진시황제를 깍아 내리려는, 즉 출신이 천하고 왕족의 핏줄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유언비어였다고 들었다.
나로서는 후자 쪽에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이다.
다만 저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은, 당시는 전국 시대로 귀족들이 사라져가고 출신 보다는 능력이 우선시 되는 사회였으니 신분의 뒤바뀜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고, 더군다나 역사서에까지 기록될 정도라면 민간에 널리 유포됐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로 만들기 좋은 소재다.

중국사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중국사를 읽다 보면 한국사는 저자의 표현마따나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거대한 영토를 외적의 침입 한 번 없이 (유목민도 중국사에 포함된다고 볼 때) 통일 제국을 수천 년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정말 위대한 일이다.
당장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보라.
여전히 굳건한 한족의 지배 범위를 잃지 않고 드넓은 중원땅을 호령하는 중국에 비해 고대 문명이 발상지들은 그 위용을 잃고 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중원 평야가 워낙에 넓어 인구 부양 능력이 뛰어나고 황하의 영향력이 미치는 퇴적 평야는 나일강이나 기타 큰 강에 댈 게 아니라고 한다.
또 중원 평야는 북쪽의 초원, 서쪽의 사막, 동쪽의 태평양 등에 가려 외부 세계와 섞이기가 힘들었다.
만리장성을 넘어오는 유목민도 결국은 거대한 중국사의 일부였다고 본다.
중국이 독자성을 유지해 왔던 이유 중 하나다.
저자는 한국인이 중국을 적대시 하는 것에 대해, 편견을 바로잡고 싶어 책을 썼다고 하는데 나 역시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는 바다.
중국이 한민족을 침공한 사례는, 한 무제 때 고조선을 정벌하고 한사군을 설치한 경우,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 당나라의 백제, 고구려 공격 이게 전부다.
대체적으로 한반도는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중국 문명에 동화되려고 했기 때문에 중원을 지배하는 한족 왕조와는 친선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고려를 침공한 것은 거란의 요나라였고, 당시 중국의 지배 왕조는 송나라였으며 고려는 송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몽골의 침략도 한족이 아닌 유목민의 왕조였으며 (그리고 몽골의 침략을 안 받은 나라가 어딨겠는가?) 누르하치의 침략도 청이 건국되기 전, 즉 지배 왕조가 되기 전의 일이다.
청나라가 들어선 후로는 당연히 친선 정책을 유지했다.
대체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선진 문명을 동경하고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마치 오늘날의 미국과의 관계처럼 말이다.
중국의 위상이 고대와 같지 않아, 중국에 종속적이었던 것을 매우 부끄러워 하고 사극을 봐도 (특히 요즘 방영되는 대왕 세종)  중국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쓰는데 현재의 잣대를 과거에 들이대는 건 역사 왜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민족은 중국 같은 거대 문명에 함몰되지 않고 수천 년의 독자적인 문화를 견지해 왔다.
사대외교의 엄청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고,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는 건 너무 당연한 발전 과제다.
여기에 왜 자존심, 민족의 정기, 이런 단어들이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사에는 큰 동란이 (이른바 천하대동란) 열 차례 있었다.
진을 망하게 한 진승, 오광의 난을 필두로 전한을 멸망시킨 왕망의 신나라에 반기를 든 녹림, 적미적의 난이 이어지고, 삼국지에서 수도 없이 등장하는 황건적의 난이 세 번째다.
네 번째는 수나라 말기에 일어난 농민 반란 (이것은 재밌게도 양제의 요동 정벌에 반대하여 일으킨 반란이라고 한다. 요동 가서 개죽음 당하지 말자면서 말이다. 수의 고구려 원정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 알 만 하다) 다섯 번째는 양귀비로 유명한 당 현종 때 안록산의 난이다.
여섯 번째는 최치원이 반란군에게 썼다는 <황소격문> 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황소의 난, (황소 같은 소금 장수들이 난을 일으킨 까닭은, 소금이 전매제였고 이들은 불법으로 소금 거래를 했기 때문에 정부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다음은 원을 멸망시킨 백련교도의 난 (이 때 등장하는 게 주원장이다), 명을 멸망시킨 이자성의 난, 마지막이 청말에 일어난 태평천국 운동이다.
열 번째는 아직 학계에서 공식적인 용어로 등장하지는 않는데 저자는 10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이라고 본다.
모택동의 그 어처구니 없는 권력 투쟁 때문에 수백만의 중국 인민들이 기아로 사망하고 경제가 후퇴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재밌는 건 이런 농민 반란이 농민에게 이득을 줬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고 오히려 엄청난 재앙을 초래해 수탈하는 국가가 있느니만 못한 꼴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반란군이 되겠다고 일어난 절박한 사람들이니, 자기 배 채우는 게 최우선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군기가 문란해져 (사실 군기랄 것도 없었지만) 결국은 도적떼가 되고 만다.
농민 출신으로 황제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한나라의 유방과 명나라의 주원장이 있다.
한국사에는 농민 지도자가 성공한 예가 없으니, 확실히 중국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고 평화로웠던 게 분명하다.

저자는 주기적으로 반복된 중국사의 불행을, 황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슴쫓기 게임으로 이해한다.
고사성어에 나오는 말이다.
강한 놈이 전국을 통일하고 황제위에 오른다.
처음에는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토지도 나눠주고 세금도 감면해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는다.
즉 일정 부분은 지배층이 이득을 포기한다.
좀 지나니까 안정세를 이룬다.
곧 가렴주구가 시작되고 수탈이 심해진다.
빈부 격차가 커지고 절대권력을 가진 황제위에 자꾸 무능한 인간들이 오른다.
갈 때까지 가면 결국 반란이 일어나 힘 있는 놈들은 죄다 사슴(황제자리)을 쫓는 경기에 뛰어든다.
대동란이 시작된다.
드디어 힘 센 놈이 사슴을 잡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포기하고 경기는 끝난다.
재밌는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중국 역사의 비극의 원인을 무능한 황제와 빈부 격차로 지적했다.
황제는 절대권을 가진 사람인데 자꾸 어린 황제, 무능한 황제가 등극하면 국가의 정책은 표류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지배층의 수탈이 심해져 빈부 격차가 커지기 마련인데, 이런 난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황제 자리에 오르면 결국은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빈부 격차를 한 나라의 멸망 원인으로 든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이런 데서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자 교훈이 된다.
양극화가 자유 경쟁의 당연한 결과이고 절대 빈곤에 비하면 낫지 않냐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지나친 빈부 격차는 매우 위험하다.
한 나라의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상식선의 차이가 지켜져야 안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자유경쟁을 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빈부 격차의 이 엄청난 간극은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현대 중국의 전제적인 분위기에 대한 저자의 우려는 충분히 동감하는 바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개방되고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이런 독재적인 분위기는 결국 중국 전체의 발전을 위해 한계로 작용할 것이다.
일단 경제가 발전해야, 즉 먹고 살 만 해야 민주화도 가능하다는 이른바 개발독재 논리가 오늘날 한국에도 팽배해 있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8년을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던 독재자의 딸이 거대당의 당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정치와 경제는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인권이나 자유 문제를 저렇게 억압적으로 간과하고 있다면 어느 선 이상의 경제 발전은 불가능 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 정부가 좀 더 개방적인 정책을 유지하고 빈부격차에 대해서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길 바란다.
열린 사회,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현대사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은 어렵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중국사를 훑어 보는데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타당한 논거에 근거한 저자의 분명한 주제의식이 마음에 든다.
주장이 선명하고 일관되서 읽기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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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 백과사전을 통째로 집어삼킨 남자의 가공할만한 지식탐험
A.J.제이콥스 지음, 표정훈,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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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재밌다.
서평이 별로 안 좋아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재밌고 저자가 위트가 있다.
잡지사 기자라서 그런가?
센스있는 문장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수필집이다.
브리태니커 사전과는 별 상관이 없고, 사전을 소재로 재밌는 수필을 선보인다.
발상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브라운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기자로 살아가는 저자는, 아버지도 24권의 책을 펴낸 유명한 변호사로 이른바 한국인이 선호하는 전통적인 뉴요커라는 걸 알 수 있다.
여유로운 경제 환경이 느껴지고,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삶의 궁상맞음 (주로 경제적인 부분) 이 없어서 편했다.
요즘 내가 삶에 너무 찌들려서인지 이제 나이를 먹어서인지 구질구질 하고 심란한 얘기보다는 밝은 내용이 편하다.
중요한 점은 저자의 문장력이 위트 있고 재치있다는 것!
난 글 못 쓰는 작가는 싫다.
저자에게 딱 하나 불행이 있다면 결혼 5년째인데도 아직 아이가 없다는 것.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
2003년에 출판된 책이던데.

이 책에 흥미를 느낀 까닭은, 나도 백과사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만 해도 동아 출판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백과사전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다 읽기에 도전한 저자,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 싶으면서도 이런 인터넷 시대에, TV가 범람하는 시대에 감격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이런 괴짜들이 자주 나오면 좋겠다.
지식과 지혜가 비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관관계가 있는 건 분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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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왜곡의 역사 -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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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분량에 비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읽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내용이 평이하고 저자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써서 그런지 전문적인 내용은 적은 편이다.
오히려 자신이 어떻게 거듭난 근본주의자에서 성경은 인간의 책이다, 라는 개방주의자로 돌아서게 됐는지를 밝히는 개인적인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나는 그 부분이 가장 재밌었다.
사실 뒷쪽에 나오는 구체적인 예는, 내가 보기에는 그저 소소한 오류들처럼 보인다.
그가 대학에서,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기술한 점에 대해 장황한 논문을 썼는데 (즉 성경의 저자를 보호하기 위해 온갖 사변적인 논리를 갖다 붙였는데) 교수가 한 마디로 논평했다고 한다.
"마가가 실수했겠지"
이 문장이 굉장히 통쾌했다.
그렇다.
성경의 저자들도 쓰는 과정에서 "실수" 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주제의식을 흐리게 하는 거대한 실수가 아니라 할지라도, 문장의 표기를 잘못한다거나 인명, 장소 등을 착각한다거나, 앞뒤 문맥 연결이 다소 모호하다거나, 등등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왜?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여지껏 교회에서는 성경무오류설이니, 축자영감설이니 하면서 인간의 손으로 썼으나 성령이 강림하여 하나님이 불러 주는대로 썼으니, 일획일점도 틀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그 말도 안 되고 어처구니 없는, 강팍하기 그지 없는 독선적인 주장을 들으면 정말 기독교에 대한 애정이 확 식는 기분이다.
경전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종교인이라면 당연한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단 1%의 사소한 오류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경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왜냐면 100% 완벽한, 단 하나의 실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책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수없이 발견되는 실수들에 대해 모두 나름의 변명을 갖다 붙이다 보면, 논리가 자꾸 꼬여 나중에는 말도 안 되는 어거지 주장을 하게 되니까.

이를테면 이른바 민족주의자라는 사람들도 그렇다.
삼국유사에 기원전 2333년 전에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고 써 있다면서 조선 건국이 그 때 이뤄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국가의 건립은 청동기 시대에나 가능한 일인데 한반도의 청동기는 기원전 10세기 무렵이다.
정말로 고조선 건국이 기원전 2000여년 전에 이뤄졌다면,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처럼 고고학적인 발굴 증거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그래야 한민족도 당당하게 세계 4대 문명 안에 들어 가지 않겠는가?
대체 이덕일이라는 사람은, 어떤 고고학적 증거를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얘기가 살짝 옆으로 샜는데, 하여튼 성경도 일획일점이 틀림이 없는 그런 책이 아니라, 이미 저술될 때부터 오류가 존재했고 각자 자기만의 해석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지켜 봤으며, 전승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소소한 오류들을 겪어 왔음이 분명하다.
필경사들의 필사 작업 과정의 오류는 차치하고서라도, 성경이 쓰여질 당시는 이미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1,2 백년이 흘렀을 시기다.
대체 누가 기억에 의존한 일을 단 하나의 오류도 없이 눈에서 본 듯이 기록하겠는가?
같은 사건도 보는 사람에 따라 미묘한 해석의 차이를 낳을 수 있는데 말이다.

여기 언급된 내용들은 따지고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사소한 불일치와 오류들이다.
나는 성경 전체의 불완전성과 허술함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인들에게 최고의 경전이며 예수의 부활과 구원을 증명하는 기독교인들의 지침서와 같다.
그러나 어떤 사소한 오류도 없다는 식의 성경무오류설은 곤란하다.
이런 태도는 너무나 위험하다.
세상이 7일만에 창조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도, 결국은 이런 축자영감설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단 하나의 글자도 틀림이 없다는 식의 주장은, 성경을 매우 비과학적이고 매우 고루한 경전으로 축소시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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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내맘대로 좋은책 - 책의날 특집 이벤트

개인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좀 더 날카롭고 개인적인 질문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질문이 좀 아쉽네요.

 

1.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깔끔하게 한 줄이면 더 좋고, 길게는 두 줄 정도까지요.

어떻게 소개를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나를 대표하는 게 뭘까요? 직장에 대한 강박증이 있고 아직 결혼 안 한, 책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30대 여성이라고 해야 하나?

2. 일 년에 몇 권 정도 책을 읽으세요?

시간 많았던 해는 300권까지도 읽었는데 작년에는 겨우 100권을 넘었네요.
대략 100권에서 200권 사이로 읽는 것 같아요.

3.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어떤 의미에서건) 가장 충격적이었던 책은?

글쎄... 워낙 남독을 해서 그런지 특정 책이 기억에 깊이 남은 건 없는 것 같아요. 좀 더 그럴 듯한 책을 들고 싶긴 한데, 지금 당장 생각나는 책으로는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을 꼽겠어요.  책만 읽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책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이 작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건 또 아니고... 그 책에 나오는 그 캐릭터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얼마나 열심히 읽었던지 책 곳곳에 감상을 피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계관을 바뀌게 한 책이었죠. 인간의 본능에 대해 눈떴다고 할까? 그래서 신앙심과는 더욱 멀어지고...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도 빼 놓을 수 없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4. 읽는 도중 3번 이상 웃었다, 라는 책이 있습니까?

<말리와 나> 개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무척 재밌게 읽었던 책이예요.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도 읽으면서 엄청나게 웃었던 책입니다. 오웰의 그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문체, 아 너무 마음에 들어요. 얼마나 낄낄거렸던지...

 

 

 

 

5.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또는 닮고 싶은 책 속 인물은 누구인가요?

닮았다고 생각되는 캐릭터는 없는데, <달의 궁전> 에 나오는 MS 포크라든지, 에핑, 솔로몬 이 3부자는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인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혹은 <환상의 책>에 나오는 헥터 만도 그렇구요. 이들은 모두 세상의 부귀영화 보다 책 안에서 더 큰 기쁨을 느껴요. 그들의 외골수적인 삶까지 부러운 건 아닌데, 모든 걸 다 잃고서도 책을 읽음으로써 완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답니다. 혹은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도 닮고 싶어요. 남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그러고 보니 <제인 에어>에 나오는 제인도 부럽네요. 양심을 위해 사랑하는 남자를 포기하고 도망가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답니다.



 

 

 

6. 이 작가의 책만큼은 챙겨 읽는다, 누구일까요?

사실 저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 적은 편입니다.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항상 좋은 작품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전작주의도 흥미없습니다. 한 작가의 책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수준일 수는 없고, 창작력의 피크를 이루는 짧은 시간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폴 오스터의 책이나 알랭 드 보통, 혹은 이주헌 등등도 다작을 하다 보면 식상해지고 별로인 책들이 꼭 끼여 있더라구요. 다만 역사학자인 임용한이 쓴 책은 꼭 봅니다. 이 분의 에세이는 정말 재밌는데 워낙 책을 안 내시는 분이라 아쉽더라구요. 이덕일처럼 책 낸다면 얼마나 신날까 생각해 봅니다. 이 분 책은 전부 추천합니다.


 

 

 

7. 남에게 선물로 줬던 책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책은 선물 잘 안 합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책을 남이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요. 그래서 빌려주지도 않아요.

8. 소장하고 있는 책 중 가장 고가의 책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책, 바로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 입니다.  정가가 10만원 정도 했던 것 같아요. 한 번도 제대로 못 봤던 것 같아요. 지도만 나열해 놔서 지루하고 흥미가 떨어지더라구요. 괜한 소유욕이 발동해서 산 책입니다.

 

 

 

9. '책은 나의 oo(이)다'. oo는?

책은 나의 <> 이고, 책은 나의 <휴식> 이며, 책은 나의 <기쁨> 입니다.  책은 나의 <위로>이며, 책은 나의 영원한 <연인> 입니다. 책에 대한 내 사랑과 무한한 감사는 아무리 글로 표현하려고 해도 부족하네요. 저는 가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력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답니다. 눈이 멀게 된다면, 보르헤스처럼 낭독자를 옆에 둔다고 해도 나는 너무나 절망스러워 죽을 것 같아요.  천국은 거대한 도서관이다, 라는 말을 믿어요.


10. 이번 달에 읽은 책 중 '내맘대로 좋은 책'은 어떤 것일까요?

다른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 서머셋 몸이 쓴 작가론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입니다.
몸의 소설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위트 있는 문장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 같아요.
누구라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작가론이 펼쳐집니다.
강추할 만한 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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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든남자 2008-05-09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부분 공감하고 갑니다. 특히 1,6,7,9번..
저도 집에있는 책은 안빌려줍니다. 차라리 같은책을 돈주고 사주지..
아주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원체 깔끔하게 대하는지라..
남들이 접거나 줄그어 놓거나 그러면 잠이 잘 안오더군요.. -_-;;

개인주의 2009-11-2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 취향이 네 취향은 아니니까.
이런 생각에 책 선물을 주저하게 되더군요.
제일 놀랐던 건 나름 친하다 여겼던 친구녀석에게 내가 읽으려고 산 잡지를
다 읽지도 않고 그날 선물로 주고 왔는데
다음날 "야 그걸로 벌레 잡아서 책이 엎어져 있다. 이따 버려야 되.."
이 소리를 들었던 때입니다.
잡지니까 하찮은건지 안맞는건 바로 그렇게 폐기처분 통고를 해야 직성이 풀렸던건지
알 수 없지만 그 경험 후로 조심스러워졌어요.

marine 2009-11-22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속상하셨겠어요. 전 빌려준 책 받을 때 잃어버려 놓고서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고 따지는 사람 볼 때 진짜 황당해요. 그 후로 절대 안 빌려 줍니다. 차라리 한 권 사 주죠.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 The Great Couples 1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우연히 알라딘에서 보고 제목이 재밌을 것 같아 읽은 책이다.
두껍긴 하지만 서술이 평이해 쉽게 금방 읽힌다.
버스나 기차 안에서 가볍게 일독해 볼만한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마네다.
특히 베리트 모리조를 그린 <발코니>라는 작품이 마음에 든다.
마네의 그 강렬한 평면성이 마음을 끈다.
반면 모네는 별 관심이 없는 화가였다.
말년에 유명해진 수련 그림에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인상파를 말을 만들어낸 <인상, 해돋이> 같은 그림도 왠지 학생들 스케치처럼 서툴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 그가 그린 풍경화를 보고 완전히 반해 버렸다.
색체의 변화를 대기의 기온차에 따라 기묘하게 잡아낸 그 솜씨에 확 빠졌다.
그의 아내 카미유가 일본옷을 입고 있는 초상화도 그렇고, 양귀비 꽃밭에서 양산을 들고 서 있는 그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굉장히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화가 같다.
터너의 그림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세련됐다는 느낌을 준다.
마네도 그렇고 모네도 그렇고 두 사람의 화법은 다르지만 꼼꼼하게 드로잉을 하고 섬세하게 색칠을 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한 번에 쓱 보고 문지른 듯한 그럼에도 대상의 느낌과 특징을 정교하게 포착해내는 솜씨가 놀랍다.
벨라스케스가 왜 인상파의 선구자인지, 알 것 같다.
그의 유명한 대작 <시녀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정교한 데생 없이 붓질 몇 번으로 쓱쓱 문지른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멀리서 보면 또렷한 형태로 각인되는 것이다.
확실히 이들은 현대 화가들이다.

마네는 특별히 흥미있는 화가라 그런지 그의 일생을 다룬 앞부분은 무척 재밌었다.
할아버지가 시장이었고 마을의 존경을 받아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부르주아로, 고위 공무원이었고 나중에 판사가 됐다고 한다.
마네에게 엄청난 땅을 물려줘, 당시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마네는 특별히 그림을 생계 수단으로 삼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런 부유함이 특별히 더 내 관심을 끈다.
먹고 사는데 애를 써야 하는 르느와르 같은 화가 보다는 마네처럼 유복한 환경에서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예술가가 더 부럽다.
그런데도 고흐의 그 끔찍한 가난과 소외된 삶 역시 강렬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나는 마네의 유복한 환경이 내심 부러워 하는 것 같다.

하여튼 이 화가는 처음에는 해군이 되려고 했다.
성적이 나빠서 법대에 못 들어가고 대신 해군이 되려고 했는데 몇 번 낙방해 결국 하고 싶은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집안 환경 때문이었는지 마네는 국전에 입선하려고 애썼고 드가로부터 출세에 눈이 멀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 점도 왠지 인간적으로 보인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마네는 최고의 인상파 화가로 역사에 길이 남았으니, 그 자신은 죽기 전에 이런 영광을 누렸는지 모르겠다.
수잔과의 결혼은 순탄치 않았다.
사진을 보면 그냥 평범한, 오히려 펑퍼짐한 아줌마 스타일인데 두 살 연상의 이 가난한 피아노 교사의 어떤 점에 반했는지 모르겠다.
모네의 아내 카미유를 그린 그림을 보면 무척 매력적이던데, 수잔을 그린 초상화는 영 느낌이 안 살고 그래서인지 그녀가 모델로 나오는 그림은 유명한 게 없다고 한다.
하여튼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된 마네는, 집안에 얘기하지 못해 아들은 사생아로 무려 스무 살 때까지 엄마와 둘이 살게 된다.
보통 이런 사연이면 마네가 유복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은 버려져야 맞는데, 뜻밖에도 마네는 아버지가 죽은 후 유산을 물려 받은 후 수잔과 정식 결혼한다.
진정한 로맨스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동생 외젠은 화가 베리트 모리조와 결혼해 종종 마네의 모델이 되어준다.
저자의 지적대로 베리트는 마네가 원하는 표정을 잘 알고 있는 훌륭한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등장하는 그림은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마네는 기존의 명화들을 열심히 모사하고 대가들로부터 좋은 점을 취해 자신의 것으로 혼합시키려고 애쓴다.
전통을 존중하는 이런 태도가 참 마음에 든다.
드로잉을 무시하는 그림, 이를테면 발로 그려도 이보다는 잘 그리겠다는 그런 그림은 아무리 예술이라 우겨도 도저히 마음에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정확한 대셍, 드로잉은 화가의 생명이지 않겠는가?
비록 똑같이 모사할 필요는 없지만, 즉 화가는 기술자가 아니지만 기본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상당히 전통주의자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들라쿠르아의 과도한 색체의 향연인 낭만주의 그림보다는, 앵그르의 정밀한 그림이 훨씬 마음에 든다.
그 초상화를 보면 정말 숨이 막힐 것 같다.
뽀얀 피부와 특히 파란색 스커트의 질감과 색감은 손으로 만져지는 기분이 든다.

마네의 사진은 이 책에서 처음 봤는데 실망스럽게도 썩 잘 생긴 얼굴은 아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서 그런가?
배가 불룩 나온 모네보다는 낫지만, 하여튼 반할 만한 인상은 아닌 것 같다.
바지유가 퍽 잘 생겼다.
아직 끝까지 읽지 않았지만 저자가 무리없이 글을 풀어 나가고 마네와 모네의 그림을 비교한 부분은 좀 작위적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보고 있다.
북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김원일이 쓴 <피카소>도 퍽 재밌게 읽었는데, 미술 부분도 번역서 말고 한국 사람이 쓴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역시 번역서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해 주지 못한다고 할까?

뒷부분은 51세로 일찍 사망한 마네 얘기 대신, 86세까지 장수한 모네의 얘기로 가득찼다.
대략 40대가 넘어가면서 모네의 그림은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모네는 상당히 낭비벽이 심했던 것 같은데, 좋게 말하면 우아하고 여유있는 삶을 즐긴 스타일 같다.
그는 언제나 생활비가 부족해 허덕이면서도 월세가 비싼 좋은 집에 살고, 하녀, 정원사 등을 고용했다.
말년을 보낸 지베르니의 수련 연못은 다섯 명의 정원사가 가꾸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마네에게 자주 돈을 빌렸고 1차 대전 때 전사한 바지유에게서도 돈을 자주 빌렸다.
언제나 외로웠던 고흐와는 달리 인간관계가 무척 좋았던 것 같다.
고흐와 고갱처럼 개성 강한 예술가가 만나면 불화하기 마련인데, 모네는 어려운 살림 때문에 바지유 등과 같은 동료 화가들과 화실도 같이 쓰면서 그림 작업을 한다.
역시 오래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매독에 걸려 50대 초반에 사망한 마네나, 권총자살한 고흐, 전사한 바지유 등과는 다르게 마네는 무려 86세까지 살면서 온 세계의 인정을 받아 말년에는 전 세계 뮤지엄에서 그의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확실히 모네는 풍경화의 대가다.
마네가 인물화에 강했던 것에 비해, 모네의 강점은 여러 겹 덧칠한 풍경화에서 정말 이것이 자연에서 받은 순간의 인상을 포착한 그림이구나, 감탄사가 나온다.
내가 마네이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인물의 표정을 잘 캐치하면서 강렬하게 명암 대비를 주기 때문인데 모네의 풍경화도 너무나 아름답다.
모네의 삶 중에서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 아내 카미유와 알리사다.
카미유는 겨우 서른 두 살에 아들 둘을 낳고 사망하고, 모네는 가난 때문에 후원자인 오슈드 부부와 한 집에 산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오슈드 부인인 알리사와 사랑에 빠져 아내 카미유가 살아 있을 때 알리사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는다.
알리사는 남편이 죽은 후 모네의 정식 아내가 된다.
모네는 알리사의 세 딸들을 정성으로 돌보는데, 둘째딸 블랑슈가 카미유의 아들 장과 결혼한다.
또 막내딸 수잔이 미국인 화가 버틀러와 결혼하는데, 그녀가 일찍 죽자 다시 큰 딸 마르트와 재혼한다.
우리 눈으로 보면 좀 이해하기 힘든 결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피는 안 섞였다 하더라도 의붓남매의 결혼이나, 처제와의 재혼 등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데 확실히 18세기 말의 프랑스는 21세기 한국보다 더 개방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동거도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다.

도판이 훌륭하고 책에 언급된 그림들을 가능하면 전부 싣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다 보니 책값이 높게 책정된 것 같다.
마네와 모네의 덜 알려진 그림들을 많이 알게 되서 기쁘다.
역시 이런 훌륭한 그림을 언제쯤 한가롭게 실제로 관람할 수 있을지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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