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
김영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보는 미술관 책이다.
작가의 사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문제는 글솜씨 보다 사진 솜씨가 더 좋다는 데 있다.
확실히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작품을 평하는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문장력이 썩 좋은 작가는 아니다.
지난 번에 읽은 비슷한 컨셉의 책,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가 문장력 면에서는 더 낫다.
하여튼 진부한 주제 같은데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오르세와 루브르는 여행가들의 영원한 꿈인 것 같다.
마로니에 북스에서 나온 미술관 시리즈는, 외국 책을 번역한 것이라 그런지, 딱딱할 뿐더러, 미술관을 주제로 한 것에 비해 미술관 자체의 내용은 너무 적어 지루하게 읽었는데 이 책은 그런대로 읽을 만 하다.
한 권 들고 여행을 떠나도 될 것 같다.
나라면 이런 책을 기획해 보고 싶다.
정말로 그 책 한 권만 가지고 있으면 제대로 미술관을 탐방할 수 있는 그런, 내용 빵빵한 안내서 말이다.
배낭 여행자들이 론리 플래닛을 최고의 여행서로 삼듯, 미술관 순례에도 빠지지 않는 확실한 안내서 같은 책이 나오면 좋겠다.
단순히 미술관에 진열된 그림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조언, 이를테면 루브르 미술관 완전탐방 3일 코스, 이런 식으로 세부적인 계획까지 제시한 책이 나오면 좋겠다.
사실 어느 여행지에 뭐가 있고 숙소는 어디가 좋고, 이런 건 부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그런 건 좀 비싸게 사도 좋고 좀 나쁜데서 자도 좋은데, 진짜 중요한 것, 이를테면 여행의 내용, 뭘 얼마나 제대로 봤는지,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이런 게 정말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유럽 여행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미술관 순례 아닌가?
그런데도 정작 미술관 관람에 대한 책은 거의 없고 숙소 싸게 구하는 법, 이런 것들만 판치는 것 같아 많이 아쉽다.
항상 헷갈렸던 게 바로 조토와 치마부에 같은 르네상스 초기 화가들이다.
이름도 생소하고 어느 시대 사람인지 늘 아리송했는데 이제 좀 감이 잡힌다.
반복적으로 여러 책을 보다 보니, 이들이 바로 중세의 문을 닫고 르네상스를 시작한 인물들이라는 걸 확실히 인지하게 됐다.
조토의 스승은 치마부에로써, 보통 치마부에를 중세 마지막 화가로, 조토를 르네상스 시작으로 본다고 한다.
확실히 중세 그림은 평면적이고 엄숙하다.
나중에 인상파들이 등장하면서 일본의 채색판화인 우키요에와 비슷한 느낌의 강렬한 평면적 그림이 등장하는데, 중세 그림의 평면성과는 또다른 느낌 같다.
중세의 평면화는 엄숙하고 우울한 느낌인데 비해, 인상파들의 평면화는, 강렬하고 밝고 감성이 넘쳐 흐른다.
특히 고흐의 그림은, 물감을 수차례 덧발라 놓은 것 같은 두터운 붓칠이 인쇄된 종이에서조차 확실하게 느껴진다.
나는 고흐 그림을 보면 너무 강렬한 나머지 가슴이 북받쳐 올라 울컥 하는 심정이 된다.
지난 번 내셔널 갤러리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처음 봤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을 했는데, 이번에도 이 책에서 "오베르 교회" 라는 그림을 봤는데 정말 눈시울이 붉어졌다.
단순히 슬프고 감동적인 그런 느낌이 아니라 뭐랄까, 그림이 어떤 형태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색감과 붓터치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그런 마력이 있다고 할까?
하여튼 고흐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대단한 화가임이 분명하다.
왜 이런 강렬한 그림들이 당대에는 팔리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고흐의 그림을 수집한 화상들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들은 인물들이 늘 부드럽게 웃고 있다.
이 사람은 따뜻한 느낌을 표현하는데 대단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떤 것 같다.
르느와르의 단순히 실내와 같은, 그런 종류의 따뜻함이 아니라,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부드러움이 인물의 얼굴선에 살아 있다.
라파엘로의 그림도 정교하고 치밀하다는 점에서 마음을 끈다.
라파엘로가 죽은 1520년을 르네상스 최절정기로 삼는다는 것만 봐도, 그가 르네상스에 미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끝난 후 장식적인 그림, 기괴한 느낌의 과장된 그림이 대세였는데 이 때의 화풍을 마니에리스모라고 칭한다.
바로크로 넘어가기 전 과도기 단계를 뜻하는 말로, 항상 애매한 느낌이었던 화가 틴토레토와 티치아노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 하면, 아 그 사람, 하고 금방 떠오르는데 틴토레토나 티치아노는, 분명한 느낌으로 다가오질 않고 모호했다.
마치 조토나 치마부에처럼 말이다.
그만큼 덜 알려져서 그럴 것이다.
티치아노의 제자가 바로 틴토레토였고 이들은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바로크로 넘어가면 명암 대비 효과의 대가인 카리바조와 카넬리가 등장한다.
카라바조는 성화 속의 인물들을 성스럽게 그리는 대신, 실제 서민층의 얼굴을 대입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살인을 저지르고 쫒겨다녔다는 것만 봐도 꽤나 시끌벅적한 성격이었을 것 같다.
하여튼 이 사람의 그 강렬한 명암대비, 이른바 키아로스쿠로 기법은 가히 빛의 대가라는 명칭을 얻을 만 하다.
반면 렘브란트의 그림에 나타나는 빛과 어둠은 보다 성찰적이고 고요하다.
유명한 야경, 이나 자화상 등을 봐도 관조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루벤스는 플랑드르의 바로크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화가다.
루벤스야 말로 라파엘로와 더불어 화가들에게 모범이 되는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사회적 명성과 화가로서의 자긍심, 대우 등 모든 면에서 넘치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나는 루벤스의 그 격렬한 화풍과 화려한 색감을 좋아한다.
특히 그가 표현한 여자들의 풍만한 육체와 피부색이 너무 마음에 든다.
넬로가 죽어가면서 보고 싶어했던 그림, "성모승천" 의 주인이 바로 루벤스 아니던가
개인적으로도 두 아내와 매우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하니, 과연 바람직한 화가의 일생이 아닌가 싶다.
비슷한 시대의 렘브란트와 매우 비교된다.
바로크가 절대 왕정의 보호를 받았다면 로코코는 귀족들의 후원으로 성장한다.
장식적으로 화려한 그림, 와토 등을 생각하면 금방 연상이 된다.
키레라 섬의 순례 같은 그림이야 말로 로코코를 대표하는 그림 같다.
로코코의 지나친 장식성에 반발해 생긴 화풍이 신고전주의다.
르네상스 시대의 완벽한 조형미를 미덕으로 삼는 이 화풍은 다비드나, 그 제자 앵그르 등으로 대표된다.
앵그르가 표현한 여성의 육체는 정말 대리석 같다.
나중에 마네가 올랭피아 등을 그렸을 때 사람들이 왜 화를 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너무나 선명하게 대비된다.
사진기가 등장하기 전 그림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화가다.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같은 그림도 워낙에 대작이고 생생해 기억에 남는다.
꼭 실제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이 그림을 위해 시체 안치소까지 찾았다고 하니 과연 신고전주의자의 대가답다.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만개한 후 드디어 그 유명한 인상파가 등장한다.
일본의 채색판화인 우키요에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그림의 평면성을 주장한다.
지금까지 그림이란 실제처럼 그리는 것, 완벽한 조형미를 뽐내는 이상적인 인물을 창시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이지 않았던가?
부그르 등이 그린 비너스를 보라, 얼마나 완벽하게 아름다운가?
그런 이상적인 육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그리던 아카데미 화가들에게 도전장을 낸 이 어처구니 없는 화가 집단의 등장이,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마네의 올랭피아나 풀밭 위의 점심식사 등을 보면 너무나 평범한 나부상을 보여준다.
가히 외설 논란이 일었을 만 하다.
오늘날로 보자면 포르노 아니냐는 반응이었을 것 같다.
이제 화가들은 서민층으로 눈을 돌려 실제의 생활을 그린다.
드가는 세탁부 같은 노동계층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인상파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아카데미에 속하지 못하고 끝까지 인상파와 함께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대상의 선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같은 그림은 처연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이제 화가들은 삶의 불운하고 어두운 곳까지 주목한다.
인상파가 끝나는 시점에서 이제 회화는 형태의 구현을 거부하고 추상화의 길로 들어선다.
솔직히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감상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물론 어떤 그림들은 정말 느낌이 확 올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하다.
현대 미술이라고 해서 다 어렵고 난해한 것은 아니고 아무리 형태가 없더라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감동적인 그림들이 있다.
이를테면 피카소의 해변을 달리는 여인들, 같은 그림은 그 원색적인 색체와 대담한 구도 때문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현대 미술은 제대로 느끼기가 힘들다.
그래서 딱 오르세 미술관까지가 좋은 것 같다.
퐁피두 센터부터는 머리가 좀 아파온다.
언젠가는 꼭 미술관 순례를 하리라 다짐해 보지만 솔직히 언제 시간이 날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대영박물관전이 개최됐을 때, 유홍준이었던가?
그 사람이 기고한 글을 읽었는데 한 번 가서 다 봤다고 할 수 없고 수 차례 방문해야 진가를 안다는 내용을 보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위대한 인류 문화의 정수가 한 번 쓱 본다고 해서 끝나는 건 절대 아닐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자주 미술관을 방문하고 싶다.
유럽이 너무 멀리 있다는 사실이 늘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