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전사들 - 아시리아 전사부터 게릴라까지
정토웅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상당히 재밌게 읽었다.
전쟁사를 전공한 교수답게 전문적인 분석이나 정확한 해설 등이 돋보인다.
솔직히 야사 위주의 가벼운 이야깃거리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충분히 읽어 볼 만 하다.
250 페이지의 가벼운 책이라 읽기도 수월했다.
사실 뒷쪽의 가쉽거리 같은 부분, 이를테면 종군기자라든가 게릴라 등은 썩 재밌지는 않았다.
그 정도 기사거리는 신문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말하자면 성의없게 쓴 글은 싫다.
그래서 신문기자들이 낸 책은 잘 안 읽는다.
단지 자기가 알고 있는 수준의 글, 신문 한 꼭지 쓰는 기분으로 책 내는 식의 글은, 무성의해서 싫다.
앞쪽의 전쟁사 부분은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잘 모르고 있었던 아시리아나 훈족의 간략한 역사 소개는 무척 유익했다.
아시리아가 무려 700년 동안이나 중동 지방을 다스렸다니, 깜짝 놀랠 일이다.
그저 역사시간에 잠깐 훑고 지나갔을 뿐인데 말이다.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어떤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생각난다.
무슨 민족 어쩌고 하는 싸이트였는데 광개토대왕이 정복한 영토의 지도를 올려 놓으면서 하는 말이 (그 지 도에 따르면 중원을 한참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해 있었다) 알렉산더 보다 더 많은 곳을 지배했으니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민족주의가 얼마나 유치하고 편견이 강한 이데올로기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글이었다.
알렉산더의 위대함은 정복한 영토 뿐만 아니라, 동서양 문화를 융합시켰다는 점에도 찾을 수 있다.
문화의 교류야 말로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나도 알렉산더처럼 금욕주의를 추구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이상만 금욕주의자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알렉산더는 평소 성생활도 거의 하지 않았고 절제와 부지런함을 모토로 삼았다고 한다.
술도 잘 안 마시고 잠도 거의 안 자고 끊임없이 책을 읽고 심지어 밤에도 혼자 잤다고 한다!
역시 위대한 업적을 이루려면 뭔가 희생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칭기즈 칸 역시 매우 검소하고 소박했다고 한다.
이래서 영웅들의 일생은 평범한 이들을 감동시키고 설레게 한다.

그리스의 밀집대형이나 로마군단의 전술 소개 등도 재밌었다.
활을 쏘는 중국인들과는 달리, 그리스인들은 직접 부딪치는 육탄전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러니 각 병사들의 용맹함이 무척 중요했을 것 같다.
멀리서 활을 쏘는 행위를 명예롭지 못하다고 여겼다니, 각 문화권의 특성도 흥미롭다.
그러고 보면 총 쏘는 현대전 보다, 어쩌면 고대 전투가 훨씬 잔인했을지도 모르겠다.
직접 부딪쳐서 칼로 팔이나 다리 등을 베고 창으로 찔러야 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쟁이 얼마나 큰 국가의 행사였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투쟁, 즉 전쟁을 통해 발전해 온 것 같기도 하다.
아리시아 왕에게는 청동기를 쥔 훌륭한 공병대가 있어 어디를 가더라도 군사가 지나갈 수 있을만큼 평평하 게 길을 닦아 줬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는 그냥 발전한 게 아니다.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구절을 발견하면, 조상들의 지혜와 번뜩이는 재치에 깜짝 놀랜다.
어쩌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고대인들이 현대인보다 훨씬 위대한지도 모르겠다.
말을 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등자나 안장이 발명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 처음에는 기마병 보다 전차가 많았다고 한다.
직접 말을 타고 활이나 창을 쓰기가 힘드니까, 단지 말은 전차를 끄는 용도로만 썼다고 한다.
특히 말이 겁을 먹고 진격하지 않으면 낭패이기 때문에 생각만큼 기마병이 유용하게 쓰이지는 않았던 것 같 다.
언제나 주력부대는 보병이고, 기병은 순간적으로 적을 교란시키고 겁을 집어먹게 하는데 쓰였던 모양이다.
몽골족 같은 유목민이 강력했던 까닭도 남들은 충격용으로 활용했던 기병을, 몽골족은 주력부대로 썼기 때 문에 침략 속도 등이 엄청났다.
하루에 200km 을 진격했다고 하니, 바람처럼 와서 쓸고 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재밌게 읽은 책이라 관련된 전쟁사를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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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일기 - 남극의 비극적 영웅, 로버트 팔콘 스콧
로버트 팔콘 스콧 지음, 박미경 편역 / 세상을여는창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처음에 실린 스콧의 편지 때문에 창피하게도 도서관에서 펑펑 울었다.
뒤에 나오는 탐험 일지는 솔직히 지루했지만 앞부분의 편지는 정말 가슴을 울린다.
스콧이 죽기 직전 대원들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만 읽어도 스콧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남자였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위대한" 영웅은 못 됐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비극적인 "영웅" 임은 분명하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지" 못했다 할지라도, 즉 그가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의 삶은 인간의 위대함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이겨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 고통 가운데서도 신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더 큰 신의 뜻이 있을 거라고 믿는 그 신앙심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 마땅하다.
거리에서 하나님을 외치고 교회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하는 사람의 신앙이 더 큰가, 아니면 자신의 분야에서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이의 신앙이 더 큰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께 의존하고 자신의 실패와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 스콧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훈훈한 사랑을 남긴다.

죽기 전, 자신에게 의존했던 아내와 아이가 의지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을 가장 가슴아파 했던 스콧은, 주변 사람들과 영국 사회에 아내와 아이를 돌봐 달라고 호소한다.
자신의 죽음은 부끄럽지도 않고 후회도 없으나, 자신이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의지하고 살았던 이들이 버려진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계백 장군이 출정 전 가족의 목을 벤 그 심정이 갑자기 이해되는 기분이다.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자기가 덜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죽기 전 가장의 가장 큰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스콧은 가족을 죽이지는 못하고 대신 영국 사회에 간절히 호소한다.
우리나라처럼 부강한 나라라면 내 가족을 돌봐 줄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한다.
스콧이 사후에라도 명예를 얻고 그의 탐험정신이 온 영국인에게 귀감이 될 만 하다고 판단됐다면 분명히 그의 가족들은 사회의 보호를 받았으리라.
실패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 준 전형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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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
김영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보는 미술관 책이다.
작가의 사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문제는 글솜씨 보다 사진 솜씨가 더 좋다는 데 있다.
확실히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작품을 평하는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문장력이 썩 좋은 작가는 아니다.
지난 번에 읽은 비슷한 컨셉의 책,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가 문장력 면에서는 더 낫다.
하여튼 진부한 주제 같은데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오르세와 루브르는 여행가들의 영원한 꿈인 것 같다.
마로니에 북스에서 나온 미술관 시리즈는, 외국 책을 번역한 것이라 그런지, 딱딱할 뿐더러, 미술관을 주제로 한 것에 비해 미술관 자체의 내용은 너무 적어 지루하게 읽었는데 이 책은 그런대로 읽을 만 하다.
한 권 들고 여행을 떠나도 될 것 같다.
나라면 이런 책을 기획해 보고 싶다.
정말로 그 책 한 권만 가지고 있으면 제대로 미술관을 탐방할 수 있는 그런, 내용 빵빵한 안내서 말이다.
배낭 여행자들이 론리 플래닛을 최고의 여행서로 삼듯, 미술관 순례에도 빠지지 않는 확실한 안내서 같은 책이 나오면 좋겠다.
단순히 미술관에 진열된 그림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조언, 이를테면 루브르 미술관 완전탐방 3일 코스, 이런 식으로 세부적인 계획까지 제시한 책이 나오면 좋겠다.
사실 어느 여행지에 뭐가 있고 숙소는 어디가 좋고, 이런 건 부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그런 건 좀 비싸게 사도 좋고 좀 나쁜데서 자도 좋은데, 진짜 중요한 것, 이를테면 여행의 내용, 뭘 얼마나 제대로 봤는지,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이런 게 정말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유럽 여행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미술관 순례 아닌가?
그런데도 정작 미술관 관람에 대한 책은 거의 없고 숙소 싸게 구하는 법, 이런 것들만 판치는 것 같아 많이 아쉽다.

항상 헷갈렸던 게 바로 조토와 치마부에 같은 르네상스 초기 화가들이다.
이름도 생소하고 어느 시대 사람인지 늘 아리송했는데 이제 좀 감이 잡힌다.
반복적으로 여러 책을 보다 보니, 이들이 바로 중세의 문을 닫고 르네상스를 시작한 인물들이라는 걸 확실히 인지하게 됐다.
조토의 스승은 치마부에로써, 보통 치마부에를 중세 마지막 화가로, 조토를 르네상스 시작으로 본다고 한다.
확실히 중세 그림은 평면적이고 엄숙하다.
나중에 인상파들이 등장하면서 일본의 채색판화인 우키요에와 비슷한 느낌의 강렬한 평면적 그림이 등장하는데, 중세 그림의 평면성과는 또다른 느낌 같다.
중세의 평면화는 엄숙하고 우울한 느낌인데 비해, 인상파들의 평면화는, 강렬하고 밝고 감성이 넘쳐 흐른다.
특히 고흐의 그림은, 물감을 수차례 덧발라 놓은 것 같은 두터운 붓칠이 인쇄된 종이에서조차 확실하게 느껴진다.
나는 고흐 그림을 보면 너무 강렬한 나머지 가슴이 북받쳐 올라 울컥 하는 심정이 된다.
지난 번 내셔널 갤러리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처음 봤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을 했는데, 이번에도 이 책에서 "오베르 교회" 라는 그림을 봤는데 정말 눈시울이 붉어졌다.
단순히 슬프고 감동적인 그런 느낌이 아니라 뭐랄까, 그림이 어떤 형태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색감과 붓터치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그런 마력이 있다고 할까?
하여튼 고흐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대단한 화가임이 분명하다.
왜 이런 강렬한 그림들이 당대에는 팔리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고흐의 그림을 수집한 화상들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들은 인물들이 늘 부드럽게 웃고 있다.
이 사람은 따뜻한 느낌을 표현하는데 대단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떤 것 같다.
르느와르의 단순히 실내와 같은, 그런 종류의 따뜻함이 아니라,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부드러움이 인물의 얼굴선에 살아 있다.
라파엘로의 그림도 정교하고 치밀하다는 점에서 마음을 끈다.
라파엘로가 죽은 1520년을 르네상스 최절정기로 삼는다는 것만 봐도, 그가 르네상스에 미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끝난 후 장식적인 그림, 기괴한 느낌의 과장된 그림이 대세였는데 이 때의 화풍을 마니에리스모라고 칭한다.
바로크로 넘어가기 전 과도기 단계를 뜻하는 말로, 항상 애매한 느낌이었던 화가 틴토레토와 티치아노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 하면, 아 그 사람, 하고 금방 떠오르는데 틴토레토나 티치아노는, 분명한 느낌으로 다가오질 않고 모호했다.
마치 조토나 치마부에처럼 말이다.
그만큼 덜 알려져서 그럴 것이다.
티치아노의 제자가 바로 틴토레토였고 이들은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바로크로 넘어가면 명암 대비 효과의 대가인 카리바조와 카넬리가 등장한다.
카라바조는 성화 속의 인물들을 성스럽게 그리는 대신, 실제 서민층의 얼굴을 대입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살인을 저지르고 쫒겨다녔다는 것만 봐도 꽤나 시끌벅적한 성격이었을 것 같다.
하여튼 이 사람의 그 강렬한 명암대비, 이른바 키아로스쿠로 기법은 가히 빛의 대가라는 명칭을 얻을 만 하다.
반면 렘브란트의 그림에 나타나는 빛과 어둠은 보다 성찰적이고 고요하다.
유명한 야경, 이나 자화상 등을 봐도 관조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루벤스는 플랑드르의 바로크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화가다.
루벤스야 말로 라파엘로와 더불어 화가들에게 모범이 되는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사회적 명성과 화가로서의 자긍심, 대우 등 모든 면에서 넘치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나는 루벤스의 그 격렬한 화풍과 화려한 색감을 좋아한다.
특히 그가 표현한 여자들의 풍만한 육체와 피부색이 너무 마음에 든다.
넬로가 죽어가면서 보고 싶어했던 그림, "성모승천" 의 주인이 바로 루벤스 아니던가
개인적으로도 두 아내와 매우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하니, 과연 바람직한 화가의 일생이 아닌가 싶다.
비슷한 시대의 렘브란트와 매우 비교된다.

바로크가 절대 왕정의 보호를 받았다면 로코코는 귀족들의 후원으로 성장한다.
장식적으로 화려한 그림, 와토 등을 생각하면 금방 연상이 된다.
키레라 섬의 순례 같은 그림이야 말로 로코코를 대표하는 그림 같다.
로코코의 지나친 장식성에 반발해 생긴 화풍이 신고전주의다.
르네상스 시대의 완벽한 조형미를 미덕으로 삼는 이 화풍은 다비드나, 그 제자 앵그르 등으로 대표된다.
앵그르가 표현한 여성의 육체는 정말 대리석 같다.
나중에 마네가 올랭피아 등을 그렸을 때 사람들이 왜 화를 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너무나 선명하게 대비된다.
사진기가 등장하기 전 그림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화가다.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 같은 그림도 워낙에 대작이고 생생해 기억에 남는다.
꼭 실제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이 그림을 위해 시체 안치소까지 찾았다고 하니 과연 신고전주의자의 대가답다.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만개한 후 드디어 그 유명한 인상파가 등장한다.
일본의 채색판화인 우키요에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그림의 평면성을 주장한다.
지금까지 그림이란 실제처럼 그리는 것, 완벽한 조형미를 뽐내는 이상적인 인물을 창시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이지 않았던가?
부그르 등이 그린 비너스를 보라, 얼마나 완벽하게 아름다운가?
그런 이상적인 육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그리던 아카데미 화가들에게 도전장을 낸 이 어처구니 없는 화가 집단의 등장이,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마네의 올랭피아나 풀밭 위의 점심식사 등을 보면 너무나 평범한 나부상을 보여준다.
가히 외설 논란이 일었을 만 하다.
오늘날로 보자면 포르노 아니냐는 반응이었을 것 같다.
이제 화가들은 서민층으로 눈을 돌려 실제의 생활을 그린다.
드가는 세탁부 같은 노동계층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인상파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아카데미에 속하지  못하고 끝까지 인상파와 함께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대상의 선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같은 그림은 처연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이제 화가들은 삶의 불운하고 어두운 곳까지 주목한다.

인상파가 끝나는 시점에서 이제 회화는 형태의 구현을 거부하고 추상화의 길로 들어선다.
솔직히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감상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물론 어떤 그림들은 정말 느낌이 확 올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하다.
현대 미술이라고 해서 다 어렵고 난해한 것은 아니고 아무리 형태가 없더라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감동적인 그림들이 있다.
이를테면 피카소의 해변을 달리는 여인들, 같은 그림은 그 원색적인 색체와 대담한 구도 때문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현대 미술은 제대로 느끼기가 힘들다.
그래서 딱 오르세 미술관까지가 좋은 것 같다.
퐁피두 센터부터는 머리가 좀 아파온다.

언젠가는 꼭 미술관 순례를 하리라 다짐해 보지만 솔직히 언제 시간이 날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대영박물관전이 개최됐을 때, 유홍준이었던가?
그 사람이 기고한 글을 읽었는데 한 번 가서 다 봤다고 할 수 없고 수 차례 방문해야 진가를 안다는 내용을 보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위대한 인류 문화의 정수가 한 번 쓱 본다고 해서 끝나는 건 절대 아닐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자주 미술관을 방문하고 싶다.
유럽이 너무 멀리 있다는 사실이 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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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패트런 - 명화로 읽는 미술 후원의 역사
다카시나 슈지 지음, 신미원 옮김 / 눌와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다카시나 슈지의 책은, "명화를 보는 눈" 을 먼저 읽었다.
꽤 재밌게 읽은 책이라 이번에도 기대를 했는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렇게 비교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는데, 이 사람은 우리나라의 이주헌씨처럼 글을 잘 쓴다.
어떤 책을 내도 기본적으로 읽을 만 하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사실 제목만 가지고는 흥미 위주의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 프랑스까지 가서 공부하고 온 미술관장이라 그런지 전문가적인 냄새가 확 난다.
성실하고 꼼꼼하며 미술 비평도 수준 있다.
특히 한국어판이 나오면서 추가한 많은 칼라 도판 덕분에 이해가 훨씬 쉬웠다.
역자 후기에서 그림을 칼라로 실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겠다.
199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라 벌써 10여년이 지났는데도 감성은 늙지 않고 읽어 볼 만 하다.
시대를 넘어서 출간되는 책은 확실히 생명력이 있다.

250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이 말해 주듯, 내용 자체는 아주 평이하다.
일반 독자들도 지하철 안에서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수준이다.
그림이 워낙 많이 실려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고 보면 서양 예술의 전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도 훨씬 깊고 탄탄한 것 같다.
르레상스가 시작되는 15세기에 이미 은행가조합이 생기고, 직물조합이 생기며, 직업적인 화가들이 등장한다.
자본주의야 말로 예술 발전의 원동력임을 새삼 확인했다.
문화란 잉여생산물이 의식주 이외의 것, 이를테면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쓸데없는 것들에 투자할 정도로 풍부해질 때 발생하는 것 같다.
결국 그런 이유로 계급 격차는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면, 예술 같은 사치스러운 창조물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
결국 먹고 사는 데 아무 쓸모도 없는 그림이나 조각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 산업혁명 이전의 평범한 백성들은 굶어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또 그런 희생 아래 오늘날 위대한 인류 문화의 정수들이 완성된 게 아니겠는가?

율리우스 2세는 라파엘로의 그림으로 익숙하다.
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화를 그리게 하고, 라파엘로에게 그 유명한 아카데미아 벽화를 그리게 만든다.
르네상스 최고의 후원자였던 셈이다.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까지 거침없이 팔았다고 하니, 확실히 한 인간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일 수 밖에 없다.
라파엘로는 단순한 화가가 아닌 궁정인으로서 대접받았다고 한다.
사실 나는, 라파엘로 같은 화풍이 마음에 든다.
화려하고 살아 움직일 것처럼 정교한 그런 고전주의 작품이 좋다.
라파엘로는 요즘으로 치자면 사교계의 명사였던 것 같다.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작위적이라고 하여 라파엘 이전의 미술로 돌아가자는 라파엘 전파 같은 화파도 생겨났지만, 오히려 그 말이야 말로, 라파엘이라는 화가가 미술사에 얼마나 큰 획을 그었는지 새삼 느끼게 해 준다.

프랑수아 1세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관계라든가, 카를 5세와 티치아노, 혹은 펠리페 4세와 벨라스케스의 관계 등은 예술가와 패트런의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현대로 올수록 이런 개인적인 후원가는 사라지고, 대중이 패트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물론 록펠러 같은 재벌들이 미술품을 사들이는 큰손 노릇을 하긴 하지만, 근세처럼 개인적으로 그림을 부탁하는 형식은 아니다.
그래서 구입자와 창조자를 연결시키는 화상이라는 직업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서양 미술의 발전은 자본주의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현대 국가의 예술 후원 정책으로는, 퍼센트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건물을 세울 때 총 건축비의 1%를 예술품 구입비로 책정하는 것이다.
획기적인 지원책 같은데, 이것도 나름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90% 이상의 지원을 몇몇 유명 예술가들이 독식하고,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양식보다는, 기존의 틀에 안주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하여튼 서구 선진국의 예술 후원 정책은 대단하다.
일본에서도 이미 시행 중이라는데 한국의 실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퍼블릭 아트라고 해서, 공공미술이 중요시 되고 있다.
확실히 벽화 등으로 장식된 지하철이나 건물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아진다.
후대 사람들도 우리 세대의 공공미술을 미술사의 흐름으로 평가하게 될까?

중세에는 귀족이나 왕 같은 상류 계층만 즐겼던 미술을, 이제는 누구든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눈이 호사를 한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서 문제가 될 정도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예술의 발전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니, 두터운 패트런 확보도 예술 발전에 매우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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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조선의 태평을 누리다 - 성군(聖君), 성종의 리더십에 대한 최초의 재평가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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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씨라면, 유시민이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 청바지를 입고 의회에서 선서를 한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TV 토론의 패널로 기억한다.
그 때 어찌나 엉성한 논리로 유시민에게 깨졌던지, 나중에 그가 이 군주 열전이라는 책을 냈을 때 도무지 신뢰가 안 가고, 그렇고 그런 뻔한 책이겠지 싶어 한동안 눈길도 안 줬다.
저널리스트라는 한계, 즉 비전문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꼼꼼하게 사료 분석을 하고 성실하게 썼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도 그가 퍽 성실한 저자였음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전체를 조망하는 역사적 안목이 아마추어적임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원래가 신문기자들이 쓰는 책은 전문성 면에서 학자들에게 한 수 아래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이 책을 골라 든 이유는, 성종 때가 워낙 태평성대여서 그런지 폐비 사건 외에는 언급된 책이 없어서 아쉬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종 시대에 관심을 갖고 조명해 준 책이라는 점에서 반가웠다.
그런 의미로 장희빈 사건 외에는 따로 언급되지 않는 숙종 시대도, 이한우씨의 책으로 읽어볼까 싶다.

세조에 대한 평가는, 어린 임금이 즉위한 후 어지러웠던 정국을 바로잡아 안정을 이뤘다는 쪽과, 오히려 공신을 남발해 특권층을 형성했다는 부정적인 쪽이 공존하는 것 같다.
사육신도 충신이고 세조도 구국의 영웅이라는 식의 둘 다 좋은 쪽으로 미화되는 게 요즘의 평가 같기도 하다.
박현모나, 이 책의 저자는 모두 단종의 즉위가 정국을 위태롭게 만들었기 때문에, 세조가 평화와 안정을 가져왔다 쪽이다.
심지어 세종이, 아버지 태종처럼 전격적으로 세자를 교체했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임용한씨 입장을 지지한다.
문종이 왕위에 오른 것은 40이 거의 다 돼서였다.
그는 오히려 성종보다도 더 오래 살았다.
아버지 세종 대에 대리청정을 한 것만도 십여년에 이른다.
요컨대, 아버지 세종이 50이 넘어서까지 재위했기 때문에, 즉 당시 조선 왕의 평균 수명보다 훨씬 오래 살았기 때문에 문종의 즉위가 늦어졌을 뿐이다.
문종이 병약했다고 하지만 그는 조선왕의 평균 수명에 비춰 볼 때 절대 빨리 죽은 게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어린 세자를 지켜 줄 왕비나 세자빈 가문, 혹은 대비 등이 없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세종의 판단 미스였던 것 같다.
너무 도덕적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세자빈의 가문이 너무 한미해서 빈궁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방술을 쓴다는 모호한 이유로 첫번째 세자빈 김씨를 쫒아낸 것이나, 동성애를 한다고 해서 두번째 세자빈 봉씨를 쫒아낸 것 등은, 도덕주의자인 세종으로서는 왕실의 지엄함을 보이기 위해 당연한 것이었겠으나, 결국 그런 세종의 지나치게 결벽증적 처사가 단종의 죽음을 불렀다고 생각한다.
임용한씨의 평대로, 문종은 아버지 세종의 정치철학을 잘 이해했던 학자 군주였고, 세조의 계유정난으로 인해 엄청난 특권층이 양산됐다고 생각한다.
세종은 비단 문종이 큰 아들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를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못마땅한 점은, 예종의 독살설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게, 저자의 지적대로 예종은 정희왕후의 친아들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이 갔더라면 최고 권력을 쥐고 있던 어머니 정희대비가 유야무야 넘어갔겠는가?
저자는 이 점을 지적하면서 거기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고 바로 독살 가능성이 있다고만 주장한다.
한명회 등이 권력을 잡기 위해 정희왕후와 손잡고 독살을 주도했다는 식으로 마치 드라마 같은 어설픈 논리를 편다.
형이었던 의경세자도 마찬가지지만, 이 집안 아들들의 건강이 썩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둘 다 20대의 새파란 나이에 죽지 않았던가?
아프다는 기록이 없었다는 이유로, 즉 급사했다고 해서 독살로 모는 것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이덕일씨 책이 많이 팔리면서 생긴 폐단 같기도 한데, 하여튼 지나친 추측은 위험하다.
나는 독살설의 제 1순위로 지목되는 정조 역시, 박현모씨처럼 과로사 했다고 본다.

책의 장점을 들자면 꼼꼼하게 분석한 자료의 성실함이다.
특히 가계도나 혼맥 등을 보면 당시 집권층의 중혼이 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저기 겹사돈이 되고 왕실과 이중 삼중으로 얽혀 있다.
역시 혼인은 세력 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태종의 강력한 외척 숙청은 참으로 대단하다.
공신층을 양산해 내고 친인척을 중요하게 기용한 세조에 비해, 태종은 왕권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모조리 없애 버린다.
조선 왕조 최고의 왕권을 지녔던 인물이 아닌가 싶다.
정희왕후는 역사서에서도 그렇고 드라마에서도 권력에 관심이 없는, 점잖은 인물로 묘사되는데, 인수대비 보다 오히려 훨씬 더 많은 권력을 휘둘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특별하게 치부를 하고 문정왕후처럼 후대의 비난을 샀던 건 아니지만, 하여튼 오빠나 동생 등이 대비의 위세를 업고 요직에 오른 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권력남용이나 부정부패도 정도껏 해야 욕을 안 먹는다.
윤임이나 윤원형 등의 부패는 정도가 너무 심해서 역사에 길이 간신으로 남는 것 같다.

한자 공부를 많이 했다.
요즘 안 쓰는 단어도 많아서 약간 어렵기도 했는데, 전자사전이 있어서 이것저것 많이 찾아봤다.
사극에 가끔 등장하는 인물들을 만난 것도 반가웠다.
문득 드는 생각이, 요즘 방영하는 왕과 나, 의 저자는 이 책을 참고했지 않나 싶다.
보는 관점이 비슷하고 에피소드 인용한 것도 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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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ngkiller 2007-12-25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 이한우 논설...그래보여도 아카데미즘에 대한 애정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죠.^^ 제목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사람 이래저래 인문학에 대한 집필활동을 제법 성실하게 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 퀄리티를 제법 인정받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래도 극우파 진영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실제 토론회에서 제대로 된 상대 만나면 왕창 깨져버리죠.ㅎㅎ 이사람도 처음엔 제법 생각있는 사람으로 알려졌었는데...어느 순간 방씨일가의 세뇌술에 놀아나버리고 말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