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 닐 애셔 실버먼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오래 전에 사 놓은 책인데 이제서야 보고 있다.
뭐랄까, 내 돈 주고 사면 당장 읽기 보다는, 어느 때나 읽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 미루게 된다.
2002년에 나 온 책인데 작년부터 품절이었다.
너무 빨리 절판되는 게 아닌가 싶어 아쉽다.
책의 턴오버가 너무 빠르다.
학술적이고 어려울 것 같아 선뜻 읽혀지지 않았는데, 막상 책장을 넘겨 보니 오히려 평이한 수준이다.
발굴 내용이나 구체적인 증거를 세세하게 제시하기 보다는, 결론만 말하는 식이다.
대중을 위한 교양서 수준이다.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허점이 보인다거나 주장만 되풀이 하는 허접한 책은 절대로 아니다.
아마 유대인 고고학 교수라는 저자의 직업적 전문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정통파이기도 하다.

 

어제 읽은 부분은 1부였다.
도입부와,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하는 열왕기 하까지의 설명으로 되어 있다.
모세 5경과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 등이 기원전 7세기 유다 왕 요시아에 의해 정리됐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모세 5경이 모세의 저작이 아님은 잘 알려져 있다.
왜냐면 모세가 죽은 후의 일도 세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아다시피, 하나님을 야훼로 부르는 버전, 엘로힘으로 부르는 버전 등등 총 4개의 원전이 모인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니까 모세 한 사람의 단독 저술이 아니라, 후대에 여러 자료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 점은 새로울 것이 없었는데, 그 후의 저술인 여호수아서나 사사기 등이 요시아 왕 때 정리됐다는 점이 신선했다.
저자는 요시아에게 초점을 맞춰서 성경을 설명한다.
모세 5경에 나오는 지명들, 특히 가나안 정복 당시 구체적인 촌락이나 지방들이 요시아 왕 때 정세와 거의 일치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여호수아가 나팔을 불어 성곽을 무너뜨렸다는 여리고는 여호수아 당시, 즉 후기 청동기 때는 성곽 자체가 있지도 않았고, 무너뜨리고 말 것도 없는, 그저 소수의 촌락 공동체에 불과했다고 본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많은 지방들은, 철기 시대인 유다 왕국 요시아 왕 때 강성한 나라들로 봐야 한다고 본다.
후기 청동기 시대 때는, 즉 여호수아가 활동할 때는, 촌락 자체가 거의 형성되지 않고 버려진 땅이었다는 것이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가지고 하는 주장이기 때문에 일단은 한 번쯤 고려해 볼 만 하다.

 

좀 더 핵심적이고 충격적인 주장은, 이스라엘인이라는 민족 자체가 외부에서 가나안으로 온 이주민 집단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원래부터 살고 있던 토박이라는 주장이다.
그들이 유목민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왜냐면 성경에 묘사된 그들의 생활, 이를테면 샘을 가지고 싸운다거나 양과 염소를 방목하는 것 등이, 현재의 베두민족 삶과 거의 유사하다고 한다.
저자의 추리에 따르면, 이들은 고원지대에서 유목을 하던 집단이었고, 저지대의 농경민과 곡물 교환을 통해 살아갔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저지대 경제가 망하게 되자, 고원 지대는 더 이상 곡식을 얻을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농사를 짓게 되면서 농경민으로 전환했다고 본다.
이 사건이란 에게인이라고 알려진 바다민족의 침입, 혹은 당시 가나안까지 이집트의 통치가 미쳤는데, 이집트가 분열을 겪으면서 더이상 행정 치안이 유지되지 못해 경제가 무너졌다고 본다.
하여튼 저지대가 몰락하면서 고원지대의 유목민들은 인구가 늘게 되고 자급자족을 달성하면서 서서히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들을 다른 집단과 구별해 주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바로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는 풍습이었다.
고원 지대를 발굴해 보면 저지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돼지뼈가 없다고 한다.
왜 돼지고기를 안 먹었는지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으나 하여튼 이런 금기가 그들의 구별표지로 작용한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자매 국가로 본 점도 신선하다.
여호수아가 열 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북이스라엘은 남유다 보다 훨씬 풍족하고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자란 집단이었고 다만 하나님이라는 유일신을 섬기는 점에서 같았다.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한 후 남유다는, 특히 요시아 왕은 자신들이야 말로 잃어버린 옛 땅을 수복해 통일 왕국을 이룩할 수 있는 영웅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과거 통일왕국 다윗과 솔로몬 시절을 화려하게 편집해서 다윗의 자손이 다시 왕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자기암시를 한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다윗과 솔로몬 시절의 화려함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윗 시절의 유다 왕국은 매우 가난했으며 솔로몬의 건축물이 있다고 알려진 므깃도 등도 훨씬 나중에 지어졌기 때문에 연도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자에 따르면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는, 요시아 시대인들에게 주입된 환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다윗과 솔로몬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집트 등의 비문에 보면 솔로몬의 자손이라는 단어가 분명하게 언급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성경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기록은 사실임을 인정하는데, 단 그 규모를 매우 축소해서 본다.
이런 침착한 태도가 설득력을 높힌다.
좀 더 읽어봐야겠으나 선동적인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
다음에는 대체 어떻게 이 작은 민족의 종교가 전 세계인의 영혼을 책임지는 보편적인 종교로 발전했는지, 그 영향력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읽어봐야겠다.
다른 의견을 가진 고고학자의 책을 읽고 싶다.
당위성만 주장하는 교회 인사들의 책은 사양한다.
증거는 없고 주장만 난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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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와이드 셧 - 할인행사
스탠리 큐브릭 감독, 톰 크루즈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상당히 어려운, 독특한 영화였다.
기묘한 분위기,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라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늘씬한 배우들이 펼치는 이상야릇한 혼란들...
영화 설명에는 니콜 키드먼이 맡은 앨리스가 정숙한 여인이라고 나오는데 글쎄, 겉보기에도 퍽이나 매력적이고 섹시해 보이는데 그건 아니지.
둘 다 화면이 참 아름다운 배우들이다.
특히 큰 키와 긴 다리를 자랑하는 니콜은, 안경을 씀으로써 자신의 도발적인 매력을 한 단계 낮춘다.

 

난 대체 왜 이 영화가 야하다는 소문에 휩싸였는지 모르겠다.
비밀스런 성에서 벌어지는 혼음파티 때문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니콜의 벗은 몸 때문에?
왠걸, 그 보다 더한 영화는 도처에 널려 있다.
오히려 도발적이고 위태로운 분위기 때문에 긴장감을 준다.
노골적인 섹스씬은 거의 한 장면도 없었고 혼음파티는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다.
감독이 연출하는 그 기묘한 분위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그게 바로 세계적인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까 싶다.
사운드 트랙도 환성적으로 잘 어울린다.

 

미국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아 정확한 분위기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그 나라는, 적어도 한국 보다는 남편과 아내의 정절 문제를 비슷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보다는 덜하겠지만, 한국 사회는 남자들의 일회적인 섹스나 매춘에 대해 대단히 관대하다.
술먹고 하루밤 자는 게 무슨 대수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
지속적인 관계만 아니다면, 혹은 적당한 선에서 정리할 수 있다면, 즉 가정으로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다면 일시적인 바람은 용납되어지는 분위기다.
남자에게 순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의 빌은, 실제로 섹스를 즐긴 것도 아니고, 단지 혼음파티에 호기심으로 찾아갔을 뿐이고, 창녀와의 하룻밤도 돈만 날렸을 뿐 관계를 맺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크게 죄책감을 느낄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괴로워하며 아내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아내 앨리스 역시 단지 해군장교와의 하룻밤을 꿈꾸었을 뿐 실제적인 행위는 없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일어나지 않은 현실, 머릿속에서의 욕망에 죄책감을 느끼고 상대방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괴로워 한다.
어쩌면 그 점이 일반적인 포르노나 3류 영화와는 다른, 작품의 수준을 높혀 주는 포인트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이 부부의 감추어진 성적 욕망 내지는 정절에 대한 충실도를 보면서 스와핑이라는 단어가 신문에 오르내리는 요즘의 현실과 비교해 봤을 때, 순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성적 개방이 자연스러워졌다 해도, 여전히 결혼이란 한 사람과의 독점적인 성관계를 법적으로 약속한, 매우 폐쇄적인 관계임을 깨달았다.
간통죄라는 법률적인 위반 행위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구속력이 훨씬 강하게 작용할 것 같다.
오히려 성관계 개방 풍조는, 결혼 이전에, 미혼남녀가 섹스를 연애행위에 자연스럽게 포함시킬 수 있음을 뜻하는 것 같다.
어찌됐든 부부간의 정절은, 혼전순결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외도 한 번 안 하는 부부가 어딨냐는 발언은 매우 무책임한 소리라는 걸,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사회적 제도로 억압하면서 사는 것, 그게 바로 결혼이 아니겠는가?

 

비밀스러운 혼음파티는, 성에 대한 인간의 퇴폐적인 욕정을 보는 기분이었다.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폐쇄적으로 모여 서로가 보는 앞에서 섹스를 즐긴다...
뭐랄까, 즐거움의 극치에 이르다 보니 적정선을 넘어서 가학적이고 변태스러운 단계에 이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극단에 다달았다고 해야 할까?
마약과 술에 절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남녀의 육체에 탐닉하는 모습, 성적 표현의 완전한 자유를 외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비밀스럽고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며 심지어 비밀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죽이기까지 하는 끔찍한 가학성은 아무래도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든 신체나 정신에 위협을 가하는 폭력적인 탐미는 아름답지 못하다.
어떤 즐거움이든 적당한 수위가 있는 것 같다.

 

니콜 키드먼과 탐 크루즈 모두 눈을 즐겁게 할 정도로 훌륭한 마스크와 몸매를 지녔고 영화 분위기나 음악 모두 마음에 든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의사면허증이 마치 운전면허증처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의 빌은, 의사라는 직업을 내세워 마치 경찰처럼, 많은 일을 쉽게 해결한다.
미국 문화의 신기한 점을 발견한 기분이 든다.
의사가 미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나라 의사면허증은 A4 한 장 크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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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라는 이름의 거짓말
조엘 베스트 지음, 노혜숙 옮김 / 무우수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통계에 대한 신뢰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책이다.
직관보다는 차라리 통계를 믿자고 했더니만, 그 통계라는 것도 과학의 허울만 뒤집어 썼을 뿐 모두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진실은 파악하기도 힘들고, 도덕적으로 옳다고 해서 사실인 것도 아니며, 언제나 우리들이 붙잡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는 것 같다.
뉴스에서 흔히 인용되는 통계자료들의 허술함과 부정확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여론조사라는 것도 실은 얼마나 허망한 개개의 의견에 불과한가?
이러니 세상은 카오스적이고, 여전히 인간이 미래를 조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미래 예측은 고사하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를 제대로 진단하는 것도 매우 난해한 문제다.
수학적 문맹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저자는 수십번 지적한다.
글씨만 못 읽는 게 문맹인 줄 알았더니, 통계자료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수학맹도 심각한 일임을 깨달았다.
학교 다닐 때 확률 통계 부분이 제일 짜증나고 싫었는데 그 때 좀 제대로 배워둘 걸 그랬다.
꼭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고등학교 교육은 건강한 교양인을 양성하는데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발 입시에만 찌들지 말고, 21세기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상적인 지식과 교양을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정신이 중요하다느니, 과학이 전부는 아니다느니 하는 소리가 얼마나 허망한 얘기인지 실감이 간다.
과학은 학문이나 주장의 일종이라기 보다는, 진리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번 되풀이 해도 늘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들만 진실로 인정하자.
역시 우리는 회의주의적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운동가들의 섣부른 선동에 동요되지 말자.
대의명분과 진실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다음부터는 좀 더 꼼꼼하게 신문을 읽어야겠다.
다시 한 번 확인한 바지만, 기자들은 절대로 전문가가 아니며 일화적이고 충동적인 기사 문구를 너무 믿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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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8-01-2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보관함에 있는 책이네요. 저는 '수학자의 신문 읽기'를 읽었고 이 책을 추천하려 하니 품절입니다. 기회 있을 때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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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오류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토머스 키다 지음, 박윤정 옮김 / 열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책 내용이 마이클 셔먼이 쓴  "왜 우리는 이상한 것을 믿는가" 와 흡사하다.
논조가 같은 것은 물론이고 예로 든 경우도 거의 흡사해서 지나치게 참조한 게 아닌가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는 마이클 셔먼의 추종자 같다.
제목은 기가 막히게 잘 지었는데 내용의 참신성이 부족해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이다.
너무 띄엄띄엄 읽어서 리뷰를 쓰기가 무척 힘들다.
하여튼 혈액형학이나 점성술이나 사주 관상이나 대체의학이나 UFO를 믿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을 것이 분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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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북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피터 탤랙 엮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오늘 읽은 책은 일단 규모에 살짝 기가 질리는 책이다.
지은이가 리처드 리키인데 왜 나는 이걸 리처드 도킨스라고 봤는지 모르겠다.
도킨스가 서문을 썼다고 들었는데 눈 씻고 찾아봐도 도킨스 이름은 안 나온다.
내가 자꾸 착각을 하는 건지...

칼 세이건의 전 부인인 린 마굴리스가 역사적인 과학의 발전을 이끈 250 인 가운데 한 명으로 등장하는 걸 보고, 과연 이 아주머니의 명성이 허상이 아님을 알았다.
나를 떠나는 건 당신의 큰 실수라면서, 린의 이혼요구에 깜짝 놀랬다던 세이건 보다 학문적으로는 더 유명한 사람이 되버렸으니, 당시의 마굴리스가 콧방귀를 뀌었을 것 같다.
하여튼 생물학 책에 나오는 이론, 즉 세포 안에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박테리아가 숙주에게 기생한 것으로써 공생관계로 진화했다는 이론이 바로 이 마굴리스에 의해 전개된 이론이라고 한다.
교과서에 나올 때는 뭔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끄적거려 놨나, 학자들의 말장난 아닌가 싶었는데 과연 찬찬히 성립 배경을 읽어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보통 핵 안에만 DNA가 들어 있는데, 핵 밖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에도 DNA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두 생물은 과거에 각기 별개의 존재였다고 보는 것이다.
셀이 박테리아를 잡아 먹어 붙잡고 지금까지 20억년에 걸쳐 살아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경이롭게 들린다.
아, 정말 생명의 신비와 정교함은 얼마나 놀랍고도 위대한지!
핵과 미토콘드리아에 각기 DNA를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진핵생물이고,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게 원핵생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원핵과 진핵의 차이가 바로 이 미토콘드리아의 유무, 그리고 DNA가 한 벌인가, 두 벌인가 차이라는 거다.
원핵 생물은 지금으로부터 40억년 전부터 있어 왔고 진핵 생물은 20억년 후에 진화했다.
분자의 진화까지 논하는 현대 생물학의 깊이는 정말 놀랍다.

 

천왕성의 발견자인 윌리엄 허셜은 당시 영국 국왕의 이름을 따서 조지의 별이라고 부르자 했단다.
조지 3세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를 천문학대의 수장으로 임명했다고 하니, 과연 대단한 처세술이 아닐 수 없다.
전문적인 천문학자도 아닌 사람이 단지 취미로 망원경을 만지다가 이런 놀라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놀랍다.
두루두루 넓은 범위의 교양을 추구했다는 당시 영국 신사들의 과학에 대한 놀라운 열정과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번역자에 대한 불만으로는, 가능하면 중요한 용어는 영어로 함께 표기를 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정확한 용어가 뭔지 궁금한데 무조건 한글로 번역만 해 놔서 아쉬웠다.
고유 명사처럼 쓰이는 단어들일텐데 영문 표기를 알면 인터넷에서 찾기도 쉽지 않겠는가.
내 전공 분야인 생물학 쪽에서는 그런대로 잘 알아 먹었는데 솔직히 물리 쪽은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갔다.
물리학의 상식을 넓힌다는 의미에서는 유용했다.
특히 도저히 감이 안 잡히던 초끈 이론이 대체 무슨 얘기인지 좀 알 것 같다.
양자역학도 자주 반복되니까 이제 확률론이구나, 하고 감이 좀 잡힌다.
역시 21세기의 교양인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거의 대부분이 노벨상을 받은 업적들이 많았다.
현대로 올수록 대부분 노벨상 수상자들이라 노벨상이 과학 발전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놀라운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개념도 처음 도입됐을 때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는 것이다.
가속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뉴턴이라는 천재를 기다려야 했다는 문장이 확 와 닿았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나 케플러의 행성의 타원 궤도 같은 당연한 상식은 물론이거니와, 화석이 대체 뭐냐는, 너무 당연한 질문에도 당시 사람들은 고민해야 했다는 걸 보면, 역시 과학의 위대함은 누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개념이 정립되면 그 위에 쌓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 혹은 새로운 개념 정립은 수많은 실패와 위대한 천재가 나오기 전까지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소개되는 과학자들은 죄다 놀라운 천재들 같다.
역자 후기에 동양의 과학이 소개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했는데, 과학이라는 것이 동서양, 혹은 국가와 민족을 굳이 나눌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든다.
여기 소개된 이들은 인류 문화의 보배들이다.
다만, 동양 쪽 과학의 전통은 어떠했는지는 궁금하다.

 

250개의 주제에 불과하다고 해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아직 1/3이나 남았다.
생각보다 내용이 방대하다.
한쪽은 설명, 한 쪽은 올 컬러 사진이라는 획기적인 구성을 취한 점이 마음에 든다.
단 책 도판이 너무 커서 읽느라 힘들다.
과학에 관심있는 대중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무엇보다 과학의 전분야를 골고루 망라하고 있고, 한 페이지에 핵심적인 설명만 압축했기 때문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아서 교양서로 좋다.
가끔 꺼내 놓고 한 장씩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옆의 사진이나 그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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