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비실록 - 숨겨진 절반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생각보다 알찬 내용에 다소 놀래면서 읽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일단 사료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야사 위주로 흐를 위험이 있어 경계하는 편인데, 저자는 비교적 꼼꼼하게 실록을 분석해 무난한 추론을 펼친다
비약이 심하지 않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의 왕비라면 이른바 나라의 어머니인데 왜 이렇게 정사 기록이 부족한지 모르겠다
실록이나 승정원 일기처럼 왕비들의 일생을 기술한 역사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사극이 궁중 여인들의 암투 따위로 물들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아마도 조선 시대는 여자의 이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왕비의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어렸을 때는 아명으로 불리다가 시집을 가면 그 때부터는 누구 엄마, 누구 며느리 등으로 이름이 실생활에서 불려질 기회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이름을 중시 여기고 신성시 하다 보니 감히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고 호나 자 등을 따로 붙인 관습을 생각해 보면, 조선 사회에서 이름없는 여성들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조선의 모든 왕비를 다 그리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비교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일곱 명의 왕비로 국한한 점이, 책의 내용을 보다 풍성하게 해 준다
여기 나온 왕비들은 사극으로도 많이 만들어졌고 그만큼 파란의 세월을 산 인물들이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나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처럼 비교적 평탄하게 삶을 보낸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쉽기는 하다
워낙 기록이 없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새로운 사실들이 발굴되길 기대해 본다

몇 가지 기억에 남을 만한 이들을 언급해 보자면, 먼저 명성황후 민씨의 가계다
한미한 집안의 고아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족보를 열어 보니 인현왕후의 직계 자손이었다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은,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5대 종손이라고 한다
드라마에서 민비의 어머니 이씨 부인을, 감고당 마님이라고 부르던데, 바로 그 감고당이 인현왕후가 궁에서 쫓겨난 기간 동안 머물렀던 가옥이라고 하니, 과연 보통 집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민유중의 큰아들 민진후가 노론의 극렬 강경파이다 보니 아마도 이 집안은 대대로 노론 집안이었을 것이다
세도 정치가 시작된 후 안동 김씨에게 밀려 노론조차 설 자리가 없었던지라 이들은 민유중의 선산이 있는 여주에 머무르다가 민치록이 죽은 후 종가가 있는 안국동 집, 즉 감고당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민치록의 양자가 민승호인데 이 사람이 또 대원군의 처남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민승호의 친누나가 바로 대원군 부인이었던 것이다
대원군은 결국 처가쪽 집안 사람을 왕비로 앉힌 것이다
의의로 민비와 고종은 사이가 좋았던 모양으로 살아남은 자식은 순종 뿐이지만 그 전에도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유산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고종을 쥐고 흔든 게 민비였던 걸 보면 꽤나 당찬 성격이었을 것 같다
비극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망국의 책임은 분명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궁궐 경비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왕비가 일개 낭인들에게 칼맞아 죽었을지 참 한숨만 나온다

정희왕후와 소혜왕후 부분도 흥미로웠다
특히 소혜왕후의 아버지 한확이라는 사람의 집안 내력이 재밌었다
워낙에 출중한 인물을 자랑하는 집안이라, 한확의 두 누이는 명나라 영락제와 선덕제의 후궁이 됐다고 한다
또 그녀들을 수행한 한확 역시 빼어난 외모 때문에 명나라 황제의 사랑을 듬뿍 받아 벼슬까지 제수받았다고 하니 과연 보통 인물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런 아버지와 고모들을 둔 인수대비 역시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인물 얘기를 하자면 고려사에 뛰어난 미인이었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원경왕후의 이모였다
한 이모는 원나라 황제의 후궁이 되기도 해서 원경왕후의 외가는 부원세력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하니, 과연 왕비들은 집안 뿐 아니라 인물들도 보통 이상이었을 것 같다
정희왕후는 남편 세조와 동지적인 관계였을 것 같다
쿠데타를 일으킬 때도 갑옷을 준비해 줄 정도로 당찬 성격이었던 그녀는, 과연 남편 사후에도 최초의 수렴청정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정순왕후나 순원왕후처럼 세도정치의 오명을 남기지 않은 걸 보면 비교적 무난하게 욕심 부리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일처리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미지가 넉넉해 보인다
세조는 왕이 되기 전 박팽년의 딸 근빈 박씨를 소실로 맞아 아들을 보았고, 그 외 노비 출신 첩이 있었으나 정작 왕이 된 후에는 후궁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기록을 보면 꽤나 여색을 밝혔던 것 같은데 왕이 된 후 공식적인 후궁이 없었던 걸 보면 비록 여자 관계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겠으나 왕비 윤씨를 꽤나 존중했던 건 사실인 듯 하다

다소 놀라운 것은, 왕비 폐출이 생각보다 쉬웠다는 점이다
세종이 첫번째 며느리 휘빈 김씨를 폐출시킨 것은, 단순히 비방을 일삼았다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서였다
다음 며느리인 순빈 봉씨야 동성애를 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세자의 사랑을 받는 여인의 신발을 태웠다고 해서 한 나라의 세자빈을 쫓아낸다는 건 황당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생각만큼 왕비의 자리가 탄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즉 친정 집안이 든든하게 뒤를 봐 주지 않는다면 사소한 잘못 가지고도 쉽게 쫓겨 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휘빈 김씨야 아기가 없으니 방패막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연산군의 어머니는 또 어떤가?
떡 하니 원자까지 낳아준 윤씨를, 정희왕후와 소혜왕후는 출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즉 결혼식을 올린지 1년도 안 되서) 사술을 쓴다는 이유로 폐출 논의를 한다
친정인 윤기견의 집안이 하위 관리직이어서 따로 왕비를 방어해 줄 세력이 없었던 것이 결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나마 그녀는 둘째 아들을 낳은지 백일도 안 되서 폐출됐고 그 불행한 아기도 죽고 만다
아들을 둘씩이나 낳은 정비를 단지 질투한다는 이유만으로 쫓아낸 걸 보면, 아이도 낳지 못하는 인현왕후가 쫓겨난 것은 얼핏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인현왕후는 든든한 집안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노론의 중진) 다시 복위할 수 있었고, 이 가엾은 폐비윤씨는 오히려 아들이 왕이 될 거라는 이유로 사사당한다

개인적으로 알고 싶은 왕비로는 안동김씨 60년 세도의 기반을 다진 순조비 순원왕후와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 등이다
사실 순원왕후야 말로 세도정치의 가장 위에 있었던 인물이니 문정왕후나 정순왕후처럼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야 맞는데 의외로 이 사람은 베일에 쌓여 있다
드라마를 만들어도 재밌을텐데 말이다
정조비 효의왕후는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왕비였던 것 같다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지극정성으로 받들었고 순조를 낳은 가순궁 박씨와도 동기처럼 우애있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남편 정조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불임이었다고 한다
너무 반듯하게 일생을 보내서 극적인 요소가 없다 보니 얘깃거리로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꽤나 궁금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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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근대 -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박지향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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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박지향 교수의 책이라면 이미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다
또 지난 번에 봤던 책,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에서도 그의 논문 한 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의 존재는, 바로 그 논문에서 알게 됐다
마음에 드는 학자였고 무엇보다 영국인의 눈에 비친 근대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로워 상당히 기대를 하고 본 책인데 100% 만족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전공 분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영국 역사를 쓴 책에서는 번뜩이는 재치가 빛났는데 한국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풍경은,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비록 일반 대중에게는 다수의 정서이나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청산해야 할 과거 유습이라는 지배가 다수인지라, 학자들이 외치는 민족주의 극복이 참신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자의 타자성 극복 역시 새로울 것은 없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에게 민족주의 정서가 퍼진 것은 겨우 식민지 시대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즉 일본에 대한 대항 논리로써) 과거에는 외세와의 접촉 자체가 없었으니 민족주의라 이름붙일 만한 현상조차 없었을 것이다
즉,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민족주의라고 명명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이전에도 조선인은 일본이나 여진 등에 대한 타민족에게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만 봐도 얼마나 극렬하게 그들을 배척했는지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여전히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겠지만, 근대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일본이란 국가의 저력은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줬다는 자부심 때문에 갖게 되는 우월감 자체가, 사실은 과거부터 실체가 모호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 조상들이 일본을 하수로 여겼던 것만큼, 일본이 조선을 대단하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일본에 대한 우월감은, 그저 막연하게 남을 우습게 보는 유아독존적인 유치한 감정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일본은 조선과는 매우 다른 별개의 문화를 만들어갔고 유교 문화의 공통점이라면, 중국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 과연 조선에 대해 얼마나 문화적으로 고마워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본 지도층이 사생결단을 내고 전력한 결과였다고 보는, 저자의 견해를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당연히 고종을 위시한 왕조 세력가들의 무능함과 부패다
이상하게도 식민지배의 책임은, 을사오적을 비롯한 일부 친일파에게만 국한됐고 정작 조선을 대표하는 당사자, 고종과 민비 등에게는 동정론이 퍼져 있다
마치 고종은 외세와 친일파들에게 휘둘려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불행하게 죽은 가엾은 왕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과연 고종이 그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일까?
만약 그런 식으로 동정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무능함의 표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민비나 아버지 대원군에게도 휘둘렸던 걸 보면 아마도 고종은 난세를 헤쳐나갈 군주감은 못됐던 것 같다
이미 국운이 쇠락해져 누가 왕이 됐더라도 왕조의 멸망은 정해진 수순이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태종이나 세종, 혹은 영조나 정조 등의 군주였다면 그런 식으로 힘 한 번 못 써 보고 식민지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군주로서의 무능함은, 다시 한 번 집중 조명되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따지면 이른바 "조선의 국모"라는 명성황후의 부패상과 정권욕도 보다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외세 침입 때문에, 즉 나쁜 놈들 때문에 착하고 선량한 조국이 멸망했다는 식의 자조론은, 저자의 말마따나 발전지향적인 미래상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
슬픈 아일랜드라는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우리 경제력이 일본을 압도할 때야 비로소 일본에 대한 근거없는 우월감이나 혹은 열등감을 극복하지 않을까 싶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한국 여행기는 읽은 적이 있다
항상 원자료가 2차적인 해설서 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그것도 원자료를 분석할 수준이 될 때 하는 얘기라는 걸 이번에 느꼈다
물론 "한국과 이웃나라들" 을 재밌게 읽긴 했으나 박지향 교수가 분석한 글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책이 갖는 시대적 의미나, 혹은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윤치호 일기가 국역됐다는 소식을 듣고, 읽어볼까 하고 집어들었다가 그 복잡다단함에 놀라 손을 들었던 생각이 난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은 워낙에 관심이 많은 분야라서 그런지 이덕일씨의 "사도세자의 고백" 보다 100배는 재밌게 읽었지만 나머지 것들은 원자료 보다 해설서가 아직은 더 쉽게 다가온다

일본의 잔학한 식민지 통치는 이 책에서도 영국인의 눈을 통해 확인된다
영국이 간접 지배를 선호했던 데 비해, 일본은 완전 동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억압과 반발이 더 심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가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윤치호 같은 사람은 이왕 식민지라 될 바에야 일본보다는 영국이 낫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간접통치 방식 때문인 것 같다
영국인이 훌륭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박애와 사랑 정신에 가득차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영국은 워낙에 광대한 제국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100% 복속시킬 수는 없었다
여력이 안 됐다는 뜻이다
반면 일본은 한국 하나 밖에 없었으므로 전면적인 동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동화 정책이 심한 억압과 함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너무 당연하다
당시 영국 제국주의 관료들에 따르면, 일본이 동화 정책을 포기하고 간접 지배 쪽으로 돌아선다면, 즉 보다 인도적으로 그들을 지배한다면 한국인은 식민 지배를 유순하게 받아들였을 거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일본의 잔학한 식민 정책은, 당시 같은 편이었던 영국 관리들 마저도 고개를 흔들게 만들만큼 끔찍했다고 하니, 식민지를 살아 낸 조선인들의 분노와 한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구한말 조선인들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점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구한말 사진을 볼 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인데, 대체 왜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도 무표정했다는 말인가?
요즘 눈으로 보자면 상당히 촌스럽기까지 하다
매우 평면적이고 뚱한 느낌을 준다
고위 관리들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난 단지 오래된 사진이라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당시 한국을 방문한 유럽인들도 나처럼 조선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기라는 신식 물건에 너무 긴장해서인가?
아니면 원래 전근대는 개인의 감정이 무시되는 전체주의적인 사회여서인가?
비슷한 시대의 다른 나라 사진들도 좀 구해서 보고 싶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일본인은 보다 화사하고 생기있게 느꼈다고 한다
아무래도 산업화에 성공하고 한창 국력이 물오를 때였으니 유럽인들이 생동감 있게 느꼈을 것이 당연하다
또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일본의 판화를 보면, 꽤나 강렬하게 역동적인 색감을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일본은 유럽인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는 동양 국가였을 것이다

비숍 여사가 식민지 관리였던 커즌과 달리, 젠더라는 측면에서 남성에 비해 소수자였기 때문에 지배적인 타자성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인도의 부왕까지 지낸 커즌의 여행기와, 개인 여행가에 불과했던 비숍의 여행기가 다른 관점이었음은 당연하다
근본적으로는 유럽중심주의 혹은 영국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세밀한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서양을 우상시 하고 따라잡을 목표로 봤던 일본에서는, 젠더보다 인종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비숍 여사는 일본에서 훌륭한 대우를 받는다
반면, 서양을 배척해야 할 오랑캐로 간주했던 조선에서는 (아마도 일반 민중들까지 서양 기술력의 위대한 실체를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인종보다 더 앞선 것이 젠더였다
동방예의지국을 엄청난 자랑거리로 생각하던 당시 양반 계층조차, 비숍 여사의 눈에는 매우 무례하게 느껴졌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에 있다
상대적으로 커즌은 남자였기 때문에 관으로부터 지극한 대접을 받았고 여행시 불편한 점이 있다면 관이나 양반 계층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라는 충고까지 적어 놓는다
그러나 비숍 여사는 관의 협조문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마을을 가든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한다
19세기 조선인의 눈에는, 여자 혼자서 먼 이국땅을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계급적인 부분은 (민족이나 젠더, 직업군,인종 등 모든 신분을 망라해서) 개인이 풀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비숍 여사는 일본에서 단지 유럽인, 특히 영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노력 없이도 현지인들의 호의를 넘치게 받을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할 정도로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
백인이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백인의 특권까지 거부해 버린 것이다
반면 커즌은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비슷한 정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민족주의나 집단적인 대응이 근본적으로는 싫지만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개인은 미약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느낀다
"관용에 대하여" 라는 책에서도 지적한 바대로, 아무리 완벽한 개인의 시대를 외친다고 해도 결국 우리를 규정하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민족이나 젠더, 인종, 종교 등으로 명명될 수 밖에 없고 완벽한 개인의 시대란 어쩌면 영원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비극적인 느낌이 든다
결국 국가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아나키즘 역시 유토피아 같은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가장 발전된 형태의 사회란 국가가 완전히 소멸된 아나키즘의 시대가 아니라, 유럽 연합이나 미 합중국 같은 느슨한 의미의 지역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페미니즘이나 민족주의 역시 나름의 생명력을 끈질기게 유지할 것 같다

300 페이지에 불과한 얇은 책이고 서술도 평이해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관점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근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윤치호 일기를 분석한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이제 김구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 말고도 일제 시대를 살았던 다른 지식인들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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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8-0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밌게 읽었습니다. 책도 재밌을 것 같고요. 전 한국 밖에 있으면서 일본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됩니다. 가까이 있었을 땐 거의 아는게 없었는데 말이죠.
 
전인권이 읽은 사람과 세상 - 전인권 평론집
전인권 지음 / 이학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없게 읽었다
그가 쓴 다른 책들, 박정희 평전이나 남자의 탄생에 비하면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책 같다
인터뷰집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약간의 편견이 가미된 말일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하려면 어느 정도는 인터뷰이를 공격적으로 몰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승호의 인터뷰집을 읽을 때 참 답답했던 게, 그가 인터뷰 하는 대상들이 모두 존경하는(?) 인물들이어서 그런지 마치 학생이 선생님 말 받아 적듯 감탄하면서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저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깊이있는 질문을 하는 것 까진느 좋은데, 인터뷰이에게 완전히 경도되서 얌전한 학생처럼 오롯이 그 말을 100% 받아들이는 자세는, 뭐랄까, 독자로 하여금 답답증을 불러 일으킨다
소설이긴 하지만 "살인자의 건강법" 에서 아멜리 노통브처럼 인터뷰이를 완전히 코너로 몰고 갈 만큼 대담하고 적극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의 저자 전인권은, 지승호보다 한 술 더 떠서 거의 찬양조로 일관한다
채시라는 나도 무척 좋아하는 배우지만 마치 위인 전기라도 쓰는 양 미화시킨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예전에 정혜신의 심은하 예찬론을 보면서도 과연 심은하가 저렇게까지 평가받을 만한 훌륭한 배우인가 하는 점에 의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나름대로 심리 기제 분석이라도 있었는데 전인권의 배우 분석론은 완전히 찬양조다
언젠가 신동아에서 김혜수를 인터뷰 하는 기사가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연예인을 좀 우습게 알던 시절인데, 기자가 어떤 책 즐겨 보냐고 물었더니 김혜수가 신동아도 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기자가 좀 얄궃게 지난 호에 무슨 내용이 인상적이었냐고 묻는 거다
김혜수 답변은 신통찮았던 것 같다
그런 식의 짖궃은 질문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하여튼 좀 비판적으로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게 인터뷰어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집 보다는 아무래도 죽은 후의 평전이 훨씬 더 믿음직스럽다
전인권의 쓴 박정희 평전, 은 참 재밌게 읽은 데 비해, 이번 인터뷰집은 꽤나 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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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소한 일상 -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휴가 가서 읽으려고 고른 책이다 보니, 좀 가벼운 걸로 집어 들었다
역시 너무 가벼워서였을까?
생각만큼 아주 재밌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인간실격" 등으로 유명한 사람이라 수필집도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너무 가볍다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감흥이 별로 없었다
다소 시시한 기분?
프로필에 따르면 그는 삼십 대 중반에 연인과 자살했다는데, 그렇다면 수필 속에 드러나는 1남 2녀의 자녀들은 모두 허구란 말인가?
가난한 가장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던데, 모두 상상속의 일이란 말인가?
궁금한 대목이다
폴 오스터의 경우 혹은 하루키는, 소설 만큼이나 수필도 흥미진진하게 잘 쓰는데, 대체적으로 수필과 소설이 비슷하게 재밌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아직 그의 소설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이 책 때문인지 그다지 끌리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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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7-07-2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혹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나쓰메소세키가 쓴 것 아니었던가요?

marine 2007-07-2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실수했네요

마리미아 2008-12-25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가의 활동연도가 최근이 아니잖아요-_-; 전후 일본이라면 여자라면 고교재학생일 나이면(18~20) 다 시집갔어요. 1남 2녀 다 사실이고 원래 갑부집 아들이였는데 혼자 방탕하게 살고 그래서 가난과 마약 이런거에 찌들었어요 책 제대로 읽으신거 맞으신지..

marine 2008-12-2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이신가요? 뭘 그렇게까지 흥분하시긴...

hondana 2009-01-2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읽어보셨나요? 제가 보이기엔 그의 소설은 읽지 않고 단지 유명한 작가라고 생각하셔셔 기대하고 읽으신 것같은데..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봐도 알수 있듯이, 그의 글은 실제의 곤궁하고, 난잡하고 복잡한 생활(인생)과 달리 '익살'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실격의 경우에도 주인공이 처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다자이는 익살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가볍다 생각하고 읽으시면 단지 허접한 글쟁이의 낙서질일 뿐이겠지만, 조금의 관심이라도 두고 읽는다면 익살과 경박함으로 포장된 문장속에서 그의 고뇌를 읽으실수 있을겁니다. 그게 다자이 문학의 묘미이자, 다자이 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식 웃게 만드는 익살가득한 문장에서 다시한번 생각하게하고 쓴웃음 짓게만드는 글. 본문에 있는 이글을 다시한번 읽어보세요 "나는 슬플 때 도리어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나 스스로는 가장 괜찮은 봉사라고 생각하지만, 남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다자이란 작가도 요즈음은 경박해, 재미만으로 독자를 낚는다, 극히 안이하다고, 나를 경멸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 나쁜 일인가? 점잔 빼고 좀처럼 웃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인가?"

marine 2009-01-22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모든 책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소설가라면 본업인 소설과 부업인 에세이가 글의 수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같은 에세이라고 해서 다 훌륭한 것도 물론 아니구요. 다자이라는 작가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특정 글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나의 소소한 일상>은 다른 성격의 글이기 때문에 각자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임지현.이성시 엮음,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 기획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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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나 극우주의를 싫어하거나 혹은 국가 권력을 최소화시키자는 보편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맛에 맞을 만한 책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매우 편협한 이념이라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자들의 주장과 대체적으로 생각이 비슷했다
민족을 넘어서 보다 보편적인 세계주의를 주장하는 게 요즘의 대세인 것 같지만, 아직도 네이버 댓글 같은 익명의 공간에는 민족주의를 넘어 극우적인 발언들이 판을 친다
이 책에 대한 반론의 글을 보면, 여전히 우리를 지지하는 것은 국민국가인데, 정말 국사의 해체를 주장할 거라면 차라리 민중을 볼모로 잡고 있는 그 국가 자체를 없애는 게 낫겠다고 비아냥 거린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지 않겠나
나 역시 저자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인 발언으로 (국사를 없애야 한다는 식) 오히려 대중의 반감을 사고 있음에 동의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보다 느슨해진 국가 연합, 미국과 같은 합중국 체제, 혹은 유럽 연합 같은 공동체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선 민족주의에 길들여진 국사부터 하나씩 뜯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역시 궁극적으로는 민족주의의 소산이라는 저자의 글에 동의한다
시오니즘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민족주의의 형태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모습이 우리에게로 투영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식민지 문제는 너무나 예민한 주제라 뭐라고 말하기가 참 어렵다
그러나 나는 S씨의 일기와 같은 소시민적인 문헌들이 보다 많이 연구되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글에 소개된 S씨의 일기를 보면,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TV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식민지 시대의 일제 만행이 정작 그 시대를 살아간 일반 민중에게는 일상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또 식민지배 체제라는 사실에 시대극 속의 배우들처럼 분노하지도 않는다
일제의 지배가 정당했다거나, 오히려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식의 차원이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시대의 물결을 선두했던 몇몇 유명인들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가는 삶을 산 대다수의 민중들의 "실제적인" 삶이다
정말 틀에 박힌 듯이 모든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치를 떨고 반독립 투사처럼 행동했을까?
그들의 의식구조 속에는 일제야말로 나라를 빼앗은 철천지 원수고 반드시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굳은 결의로 차 있었을까?
어쩐지 이거야말로 신화 같다
"태평천하" 에 묘사된 윤직원 같은 인물은 그저 풍자나 조롱의 대상으로만 삼았으나, 보다 다양한 인물들에게 카메라를 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거대 담론에 묻혀 버린 소시민들의 일상이나 사고방식에도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영훈 교수의 논문은 찬반이 극렬하게 갈릴 수 있는 다소 위험하고 도발적인 문구들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나는 이 논문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내제적 발전론, 혹은 자본주의의 씨앗이 싹텄다는 식의 주장은, 오히려 서구 이론에 우리 역사를 끼워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주장처럼, 조선 사회는 선물사회였고(가족 공동체주의나 부조, 축의금 같은 제도에서도 보듯이) 국가가 잉여 가치를 걷어간 후 나눠주는 재분배 사회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사유재산이 경제 발전의 중요한 축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질적으로 완연히 달랐다고 생각한다

이효석이 모더니스트였다는 논문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향토 소설인 "메밀꽃 필 무렵" 은 저자의 말마따나 액자에 들어 있는 고향 풍경일 따름이다
정말로 향토 그 자체에 애착을 품고 생활인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장의 탐스러움 때문에 우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서정적인 향토 소설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근대화의 현상이었던 모더니즘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화상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전인권의 인터뷰집을 보면 마지막 황손이라는 이구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황실복원운동에 동의하는 입장인지 모르겠는데, 책을 읽으면서 황손을 예우해야 한다는 의견에 도대체 동의할 수가 없었다
이미 사라져 버린 조선왕조, 그것도 치욕스럽게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만든 생명력 다한 왕조의 후손들을 현대판 귀족처럼 국가가 지원해 줘야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오히려 왕실 문화 전수자로써 문화재적인 측면에서 보존하자면 기꺼이 동의하겠다
박지향의 논문에서도 나온 바지만, 고종이나 순종, 명성황후 등 당시 지배층의 실정이야 말로 명백히 규명되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완용 등 일부 친일파 몇에 의해 과연 조선이 무너졌을까?
국가를 책임지는 사람은, 더구나 전제왕조 체제의 주권자는 명백히 국왕이 아닌가
왜 고종은 어리석은 신하들에 둘러싸여 길을 헤매는 가엾은 국왕이라는 이미지로 보호되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조선왕조 몰락에 명백하게 책임이 있는 명성황후는 말할 것도 없이 성공한 뮤지컬 한 편으로 온 국민에게 추앙받는 국모로 변모했다
드라마와 현실은 엄연히 다른 것이고 역사적 평가야 말로 실로 냉철해야 한다고 믿는다
제국주의의 희생양 식으로 어영부영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의친왕이 독립투사였다는 이미지 역시 보다 사실적으로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읽는 사람에 따라 거부감이 강할 수도 있는, 문제제기가 뚜렷한 책이다
어쨌든 다양성의 존중 측면에서 많은 관점의 글이 나왔으면 좋겠고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도 천편일률적인 희생자적 하소연이나 압제에 대한 저항 식의 당위적인 모습 말고도 진짜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민중들의 다양한 모습이 발굴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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