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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 - 러시아 예술기행 ㅣ 이상의 도서관 6
이병훈 지음 / 한길사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책 디자인은 참 마음에 든다.
퍽 잘 만든 북디자인이라고 생각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마다 드는 의문이, 대체 왜 겉표지를 죄다 벗겨 버리냐는 것이다.
아마도 바코드 붙이는 문제 때문에 그런 것 같기는 한데, 표지를 보존하면서 붙일 수는 없을까?
북디자인이라는 장르가 생겼을 정도로 표지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는 요즘, 책의 외형을 보는 재미를 뺏기는 듯해서 참 안타깝다.
그 무미건조한 도서관의 겉모습이란, 참!
하여튼 이 책의 외형은 참 마음에 들고 예쁘다.
모르긴 해도 가격이 꽤 될 듯 하다.
약력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아마도 모스끄바에서 철학이나 미학 쪽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처음 도입부는 그다지 마음을 끌지 못했다.
뭐랄까, 거창한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신변잡기적이고 사소한 감상 위주였으며 무엇보다 글 쓰는 솜씨가 그다지 신뢰가 가질 않았다.
제일 짜증나는 여행책 중에 하나가, 자기 블로그에나 올릴 만한 수준의 글을 책으로 펴내는 부류다.
대표적인 예로 손미나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 등을 들 수 있겠다.
지금까지 읽은 여행기 중 가장 맛깔나는 책은, 역시 하루키의 "먼 북소리" 였고, 김인성의 "시인이 있던 자리" 라는 영국문학기행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글 잘 쓰는 작가가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게 참 이해하기 힘든 노릇이다.
다행히 뒤로 갈수록 책의 수준이 조금씩 나아졌고 기대하던 뜨레찌야꼬프 미술관이 나오면서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주헌의 러시아 미술기행을 통해 접하게 된 이 훌륭한 미술관에는 러시아 거장들의 작품이 수두룩하다.
정말 훌륭한 작품들이 많은데 서유럽 미술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못한 걸 보면 확실히 러시아는 유럽의 변방이었던 모양이다.
칸딘스키나 샤갈 등 20세기 추상미술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세계적으로 알려진다.
사실 이번 러시아 미술전에 다녀오지 않았다다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기껏해야 렘브란트나 카라바조 같은 서유럽 유명 화가들이 명화의 전부라고 여겼을 것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직접 눈으로 전시회를 보고 왔더니, 러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한히 늘어났다.
사실 19세기 미술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책에서 별 감흥을 못 얻었던 칸딘스키와 곤차로바 같은 추상주의 미술가들이 훨씬 더 강렬하게 와 닿았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건 형상보다는 오히려 강렬한 색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려한 원색의 리드미컬한 배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 안 사실인데, 러시아 거장전에서 아주 인상깊게 봤던 곤차로바라는 화가가, 그 유명한 뿌슈낀의 이종 증손녀라고 한다.
곤차로바의 수확하는 농촌 풍경이 어찌나 기억에 남던지 구글에서 그림을 찾으려고 그녀의 이름을 입력했는데 정작 나오는 건 왠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였다.
대체 그녀가 누굴까 궁금해서 찾아 봤더니, 유명한 작가 뿌슈낀의 아내가 아니던가!
아내의 연적과 결투하다 총상을 입고 죽은 바로 그 불운한 작가 말이다.
단지 이름만 같을 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친척 관계였다.
러시아에서는 가장 위대한 문호로 추앙받는다는 뿌슈낀의 아내 곤차로바는, 당시에도 사교계 최고의 미녀였다고 한다.
과연 그녀의 초상화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 놨다.
화가 곤차로바의 남편이 바로 아방가르드의 기수인 라리오노프다.
라리오노프의 그림 역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색감을 선보여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빛에 의해 순간적으로 형체나 색이 바뀌는 인상주의에 반대하여, 사물의 입체감과 용량을 표현하느 형식주의, 즉 "부브노브이 발레뜨" 였다고 한다.
다이아먼드 잭이라는 의미라는데 둔탁하고 질감이 선명한, 중량감을 느낄 수 있는 화풍 같다.
고갱의 원시주의와도 비슷한 맥락 같다.
후기 인상파인 원시주의를 추구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고흐를 좋아하는 것도 그 선명하고 강렬한 색감이 마음을 요동치기 때문이다.
나는 서사 구조가 분명하고 사물을 정확히 묘사한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이나, 앵그르 같은 고전주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은, 선명한 평면적 그림인지도 모르겠다.
마네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농촌 여성의 노동하는 모습을 긍정적이고 밝은 화풍으로 묘사했다는 곤차로바는 연극적인 시각성을 추구했다고 한다.
연극적인 시각성, 이 얼마나 멋진 단어인지!!
제일 기대했던 화가는 역시 일리야 레삔이었다.
아마도 러시아 회화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화가가 아닌가 싶다.
"볼가강의 인부들"이나 "꾸르스키 현의 십자가 행렬" 은 두말이 필요없는 정말 최고의 명작들이다.
그 강렬한 감동과 떨리는 기분을 잊을 수 없다.
화면을 압도하는 그 크기도 대단하다.
레삔은 대작을 많이 그린 것 같다.
언젠가는 모스크바로 날아가 이 위대한 걸작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을까?
대체 이런 훌륭한 작품들이 왜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라는 게 죄다 서유럽 위주라는 한계점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정말 위대한 예술은 국경을 초월해서 생판 모르는 무지의 이방인에게도 충분한 감동을 준다.
역사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수리꼬프라는 화가에게도 관심이 간다.
"귀족부인 모로조바" 나 노보데비치 수도원을 그린 그림은 지난 번 러시아 거장전에서 본 것 같다.
"귀족부인 모로조바" 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눈덮힌 벌판에서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광기어린 모로조바 부인 외에도, 헐벗고 굶주린 거지들이 등장한다.
한쪽에는 두터운 겨울 외투로 무장한 귀족들이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정말 그 추운 날씨에 넝마를 걸친 거지들이 구걸을 하고 있다.
오히려 모로조바 부인의 유배는 뒷전이고 일단 이 가엾은 빈민들이 먼저 마음을 울린다.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이 돋보이는 구성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은 알고 계실 거라는 듯, 분노어린 얼굴로 하늘을 가리키는 손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다.
로마 시대의 순교자들은 거룩하게 느껴지는데, 그녀의 신앙은 왠지 광기로 느껴진다.
화가 역시 그녀의 신앙심을 광기로 표현한 듯, 인상이 자못 강렬하다.
제일 인상적인 그림은 지나이다 예브게니예브나 세레브랴꼬바라는 긴 이름을 가진 여류 화가의 자화상이었다.
구글에서 이 그림은 꼭 찾을 생각인데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
단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건강미와 긍정성이 넘쳐나는 역동적인 자화상이다.
무척이나 매력적인 화가였을 것 같다.
이바노프의 "그리스도의 출현" 이나, 부률로프의 "폼페이 최후의 날" 은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하는데 도판으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전형적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도식적이고 흔한 설정이라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
레삔이 부률로프야 말로 최고의 천재라고 감탄한 걸 보면 또 당시 최고의 화가로 명성을 떨친 걸 보면 대단하긴 한가 본데 기회가 되면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
칸딘스키 그림도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왠 난잡한 색체의 배열인가 했으니까.
러시아는 겨울이 길어서 그런지 공연 문화가 매우 발달해 있다고 한다.
유료 관객이야 말로 예술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적어도 클래식의 세계에서는 유럽을 쫓아갈 수 밖에 없음을 이럴 때 실감한다.
공연을 즐기는 것이 일상적인 삶의 일부로 자리잡은 러시아 문화를 보면, 지루한 클래식을 고상한 교양주의 때문에 억지로 참고 듣는 우리의 스노비즘과 대비된다.
박종호가 쓴 유럽음악축제 이야기를 읽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는데 이 책에서도 러시아 고급문화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연극을 보면서 배우의 아우라가 연극 무대를 현실세계처럼 느끼게 하는 힘이라고 표현했다.
반드시 훌륭한 연극이나 영화가 아니라 할지라도 가끔 드라마를 볼 때도 배우의 연기나 연출력이 너무 뛰어나 완전히 몰입할 때가 있다.
그런 연기력과 철학을 가진 배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연예인이라는 수식어 대신 정말 배우라는 단어를 붙여도 될만한 연기자가 몇 명이나 될까?
난 김영철을 볼 때마다 배우라는 직함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의 아우라, 정말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공연장에 자주 갈 생각이다.
오페라나 발레, 연극, 연주회 등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풍성할까!
러시아 예술 기행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제목도 잘 붙였고 책 구성도 훌륭한데 사실 내용은 점수를 아주 잘 주기는 좀 그렇다.
다소 부족한 기분이 든다.
7년이나 모스끄바에 있었다면 과연 감상이 남다르긴 할 것 같다.
재밌게 읽고 있다.
뒷쪽 여름이야기는 그저 그랬다.
저자의 글솜씨는 상당히 평이한 편이다.
다른 무엇보다 문장력에 큰 점수를 주는 나로서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건조하고 평범한 여행기가 이어진다.
사진은 무척 잘 찍었다.
모스크바의 여름은 그 높다란 자작나무의 싱그러운 초록빛에 빛을 발한다.
겨울이 너무 길고 혹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은 여름이 더 귀하고 찬란한 것 같다.
여름에는 체호프나 똘스또이 같은 예술가들의 생가를 찾으러 간다.
러시아가 워낙 넓어서인지, 아니면 똘스또이 등이 워낙 부유해서인지 하여튼 그들의 생가는 정말 광활했다.
아스나야 뽈라냐의 그 넓고 커다란 저택과 정원을 보라지!
영지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몇 장 넘기다 보니 러시아 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당히 비슷해 보였다.
무엇보다 정원이 있다는 게 참 마음에 든다.
정원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자란 이들의 영원한 꿈일 것이다.
중간중간에 러시아 문학가들의 글을 번역해서 다른 글씨로 삽입한 부분은 참 마음에 들면서도, 제대로 읽어 보지는 못했다.
감동받은 부분을 따로 떼내어 읽으면 꼭 이렇다.
앞뒤 문맥을 아무리 많이 인용한다 해도, 글 전체를 읽을 때의 분위기를 감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체호프가 의사 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점은 다소 놀라웠다.
의학은 나의 아내, 문학은 나의 애인이라는 말을 체호프가 했다니!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다는 건, 즉 직업 외의 분야에 이름을 남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참 대단하다.
희곡이나 단편을 별로 안 좋아해서 체호프는 제대로 읽어 본 일이 없는데 갑자기 관심이 확 생긴다.
중학교 때 읽은 세계소년소녀 문학전집에서 유난히 똘스또이 작품은 나에게 큰 감동을 줬다.
특히 "전쟁과 평화" 는 어찌나 감동적이었는지!
사실 한 권으로 압축된 거의 줄거리에 가까운 그 얇은 책이 제대로 똘스또이의 사상을 전달했는지 의문스럽긴 하다.
나중에 아빠 서재에서 무려 세 권으로 그것도 각 권마다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완역본을 보면서 기가 탁 질렸다.
그러나 하여튼 그 때는 전쟁과 평화, 를 날새워 읽고 긴 감상문을 썼었다.
<안나 까레리나> <부활> 도 무척 재밌게 읽었던 반면에, 도스또예쁘스끼는 이상하게도 안 읽혔다.
내 성향이 내면의 성찰이나 투쟁 같은 철학적인 쪽 보다는 서사적인 구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튼 그 유명한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나 <죄와 벌> 은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해서, 지금도 도스또예쁘스끼 보다는 똘스또이 쪽이 훨씬 친근하고 애정이 간다.
그래서인지 다른 곳은 몰라도, 야스나야 뽈라냐는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진다.
더군다나 대지주였기 때문에 그의 영지는 풍경 만으로도 충분히 감상할 만 할 것 같다.
언제쯤 러시아에 가 볼 수 있을까?
뜨레찌야꼬프 미술관이나 에르미따쥬 미술관에 가 볼 영광은 언제쯤 누릴 수 있을까?
러시아의 유명한 발레나 오페라, 연주회도 들어 보고 싶고, 그 유명한 끄레믈리도 직접 보고 싶은데 말이다.
이런 즐거움을 상상만 해도 행복하니, 과연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즐거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