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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사진
페터 슈테판 지음, 이영아 옮김 / 예담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세상을 바꾼 사진들, 제목이 일단 좋다
내가 좋아하는 나귀님의 리뷰를 읽고 고른 책이다
사실 이 분은 나와 취향이 매우 다른지라 (전기나 문학 쪽) 이 분의 리뷰를 읽고 책을 고르게 되면 꽤나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된다
언젠가 읽었던 "재키 스타일" 이나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처럼 이 책 역시 내가 즐겨 읽는 분야는 아니다
사실 사진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뭐랄까, 나는 여전히 문자 중심주의자다
이미지 보다는 텍스트가 훨씬 편하다
그래서인지 지난 번에 구입한 20세기 중국 화보집도 큰 감동은 없었다
사실 이 책도 다소 지루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유명한 사진들이 많아서 반갑기도 했다
익숙하게 접했던 사진들이 퓰리처상을 받은 세계적인 사진이라 관심이 없는 나까지도 알았던 모양이다
이미지로만 기억했던 사진들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들으니 꽤 소득이 있었던 셈이다
마를린 먼로나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야 화보처럼 스틸컷으로 나오는 사진들이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를테면 체 게바라의 그 유명한 상반신 사진이 (체 게바라 열풍을 불러온 빨간 책의 그 얼굴) 쿠바의 어느 집회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이라는 식의 소소한 뒷얘기가 재밌었다
확실히 그는 뭔가 권위가 있어 보이고 열정이나 진지함이 느껴진다
심지어 총살당한 시신의 모습까지도 눈을 부릅뜨고 살짝 미소를 흘리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베트남 경찰에 의해 즉결처형 당하기 직전의 희생자가 공포에 질린 순간을 포착한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이 사진도 워낙 유명해 나도 전에 본 적이 있다
어쩜 이런 순간을 잘도 포착해 냈을까?
수 초 후에 벌어질 죽음의 공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잘 생긴 린드버그도 언급해야겠다
용기있지만 겸손하고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했다는 이 멋진 영웅의 모습!!
린드버그라고 하면 대니얼 부어스틴의 "이미지와 환상" 이라는 책에서 끝없이 소모되었던 바로 그 가짜 이미지의 희생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실제 얼굴을 보니 대중들이 열광할 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에 잘 생겼어야지~~
아폴로 11호의 그 유명한 달 착륙 사진은 너무 상징적이라 그런지 오히려 감동이 적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사진에 대해 실제로 달에 간 적이 없고 미국 방송국에서 찍은 조작 사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떠올리는 걸까?
그 음모론을 듣고 있자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정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 같은 사람들의 주장까지도 다 피해망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도 유사과학의 폐해가 아닐까 싶다
케네디의 후두엽을 박살낸 총살 사진도 좀 시시했다
정말 후두엽 쪽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다소 끔찍한 사진을 이미 봐 버렸기 때문일까?
하여튼 이 젊은 영웅은 죽음이 그를 영원히 스타로 남겨 두게 되어 정말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그 옆에 탄 비운의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은, 지난 번에 읽은 전기 탓인지 가엾다기 보다는, 머리가 커서 남자용 모자를 써야 했다는 에피소드가 떠올라 다소 코믹하게 느껴졌다
이오지마에 깃발을 세우는 그 유명한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Sands of Iwo Jima" 라는 영화를 우연히 봤는데 거기서 바로 그 유명한 사진이 마지막 장면으로 삽입된다
고전 영화를 보면 다소 지루하긴 해도 꼭 언젠가는 다른 곳에서 인용되기 마련이라 도움될 때가 많은데 이 경우도 그렇다
영화를 볼 때에는 대체 이게 뭔 소리야, 주장하는 바가 뭐야, 하면서 툴툴 거렸는데 (흑백 필름이라 상당히 지루했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됐다
사진작가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게 됐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초등학교 때인가, TV에서 본 기억이 생생한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결혼식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흑백사진이지만 그 화려한 대관식의 모습은 너무나 웅장하고 멋있었다
어쩌면 아직도 유럽 왕실이 살아있는 이유가 국민들에게 바로 이런 화려한 쇼를 보여주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이혼녀를 위해 왕관을 버린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의 조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양쪽에 대주교 두 사람이 그녀를 호위하고 그녀의 길다란 망토는 아름답게 치장한 여섯 명의 궁녀들이 받쳐들고 행진한다
그 뒤로 네 살 먹은 찰스 왕세자와 (지금의 코믹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 때는 퍽 귀여웠다) 윈스턴 처칠이 서 있다
아, 얼마나 웅장하고 가슴 설레는 장면인지!
그러고 보면 이른바 왕실의 행사라는 것은 국민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국가 최대의 이벤트라는 점 때문에 엄청난 세금을 기꺼이 내놓는 모양이다
살짝 눈물을 흘렸던 사진도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장면이었다
영어 교과서에서 그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 을 처음 접했는데, 그 때도 어찌나 가슴이 울컥하던지 영어 공부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 같은 평화주의자, 비폭력적 저항가인데도 간디의 사진은 아무런 감흥이 없는 반면, 마틴 루터 킹의 사진은 언제나 가슴이 뭉클하다
어쩌면 영국 면직물을 거부하는 대신 물레를 돌려 직접 실을 잣자는 그 전통 회귀 주장이 비현실적이고 막연하게 들려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킹 목사의 연설, "I have a dream" 은 우리가 간절히 이룩하고 싶어하는 것, 피부색깔에 의해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의해 평가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주장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간절하게 다가온다
나는 언제나 흑인들의 차별 대우를 접하면 같은 유색인종으로써 마치 내가 당한 모욕인양 분노하게 되는데,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을 백인과 동일시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어쩌면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소수자의 권리의식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하얀 옷을 입고 두건을 쓴 KKK 단의 사진은 몸서리 칠 정도로 분노했다
백인 우월주의, 혹은 인종차별주의자들, 너무 무섭고 끔찍하다
그런데 하필 그 KKK단의 부활을 이끈 사람이 산부인과 의사라니, 기가 막혀서, 참~~
몇 가지 기억에 남았던 사진들을 적어 봤다
그러고 보니 문득 나도 내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런 욕구, 이를테면 시간을 잡아 놓고 싶은 욕구, 혹은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사진을 배우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