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장의 명화로 읽는 그림의 역사
로이 볼턴 지음, 강주헌 옮김 / 도서출판성우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전문가가 쓴 책이 아닌 것 같아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의외로 유익했다.
특히 150장의 그림이 아닌, 150명의 화가에 포커스를 맞췄다는 점이 유익했다.
의외로 이름이 알려진 화가들이 아주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왜냐면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화가들이 150명 안에 총망라 됐기 때문이다.
흐름도 잘 정리됐고 특히 평소에 잘 몰랐던 현대 화가들을 많이 알게 됐다.
물론 요즘의 그림들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풍부한 상상력 하나는 끝내준다.
그림이 더이상 대상을 재현하는 모방이 아님을 현대 화가들에게서 느낀다.
화가의 철학이 중요하고, 관념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작동한다.
이제 화가들은 기술자에서 예술의 창조자, 철학자로 변신한 것이다.
데이빗 호크니는, "명화의 비밀" 이라는 책의 저자로 만났다.
표지 사진을 보니 꽤 나이든 아저씨였는데 이 책에서 영국 팝아트의 신세대 기수로 소개되니,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대상을 모사한 대가들의 비밀을 파헤친 이 화가는, 뜻밖에도 동성애자였고 그가 그림 수영장 그림은 무척이나 화사하고 상큼하다.
같은 팝아트여도 앤디 워홀이나 뒤샹 같은 이들의 작품은 도무지 감동이라는 게 없는데 (특히 뒤샹은 정말 짜증난다) 호크니처럼 화사한 색을 사용한 그림들은 기분을 고양시키고 뭔가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준다.

 

그렇게도 헷갈리던 카날레토와 베로네세, 조르조네를 이제는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대체 누군지 항상 가물가물 했다.
아마 카날레토라는 화가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이탈리아로의 그랜드 투어가 유행하던 18세기에 귀족들에게 이탈리아에 다녀왔다는 이른바 증명서 같은 의미로 베네치아 풍경화를 팔았던 이 화가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으로 여행객이 줄어들자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영국으로 이주한다.
영국에서 그린 다리 풍경도 무척 마음에 든다.
가로로 넓은 시원한 구조라 컴퓨터 배경 화면에 깔면 무척 예쁘다.
실제로 꼭 보고 싶은 그림 중 하나다.
나는 이런 대작들이 마음에 든다.
같은 풍경화여도 시골 풍경 보다는 이런 건축물이 등장하는 도시 풍경이 더 마음에 든다.
베로네세와 조르조네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가 아니라서 이들이 그린 그림이 선뜻 안 떠올랐는데 이번에 확실히 구분하게 됐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개인 소장 작품들을 많이 소개했다는 점이다.
특히 마티스의 "노랑의 조화" 라는 그림은 야수파라는 명성에 걸맞게 정말 아름다운 색상이 돋보인다.
덜 알려진 그림들을 많이 보게 돼서 기쁘다.
유명 화가들도 가능하면 유명세를 덜 탄 작품들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런 훌륭한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굴까?
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셰 박사의 초상을 사간 일본의 사업가는 자기가 죽으면 관에 넣어달라고 했다는데 이런 훌륭한 그림이 사라진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확실히 고흐의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요즘에 카날레토처럼 도시 풍경을 그리면 달력 화가 취급을 받을 것이다.
현대 화가들의 상상력이나 표현 양식은 정말 놀랍다.
데생이나 드로잉 등이 여전히 화가의 기본 실력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하여튼 독창적이고 기발하다나는 점에서 현대 화가들의 위대함이 있는 듯 하다.

 

도판도 훌륭하고 책 내용도 좋았다.
화가와 그림을 나눠서 설명한 점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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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
이옥순.이희수 외 지음 / 삼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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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판형도 큼직큼직 한 게 마음에 들고, 표지도 무척 예쁘다.
책은 참 잘 만든 것 같다.
내용은, 중간 정도?
필자들의 수준 차이가 좀 난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요약한 부분은 무척 유용했다.
저자의 전문가다운 포스가 확 느껴지는 챕터였다.
반면에 아프리카를 맡은 필자는, 상당히 불성실한 느낌을 받았다.
동남아시아 쪽이나 라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쪽은 상당히 잘 썼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상대적으로 이슬람이나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쪽은 부실한 느낌이 든다.
단순히 오류를 수정하는데 그쳐서 해당 지역의 역사를 개괄한 다른 필자들과 많이 대조적이었다.
이래서 여러 명의 필자가 공동 저술한 책은 수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굉장히 유용했다.
몰랐던 부분들을 정말 많이 알게 됐고 잉카나 마야 제국 등이 하나의 실체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동남아시아의 역사도 이번 기회에 하나 하나 명확한 개념을 갖게 됐다.
두리 뭉실하게 동남아라고 넘어갔던 국가들이 이제 하나씩 볼 수 있게 됐다.
오세아니아 대륙에도 열 네 개의 국가가 있음을 인지했다.
겨우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파푸아 뉴기니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 유명한 하물 숭배도 결국은, 천년왕국 운동 같은 말세주의의 변형임을 깨닫고 나니, 인간 세상의 모든 사건과 현상은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전반적인 감상은, 교과서 필자진의 자질과 전문성이 너무 형편없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어떤 책보다도 전문성과 정확한 식견을 제시해야 하는 게 바로 교과서 아닌가?
너무나 어이없는 단순 실수들을 보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올 정도다.
교과서를 쓰는 이들이 이렇게까지 수준이 낮아서야 공교육을 신뢰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특히 용어의 통일은 시급한 것 같다.
또 지도나 지명 표기에도 일괄성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물론 어떤 필자의 주장처럼 무조건 현지어 발음을 중시해 죄다 현지어로 바꾸자는 것에는 반대한다.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합의가 되면 가능하면 통일해서 그 원칙에 맞게 표기해 줘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영어식 표현이라는 이유로, 이미 통용되고 있는 단어를 죄다 어색한 발음으로 바꾸는 게 과연 외국어 표기 원칙에 얼마나 합당한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세세하게 따지기로 들면 한도 끝도 없겠다.

 

이슬람의 역사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알렉산더를 대왕이라고 칭하는 것조차 부정하는 건 코메디 같다.
한 나라의 역사를 부각시키는 것이 왜 기존에 있던 위인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과 동일하게 보는지 모르겠다.
알렉산더를 대왕 대신 왕이라고 칭하고, 제국 대신 그저 마케도니아 국가에 불과하다고 낮춰 부르는 게 역사 인식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지나친 폄하이고 옥시덴탈리즘의 잘못된 표현 같다.
그렇다면 대체 기준은 뭐란 말인가?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자국의 역사는 죄다 의미가 있다고 보면, 결국 세계사 교과서 따위는 나오지도 못할 것이다.
소외된 지역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만, 이미 정통성을 인정받은 실제적인 사건들 마저 깍아내리는 행위는 지나치다.
매우 지나치다.

 

좀 더 따지기로 하면, 이슬람 부분을 저술한 이희수씨의 의견에 나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이 분은, 마호메트의 초상을 싣는 것을 이슬람에 대한 굉장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데, 외교적인 마찰을 고려해서 어느 정도 문화나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어쨌든 이슬람이 종교에 대한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교조적인 입장이라는 건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성 차별 마저도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정해, 명예살인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므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건 옳지 않다.
아내를 네 명 취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이고 법에 의거해 매우 까다롭게 이뤄진다는 말은, 어찌됐든 일부일처제가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차별적인 건 사실 아닌가?
법에 의해 까다롭게 규정이 됐다고 해서, 아내를 네 명 취하는 것이 남녀평등이라는 현대의 정의 개념에 부합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비교적 덜 알려졌던 여러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를 개괄해 줬다는 점에서 유용한 책이었고 북디자인도 매우 훌륭하지만, 전반적인 통일성이 부족하고 필자들의 수준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아쉽다.
그러나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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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정두희.이경순 엮음,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센터 기획 / 휴머니스트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여러 필자들의 글이 섞여 있어 통일성 면에서는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지만,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한국 필자 뿐 아니라 일본과 서양 학자들까지 논의에 참석하여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서문에 소개된 두 사람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인 줄 알고 봤다가 무수한 필자들이 등장하길래 깜짝 놀랬다.
무엇보다도 임진왜란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역사적이고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심지어 명의 만력제는, 샴, 즉 태국의 군사들까지 동원할 생각도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16세기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전이었던 것이다.
이순신의 해전이 갖는 의미를 생각보다 축소시켜 아쉽기도 했지만,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언젠가 이순신을 상당히 객관적으로 분석한 책을 꽤나 인상깊에 읽었는데, 거기에 달린 무수한 반대 리뷰를 보고 깜짝 놀랜 적이 있다.
이순신은 말 그대로 시대를 초월하는 영웅이고, 그렇게 위대한 해전은 고금을 통틀어 찾아 볼 수 없다는 식의 절대적인 찬사 뿐이라 오히려 이순신이 갖는 위대함이 사실은 포장된 신화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만들었다.
어쨌든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가장 위대한 전략가이자 용맹한 장군으로 알려진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왜군의 보급선을 차단한 것은 큰 의의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의 10만 대군 파병이 없었다면 승패는 장담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이 책에서 분명히 지적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의병 활동도 상당히 신화 속에서 부풀려졌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화왕산성 전투기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곽재우는 다만 산성을 수비했을 뿐이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전략적으로 그곳을 피해갔을 뿐인데, 훗날 후손들에 의해 엄청난 전투 끝에 지켜냈다는 식으로 과장되어 기록됐다는 것이다.
신화의 의미 축소야 말로 진정한 역사적 의의를 밝히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기생 논개의 전설은 너무나 부풀려지고 소설의 소재로 이용되어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저자가 여성학자이기 때문인지 지나치게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본 점이 객관성을 잃게 만든다.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만력제의 조선 원정군 파병을 분석한 글이었다.
명나라가 파병을 한 것은 순전히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함이었고, 조선에 와서 온갖 행패를 부렸다는 식으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기 마련인데 확실히 서양인이 분석한 글이라 그런지, 냉철한 시각이 돋보인다.
6.25 때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이 전쟁의 승리보다 더 크게 부각되는 것처럼, 역시 명나라의 파병도 우리 시각에서 보면 자기 필요에 의해서였다고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마치 그것이 주체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력제의 사당을 모셔놓고 후대에 걸쳐 제사까지 지냈던 우리 선조들은, 주체성이 매우 부족하고 탐욕적인 집권층이었다는 식으로 비하된다.
그러나 역시 당시 조선 집권층의 판단이 어리석지 않았다.
명의 파병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고, 단순히 자국방어를 위해서만 파견된 것도 아니었다.
조선과 명은 문화적인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었을 뿐더러, 부모 나라로서의 의리를 중요시 했다.
200년에 걸쳐 사대를 해 왔던 보람이 비로소 발휘된 것이다.
명이 초반에 원정군을 파병하지 않았던 이유는, 일본군이 워낙 빠른 속도로 진격해 왔기 때문에 혹시 조선이 일본과 동맹을 맺어 오히려 명을 공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을 뿐더러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조선군의 패전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결정적인 이유는, 닝샤의 반란 때문에 이여송이 이끄는 랴오둥 군대가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닝샤의 반란은 임진왜란을 다루는 드라마나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것을 본 적이 없다.
만력제는 결단을 내려 파병을 결정했고 상당한 지원을 한다.
조선 파병이 명나라가 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만 봐도, 명이 얼마나 무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명은 일본을 제압할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고, 만력제의 군비가 책봉-조공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할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는 걸 유의해야 한다.
뒤에 나온 누르하치에 대한 분석을 봐도 명의 국력이 호락호락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을 기회로 만주족의 영토를 넓혀 갔다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사료를 꼼꼼히 분석해 보면, 오히려 그 기간 동안 누르하치는 외교적 제스춰만 취할 뿐, 실제적인 군사 행동은 자제했다.
조,명,일 삼국의 대군이 랴오둥 반도의 코 앞에 집결해 있는데, 누르하치로서도 섣불리 군사 행동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명의 파병을 보면, 조선 집권층의 사대 외교가 절대로 실속없는 어리석을 정책이 아니었으며 집단안보체제 안에서 안위를 보장받는 실제적인 효용성을 갖는 정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았단 말이지.

 

포로 교환에 대한 조선 측의 태도는 실망스러움을 넘어서 분노했다.
자국의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한 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일본에 끌려갔다는 식으로 매도하다니, 백성들에 대한 당시 집권층의 인식이 얼마나 적대적이었는지 알 만 하다.
확실히 국민국가와 왕조국가는 구성원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것 같다.
국가의 구성원이라기 보다는, 피지배계층, 혹은 엄한 법률로 통제해야 하는 집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민권이나 인권 같은 개념을 기대하기에는, 역사적 간극이 너무 크다.
청나라에서 돌아온 환향녀들을 문중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는 얘기도 비로소 이해가 된다.
비단 여자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고, 전반적으로 포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매우 낮았을 뿐더러 절개를 잃어버렸다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가 남녀를 불문하고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싸우다 죽어라는 식이다.
포로로 돌아온 이들 중에서 양민으로 환속시키거나 포상을 한 경우는, 기록에 의하면 딱 네 건 밖에 없는데 이들은 모두 자력으로 일본을 탈출한 사람들이다.
반면 포로 협상을 통해 돌아온 이들은 대부분 노비로 전락했다.
특히 어린 시절 잡혀와 본적이 모호한 경우는 임의로 팔려갔다.
일본이 인신사냥이라고 할만큼 잡아가기도 많이 잡아갔는데, 또 당시 일본의 풍속대로 포로 송환도 상당히 많이 했다고 한다.
조선 정부가 포로 송환에 적극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백성들을 구출해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국의 위신이 깍이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라니, 가히 왕조시대의 서민 처지를 알 만 하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난잡하고 중구난방이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다.
임진왜란에 대한 보다 많은 분석들이 제기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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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가!] 엑토 와이어 북스탠드 (BST-11)
(주)엑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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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지하게 고민하다가 산 제품입니다.
지난 번에 구입했던 엑토 포터블 독서대의 고정 부분이 부러지는 바람에 같은 것을 재구매할까 하다가 다른 제품을 검색하던 중 발견했습니다.
역시 엑토 제품입니다.
사실 저는 책을 눌러 주는 제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난 번 독서대도 고정력이 워낙 강해 책을 손상시킬 정도였지만 비교적 만족스럽게 썼습니다.
요령이 생기면 잘 넘어가거든요.
그런데 이번 제품은 따로 페이지를 눌러 주는 부분이 없고 단지 세워 놓는 기능만 하는 것 같아 기존이 제품을 구매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써보니 왠걸, 상당한 아이디어 제품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책의 힘으로 서기 때문에 독서대 자체는 무척 가볍고, 또 이게 의외로 페이지 고정을 잘 합니다.
무슨 원리인 줄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고정하는 부분도 따로 없는데 책을 180도 쫙 펼치지 않아도 양손을 쓰지 않고 볼 수 있습니다.
가격도 너무 착하고, 가볍고,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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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잘 쓰는 남자, 최고의 에세이스트.
그러나 이번에는 다소 현학적이었다.
사랑의 감정을 애절하게 표현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그리고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이 제일 좋았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도 지루했고 "여행의 기술" 도 쉽게 빠져들지는 못했다.
좋은 말이긴 한데 뭔지 모를 지루함이랄까 집중할 수 없는 현학적인 장문들이 몰입을 방해한다.
하나하나 뜯어 보면 기막히게 좋은 문장이긴 한데 말이다.

 

집 때문에 워낙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그런지 이번 책은 고를 때 더 각별했다.
내 집이 없기 때문에 책에서라도 그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너무 현학적인 보통씨 문장들은, 이것저것 좋은 글만 옮겨 적다가 끝나고 말았다.

 

결국 건축도 예술의 하나이고, 그림과 문학과 음악이 그렇듯 예술은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이고 갖고자 하는 고귀한 품성이고 이룩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성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추상적인 것들을 눈에 보이는 사물로써 표현해 내는 것, 바로 그것이 예술이고 그래서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면서 가슴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고양된 감정을 느끼는 것이리라.
이른바 "감동" 이라는것을 하게 된다.

 

건축은 예술 중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용성을 우선으로 삼아야 하고 혼자 취미삼아 만들 수도 없다.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창의적일 수 없는 어찌 보면 자본주의 논리를 피해갈 수 없는 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러 가고 싶어진다.
노동과 자본이 받쳐 줘야만 건축가의 미적 감각을 뽐낼 수 있는 것, 건축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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