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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정두희.이경순 엮음,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센터 기획 / 휴머니스트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여러 필자들의 글이 섞여 있어 통일성 면에서는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지만,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한국 필자 뿐 아니라 일본과 서양 학자들까지 논의에 참석하여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서문에 소개된 두 사람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인 줄 알고 봤다가 무수한 필자들이 등장하길래 깜짝 놀랬다.
무엇보다도 임진왜란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역사적이고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심지어 명의 만력제는, 샴, 즉 태국의 군사들까지 동원할 생각도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16세기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전이었던 것이다.
이순신의 해전이 갖는 의미를 생각보다 축소시켜 아쉽기도 했지만,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언젠가 이순신을 상당히 객관적으로 분석한 책을 꽤나 인상깊에 읽었는데, 거기에 달린 무수한 반대 리뷰를 보고 깜짝 놀랜 적이 있다.
이순신은 말 그대로 시대를 초월하는 영웅이고, 그렇게 위대한 해전은 고금을 통틀어 찾아 볼 수 없다는 식의 절대적인 찬사 뿐이라 오히려 이순신이 갖는 위대함이 사실은 포장된 신화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만들었다.
어쨌든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가장 위대한 전략가이자 용맹한 장군으로 알려진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왜군의 보급선을 차단한 것은 큰 의의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의 10만 대군 파병이 없었다면 승패는 장담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이 책에서 분명히 지적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의병 활동도 상당히 신화 속에서 부풀려졌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화왕산성 전투기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곽재우는 다만 산성을 수비했을 뿐이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전략적으로 그곳을 피해갔을 뿐인데, 훗날 후손들에 의해 엄청난 전투 끝에 지켜냈다는 식으로 과장되어 기록됐다는 것이다.
신화의 의미 축소야 말로 진정한 역사적 의의를 밝히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기생 논개의 전설은 너무나 부풀려지고 소설의 소재로 이용되어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저자가 여성학자이기 때문인지 지나치게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본 점이 객관성을 잃게 만든다.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만력제의 조선 원정군 파병을 분석한 글이었다.
명나라가 파병을 한 것은 순전히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함이었고, 조선에 와서 온갖 행패를 부렸다는 식으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기 마련인데 확실히 서양인이 분석한 글이라 그런지, 냉철한 시각이 돋보인다.
6.25 때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이 전쟁의 승리보다 더 크게 부각되는 것처럼, 역시 명나라의 파병도 우리 시각에서 보면 자기 필요에 의해서였다고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마치 그것이 주체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력제의 사당을 모셔놓고 후대에 걸쳐 제사까지 지냈던 우리 선조들은, 주체성이 매우 부족하고 탐욕적인 집권층이었다는 식으로 비하된다.
그러나 역시 당시 조선 집권층의 판단이 어리석지 않았다.
명의 파병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고, 단순히 자국방어를 위해서만 파견된 것도 아니었다.
조선과 명은 문화적인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었을 뿐더러, 부모 나라로서의 의리를 중요시 했다.
200년에 걸쳐 사대를 해 왔던 보람이 비로소 발휘된 것이다.
명이 초반에 원정군을 파병하지 않았던 이유는, 일본군이 워낙 빠른 속도로 진격해 왔기 때문에 혹시 조선이 일본과 동맹을 맺어 오히려 명을 공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을 뿐더러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조선군의 패전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결정적인 이유는, 닝샤의 반란 때문에 이여송이 이끄는 랴오둥 군대가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닝샤의 반란은 임진왜란을 다루는 드라마나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것을 본 적이 없다.
만력제는 결단을 내려 파병을 결정했고 상당한 지원을 한다.
조선 파병이 명나라가 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만 봐도, 명이 얼마나 무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명은 일본을 제압할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고, 만력제의 군비가 책봉-조공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할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는 걸 유의해야 한다.
뒤에 나온 누르하치에 대한 분석을 봐도 명의 국력이 호락호락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을 기회로 만주족의 영토를 넓혀 갔다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사료를 꼼꼼히 분석해 보면, 오히려 그 기간 동안 누르하치는 외교적 제스춰만 취할 뿐, 실제적인 군사 행동은 자제했다.
조,명,일 삼국의 대군이 랴오둥 반도의 코 앞에 집결해 있는데, 누르하치로서도 섣불리 군사 행동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명의 파병을 보면, 조선 집권층의 사대 외교가 절대로 실속없는 어리석을 정책이 아니었으며 집단안보체제 안에서 안위를 보장받는 실제적인 효용성을 갖는 정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았단 말이지.
포로 교환에 대한 조선 측의 태도는 실망스러움을 넘어서 분노했다.
자국의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한 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일본에 끌려갔다는 식으로 매도하다니, 백성들에 대한 당시 집권층의 인식이 얼마나 적대적이었는지 알 만 하다.
확실히 국민국가와 왕조국가는 구성원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것 같다.
국가의 구성원이라기 보다는, 피지배계층, 혹은 엄한 법률로 통제해야 하는 집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민권이나 인권 같은 개념을 기대하기에는, 역사적 간극이 너무 크다.
청나라에서 돌아온 환향녀들을 문중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는 얘기도 비로소 이해가 된다.
비단 여자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고, 전반적으로 포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매우 낮았을 뿐더러 절개를 잃어버렸다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가 남녀를 불문하고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싸우다 죽어라는 식이다.
포로로 돌아온 이들 중에서 양민으로 환속시키거나 포상을 한 경우는, 기록에 의하면 딱 네 건 밖에 없는데 이들은 모두 자력으로 일본을 탈출한 사람들이다.
반면 포로 협상을 통해 돌아온 이들은 대부분 노비로 전락했다.
특히 어린 시절 잡혀와 본적이 모호한 경우는 임의로 팔려갔다.
일본이 인신사냥이라고 할만큼 잡아가기도 많이 잡아갔는데, 또 당시 일본의 풍속대로 포로 송환도 상당히 많이 했다고 한다.
조선 정부가 포로 송환에 적극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백성들을 구출해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국의 위신이 깍이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라니, 가히 왕조시대의 서민 처지를 알 만 하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난잡하고 중구난방이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책이다.
임진왜란에 대한 보다 많은 분석들이 제기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