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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그림으로 읽는 세상 '근대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아주 인상깊게 본 책이다
작가가 비교적 글을 잘 쓰는 사람 같다
미학론이라고 하면 진중권이 쓴 책 밖에 안 읽어 봤는데, 다른 사람의 책을 보니까 또 새로운 기분이 든다
진중권만큼 화려한 말발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찬찬하게 그림을 뜯어 보는 맛이 있다
이주헌씨 같은 작가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한젬마와 같은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왜 이런 좋은 책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는 걸까?
인상파는 너무 유명한 나머지 이제는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다소는 지루하다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예요, 했을 때 반 고흐라고 답하기가 좀 미적거려지듯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미술의 장을 연 가장 중요하고 충격적인 화파였음은 분명하다
어찌보면 혁명적인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저자는 프랑스의 인상파와 영국의 라파엘전파를 비교해서 설명한다
사실 라파엘전파의 그림은 모네나 마네, 피사로 등의 그림과는 달리 마음에 확 와 닿지가 않는다
터너의 증기 기관차 같은 그림은 물론 가슴을 아리는 감동이 있지만, 밀레이 같은 화가들의 영국 그림은, 꼭 잘 그려진 이발소 그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키치 같다고 해야 할까?
세련된 맛이 부족하고 너무 똑같이 베꼈다는 느낌을 준다
취향의 차이일 수 있는데, 하여튼 나는 인상파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
인상파가 중산층의 쾌락을 주제로 여러가지 혁신적인 기법을 시도한데 반해, 라파엘전파는 근대 이전의 중세나 기독교적 소재에서 이상화된 자연을 추구했다
기법 보다는 주제에 집중한 셈이다
러스킨은 자연을 이상화한 그림을 찬양했다
저자는 이데올로기가 예술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순수 대 참여 논쟁 따위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서정주의 친일 경력은 시와 따로 떼어져 평가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 자체가 모순이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피사로가 공화주의자였던 데 비해, 르누아르는 철저한 왕당파였다
예술가의 인격이나 사상을 예술과 떨어뜨려 놓고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얘기라는 말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상이 나쁘다고 아예 매도해 버리려는 일부 민족주의 진영의 공격은 옳은 건지 모르겠다
서정주가 현대사에 너무 밀접하게 연관된 이라 논쟁이 많은 것인가?
대패질 하는 남자들이나 노젓는 그림 등 주로 남성들의 힘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온 카유보트 역시 전형적인 남성주의자 혹은 철저하게 세속적이었다고 한다
사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예술가가 철학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 그리고 그 철학이나 가치관이 예술에 반영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하여튼 순수와 참여 등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마네야 원래 좋아하는 화가였고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화가가 바로 모네와 피사로다
모네는 수련 그림으로 유명한데 나는 그 수련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찬찬히 그의 그림을 살펴보니, 내 마음에 딱 드는, 그러니까 상상력과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직접적이고 평면적이고 뚜렷하게 대상을 표현한 마네와는 달리 (나는 그 정확한 표현, 강렬한 느낌이 좋다, 마치 고흐처럼!) 대상을 뚜렷히 표현하지 않고 색체나 명암 등으로 사물을 스치듯이 느낌으로 표현한 그 방식이 마음에 든다
마네와 모네는 이름만 비슷하지 스타일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피사로는 인상파 화가 중에서 유명세가 떨어지는 사람이라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내 스타일의 그림이 많았다
돈이 많다면 이런 느낌의 그림은 사서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인상파나 라파엘전파 같은 화파가 갖는 역사적 의의, 혹은 미학론 같은 건 잘 모르겠다
그냥 흥미삼아 읽는 것이고 아직까지는 나에게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그림이 좋다
마치 좋은 음악을 들으면 저절로 신이 나듯, 좋은 그림을 보면 나도 모르게 흥이 난다
다시 한 번 유럽으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