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사진
페터 슈테판 지음, 이영아 옮김 / 예담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세상을 바꾼 사진들, 제목이 일단 좋다
내가 좋아하는 나귀님의 리뷰를 읽고 고른 책이다
사실 이 분은 나와 취향이 매우 다른지라 (전기나 문학 쪽) 이 분의 리뷰를 읽고 책을 고르게 되면 꽤나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된다
언젠가 읽었던 "재키 스타일" 이나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처럼 이 책 역시 내가 즐겨 읽는 분야는 아니다
사실 사진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뭐랄까, 나는 여전히 문자 중심주의자다
이미지 보다는 텍스트가 훨씬 편하다
그래서인지 지난 번에 구입한 20세기 중국 화보집도 큰 감동은 없었다
사실 이 책도 다소 지루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유명한 사진들이 많아서 반갑기도 했다
익숙하게 접했던 사진들이 퓰리처상을 받은 세계적인 사진이라 관심이 없는 나까지도 알았던 모양이다
이미지로만 기억했던 사진들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들으니 꽤 소득이 있었던 셈이다

마를린 먼로나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야 화보처럼 스틸컷으로 나오는 사진들이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를테면 체 게바라의 그 유명한 상반신 사진이 (체 게바라 열풍을 불러온 빨간 책의 그 얼굴) 쿠바의 어느 집회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이라는 식의 소소한 뒷얘기가 재밌었다
확실히 그는 뭔가 권위가 있어 보이고 열정이나 진지함이 느껴진다
심지어 총살당한 시신의 모습까지도 눈을 부릅뜨고 살짝 미소를 흘리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베트남 경찰에 의해 즉결처형 당하기 직전의 희생자가 공포에 질린 순간을 포착한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이 사진도 워낙 유명해 나도 전에 본 적이 있다
어쩜 이런 순간을 잘도 포착해 냈을까?
수 초 후에 벌어질 죽음의 공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잘 생긴 린드버그도 언급해야겠다
용기있지만 겸손하고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했다는 이 멋진 영웅의 모습!!
린드버그라고 하면 대니얼 부어스틴의 "이미지와 환상" 이라는 책에서 끝없이 소모되었던 바로 그 가짜 이미지의 희생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실제 얼굴을 보니 대중들이 열광할 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에 잘 생겼어야지~~

아폴로 11호의 그 유명한 달 착륙 사진은 너무 상징적이라 그런지 오히려 감동이 적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사진에 대해 실제로 달에 간 적이 없고 미국 방송국에서 찍은 조작 사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떠올리는 걸까?
그 음모론을 듣고 있자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정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 같은 사람들의 주장까지도 다 피해망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도 유사과학의 폐해가 아닐까 싶다
케네디의 후두엽을 박살낸 총살 사진도 좀 시시했다
정말 후두엽 쪽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다소 끔찍한 사진을 이미 봐 버렸기 때문일까?
하여튼 이 젊은 영웅은 죽음이 그를 영원히 스타로 남겨 두게 되어 정말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그 옆에 탄 비운의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은, 지난 번에 읽은 전기 탓인지 가엾다기 보다는, 머리가 커서 남자용 모자를 써야 했다는 에피소드가 떠올라 다소 코믹하게 느껴졌다

이오지마에 깃발을 세우는 그 유명한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Sands of Iwo Jima" 라는 영화를 우연히 봤는데 거기서 바로 그 유명한 사진이 마지막 장면으로 삽입된다
고전 영화를 보면 다소 지루하긴 해도 꼭 언젠가는 다른 곳에서 인용되기 마련이라 도움될 때가 많은데 이 경우도 그렇다
영화를 볼 때에는 대체 이게 뭔 소리야, 주장하는 바가 뭐야, 하면서 툴툴 거렸는데 (흑백 필름이라 상당히 지루했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됐다
사진작가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게 됐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초등학교 때인가, TV에서 본 기억이 생생한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결혼식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흑백사진이지만 그 화려한 대관식의 모습은 너무나 웅장하고 멋있었다
어쩌면 아직도 유럽 왕실이 살아있는 이유가 국민들에게 바로 이런 화려한 쇼를 보여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이혼녀를 위해 왕관을 버린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의 조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양쪽에 대주교 두 사람이 그녀를 호위하고 그녀의 길다란 망토는 아름답게 치장한 여섯 명의 궁녀들이 받쳐들고 행진한다
그 뒤로 네 살 먹은 찰스 왕세자와 (지금의 코믹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 때는 퍽 귀여웠다) 윈스턴 처칠이 서 있다
아, 얼마나 웅장하고 가슴 설레는 장면인지!
그러고 보면 이른바 왕실의 행사라는 것은 국민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국가 최대의 이벤트라는 점 때문에 엄청난 세금을 기꺼이 내놓는 모양이다

살짝 눈물을 흘렸던 사진도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장면이었다
영어 교과서에서 그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 을 처음 접했는데, 그 때도 어찌나 가슴이 울컥하던지 영어 공부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 같은 평화주의자, 비폭력적 저항가인데도 간디의 사진은 아무런 감흥이 없는 반면, 마틴 루터 킹의 사진은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
어쩌면 영국 면직물을 거부하는 대신 물레를 돌려 직접 실을 잣자는 그 전통 회귀 주장이 비현실적이고 막연하게 들려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킹 목사의 연설, "I have a dream" 은 우리가 간절히 이룩하고 싶어하는 것, 피부색깔에 의해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의해 평가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주장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간절하게 다가온다
나는 언제나 흑인들의 차별 대우를 접하면 같은 유색인종으로써 마치 내가 당한 모욕인양 분노하게 되는데,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을 백인과 동일시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어쩌면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소수자의 권리의식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하얀 옷을 입고 두건을 쓴 KKK 단의 사진은 몸서리 칠 정도로 분노했다
백인 우월주의, 혹은 인종차별주의자들, 너무 무섭고 끔찍하다
그런데 하필 그 KKK단의 부활을 이끈 사람이 산부인과 의사라니, 기가 막혀서, 참~~

몇 가지 기억에 남았던 사진들을 적어 봤다
그러고 보니 문득 나도 내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런 욕구, 이를테면 시간을 잡아 놓고 싶은 욕구, 혹은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사진을 배우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가볍게 지하철 안에서 머리를 좀 식히려고 빌린 책이다
보통 내가 읽는 책들은 독서대에 책 올려 놓고 커피 준비하고, 노트와 필기구 갖춘 후, 책갈피까지 있어야 하는, 이를테면 정독을 요하는 책인데 지하철 안에서까지 그렇게 머리 아픈 책을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좀 가볍게 읽어 볼까 하고 빌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고 감동받고 있다
옛날에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눈물 줄줄 흐를 만큼 슬플 때만 썼는데, 요즘은 작가 생각에 100% 공감하고, 글솜씨에 감탄할 때도 쓰게 된다
어찌 보면 감탄보다 더 많은 찬사를 보내는 말이, 날 완전히 감동시켰어, 이게 아닐까 싶다
하여튼 조지 오웰, 이 사람 마음에 쏙 든다
벌써 대문호 반열에 오른 (솔직히 괴테나 톨스토이처럼 사람 주눅들게 하는 위대한 성인 같은 작가는 아니지만), 고전으로 남을 만한 책을 쓴 작가이니 나 같은 평범한 독자의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대세에 아무 지장도 없겠으나, 그러나 정말 나를 감동시킨다
이 사람이 스페인 내전에 직접 총들고 참전했다는 게 충분히 믿어진다
난 가끔 번역서가 일상의 자잘한 재미와 감동을 충분히 전달시킬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큰 줄거리라면 모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문장력기 훌륭하다면 번역해서 읽더라도 그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난에 대해 이렇게도 상세하게,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그러나 이렇게도 재미나게 묘사할 작가가 또 있을까!!
작가각 직접 겪어 보지 않았으면 모를 일이고,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배고픔의 고달픔을 생생하게 묘사했다지만 이 책에 비하면 그건 정말 추상적이다
이 사람의 다른  책, "동물농장" 도 정말 재밌게 읽은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인데 이 소설도 참 맛깔스럽다
문득 "카탈로니아 찬가"도 읽어 보고 싶어진다

밑바닥 생활이라는 제목에서 벌써 가난에 관한 얘기라는 게 짐작이 간다
가난, 언제나 비루하고 끔찍하고 남루하기 짝이 없는, 지지리도 궁상맞은 삶을 떠올리는 단어지만 위대한 작가에 의해 묘사되니 그것도 나름 매력적으로 들린다
물론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식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 소크라테스는 배가 덜 고팠던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얘기하는 가난이란 책을 사 볼 돈은 물론 며칠을 굶어야 하는 절대 가난을 뜻한다)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삶도 위대한 작가가 맛깔나는 문장으로 풀어쓰면 나름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게 살짝 위안이 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구질구질한 상황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위로받고 재미나게 생각될 여지가 있다는 얘기로 들리니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대체 언제쯤 이런 극도의 가난을 겪어 봤을까?
저자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잘 매치가 안 된다
아마 내가 책을 끝까지 안 읽어 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첫 부분에 저자가 나중에 부자가 된다는 암시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접시닦기는 노예의 노예라는 식의 재치가 번득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가 가득한 이 책이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원어가 아닌 한국어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7-06-0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지오웰 좋아하는데 이 책은 못봤군요.

marine 2007-06-10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몰입이 안 되서 살짝 지루하기도 했지만 곧 빠져 들게 됩니다 유머와 위트가 풍부한 작가죠 강추~~

비로그인 2007-06-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민복의 글을 읽기 전에는 조지 오웰의 가난이 절대치라고 믿었는데, 그만큼이나 생경스러우면서도 천연덕스러웠어요. 마지막 생각, 저도 동감입니다. 하지만 번역도 매우 매끄러웠습니다.

하이드 2007-06-1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를 읽고 그 식민주의적 사고관에 역겹고 불콰했답니다.위선적으로 보였거든요. 그 이후로는 조지오웰책 거들떠도 안보고 있긴합니다만... 더 읽어봐야하나 싶습니다.

marine 2007-06-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어로 읽을 수 있는 Jude님이 부러워요~~ 님 말씀처럼 번역도 잘 한 것 같아요
하이드님, 확실히 이 사람은 식민주의적 사고관이 있는 것 같아요 책 읽으면서 살짝 느끼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뭐,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하이드님도 English로 읽으시면 좋을 듯... ^^

숲노래 2007-06-1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 님 이야기는, 이분 책 번역을 곧잘 하고 있는 박경서 님이 낸 <조지 오웰>(살림,2005)을 살펴보시면, 퍽 낱낱이 아실 수 있습니다. 넉넉하고 아늑한 삶하고는 평생 거리가 있는 채로 살다가 죽은, 그러니까 죽은 뒤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빛을 본 수많은 작가들 가운데 한 분이지요.
 
언어본능 - 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외 옮김 / 소소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평촌으로 이사온 후 느끼는 점 가운데 하나가, 이 동네 주민들이 책을 꽤 많이 본다는 점이다
광주에 살 때도 물론 도서관 열람실에 수험생들은 많았다
그렇지만 책을 빌려 주는 종합자료실은 대부분 텅텅 비었다
특히 내가 빌리는 책들은 일반적인 베스트셀러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지라, 언제나 대출가능이었다
그런데 이 곳 도서관은 열람실 뿐만 아니라 종합자료실에도 책 읽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할 뿐더러, 빌리려는 책들이 대출중일 때가 많다
이를테면 "스페인사" 라던가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혹은 "언어본능" 등이 그랬다
언어본능이야 스티븐 핑커가 워낙 유명하니 그런다지만 솔직히 스페인사까지 대출중인 건 좀 놀랍다
나 같은 할 일 없는 사람 말고 대체 누가 그런 쓸데없는 책을 읽는 걸까?
스페인 문화 전공자라도 되는 걸까?
하여튼 이 언어본능도 계속 대출 중이다가 어제 겨우 빌린 책이라 퍽 감격한 상태로 책장을 열었다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학자들의 책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사실 연구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른다
그들이 대중을 상대로 쓴 책을 보고 평가하게 되는데 확실히 유명한 저술가들의 책은 놀라울 정도로 문장력이 뛰어나고 풀어가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칼 세이건이나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를 읽을 때마다 이 놀라운 과학자들의 글솜씨에 감탄하는데 스티븐 핑커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문장력에서 독자를 사로잡을 만큼 탁월하고 주장하는 바가 명쾌해서 그 논리에 탄복하게 된다
언어는 습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능이라는 주장이 얼핏  들으면 늑대소년을 생각나게 함으로서 반발하게 만들지만,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과연 그 말이 맞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의 말은, 박쥐가 초음파를 이용해 보지 않고도 먼 거리의 물체를 알아 맞추듯, 인간에게 있어 언어 사용도 본능적인 능력이라는 뜻이다
침팬지를 아무리 교육시켜도 절대로 인간처럼 문법에 맞는 언어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이 주장 때문에 이 책을 보게 된 것이다
칼 세이건의 "에필로그"에서는 침팬지들이 수화를 배워 문장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런데 핑커는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조련사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고 언어학자들에게 원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며 쉽게 말하면 자가당착,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수화를 단순히 사물을 흉내내는 판토마임 정도로만 본다면  침팬지의 수화 사용을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핑커에 의하면 수화는 완벽한 문법 체계를 지닌 하나의 언어라고 한다
비근한 예로, 청각장애인에게서 태어난 청각장애아들은 수화를 쉽게 배우는 반면, 나이들어 청각장애인이 된 아이들, 혹은 정상인에게서 태어난 청각장애아들은 마치 이민자들이 외국어 배우는데 힘이 들듯, 자연스럽게 수화 문법을 체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수화를 단순한 손동작 몇 개로 너무 가볍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수화는 상징의 개념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고 TV 장면이나 책 내용을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으며 심지어 문법 체계까지 갖추었다고 하니, 침팬지가 수화를 배운다고 하는 건 어쩐지 어불성설로 들린다
실제로 수화를 배운 침팬지의 손동작을 청각장애인들이 받아 적으면 매우 힘들어 하는 반면, 일반인들은 유사한 뜻으로 비슷하게 해석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실 칼 세이건의 글을 읽으면서 침팬지의 수화 능력에 환호했는데 맥이 좀 빠지긴 한다
그렇지만 언어 습득 능력이 인간 고유의 본능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단어를 듣고 상징을 떠올리는 것을 정신언어라고 한다면, 보편적인 규칙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 바로 문법이다
저자는 영어의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 보편적인 문법 체계를 설명했지만 솔직히 너무 지루하고 이해도 안 됐다
역시 영어 비사용자의 한계인가 싶다
한국어로 예를 들었다면 훨씬 쉽게 이해했을텐데,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노보 - 살아가기 함께 행복하게
프란스 드 왈 외 지음, 프란스 랜팅 사진 / 새물결 / 200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굉장히 재밌게 읽고 있다
함께 실린 사진이 매우 훌륭하다
책값이 아마도 사진 때문에 비싸진 것 같은데 침팬지보다 작은 이 귀여운 친척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실려 있어 충분히 값을 한다
보노보라고 하면, 피그미침팬지로 알고 있어서인지 막연하게 침팬지의 한 종류라고만 생각했다
실제로 20세기 초반의 학자들은 보노보를 체구가 작은 침팬지 쯤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리한 관찰자들이 이 매력적인 동물과 침팬지의 차이점을 기술해 가면서 비로소 둘이 전혀 다른 종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역시 세밀한 관찰과 묘사가 중요하다
침팬지 보다 체구가 작고 특히 두상이 매우 작으며, 목소리 톤이 높다고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들의 생활상인데 침팬지가 수컷 지배 사회인데 반해 보노보는 암컷들의 연합체라고 한다
그래서 종종 평화로운 사회로 미화되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보노보가 평화라는 개념을 알 리 만무하다
침팬지는 암컷이 수컷의 절반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수컷에게 예속되어 있고 한 마리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
반면 보노보는 암컷과 수컷의 크기 차이가 거의 없을 뿐더러, 여러 마리의 암컷들이 서로 연합해서 수컷을 억누르기 때문에 수컷들은 항상 무리의 주변부에 머무른다
특이한 것은 수컷 침팬지들이 형제끼리 연대하여 우두머리 자리를 지키는 반면, 보노보 암컷들은 혈연 관계로 묶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친상간을 막기 위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설명되는데, 암컷은 생식 가능한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무리를 찾아 떠나기 때문에 자매들이 한 무리 안에 있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보노보는 돌봐 줘야 할 어린 시절이 길어서 오랫동안 어미가 자식을 데리고 다닌다
인간과 이 점에 있어서는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수컷의 서열도 엄마의 지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뭐니뭐니 해도 제일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들의 액티브한 성생활일 것이다
침팬지가 일곱 시간 마다 섹스를 하는데 반해, 보노보들은 한 시간 단위로 섹스를 한다고 한다
잠자거나 먹는 시간을 제외한다고 해도 하루에 수십 번을 한다는 얘기인데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성기의 길이가 길다는 이유로 해마 같은 어처구니 없는 야생동물이 정장제로 팔려 나가는 걸 생각해 보면, 보노보가 조금만 더 일반적인 동물이었던들 아마도 이미 멸종됐지 않았을까 싶다
성기가 부풀어 오른 암컷의 사진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랬다
동물원 관람객들은 심지어 암컷에서 엄청난 cancer가 있다고까지 생각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가 간다
너무 부풀어서 bleeding도 잦고, 제대로 앉지도 못한다고 한다
과연 섹스의 지존 답다
재밌는 건 이들의 섹스 장면이 전혀 야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의 설명대로 긴장 완화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놀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섹스에 사회적 통념을 지나치게 내면화 하고 사는 것 같다
인간의 포르노 비디오를 보면 토할 것 같고, 성욕이 끓어 오르기는 커녕 굉장한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지는데 똑같은 섹스 장면이 실린 이 책을 볼 때는 오히려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섹스란 누군가의 말처럼 그저 친밀한 행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여튼 책에 실린 보노보들의 섹스 장면은 아름답고 정겨우며 또 매우 귀엽다
아마도 보노보들의 침팬지 같은 거친 이미지가 아니라 얼굴 표정이 풍부판 종이라 더 정답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이들의 표정은 정말 풍부하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볼 때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데, 사진 속의 보노보들도 마치 인간의 아기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다
얼굴 근육 사용이 인간처럼 활발하기 때문에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우리들의 사촌 보노보는 침팬지와 공통 조상을 갖고, 그 윗대에서 인간과 분리되었다
다시 그 윗대로 올라가면 고릴라가 떨어져 나갔고 그 윗쪽에서는 오랑우탄이 갈라져 나갔다
그러니까 확실히 침팬지는 우리와 가장 비슷한 유인원이고 특히 보노보는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우리와 공통 조상을 공유하였던 셈이다
사실 생물학에 관련된 모든 책은 진화를 베이스에 깔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
과연 이런 책들을, 이른바 창조론자들은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여담이지만, 창조론자들과 논쟁이 붙을 때 진화론을 설명해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한다
너무 당연하게 옳은 얘기이고, 또 창조론자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이 어찌나 유치한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웃으면서 논쟁을 포기해 버린다

꼭 덧붙여야 할 말은, 보노보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일본인 학자 가노 박사에 관한 얘기다
외국 책에서 일본인 학자들을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확실히 일본은 놀라울 정도로 선진국이고 한국이 어깨를 마주하기엔 너무 큰 나라다
학술 분야에서 일본의 놀라운 투자와 발전 상황을 접할 때마다 정말 허걱 하고 놀라게 된다
보노보 연구 역시 교토 대학에서 수십 년 동안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가노 박사는 혼자 자이르의 밀림 지대로 들어가 사탕수수 밭을 경작하면서 경계심 많은 이 동물들을 유인했다
야생 상태의 보노보를 연구하기 위해 먹이를 주는 것은 서양 학자들과 완전히 다른 방법인데 이 방법의 장점은 오랜 시간을 두고 야생 동물 집단을 추적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수 십 년 동안 관찰한 바를 학술 논문으로 제출한다고 하니, 과연 일본인답게 끈질기고 철두철미 하다
어쨌든 이 외로운 밀림에서 보노보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가노 박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4
루치아 임펠루소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관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정확히 꿰뚫어 본 시리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시리즈가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일단 번역서이기 때문에 문장이 딱딱하고 두껍지가 않아서 그런지 그림 소개가 아주 많지는 않다
도판은 매우 훌륭하다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차라리 미술관에서 출판하는 도록을 사는 게 어떨까 싶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무려 30 파운드나 주고 사 온 도록이 있긴 있는데 그 책이 지금 읽는 미술관 시리즈 보다는 훨씬 알찬 것 같다
하여튼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은 가 보지 않아서 더욱 기대가 많았던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6-03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표지. 메트로폴리탄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라는, 시체같이 창백한 그녀로군요

marine 2007-06-0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나온 설명을 빌리자면, 1859년 미국에서 태어난 버지니아 아베뇨라는 여자인데 당시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손꼽혔고, 프랑스 은행가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존 싱어 사전트라는 화가 작품이예요 원래는 어깨끈이 내려가게 그렸는데 너무 야하다고 논쟁이 많아 다시 수정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