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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김택민 지음 / 신서원 / 2006년 3월
평점 :
퍽 재밌게 읽은 책이다.
500 페이지 남짓하는 분량의 압박이 있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비교적 술술 넘어가는 편이다.
저자의 말대로, 전공자들 보다는 일반인이 읽기 쉽도록 자세한 논증은 생략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그렇지만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역사서의 기사들은, 솔직히 좀 지루했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교양서를 원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원전을 날것 그대로 알고 싶다기 보다는, 저자의 해석이 가미된, 한 마디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결론을 원하는데, 저자가 비교적 자기 의견을 일관되게 밝히긴 했으나 인용된 기사 분량이 너무 많아 (더군다나 반복되는 게 많아서) 나중에는 집중력이 좀 떨어졌다.
특히 식인 풍습에 관한 章은 기대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즉 굉장히 흥미진진한 소재라고 믿었는데) 해석보다는, 주로 사기의 기사를 인용하는 수준에 그처 솔직히 책 전체에서 가장 지루했다.
아다시피 역사서의 기사들은, 특히 한문으로 된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상세한 묘사보다는 죄다 당위적인 설명, 이를테면 죽는 이가 속출했다더라, 사람을 잡아 먹었다더라, 이런 식으로 똑같은 표현이 하도 많이 반복되서 아무리 다양한 준거를 밝힌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얘기가 그 얘기처럼 느껴져 금방 식상했다.
내가 임용한 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단편적인 기사를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시각화시켜 이해하기 쉽게 흥미진진하게 풀어 내기 때문이다.
물론 이덕일처럼 너무 나가서 무슨 추리소설 읽는 것처럼 되버리면 안 되지만 말이다.
이 책도 나름 재밌고 저자의 성질한 고증이 돋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나 기타 역사서들을 굉장히 신뢰하는데, 여불위가 진시황제의 아버지라는 소문에 대해서도, 사마천처럼 훌륭한 역사가가 기록한 것이라고 신뢰하는 입장을 취한다.
내가 다른 책에서 읽기로는, 진시황제를 깍아 내리려는, 즉 출신이 천하고 왕족의 핏줄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유언비어였다고 들었다.
나로서는 후자 쪽에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말이다.
다만 저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은, 당시는 전국 시대로 귀족들이 사라져가고 출신 보다는 능력이 우선시 되는 사회였으니 신분의 뒤바뀜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고, 더군다나 역사서에까지 기록될 정도라면 민간에 널리 유포됐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로 만들기 좋은 소재다.
중국사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중국사를 읽다 보면 한국사는 저자의 표현마따나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거대한 영토를 외적의 침입 한 번 없이 (유목민도 중국사에 포함된다고 볼 때) 통일 제국을 수천 년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정말 위대한 일이다.
당장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보라.
여전히 굳건한 한족의 지배 범위를 잃지 않고 드넓은 중원땅을 호령하는 중국에 비해 고대 문명이 발상지들은 그 위용을 잃고 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중원 평야가 워낙에 넓어 인구 부양 능력이 뛰어나고 황하의 영향력이 미치는 퇴적 평야는 나일강이나 기타 큰 강에 댈 게 아니라고 한다.
또 중원 평야는 북쪽의 초원, 서쪽의 사막, 동쪽의 태평양 등에 가려 외부 세계와 섞이기가 힘들었다.
만리장성을 넘어오는 유목민도 결국은 거대한 중국사의 일부였다고 본다.
중국이 독자성을 유지해 왔던 이유 중 하나다.
저자는 한국인이 중국을 적대시 하는 것에 대해, 편견을 바로잡고 싶어 책을 썼다고 하는데 나 역시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는 바다.
중국이 한민족을 침공한 사례는, 한 무제 때 고조선을 정벌하고 한사군을 설치한 경우,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 당나라의 백제, 고구려 공격 이게 전부다.
대체적으로 한반도는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중국 문명에 동화되려고 했기 때문에 중원을 지배하는 한족 왕조와는 친선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고려를 침공한 것은 거란의 요나라였고, 당시 중국의 지배 왕조는 송나라였으며 고려는 송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몽골의 침략도 한족이 아닌 유목민의 왕조였으며 (그리고 몽골의 침략을 안 받은 나라가 어딨겠는가?) 누르하치의 침략도 청이 건국되기 전, 즉 지배 왕조가 되기 전의 일이다.
청나라가 들어선 후로는 당연히 친선 정책을 유지했다.
대체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의 선진 문명을 동경하고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마치 오늘날의 미국과의 관계처럼 말이다.
중국의 위상이 고대와 같지 않아, 중국에 종속적이었던 것을 매우 부끄러워 하고 사극을 봐도 (특히 요즘 방영되는 대왕 세종) 중국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쓰는데 현재의 잣대를 과거에 들이대는 건 역사 왜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민족은 중국 같은 거대 문명에 함몰되지 않고 수천 년의 독자적인 문화를 견지해 왔다.
사대외교의 엄청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고,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는 건 너무 당연한 발전 과제다.
여기에 왜 자존심, 민족의 정기, 이런 단어들이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사에는 큰 동란이 (이른바 천하대동란) 열 차례 있었다.
진을 망하게 한 진승, 오광의 난을 필두로 전한을 멸망시킨 왕망의 신나라에 반기를 든 녹림, 적미적의 난이 이어지고, 삼국지에서 수도 없이 등장하는 황건적의 난이 세 번째다.
네 번째는 수나라 말기에 일어난 농민 반란 (이것은 재밌게도 양제의 요동 정벌에 반대하여 일으킨 반란이라고 한다. 요동 가서 개죽음 당하지 말자면서 말이다. 수의 고구려 원정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 알 만 하다) 다섯 번째는 양귀비로 유명한 당 현종 때 안록산의 난이다.
여섯 번째는 최치원이 반란군에게 썼다는 <황소격문> 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황소의 난, (황소 같은 소금 장수들이 난을 일으킨 까닭은, 소금이 전매제였고 이들은 불법으로 소금 거래를 했기 때문에 정부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다음은 원을 멸망시킨 백련교도의 난 (이 때 등장하는 게 주원장이다), 명을 멸망시킨 이자성의 난, 마지막이 청말에 일어난 태평천국 운동이다.
열 번째는 아직 학계에서 공식적인 용어로 등장하지는 않는데 저자는 10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이라고 본다.
모택동의 그 어처구니 없는 권력 투쟁 때문에 수백만의 중국 인민들이 기아로 사망하고 경제가 후퇴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재밌는 건 이런 농민 반란이 농민에게 이득을 줬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고 오히려 엄청난 재앙을 초래해 수탈하는 국가가 있느니만 못한 꼴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반란군이 되겠다고 일어난 절박한 사람들이니, 자기 배 채우는 게 최우선이었고, 시간이 갈수록 군기가 문란해져 (사실 군기랄 것도 없었지만) 결국은 도적떼가 되고 만다.
농민 출신으로 황제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한나라의 유방과 명나라의 주원장이 있다.
한국사에는 농민 지도자가 성공한 예가 없으니, 확실히 중국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고 평화로웠던 게 분명하다.
저자는 주기적으로 반복된 중국사의 불행을, 황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슴쫓기 게임으로 이해한다.
고사성어에 나오는 말이다.
강한 놈이 전국을 통일하고 황제위에 오른다.
처음에는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토지도 나눠주고 세금도 감면해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는다.
즉 일정 부분은 지배층이 이득을 포기한다.
좀 지나니까 안정세를 이룬다.
곧 가렴주구가 시작되고 수탈이 심해진다.
빈부 격차가 커지고 절대권력을 가진 황제위에 자꾸 무능한 인간들이 오른다.
갈 때까지 가면 결국 반란이 일어나 힘 있는 놈들은 죄다 사슴(황제자리)을 쫓는 경기에 뛰어든다.
대동란이 시작된다.
드디어 힘 센 놈이 사슴을 잡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포기하고 경기는 끝난다.
재밌는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중국 역사의 비극의 원인을 무능한 황제와 빈부 격차로 지적했다.
황제는 절대권을 가진 사람인데 자꾸 어린 황제, 무능한 황제가 등극하면 국가의 정책은 표류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지배층의 수탈이 심해져 빈부 격차가 커지기 마련인데, 이런 난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황제 자리에 오르면 결국은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빈부 격차를 한 나라의 멸망 원인으로 든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이런 데서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자 교훈이 된다.
양극화가 자유 경쟁의 당연한 결과이고 절대 빈곤에 비하면 낫지 않냐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지나친 빈부 격차는 매우 위험하다.
한 나라의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상식선의 차이가 지켜져야 안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자유경쟁을 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빈부 격차의 이 엄청난 간극은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현대 중국의 전제적인 분위기에 대한 저자의 우려는 충분히 동감하는 바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개방되고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이런 독재적인 분위기는 결국 중국 전체의 발전을 위해 한계로 작용할 것이다.
일단 경제가 발전해야, 즉 먹고 살 만 해야 민주화도 가능하다는 이른바 개발독재 논리가 오늘날 한국에도 팽배해 있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8년을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던 독재자의 딸이 거대당의 당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정치와 경제는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인권이나 자유 문제를 저렇게 억압적으로 간과하고 있다면 어느 선 이상의 경제 발전은 불가능 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 정부가 좀 더 개방적인 정책을 유지하고 빈부격차에 대해서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길 바란다.
열린 사회,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현대사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은 어렵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중국사를 훑어 보는데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타당한 논거에 근거한 저자의 분명한 주제의식이 마음에 든다.
주장이 선명하고 일관되서 읽기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