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버 - [초특가판]
린 스톱케윅 감독, 몰리 파커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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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독특한 영화라 솔직히 감독이 뭘 얘기하려고 한 건지 모르겠다.
여성 감독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한 감각, 이런 식의 상투적 문구를 도저히 적용시킬 수가 없다.
여자의 성적 본능이 주제인 것 같기는 한데, 즉, 여자가 성의 주체인 것 같기는 한데 너무 비정상적이고 특이하며 폭력적이라 공감이 안 간다.
매춘은, 즉 돈이 들어간 관계는 아무리 포장을 하려고 해도 아름답지가 않다.
역시 감정이 개입되야 섹스도 따뜻한 인간의 교류가 된다.
엄마가 불륜 때문에 살해당한 일이 상처가 되서 비정상적인 섹스에 탐닉한다는 것이 영화의 설정인데, 기본적으로 나는 인간의 성향은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사건이 본성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인 성향 자체는 큰 변화가 없다고 본다.
내가 보기엔, 이 여자는 처음부터 메저키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매춘이 자유로운 성본능의 발산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고통을 당하고 싶어 하는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비정상적인 성향으로 보인다.
게리라는 남자가 그녀의 구원이 될 수 없음은, 영화 분위기를 봐서 짐작은 했지만, 그렇다고 이 여자를 마을의 창녀로 팔아 먹기까지 한다는 건 정말 너무 깬다.
첫 섹스에서 다짜고짜 뺨을 갈길 때부터 위험한 놈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하여튼 이 캐릭터도 매우 비정상적이다.
왜 남자들은 여자를 때리면서 희열을 느낄까?
섹스를 할 때 공격적이기 되기 때문에 성행위시 욕을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마귀가 정사 후 상대를 잡아 먹는다는 사실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나는 맞는 것도 당연히 싫지만, 때리는 것도 정말 싫다.
뭐가 됐든 간에 고통을 주는 건 끔찍하고 무섭다.
지배적인 성향이 부족한 건가?
하여튼 이 레일라라는 캐릭터는 창녀로 팔려가 죽음의 위협 속에서 간신히 빠져 나오긴 했으나 정상적인 생활은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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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 - [초특가판]
더글라스 서크 감독, 제인 와이먼 출연 / 스카이시네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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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된 영화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전개도 억지스럽지 않아 좋았다.
록 허드슨이라는 배우는 대단한 미남 배우라고 하는데 (50년대를 대표한다고) 사실 난 썩 잘 생겼다는 생각은 안 든다.
처음에는 실버스타 스탤론의 젊은 시절인가 착각했었고 (근육질이 워낙 발달해서) 나중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인가도 했다.
록 허드슨이라는 이름이 왠지 락커일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에서도 캐리가 론의 근육질에 반했냐는 비난이 나오는데 난 오히려 근육이 너무 발달한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난 꽃미남의 가냘픈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든다.

캐리 역을 맡은 제인 위먼은 무척이나 고상한 상류층 귀부인으로 나온다.
점잖고 품위있고 날씬한 고상한 여자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지나치게 짧은 치마 보다는 영화 속의 캐리처럼 기품있는 정장 차림이 더 마음에 든다.
오히려 딸로 나오는 젊은 여배우의 패션이 더 촌스럽다.
무척 날씬하고 조그마한 여자인데, 거구의 미식축구 선수가 키스하면서 감탄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작은 사람이 이렇게도 매력적이라니!

정원사와 주인집 여자의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영화에서조차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참 이상한게, <타이타닉> 에서는 3등석의 디캐프리오와 1등석의 케이트 윈슬렛의 사랑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데 말이다.
둘 다 젊은 사람이라서 그런건가?
아니면 이 영화가 훨씬 더 리얼리티가 있어서인가?
나이차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요즘 <아현동 마님>에서도 열 두 살 차이 나는 커플이 등장하지만, 영화 속의 캐리는 정원사 론보다 열 다섯 살이 많다.
실제로도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인다.
그렇지만 자연스럽다.
기품있고 고상해 보이는 느낌 때문일까?
젊은 여자와 중년 신사의 사랑 보다도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현실에서라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내가 우리집에 전기 고치러 온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정원사를 고용할 정도로 부자가 아니라서 전기 수리공으로 상상해 본다.
하여튼 분명히 사회에서 말하는 신분 격차는 존재한다.
관습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열 다섯 살의 나이차는 오히려 경제적 격차에 가리워져서인지 아니면 미국은 나이차에 덜 민감해서인지 주된 화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래 된 영화라 덜 자극적인 것일 수도 있다.
가난한 여자와 부자 남자의 결합은 아름다워 보이는데, 가난한 남자와 부자 여자의 결합은 왠지 위태롭다.
아무래도 여자가 사회적으로 자기 것을 지키기 어려운 약자이기 때문일까?

캐리의 재혼을 반대하던 아이들은, 결국 자기 갈 길을 찾아 떠나버리고 혼자 남은 엄마에게 텔레비전을 선물한다.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혼자 남은 중년의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TV 뿐인 것 같다.
TV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그 외로움을 두드러지게 한다.
자식도 결국은 제 인생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캐리는 그때서야 자신의 행복을 찾으러 떠난다.
이런 걸 보면 인생은 각자 열심히 자신의 행복을 찾아 사는 것인가 보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건, 그 희생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면 공허해진다.
캐리의 친구인 새라는 그래도 자식이 있는 캐리를 부러워 한다.
"그래도 넌 클럽이나 칵테일 파티를 전전하지는 않아도 되잖니"
자식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랑 결혼하지도 못하고 괴로워 하지만 자식 없는 부부가 노년에 마음 붙일 곳은 공허한 파티 뿐이다.
자식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건 인간의 본능 같다.
친구가 가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건 물론 아니지만, 하여튼...
연애만 하려는 캐리에게 론은 당신은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가에 나 역시 회의적이지만, 어쨌든 결혼이 연애보다는 좀 더 책임있는 행동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는 바다.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약속을 하고 평생을 함께 서로에게 신의를 지키고 산다는 건, 인간의 본능이 일부일처제와 맞지 않다는 주장과는 별개로, 무척이나 중요하고 놀라운 일인 것 같다.
어쩌면 힘든 일이기 때문에 더욱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요즘에는 결혼의 의미가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내용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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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앤 솔져 - [초특가판]
라이언 리틀 감독, 알렉산더 폴린스키 외 출연 / 인디고 엔터테인먼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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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골라준 DVD를 보면 항상 의외의 재미를 준다.
검증이 된 영화들이라 그런가?
이번 영화도 정말 재밌고 인상적이었다.
왜 이런 영화가 못 떴는지 모르겠다.
"폭력의 역사" 도 참 좋았는데 이번 영화도 정말 괜찮다.
무슨 내용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가는 저 촌스러운 제목을 우리말로 좀 그럴 듯 하게 바꾼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볼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말이 너무 뜻밖이다.
주인공인 딕칸이 끝까지 살 줄 알았는데 하사와 함께 죽고 만다.
하사 죽을 때 제일 놀랬고 딕칸이 마지막에 남겠다고 할 때는 죽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의외의 인물인 굴드가 살아 남아서 뜻밖이었다.
더 의외는 얄미운 캐릭터인 윌리가 비록 총상은 입었지만 마지막까지 살았다는 것이다.
영국인 비행사로 등장하는데 정말 얄밉다.
순진한 켄드릭을 얄밉게 놀리는데 한 대 쥐어 박고 싶었다.
대체적으로 미국인은 좋게 나오고 나머지는 다 비호감으로 그려진다.
그들을 구해 주는 벨기에 여자는 정말 우아하다.
누군지 궁금하다.
하사는 처음에 얼핏 봐서 톰 행크스인줄 알았다.
갑자기 총 맞아 죽는데 정말 깜짝 놀랬다.
전쟁터의 죽음을 실감나게 그렸다.
그러고 보면 영웅이 등장하는 전쟁 영화는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빗발치는 총알 세례 속에서도 절대 죽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옛날부터 난 홍콩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쌍권총을 쏜다는 것 부터가 말이 되냔 말이지.

전쟁이라는 것, 언뜻 보면 장난감 병정 놀이 같기도 하다.
죽은 사람의 절절한 생은 버려 두고, 주인공이 신나게 총을 쏴서 나쁜 독일놈들을 물리치기만 하면 카타르시스도 느껴지고 한 편의 스포츠 게임 같다.
그러나 죽은 이들의 개인적인 삶으로 들어가면 너무나 안타깝고 어처구니가 없고 대체 왜 이런 총싸움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전투적이고 이익을 위해 적극적인 동물이고 보면 전쟁이야 말로 인류 역사를 장식한 가장 일반적인 사건들이면서도, 그 끔찍함이 개인에게 주는 의의는 엄청나다.
편하게 앉아서 영화로 전쟁을 접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치는 항상 나쁜 놈으로 그려져서 독일에서는 어떤 식으로 2차 대전 영화를 만들지 궁금해진다.
일본과 독일의 전후 태도는 또 어떤지 궁금하다.
하여튼 나치가 없었다면 영화 만들 소재도 대폭 줄어들었을 것 같다.

의무병으로 나오는 굴드는 전쟁통에서도 허둥대지 않고 신속 정확하게 병사들을 처치한다.
잠을 못 자서 멘탈이 alert 하지 않은, 섬망 같은 증세에 시달리는 딕칸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역시 잠을 자야 한다.
굴드의 명쾌한 처방, 총을 뺏고 자꾸 말을 걸어라.
훌륭한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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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엽충 - 고생대 3억 년을 누빈 진화의 산증인 오파비니아 4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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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난 이 책의 절반도 이해를 못한 것 같다.
가볍게 생각하고 집어든 게 화근이었다.
어렵다.
생각보다 어렵다.
차라리 공룡에 대한 이야기였으면 좀 더 쉽게 이해를 했을 것 같다.
어쨌든 공룡은 많이 알려진 동물이고 무엇보다 큼직큼직 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이 놈의 삼엽충들은 어찌나 작은지 아무리 저자가 수십 만종의 삼엽충이 있다고 열을 내도 내 눈에는 다 똑같이 보인다.
그저 괴상한 갑각류로 밖에는 안 보인다는 얘기다.
감별이 안 된다.
시각적으로 식별이 안 되니 다 거기서 거긴 것 같고 흥미를 끌어 낼 수가 없다.
지구를 3억년이나 지배했다는 이 놀라운 생물들의 비밀이 아무리 많이 밝혀진다 해도 공룡처럼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아무리 귀여운 벌레가 있다고 해도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들에게 사랑받는 애완견의 위치는 차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삼엽충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너무 특이해 항상 궁금했는데 알고 봤더니 아주 간단한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세 개의 엽을 가진 벌레라는 뜻이다.
기막힌다.
이러니 잘 안 쓰는 한자어를 모으면 기묘한 이미지로 바뀌어 버린다.
세 개의 엽, 즉 머리부, 가슴부, 꼬리부가 그것이다.
머리, 가슴, 배로 나뉜다는 곤충과 똑같다.
곤충류와 삼엽충류는 똑같은 절지동물에 속한다.
인간은 어류와 기원이 같은 척추동물이다.
관절다리가 있는 절지동물,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
정말 간단한 분류다.
척추동물과 절지동물의 공통점은?
그런 게 있기는 할까?
놀랍게도 우리들은 눈을 가지고 있다!
삼엽충과 곤충과 인간의 공통 조상은 등뼈나 관절다리는 몰라도 적어도 눈은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이다.
빛을 인지하는 시각 기관의 발달이 절지동물에게도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니!
사실 이 부분은 아직 안 읽은 부분이다.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굴드의 단속평형설이 소개되서 반가웠다.
도킨스는 점진적 진화를 주장한다는데 적어도 고생물 쪽에서는 갑작스런 진화가 맞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잃어버린 고리는 원래부터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단속평형설에 따르면 중간 고리, 즉 새로운 종으로 변화하는 전이 단계를 지닌 생물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존재하고 곧 우세종의 확산이 이뤄지기 때문에 화석으로 남을 시간이 없다.
고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진화를 뒷받침 하는 증거가 되버렸다.
바다 속 지층에 매장된 삼엽충의 화석은 점진적 진화 단계를 보여 주는 매우 귀중한 화석이라고 한다.
산소 대신 황결합물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내는 특이한 황세균에 의해 부패가 방지되고 전이 과정이 화석에 기록됐다고 했는데 너무 세부적인 내용이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여튼 삼엽충의 집합복안도 그렇고 이 놈들이 진화의 신비를 밝히는데, 마치 유전자 지도 작성에 초파리가 엄청난 수훈을 세웠듯,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공룡이 나타나기 전에 멸종해 버린 가엾은 삼엽충은 말 그대로 고생대를 대표하는 표준화석이고 삼엽충의 특정 종이 고생대의 특정시기를 가리키는 이른바 화석시계로 사용할 수 있다.
신생대에서 공룡 화석이 나타나지 않듯, 혹은 티라노사우르스가 보이면 백악기 지층이듯, 삼엽충이 나타난 지층은 반드시 고생대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삼엽충 고생대, 공룡 중생대 하고 외웠던 것 같다.
무려 3억년을 지배했다는 데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살았다.
그 정도 생존했다면 멸종한 게 크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구의 환경 변화는 생물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
그러나 낙관적으로 보자면 멸종을 통해 진화의 역사는 새로운 종을 창조해 내므로써 우리의 생태계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지구의 신비를 생각해 보면, 가이아 이론을 신봉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엽충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놀라울 정도다.
열 네 살 때 우연히 삼엽충 화석을 발견한 뒤 평생 직업으로 삼은 이 학자는, 책에서 정말 놀라운 애정을 내뿜는다.
책에 소개된 위대한 삼엽충 학자들의 열정을 보면, 누가 감히 과학자를 메마르고 냉정한 감성의 소유자라고 욕할 수 있겠는가?
끈기를 가진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다.
인문학과 과학의 우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같다.
과학은 예술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과학 역시 예술이고 인문학이다.
통섭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다만 이들은 근면과 끈기가 남다를 뿐이다.
취미와 직업을 일치할 수 있는 이 행복한 남자의 책은, 그러나 좀 지루하긴 하다.
워낙 삼엽충이 덜 알려진 분야라 자세한 소개 부위가 지루한 점도 있지만 분명히 위트있는 문장인데도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가 아주 재밌지가 않았다.
어쨌든 자연사 박물관에서 삼엽충의 학명 붙이는 직업을 가진 이 남자의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 고생물을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야겠다.
빼먹지 말고 기록할 것은, 삼엽충이 가재나 게 같은 갑각류가 아니라 투구게와 비슷한 친척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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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여행 - 하루 10분 일주일 에코 도서관 1
자크 르 고프 지음, 안수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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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고 깜짝 놀랬다.
생각보다 너무 작고 귀여웠기 때문.
학생과 선생님의 문답형식으로 이루어져 번역도 ~~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인가 싶어 빌릴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용은 알차다.
만화로 된 30분 시리즈 같은 것 보다 오히려 지식의 폭이 넓은 것 같다.
100페이지 밖에 안 되는 문고판의 가격이 7500원인 건 아무래도 좀 너무한 것 같지만 지하철에서 가볍게 읽기에 딱 좋은 교양 도서다.
"중세여행" 이라는 책을 재작년 겨울 쯤에 읽었던 것 같은데 그 때는 사실 책이 두꺼워서 삽화가 예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지루했다.
이번 책은 얇아서 읽기도 편하고 내용도 체계적이고 간략하게 잘 요약해서 보기 편했다.
역시 저자의 내공이 만만찮은 듯.

비슷한 주제의 책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개념이 잡힐 때가 있는데 "중세" 라는 개념도 그렇다.
처음에는 대체 어느 시대를 말하는 건지도 헷갈리고 구체적으로 연상이 안 됐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서로마가 멸망한 5세기부터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15세기까지를 중세로 잡는다.
중세 천 년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참 긴 시간 동안 큰 변화 없이 한 시대가 이어져 온 것 같다.
용이 돌아다니고 성에는 왕자와 공주님이 파티를 하고, 기사와 귀부인이 사랑을 나누는 낭만적인 시대 같으면서도, 농노제와 포악한 영주가 있던 봉건주의 사회, 교회가 사회를 질식시키던 팍팍한 사회가 또 중세 아닌가.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 때부터 고려에 이르는 아주 긴 시간들이다.
유럽은 중세 때 비로소 현재의 국가들이 등장했다.
그러고 보면 야만인들이 세웠다는 여러 왕국들이 유럽의 조상이 됐다.

오늘날 이슬람 교도들의 예배 습관을 보면 확실히 놀라운 구석이 있다.
어떻게 하루 다섯 번이나 의무적으로 기도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중세에는 기독교 역시 하루에도 수 차례 기도를 올렸다.
유명한 밀레의 만종도 바로 저녁 종이 울리는 6시에 일손을 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그리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종교가 득세할수록 삶을 구속시키는 힘도 커진다.
이제 서구의 어떤 사회도 강제적인 예배를 규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문화의 상대성을 말한다 할지라도 이슬람 사회의 종교적인 강제성은 여전히 비판의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맡겨질 때 비로소 그 종교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시리즈의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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