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케인 특별소장판
오손 웰즈 감독 / 리스비젼 엔터테인먼트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너무 독특했던 영화다

버스 안에서 PMP로 보고, 집에 와서 tv out로 이어서 봤다

기계 산 보람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 영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건 아니다

워낙 명작이라고 하길래 호기심에서 본 거라 정보가 전혀 없었다

막연하게 칼레의 시민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시민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나?

케인이라는 사람이 도시를 위해 희생한 영웅주의 영화, 대략 이렇게 상상했었다

그러고 보면 이미지란 참, 얼마나 편견 가득한 단어인지...

 

인상적인 면은 많았다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독특한 영화인 건 분명하다

신문 재벌 찰스 케인

어머니의 광산을 물려 받아 신문사를 인수하고 주지사 선거에도 나간다

두 번의 결혼 실패

선거 낙방

결국 쓸쓸한 만년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숨을 거둠

아메리칸 드림의 파괴를 의미하는가?

 

죽기 전에 남긴 말, 로즈버드의 의미를 찾아 기자가 케인의 지인들을 만나러 다니는 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여자 이름 같기도 하고, 아끼던 말의 이름인 것도 같고 대체 로즈버드는 뭐란 말인가?

맨 마지막에 어린 시절 즐겨 타던 어찌 보면 유일한 위안이던 썰매에 새겨진 이름이 바로 로즈버드였음이 밝혀진다

그러나 그 의미는 관객들만 알 뿐, 영화 속의 기자들은 가치없이 불태워진 썰매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케인이 바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돈과 명예, 여자, 사랑...

다 가진 것 같지만 말년에는 불행했던 남자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다 마찬가지 아닐까?

꼭 많은 것을 쥔 사람만 허망함을 느끼는 건 아닐 것이다

돈이 있든 없든, 명예가 있든 없든 누구나 삶의 마지막은 쓸쓸하고 허망한 게 아닐까?

 

수잔에게 노래를 강요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름없는 가수의 목소리에 반한 케인은, 결국 그 외도 때문에 부인과 이혼하고 주지사 선거에서도 떨어졌지만, 그녀와 결혼한 후 그녀를 위해 오페라 하우스를 지어 준다

뮤지컬에 억지로 출연시키고 유명 배우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지만, 혹평만 돌아올 뿐...

결국 그녀 역시 더 이상 노래부르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케인은 계속 노래를 강요한다

아마도 그는 수잔의 목소리에 반한 듯 하다

독특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가 밖에서 유명해지는 걸 달가워 하지 않는데 케인은 그녀가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을 원한다

본인 자신 마저도 자기 능력에 회의를 품고 그만두고 싶어 하는데 말이다

 

따지고 보면 케인의 사랑이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독재적인 방식이었다

다 가진 자의 오만이라고 할까?

여자들은 돈만 쥐어주면 만사 오케이라는 생각

권력과 돈을 가진 대다수의 남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혹은 인간적인 진실된 관계를 맺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결혼생활이 행복했다면 케인은 말년에 외롭지 않았을까?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것 같다

주지사에 당선되고 대통령이 되고, 그랬다면 그는 행복하게 죽었을까?

평생 돈과 권력을 쫓았지만 결국 죽을 때는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썰매만 생각났던 그는, 불행하게 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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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2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 안에서 영화보기 흔들리지 않던가요? 머리가 아프다거나... 좀 궁금했어요^^
블루마린님 크리스마스 아침이에요~ 멜휘 클스마스~!!!

marine 2006-12-25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큰 문제는 없어요 지하철에서 책이나 영화 보는 것과 비슷하죠
마노아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싸움의 기술 (dts 2disc) : 아웃케이스
신한솔 감독, 백윤식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예상했던 영화가 전혀 아니었다
과연 백윤식은 연기를 잘 한다
그 카리스마!!
재희 역시 생각보다 훨씬 역할에 잘 어울렸다
춘향전인가 뭔가 찍을 때 검사로 나오는 게 하도 안 어울리고 오버 그 자체라 정말 짜능났었는데 이번 순진남 역할은 무척 어울리는 것 같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슬펐다
껄렁껄렁한 고등학생이 특이한 싸움법을 배우는 내용인 줄 알았더니만 그게 아니라 맞고 사는 자의 슬픔, 뭐 이런 내용이었다
영화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왜 사람들은 폭력성에 열광하는 걸까?
영화 속 장면들은 너무 끔찍해 눈을 감을 때가 많았다
내놓고 조폭 영웅시 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지만, 학생들의 폭력이 이렇게도 잔인하고 끔찍할 수 있는지 상당히 놀랬다
교사가 아이들을 때리는 장면도 너무 리얼해 교사라기 보다는 폭력 학생들의 보스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더구나 학교 깡패에게 얻어맞은 주인공의 친구는 생명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왜 관객들은 이런 잔인한 설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걸까?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서?
혹은 우리 안에 숨은 폭력성 때문에?
어쩌면 K1을 보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지적했다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이히만이 잔인한 악인 같지만, 실은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그녀의 분석이다
오히려 그는 생각이라는 걸 못하는, 사유가 없는, 말하자면 미련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히틀러의 끔찍한 학살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앞장섰다는 것이다
학살계획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곧 국가를 위하는 일이고 민족을 구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아이히만은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조차 인식을 못했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민주투사들을 고문하는 고문관들이, 잠깐 쉬는 시간에 아이들 걱정하고 부모 생각하고,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시키는 잔인한 현장에서, 어떻게 그렇게도 평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아무리 잔인한 살인자라도 그 현장을 떠나서는 매우 평범한 그저 그런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히틀러 역시 광기에 사로잡힌 미친 인간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한나 아렌트는 거기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악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이유는 뭘까?
아렌트는 그것을 사유의 결핍이라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생각이 없는 것이다
판단력이 정지되고 뭐가 옳고 그른지를 모르는 것이다
아마 박정희 시대 고문관들도 그것이 나쁜 행위라는 것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만약 독재가 나쁘다는 걸 깨달았다면 어쩌면 그렇게도 일상적으로 고문을 저지를 수 있었겠는가

 

영화를 보면서 자꾸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다
백윤식이 재희에게 싸움을 가르치면서 왜 너는 힘도 세고 반사신경도 좋은데 사람을 때리지 못하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나는 재희의 캐릭터가 원래 착한 사람이라 공격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천성적으로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백윤식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하도 많이 맞아 봐서 두려움 때문에 때리지 못한다고 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정말 그 위험성이나 결과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두려워 하지 않고 덤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이 제일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뭘 모르니까 물불을 안 가린다

 

백윤식이 싸움을 가르쳐 달라는 재희에게 싸움 배워서 뭐 하냐고 거절한다
그러자 재희가 이렇게 묻는다
당신 맞아 봤어요? 맞고 사는 사람의 심정 알아요?
난 그 대사가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직접 겪지 않으면 절대 그 고통을 모른다
아버지가 형사라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단지 힘이 없다는 이유로 깡패 친구들에게 매일 얻어맞는 그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단순히 신체적인 아픔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굴욕감, 수치심, 억울함...
참 이상한 게 영화 속의 깡패들은 사람을 괴롭힐 때 꼭 성추행을 동반한다
구타유발자에서도 그랬는데 이 영화에서도 깡패가 재희의 고추를 만지작 거린다
또 자기 발 밑을 핥으라고 한다
상대방에서 수치심을 유발하고 완벽한 복종의 상징적인 표현인 줄은 알겠는데, 그런 행위는 가해자에게도 수치스럽지 않을까?
쾌감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도 역겨워질 것 같은데 왜 이런 행위를 태연하게 시키는 걸까?
변태처럼 보인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말은, 인생은 싸움이고 싸움의 기본은 상대방의 기를 꺽는 것이라는 대사였다
촌철살인과 같은 말이 아닌가 싶다
꼭 신체적인 싸움이 아니라 할지라도 주도권 싸움부터 시작해 직장 내에서의 갈등 관계 등 인간관계나 업무적인 일들이 결국은 상대방과의 투쟁이고, 기선 제압을 해야 이길 수 있으니까
그러려면 일단 실력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두려움을 없애야 할 것 같다
결국은 용기가 가장 중요한 덕목일까?

 

하나의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꽤 괜찮은 영화였음이 틀림없다
더불어 백윤식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는 바다
시나리오 고르는 눈이 매서운 것 같다
범죄의 재구성에 이어 이번 영화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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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2.0 경제학
김국현 지음 / 황금부엉이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가 너무 컸나?
절반 정도 밖에 공감을 못했다
일단 내가 잘 모르는 내용들이 꽤 있었고, 나처럼 컴퓨터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세세하게 쓰여 있는 건 아니었다
책 수준이 높다는 얘기는 아닌데, 뭐랄까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도 쉽게 개념 파악을 할 수 있을 만큼 저자가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 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웹, 혹은 블로그를 개인이 전체에서 탈피해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매체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과연 블로그가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 내는 훌륭한 등용문이 될까?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들어내고 일부 블로그 스타들이 탄생한 것도 사실이지만 과연 그것이 제도권 내의 매스 미디어를 대신할 만큼 확고한 위치를 점했는지는 의심스럽다
블로그를 통해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몇몇 블로그 스타들이 쓴 책을 읽어 봤지만 글 참 잘 쓴다, 정말 좋은 책 읽었다, 감탄한 적은 거의 없다
즉 블로그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공공의 장임은 분명하나 여전히 아마추어적이라는 얘기다
등용문이 넓어진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과연 저자의 전망처럼 블로그나 웹이 인간의 잠재력을 120% 뽑아 낼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마디 짚고 넘어갈 말은, 저자는 웹 2.0의 세계가 능력없는 사람들은 도태되고 창의적이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세상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창의적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 역시 인터넷의 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또 인터넷 없이 살 수 없지만, 인터넷이 가져온 서열 파괴나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현상은 결코 좋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정보화 사회가 된 후 놀랄만큼 발전 속도가 빨라졌지만 제대로 적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계화, 신자유주의 같은 것도 결국은 인터넷을 통해 국경이 없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 아니겠는가?
저자가 장미빛으로 예상하는 그런 미래가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될지는 정말 모르겠다

 

웹 2.0이 대체 무슨 말인지 궁금했는데 인터넷 버블 시대를 견뎌 낸 다음 시대를 지칭한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저자는 현실을 현상계, 인터넷 세상을 이상계, 리니지처럼 캐릭터를 부여하고 사회를 이룬 것을 환상계라고 이름붙였고 이 환상계야 말로 인간의 개성이 드러나고 가장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과연 이런 환상계가 현실을 정말로 대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게임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실감을 못하는 걸 수도 있지만, 가상의 세계에 빠져 현실 감각을 잃는 부작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인터넷이 우리 삶을 200% 변화시켰다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엄청난 속도로 정보가 전달된다
내 업무도 그렇지만 개인 생활에서도 웹 없는 일상은 생각할 수가 없다
기본적인 개념을 익히기 위해 좀 더 많은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소수만이 누리던 정보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같이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러나 정보가 모두에게 공개되는 바람에 경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졌고 과거보다 편한 대신 훨씬 더 살벌한 경쟁 속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전부 좋기만 한 건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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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일반판 재출시 (3disc) - 아웃케이스 + 킵케이스 + OST 포함
이누도 잇신 감독, 츠마부키 사토시 외 출연 / 디에스미디어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제목만큼이나 독특했던 영화

요즘 부쩍 일본 영화의 맛을 느끼게 된다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톡톡 쏘는 특별한 맛

4월 이야기도 그랬고 러브 레터도 그렇고, 이 영화 역시 헐리우드나 한국 영화와는 또다른 일본 영화 특유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1. 장애인에 대한 편견

마을 사람들 눈이 무서워 조제는 산책을 밤에만 한다

조제를 거둔 할머니는, 넌 평범한 사람과 다르니 함부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할머니 생각에 조제의 하반신 마비는, 천벌 같은 걸로 여겨지는 듯 하다

장애인은 존중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이,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퍼져 있을까?

영화 속에서는 조제를 괴롭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분노하지만, 정작 우리 마을에 하반신 마비 환자가 유모차 타고 돌아다닌다면?

직접 위해를 가하지는 않더라도 슬금슬금 피하거나 애들더러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할 것이 뻔하다

비단 장애인 뿐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 지능이 낮은 사람,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 노숙자들...

막상 일상 속에서 그런 저소득층과 마주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피하고 본다

냄새나고 행동도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편견없이 사람을 대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조제를 사랑하는 츠네오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2. 자기만의 공간에 갇힌 조제

어렸을 때도 고아원에서 자라고 커서는 하반신 마비가 된 이 여자

그녀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집에 틀어 박혀 할머니가 주어 온 헌책을 읽는 재미로 산다

(그러니 조제에게 산책은 가장 중요한 일일 수 밖에)

새 책도 아니고 사람들이 읽다 버린 헌 책, 잡지, 교과서까지 읽는 조제

그래서 그녀는 아는 게 많다

나도 한 때 책으로 둘러 싸인 공간에서 평생 책만 읽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머릿속의 상상일 뿐. 만약 조제처럼 두 다리를 잃고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어야 한다면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하반신 마비 환자들을 많이 봤다

장기 입원 환자들인데 대부분 보호 환자라 퇴원도 안 한다

그 사람들은 하체를 못 쓰기 때문에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거나 휠체어로 이동을 하므로 살이 무섭게 찐다

영화 속의 조제처럼 날씬한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영화 속의 조제에게는 동정심이 생기고 따뜻한 마음이 드는데, 현실에서 마주치는 환자들은 왠지 모를 거부감을 준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봤다

나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느냐 안 맺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이를테면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장애인이 되서 남들에게 기피되더라도 나는 얼마든지 그들을 똑같이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와 전혀 상관없는 장애인이라면, 그것도 남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모습이라면 나는 그들을 피할 것 같다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까지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인간적으로 대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숙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츠네오의 사랑은 더욱 빛난다

 

3.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쓰레기 버릴 사람이 없어 옆집 아저씨에게 가슴을 만지게 해 준 조제

츠네오는 그녀를 비난하지만, 조제는 울면서 소리친다

그럼 쓰레기는 누가 버리란 말이냐고

그녀를 돌봐 주는 복지과 직원들은 낮에 오지만, 쓰레기차는 아침에 온다

직원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쓰레기를 버리러 갈 수도 없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옆집 아저씨가 가슴을 만지게 해 주면 매일 쓰레기를 버리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조제로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선택을 누가 감히 비난할 수 있을까?

 

츠네오의 애인이 조제에게, 장애를 이용해 남자를 뺏어갔다고 비난하자 조제가 한 마디 던진다

"너도 다리 자르면 돼"

촌철살인과 같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고통과 불편함은 정상인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성격에 씩씩한, 조제가 너무 마음에 든다

장애인은 착할 것이라는 편견도 조제 앞에서는 여지없이 깨진다

그녀는 약하다고 해서 무조건 착한 가냘픈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조제의 매력일 것이다

 

4. 조제가 츠네오에 대한 고마음의 표시로 섹스를 허락한다

가냘픈 조제가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옷을 벗을 때 츠네오는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마음이 나에게 100% 전달됐다

조제가 줄 수 있는 건 자신의 몸 밖에 없었으니, 그녀로서는 최상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조제의 그 마음을 100% 받은 츠네오, 눈물이 날 것 같다는 그 말에 나도 동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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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20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참 좋았어요. 참 아프고, 그리고 참 담백하게 끝났죠. 그래서 더 슬펐어요.

marine 2006-12-21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척 따뜻하게 봤답니다
 
교실의 고백
존 테일러 개토 지음, 이수영 옮김 / 민들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를 많이 했던 것에 비하면 솔직히 좀 실망했다
나는 교육정책을 분석하고 대안 제시를 한 책을 원했는데, 이 책은 주로 연설문을 모아서 그런지 당위적인, 막연한 내용이 많다
미국 교육은 잘못됐고 옛날로 돌아가라, 대충 이런 게 주요 내용이다
학교 교육의 왜곡 현상은 분명히 심각한 것이지만, 과연 저자의 말처럼 가정에 교육을 맡기는 게 최선일까?
아미쉬를 찬양하지만, 내가 읽은 기사 내용으로는, 아미쉬 공동체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누구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으나 21세기 현대 사회에 살면서 과거로의 회귀 현상은 바람직한 대안은 아닌 것 같다

 

좋은 얘기도 많았다
학생 개개인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은 모든 교육의 가장 큰 목표가 아닌가 싶다
학교에 다니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집단 속으로 숨어 들어가 전체의 일부로 바뀌게 된다
저자는 현재의 학교 시스템으로는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교육을 하기 힘들다고 역설한다
교육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저자는 현실에서 큰 필요없는 지나치게 많은 지식을 담느라 아이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고 비판한다
물론 그런 면이 분명 있다
정규 수업으로 모자라 보충수업에 자율학습, 학원까지 소화해야 할 학생들의 부담감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불필요한 지식의 일부로 제시한 진화론이나 기타 수학적 내용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기초 교양이 되는 중요한 지식이 아닐까?
문제는 현실과 결합하지 못하고 교실에서 듣고 끝나버리는 죽은 교육 방식에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과학 수업을 매우 어렵게 생각하고 특히 수학의 경우 여전히 기본적인 마인드를 갖기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배운 그 지식들을 바탕으로 지금 관련 서적을 읽을 능력을 갖추게 됐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하는 얘기들도 쉽게 알아 듣는다
학교 교육이 개인을 죽이고 전체화 시키는 점이 없지 않으나, 보통 교육, 의무 교육 덕분에 문맹률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가 된 점은 절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학교가 부모에게서 아이들을 뺏어갔다고 비난하지만, 학교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부모에게 교육을 맡긴다면 대부분의 부모가 직업을 가지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제대로 교사 역할을 할 부모다 얼마나 될까?
또 그것은 부모, 특히 엄마의 일방적인 희생을 전제로 하는 다소 위험한 발언이기도 하다
저자의 본뜻이 그것은 아니었다고 믿는다
아마도 학교 교육이 지나치게 암기식으로 흐르고 부모들은 학교에 자식을 전적으로 맡겨 버린 채 나 몰라라 하는 현실을 환기시키기 위해 강력한 발언을 한 것이라 믿고 싶다

 

아이들의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소 이상한 결론이 될 수 있겠지만, 어쩌면 모든 학생들이 전부 대학에 가야 하는 현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학은 학문을 배우는 곳이다
즉 직업교육이나 실습 현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공부 이외의 재능을 가진 다른 모든 학생들도 꼭 대학에 가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공부할 학생들은 대학에 가고, 직업 현장에 뛰어들 학생들은 그에 맞는 교육을 시키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학생들은 굳이 현실에서 별 필요도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목을 배우는 대신, 보다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지식을 배우는데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학벌 사회를 먼저 타파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안 학교에 보다 많은 기회를 주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일률적인 것은 반드시 부패하게 되있다
그래도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더 교육 시스템이 개방되어 있는 것 같다
저자는 홈 스쿨링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언젠가 시장에 학교 교육을 맡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자본주의에 공교육을 맡기라는 말이 너무나 도발적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이 책과도 통하는 맥락이 있다
저자는 반복해서 학교가 권력화 되어 창의성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공교육에 대항하여 건전한 사교육을 키워야 한다는 말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전적으로 의무교육에 맡기는 것 보다, 일정 정도는 시장에 교육을 개방시키는 것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원하는 학교에 바우처를 지급함으로써 재정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말한다
시장에 교육을 맡기라는 책에서는, 무조건 학교 신청만 하면 정부에서는 일정 부분 재정 지원을 해 주고 인가를 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에 맡기면 알아서 잘 돌아간다는 주장이 다소 과격하고 낭만적이긴 하지만, "교실의 고백" 에 나온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공교육은 거대한 공룡이 되어 아이들의 미래를 잡아 먹고 있는 꼴이니 그 말도 일리있지 않을까?

 

저자는 학교가 학생의 개성을 죽인다고 비난했는데, 아마도 한국 고등학교에 와 보면 깜짝 놀라 기절할지도 모른다
창의력을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의 욕구마저 억압하는 게 한국 고등학교의 현실이 아닌가
두발단속이나 교문지도 같은 말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먼 것 같다

 

누구나 자기 아이가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써 집단에 함몰되지 않고 특별한 존재로 대우받길 원할 것이다
저자는 이제 학교에만 아이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부모가 할 일이 훨씬 많아진 셈이다
어떻게 해야 아이의 창의성을 살리면서 바람직한 미래를 구현시킬지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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