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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회복지의 실제
박승희 외 지음 / 양서원(박철용) / 2007년 6월
평점 :
처음에는 숫자만 잔뜩 나열한 책에 질려서 꾸벅꾸벅 졸면서 대충 읽었다.
내가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이런 실제적인 자료집이 아니라, 스웨덴 사회복지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더불어, 우리나라 복지 정책에 대한 대안을 원했다.
너무 대충 읽은 것 같아 바로 재독을 했는데, 두 번째 읽을 때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났다.
나는 여기 나온대로 복지 수당을 죄다 계산해 봤고, 한 술 더 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삼촌네 가족의 경우까지 대입해 봤다.
이 책은 단순히 주장만 나열한 책이 아니다.
몇 %의 세금을 제하는지, 아동 한 명당 얼마의 수당을 받는지, 이혼했을 경우 양육비 지급은 얼마인지 등등을 매우 세밀하게 자료로써 제시한다.
결과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후기에도 나오지만, 이렇게 퍼다 주고도 경제가 돌아간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제일 대표적인 예로 가정주부의 연금을 들 수 있다.
한 번도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전업주부마저도, 65세가 되면 대략 90 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세금 제한 액수)
그것도 부부가 각각 따로 받는다.
직장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90만원씩이나 매달 지급이 된다면 다른 경우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러니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손 벌릴 필요가 없고, 자식 역시 부모 봉양을 위해 따로 지출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노인 부양 문제는 전적으로 자식들에게 달려 있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할머니들의 경우, 자식이 아니면 돈 나올 구석이 전혀 없다.
이러니 자식이 부모를 버릴 경우, 말 그대로 굶어 죽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노인 연금 지급 문제는 재정 마련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다.
스웨덴은 나라가 한국보다 대략 2배 이상 넓고 인구는 천 만이 채 못되는데도, 이 나라 역시 주택 공급이 아주 원활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전세 개념은 아예 없고, 15평 아파트의 임대료가 70여 만원 정도로,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성인 1인의 최저 생활비는 대략 40여 만원 정도로 책정되어 있다.
만약 할머니 한 사람이 혼자 산다면, 주거비와 최저 생계비를 합하면 110여 만원이 든다.
받는 연금은 90만원이니 나머지 부분을 어떻게 할까?
놀랍게도 마이너스 부분은 공적 부조로 해결한다.
사회보장청에서 연금을 지급하고, 부족한 부분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메꿔 준다.
20만원이 지자체에서 매달 추가로 나오는 것이다.
이러니 노인들은 얼마든지 혼자 살 수 있다.
아파서 간병인이 필요한 경우도 생활도우미가 파견되어 실제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목욕, 청소, 식사준비는 물론이고, 가정간호사가 와서 노인을 돌본다.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돈은 최고 30만원을 넘지 않고,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전액 지자체에서 지불한다.
너무 놀라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일을 전혀 하지 않았고, 재산이 한 푼도 없어도, 심지어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아프다 할지라도 충분히 혼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복지 정책이 얼마나 앞서 나가는지 눈으로 확인한 기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거노인들의 간병 서비스는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있다.
사설업체에 도우미를 맡기고, 노인들이 업체를 선택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서비스 경쟁이 이뤄진다고 하니, 가히 복지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가 아닐까 싶다.
아동 수당도 보통이 아니다.
아동 1인당 15만원 정도가 매달 지급되고, 추가로 주택수당까지 나온다.
이혼했을 경우는, 1인당 17만원을 양육하지 않은 부모에게 받아준다.
이 혜택은 입양아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무상의료에다가 무상교육, 거기다가 아동 수당과 주택 수당까지 나오니, 스웨덴에서 입양이 활발한 이유를 알겠다.
임심을 했을 경우는 임신 휴가 60일이 주어지고, 50일까지는 소득의 80%를 받을 수 있다.
난 이게 출산 휴가인 줄 알았다.
실제로 우리 부서의 출산 휴가는 두 달이다.
그런데 이 60일 중 토요일, 일요일은 제외된다.
순수하게 근무한 날로 따져서 60일이란 얘기다.
그러므로 실제 쉴 수 있는 날은 석달 가까이 된다.
출산을 하고 나면 출산휴가 혹은 부모휴가가 무려 480일이나 주어진다.
이 중 60일은 의무적으로 아버지가 써야 한다.
부모의 공동육아를 증진시키기 위한 방안이라고 한다.
아이가 8세가 될 때까지 부모는 480일을 나눠서 쓸 수 있고, 이 중 390일은 소득의 80%가 보장된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주말이 빠진 순수 근무날수만 포함된 것이므로, 실제로는 대략 1년 6개월을 급여를 받으며 쉴 수가 있다.
정말 환상적이지 않은가?
아기가 1살이 되면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학교 들어가기 전 6세까지는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데 이 때 드는 돈은 1명당 17만원이고, 이것도 아무리 아이가 많아도 34만원을 넘지는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추가 비용은 국가에서 내준다.
그러니 출산 후 1년 동안 휴직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1년 후부터는 어린이집에 보내면 된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은 방과 후 보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스웨덴 노인들이 손자 키우기에서 해방된 이유가 있다.
이 정도 육아 시스템에다가 의료와 교육까지 무료라면 적어도 돈 때문에 아이 못 낳는다는 말은 안 나올 것 같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게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처럼 출산과 양육은 전적으로 개인 책임으로 맡겨진 나라에서는 많이 낳을래도 돈과 시간이 없어서 낳을 수가 없다.
장애아에 대한 복지도 환상적이다.
장애 정도에 따라 적게는 몇 십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까지 지급이 되고, 만약 가족이 돌보고 있다면 구청에서 가족에게 도우미 수당을 준다.
혼자 사는 장애인인 경우, 수발을 들 도우미와 간호사가 방문하여 돌본다.
도우미의 개인 부담금은 노인의 경우처럼 대략 20만원 안쪽이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공적 부조로 해결된다.
후기에 보면 스웨덴의 장애인정책이 부록으로 나오는데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스톡홀름을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접근성이 가장 좋은 도시로 만들자는 취지 아래, 수많은 복지 시설을 제공한다.
그래서 스톡홀름에 장애인들이 가장 많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동일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특별한 지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선언은, 장애인의 권리를 정확히 보여 준다.
다양성이 자산이라는 선언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장애인에 대한 동정의 수준을 넘어서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도록 지원과 서비스를 아끼지 않는 스웨덴의 복지 수준에 정말 감탄했다.
전적으로 가족 책임인 한국과 너무 비교되어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왜 스웨덴은 자살율이 높은가?
2007년 자살율과 비교해 봤을 때 높은 쪽은 오히려 한국이다.
스웨덴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한국은 남자 성인 1000명당 33명이라는 엄청난 자살율을 자랑한다.
대부분 생활고일 것이다.
특히 IMF 이후 빚 때문에 자살한 중년들이 꽤 있을 것이다.
스웨덴은 현재 19명 수준이고 과거 30명을 넘었던 것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저자는 이 비밀을, 복지 서비스에서 찾는다.
단순히 소득보장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복지 서비스 (수발과 간병, 간호 등) 를 늘림으로써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게 자살률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만족감이다.
개인주의 사회이다 보니, 스웨덴은 삼대가 모여 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사회에서 노인의 복지를 해결해 주기 때문에 노인들은 독립해서 살고, 한국처럼 가족간의 유대감이 강하지 않다.
노인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매우 클 것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모든 부양의 책임을 가족에게 맡겨 버리는 것보다는 백 배 천 배는 나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건 복지 시스템이 잘 되서가 아니라, 서구 사회의 전통적인 개인주의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튼 이 나라도 공동체의 유대감 높이기에 대해 고민을 좀 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막연한 주장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자료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는 삼촌네 가족이 생각나 많이 쓸쓸했었다.
삼촌의 경우, 이혼했고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으며 직장이 없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책에 나온대로 최저생활비와 주거비를 계산해 보니 대략 130만원 정도는 든다.
이 생활비는 친척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주고 있다.
국가에서 나오는 돈은 하나도 없다.
스웨덴 복지 모델에 대입해 보면, 할머니가 받을 노인 연금과 사촌동생의 아동수당, 편부모 양육비, 주택 수당 등을 합하면 130만원은 충분히 받는다.
만약 삼촌이 실업 급여를 받는다면 이 가족은 누구에게 손 벌이지 않아도 자립할 수 있다.
스웨덴의 실업 급여는 300일까지, 소득의 80%가 나오고 이 때도 토, 일은 제외라 실제로는 1년 정도 된다.
만약 300일 안에 취업이 안 되면 추가로 300일이 더 할당되고, 그래도 안 되면 그 다음부터는 공적부조에서 최저 생계비를 지원한다.
복지국가는 국가가 최저생활을 보장해 주고, 한국 같은 나라는 가족 공동체가 그 부담을 떠맡는다.
미국처럼 개인주의가 매우 발달하면서도 복지제도가 떨어지는 곳에서는 아마 홈리스나 부랑자로 전락할 것이다.
한국 역시 가족 공동체가 튼튼하지 못한 실직자는, 낙오자로 사회에서 배제될 것이다.
한숨이 푹푹 나온다.
저자는 스웨덴 복지 정책의 근원을, 노사 협력에서 찾는다.
언젠가 다른 책에서도 읽은 적이 있는데, 스웨덴은 노조와 회사의 협력이 매우 잘 된 국가라고 한다.
그 때는 막연히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제시된 자료를 읽어 보니 과연 보통 협조 시스템이 아니다.
생산직 노동자는 노조 등록율이 82%에 이르고, 사무직 노동자도 75%에 달한다.
심지어 의사나 교수 같은 전문직도 노조가 결성되서 조합원 수가 5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스웨덴 인구가 900만명이니 전문직 노조 조합원이 50만명이라면 보통 숫자가 아니다.
이들의 조합율이 높은 이유는, 한국처럼 대기업 위주로 결성된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비정규직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고 이런 단결력과 응집력 덕분에 1932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69년에 걸쳐 사회민주당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진정한 노동자의 대표 단체답다.
저자는 복지제도의 힘을, 바로 사민당의 장기 집권으로 봤다.
복지 제도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힘, 정권의 의지만 있다면 그리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해 준다면 얼마든지 실행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다수의 국민들은 가난한데 복지 제도의 정착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스웨덴의 세금은 대략 20% 정도 된다고 한다.
많이 내더라도 따로 노후나 아플 때를 대비할 필요가 없고 의료와 교육까지 무상이며 양육비까지 지원된다면, 그리고 실제로 내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세금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퍼주면서도 1인당 GNP는 무려 4만 달러에 달한다.
저자는 한국이 사교육비와 내 집 마련에 너무 많은 정력과 재화를 낭비하기 때문에 복지 시스템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사교육비야 뭐, 더 말 하는 게 입 아플 정도로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이고, 물론 인재 양성과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한국 사회가 발전한 것도 있지만, 하여튼 학벌사회 대한민국이 얼마나 큰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는 누구나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대학 진학율은 35%에 불과하고, 졸업 후 30년 동안 80%가 대학에 간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선택한 대학에 의해 평생 신분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 하다가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해 천천히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스웨덴이다.
그러니 사교육비라는 말 자체가 없을 수 밖에.
국가에서 대학 등록금 (대학원까지 지원된다)이 나오니, 돈 없어서 대학 못 간다는 말은 있을 수도 없고, 언제든지 직장 그만두고 학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부럽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온다.
주택 문제의 경우, 스웨덴은 절반 이상이 임대 주택이라고 한다.
임대료를 내는 것이 집을 사는 것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집을 굳이 사려고 하지 않고, 집값 역시 투기의 대상으로 이용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1가구 1주택 기조를 유지하면서, 임대 주택에는 실제로 거주해야 하고 세를 놓을 경우는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한다.
빚을 내서라도 일단 집부터 장만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집값만 보고 있으면 땡인 대한민국과 매우 비교되는 사회다.
스웨덴의 인구 밀도가 워낙 낮아서 공간 문제에 있어 여유가 있지 않나 싶은 생각도 해 봤다.
전세 제도는 아예 없는 것 같고, 임대료에 관리비나 난방비, 전기세 등도 포함된다고 하는데 한국에 비해 아주 싸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집을 사는 게 굳이 큰 이익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해서 집 사느라 돈을 모을 필요가 없으니 임대료 내면서 사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
학생들의 경우, 18~29세까지 주택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에 독립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의 거주지 확보를 위해 주택 수당을 지급하는 그 배려가 놀랍다.
한국도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감만 줄어든다면 훨씬 사회가 안정적일 것 같다.
정부의 특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페이지 불과한 얇은 책이지만 훌륭한 내용과 성실한 자료 수집이 돋보이는 멋진 책이다.
이런 실제적인 자료들이 많이 나와 한 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 주면 좋겠다.
외국 사회를 소개하는 책 중에서 제일 짜증나는 게, 유학생 와이프들의 신변잡기식 책이다.
이 사람들은 신문이나 방송도 제대로 안 보는지, 그 나라의 정책이나 제도 같은 데는 아무 언급도 없고 그저 살기 좋은 사회 어쩌고 하면서 개인 블로그에나 올릴 만한 글을 책으로 써 내는 걸 보면 한심하다.
전문적인 책들이 많이 나와 여러 사회들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성실한 책을 써 준 집필진들에게 감사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