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6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6
고종희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도판들이 훌륭하다
이 정도 그림이면 책값이 꽤 비쌀텐데 의외로 저렴하게 보급됐다
책값이 이 정도로 부담없다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션은 막연하게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명확한 개념도 없었고, 삽화 내지는 만화 비슷한 상업적인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 전통이 아주 깊다
저자의 서문처럼, 순수예술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니, 오히려 이런 상업 미술을 예술과 접목시키는 게 새로운 방법이 될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동 도서가 불황을 모르고 꾸준히 팔리는 분야이기 때문에 예술적으로 승화된 일러스트레이션이 설 수 있는 훌륭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이 줄줄이 나온다
독일의 위대한 판화가 뒤러부터 시작해 라파엘전파의 로세티나 밀레이, 명암의 대비를 활용한 카라밧지오, 전쟁의 실상을 고발한 고야 등등 관심있게 보는 화가들 그림이 많이 나와서 반가웠다
그러고 보면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가 이 책에 나오는 그림처럼, 자연이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느낌을 풍기는, 특히 화려하고 세밀한 색체로 분명한 느낌을 주는 일러스트레이션 풍의 그림을 좋아한 모양이다
특히 빛을 극적으로 이용해 포커스를 맞춘 카라밧지오의 그림은 그 강렬한 대비 효과 때문에 볼 때마다 깊은 인상을 받는데 현대적인 의미의 일러스트레이션과도 통하는 느낌이다
또 마지막에 언급된 클림트의 장식 미술도 현대적인 삽화 등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화가는 보쉬와 아르침볼디다
보쉬는 르네상스 시대 화가로써는 드물게 환상적인 그림을 선보여 독특한 화가라고 기억하고 있었지만, 아르침볼디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
보쉬의 그림을 보면 꼭 달리나 에른스트 같은 초현실주의자의 신비로운 그림을 보는 느낌이 드는데, 아르침볼디의 작품은 이보다 더하다
저자의 말대로 도저히 500년 전의 그림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기괴하고 상상력이 돋보이는 뛰어난 그림이다
말 그대로 초현실적이다
르네상스 시대라면 라파엘로나 다 빈치처럼 대상을 마치 사진 찍듯 똑같이 묘사하는 사실주의 그림이 유행했던 시대라고 알고 있는데, 또 기껏해야 성상화나 초상화 등만 있는 줄 알았는데 보쉬와 아르침볼디 같은 놀라운 상상력의 화가들도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이 놀랍다
그만큼 열린 사회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초상화를 꽃이나 야채 등으로 표현한 아르침볼디의 상상력이 놀랍다
그러고 보면 예술가란 바로 그 창조성에 핵심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일반인들이 지극히 평범하고 전형적인 사고 속에 갇혀 있을 때 또다른 시대를 예고하는 독특하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 주는 게 바로 예술가가 아닐까?
그렇다면 자연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창의성, 상상력에 있는지도 모른다

 

16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의 대명사인 브뤼겔의 그림도 뜯어 볼수록 놀랍다
특히 네덜란드 속담이라는 주제 아래, 120여 가지의 속담들을 하나의 화폭에 담은 그림은 그 정밀함과 세세함에 그리고 신선한 아이디어에 놀라게 된다
흔히 알고 있는 속담들, 이를테면 돼지에게 꽃을 주는 것은 가치없는 사람에게 귀한 것을 준다를 의미하고, 여우에게 목이 긴 물병을 대접한 두루미 이야기, 악마에게 자신의 속내를 고백하는 어리석은 인간 등등 우화나 격언 같은 것을 한 컷의 그림으로 그려낸 솜씨가 놀랍다
어찌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지 꼼꼼하게 그림을 읽지 않으면 제대로 그림을 볼 수가 없다
저자 역시 당시 네덜란드에 유행하던 격언들이 무엇이었는지를 학자들의 연구 덕에 알게 됐다고 한다

 

호가드의 연작 그림도 재밌다
이 사람은 호가드법이라는 저작권법을 처음으로 도입했을 만큼, 예술의 상업적 가치에 민감했던 인물이다
자신의 초상화를 세익스피어, 밀턴 등 유명 작가들의 책 위에 올려 놓는 그림을 그릴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던 화가, 그러고 보니 화가의 위상과 자존심을 끌어 올리는데 애를 쓴 뒤러가 생각난다
결국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높힐 때 올라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은 아들이 흥청망청 돈을 쓴 후 결국은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다는 내용을 여섯 점의 그림으로 선보인 호가드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놀랍다
당시 풍속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 그림도 마치 책을 읽듯 꼼꼼하게 살펴 봐야 한다

 

책의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바흐로 돌아가자!!
비틀즈가 외친 구호라고 한다
결국 고전이란 현대인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주는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명작은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이리라
가장 현대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이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밝혀 낸 저자의 솜씨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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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스타일
패밀러 클라크 키어우 지음, 정연희·정인희 옮김 / 푸른솔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사실 나는 이 여자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신비화 되고 포장됐다는 느낌 때문에 오히려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을 뿐, 이러니 저러니 논평할 만한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책을 읽은 것은 우연히 본 리뷰가 좋아서다
다만 이런 호기심은 있다
특별하게 사회적인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닌데 대체 이 여자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는 것일까?
별다른 업적 없이도 여전히 60년대 낭만주의의 대명사처럼 기억되는 전혜린을 대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혹은 스타일이 왜 중요한가를 알게 된 기분이다
평소 나는 베블런의 "현시적 소비" 를 우습게 알아 온 사람이기 때문에 명품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이나 열광을 어리석게 생각해 왔다
과연 그만큼의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매우 의문스럽다
특히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한 달 동안 라면으로 때웠다는 말을 기자에게 자랑스럽게 하는 어떤 여대생의 인터뷰를 보고는, 명품에 대한 열광은 곧 자신이 얼마나 허영덩어리인가를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그런데 요즘은 단순히 명품이나 사치스러운 것에 목을 매는 것은 매우 촌스럽고 격이 떨어지는 행동이고, 우아하고 세련된 스타일에 대한 갈망은 그것과 구별되는 어떤 것임을 느끼게 된다
이 책도 간단히 요약하자면 바로 그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다
왜 우리가 60년대 대통령의 미망인에게 아직도 열광하는가?
재키는 죽는 날까지도 파파라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파파라치를 고소할 만큼 알러지 반응을 보인 그녀지만, 결국 그 기자가 찍은 사진들이 그녀의 사후에도 여전히 그녀를 신비롭게 포장해 주고, 사람들의 뇌리에 아름답게 각인시켜 놓고 있다
공식 석상이 아닌,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찍은 사진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녀가 빛나는 것 같다

 

재키는 미국의 여왕 혹은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와 같은 언론의 호칭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녀가 추구하는 단어는 "타고난 귀족"이었다
돈을 줘도 쉽게 살 수 없는, 권력이나 학식이 높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우아한 안목과 스타일, 혹은 품격 같은 내면의 특성들 말이다
이것은 나 역시 간절히 원하는 것이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우아함 내지는 품격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스타일은 어느 정도 옷과 액세서리로 규정될 수 밖에 없고, 패션의 선두 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경제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재키가 케네디 사망 이후 세계 제1의 부자인 오나시스에게 시집간 것도 어느 정도는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음을 책의 저자도 인정하고 있다

 

책의 사진들은 흑백과 컬러가 섞어져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죽기 직전의 모습까지 잘 보여 주고 있다
젊은 대통령과 아름답고 세련된 퍼스트 레이디로써 세계 각국을 순방하던 사진들은 마치 인생의 절정인양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든다
존 F 케네디 주니어를 임신한 몸으로 남편의 선거 유세장을 따라다니던 사진도 기억에 남는다
언니 못지 않은 스타일리스트였던 동생 리의 사진도 흥미를 유발시킨다
말년에 엄마보다 훨씬 커 버린 아들 케네디 주니어와 길을 걸어가며 대화하는 사진도 좋았다
그녀가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파파라치 론 게일러가 찍은 사진들이지만, 그 덕분에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비호지킨성 림프종이라는 골수암으로 64세의 짧은 생을 마친 재키
크리스마스 때 진단받은 후 겨우 5개월을 투병한 후 죽은 걸 보면 진행이 매우 빨랐던 모양이다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만큼 암 진단이 더욱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했던 게 다 무슨 소용이죠? 라고 주치의에게 했다는 말은, 결국 죽음이란 하늘이 정해 주는 게 아닌가 싶은 허망한 생각이 든다
몇년 후 아들 역시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니 그나마 그 죽음을 보지 않은 게 유일한 위안이라고 해야 할까?
죽기 전에도 다이아몬드 상인인 모리스 탬플런과 사귀었던 걸 보면 마지막까지도 퍽 매력적인 여인이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재클린은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다이애나 역시 그녀를 많이 모방했다고 한다
찰스 왕세자 보다 왕세자빈을 더 지지하는 영국 국민들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더구나 자기 승마 조교와 바람까지 피웠는데도)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그들은 아름답고 세련된 그녀들을 동경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스타를 숭배하듯, 연예계의 스타들보다 훨씬 우아하고 격조있는 그녀들을 스타로 추앙한 느낌이다
재키도 그렇지만 다이애나 역시 아름답고 날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영국인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재키가 늙은 외국인 대신, 젊고 부유한 미국인과 결혼했다면 미국인들은 여전히 그녀를 숭배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대중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자신들의 우상이 무려 30여 살이나 많은 늙고 뻔뻔한 그리스 노인에게 시집간다는 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나시스로써는 마치 미국의 상징이라도 얻는 것인양 승리감에 불탔을 것이고

 

둘의 부부 관계는 처음에는 재키의 왕성한 쇼핑욕을 장려할 만큼 좋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밀려드는 청구서에 짜증을 냈고, 급기야 죽기 직전에는 이혼 위기까지 갔다고 한다
재밌는 건 이 노인네가 헌신짝처럼 차버린 마리아 칼라스와 죽기 1년 전에 다시 연애를 재개했다는 점이다
13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남겼다고 하는데 과연 재키에게는 얼마나 상속이 갔을지 궁금하다
재키가 죽기 전 남긴 재산은 2억 달러라고 한 걸 보면, 그다지 많이 분배한 것 같지는 않다

 

글로리아 스터넘이 쓴 책에서 재키가 언론의 관심에 휘둘리지 않고 오나시스의 사후에도 꿋꿋히 자기 길을 간 것을 높히 평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어쩌면 재키가 여전히 평가의 대상이 되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은, 편집자로써의 후반부 삶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른 한 살에 이미 너무나 유명해져 버린 이 세계적인 뉴스 메이커가 선박왕과의 재혼과 죽음을 거치면서 호사가들의 입방정에 함몰되지 않고 편집자로서 자기 길을 용감하게 걸어간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두 남자가 죽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재클린이라는 개인의 능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말이 이해된다

 

사진을 보면 그녀가 대단한 미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키는 170cm로 작지 않고 비교적 날씬하지만, 머리 사이즈가 커서 모자를 만들 때 남자 모델에게 씌웠다고 하고 얼굴은 네모형의 각진 스타일이다
컬러 사진을 보니, 주근깨도 꽤 많다
그렇지만 항상 생긋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고, 오드리 헵번 스타일로 짧게 머리를 자른 신혼 초의 사진들은 정말 매혹적이다
그녀가 열심히 추구한 그 스타일이라는 것에 대해 나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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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0-06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그들이 말하는 "Blue blood" 가 있다면 품격있는 내면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스노비즘과는 물론 구분되야죠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 젊은예술가의 세계기행 2
박훈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별 생각없이 집어 든 책인데 퍽 재밌게 읽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는 말이 생각나는 책이다
나는 정해진 길 정해진 방법으로만 살아 왔다
서른 살의 삶,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 번도 내가 스스로 원해서 개척한 길은 없었던 것 같다
대학을 가는 것은 물론 직장을 구하는 것까지 다 정해진 수순대로 그대로 쭉 걸어 왔다
가장 전형적인 인생을 살아 온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당혹감과 함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 내지는 약간의 회한이랄까...

내가 원하는 길은 역사학자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역사책 읽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렇지만 아빠가 원하는대로 이과에 진학했고 지긋지긋한 수학과 물리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세계사나 국사 시간에나 수업을 들었을까, 나머지 시간에는 잠만 잤던 것 같다
자율학습 시간에는 열심히 글을 쓰고, 수업 시간에는 자거나 책을 읽었다
그나마 대학에 무사히 갈 수 있었던 게 감사할 정도로 공부와 참 인연이 없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시절은 정말 행복하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좋다
어떤 사람들은 고3을 지겹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내 삶을 돌아보자면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내 인생의 절정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정말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비록 원하는 대학은 못 갔지만 (사실 특별히 원하는 대학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쨌든 난 고3 때가 가장 즐거웠다
어쩌면 남들이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은, 나처럼 후회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비록 정규교육은 끝마치지 못했으나 이 사람은 후회가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출로 사회에 발을 내딛었지만, 지나온 삶에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정말 행복하고 즐겁게 보낸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참 따뜻했다
정해진 길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끊임없이 기준을 만들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질책하고 마치 지진아라도 되는 양 한심하게 쳐다본다
또 그 기준을 초과하면 지나치게 떠받들어 당사자로 하여금 과도한 자부심을 갖도록 만든다
획일적인 사회, 하나 뿐인 기준, 정해진 행로, 대한민국 사회가 개인에게 주는 부담감은 참 크다

한 면은 글로, 한 면은 저자의 그림으로 구성돼서 읽기 편하고 보는 즐거움이 있다
첫 장을 넘길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솜씨에 놀랬는데 "사디" 라는 디자인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선생님이라고 한다
한 번도 초상화를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문득 거리의 화가들에게 그림을 부탁하고 싶어진다
호주와 영국에서 1년 넘게 초상화를 그렸다니, 모험심이 대단하다
나 같으면 절대로 시도조차 못했을 일이다
비단 예술계가 아니라서기 보다, 나는 그럴 베짱이 없다
그러고 보면 예술가들은 남다른 기질과 열정이 있는 족속들이다
또 정형화 되지 않은 사고와 스타일이 일반인과 다른, 개성강한 독특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리라
잘 생긴 얼굴은 아닌데 인상이 강하고 선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왠지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다
저자도 남들과 잘 지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썼다
이해되는 대목이다

왜 제목이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인가 했더니 부모님에게 돈 타서 방학 기간 동안 배낭여행 하는 그런 부르주아 여행기가 아니라, 유럽에서 1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체류하면서 직접 돈을 벌고 그림을 그리는, 가난하고 자발적인 여행을 했기 때문에 붙인 이름 같다
또 저자의 삶이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자격 미달처럼 보여서일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당당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적어도 고등학교 1학년 중퇴는 대한민국 같은 학벌 사회에서 쉽지 않은 이력이다
잘 나가는 대단한 경력을 가진 사람의 글이 아니라서일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는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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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10-0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표류라는 책도 비슷한 사람들을 다루었습니다

marine 2006-10-05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청춘표류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훨씬 더 언더죠^^
 
햄버거 힐 - [초특가판]
존 어빈 감독, 캔디 클라크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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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문에 궁금했던 영화다
1987년작이니까 벌써 20년 전 영화
까마득하다
베트남 전쟁 영화인데 집중해서 보지는 못했다

몇가지 느낀 점들

 

1. 생과 사를 넘나드는 군인에게 온 애인의 편지
너에게 더 이상 편지하지 않겠다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도덕 한 거라고 비난한다...
전쟁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전선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군인에게, 과연 부도덕하다는 표현을, 그것도 전쟁터에서 수십만리 떨어져 있는 미국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일까?
평화 시위는 좋지만, 또 그 대의명분에는 대찬성이지만 공격해야 할 대상을 잘 가려서 해야 한다
전선에 끌려 온 군인들도 대부분이 징병된 사람들이다
왜 남의 나라 땅에서 피 흘리고 죽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도덕이나 비난 같은 건 정치인들에게 해야지 않을까?

 

2. 군인들이 어느 정도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해된다

바로 옆에서 동료가 죽어가는데 태연하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강심장이 얼마나 될까?
총알이 쏟아지는 전장터를 돌격이라는 말 한마디에 무조건 뛰어 나가야 하는 군대라는 곳에 있다 보면, 또 그 곳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느 정도는 감수성이 무뎌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전쟁영화를 보면서 확실히 느낀다
사실 군대에서 담배 지급하는 것도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영화 보면서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게 됐다
성욕은 어쩔 수 없이 금지한다지만 (일본군 같은 개념없는 군대는 위안부라는 끔찍한 제도도 만들어냈지만) 스트레스를 발산시키고 긴장을 누그러뜨릴 무언가가 꼭 필요할 것이다
목에 걸린 군번줄이 소용없는 상황, 즉 목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 버렸기 때문에 신분을 알기 위해서는 발에다가 그것도 양쪽발에 신분증을 착용시켜야 한다는 울부짖음이 너무나 비참하고 사실적으로 와 닿았다

 

3. 흑백간의 갈등

한국은 비교적 단일민족의 틀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인종 갈등은 꽤 낯설다
영화는 흑인들이 최전선에 배치되고 후방에 갈 수 없음을 몇 차례 드러낸다
미국 영화를 보면 흑인 여검사가 자주 등장하길래 똑똑한 흑인들이 법조계로 많이 진출하나 보다 생각한 적이 있는데, 사실은 인종차별에 대한 시비가 붙지 않도록 일부러 설정하는 것으로써 흑인 검사는 드물고 더구나 흑인 여검사는 매우 드물다는 평론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영화의 공정함을 위해 의례껏 한 두 장면은 꼭 흑백갈등 문제를 집어 넣는 느낌이 든다

 

4. 유머라는 방어 기제

학교 다닐 때 성숙한 방어기제로써 유머, 승화, 이타주의 등이 있다고 배웠다
왜 유머가 성숙한 방어기제인지 약간 의아했는데 영화에서 잘 보여준다
이제 막 입대한 신병이 처참하게 죽자 그를 후방에 남겨 두지 못한 군의관이 자책감 때문에 괴로워 하다가 상사와 시비가 붙는다
군의관은 흑인이고 상사는 백인이라 자칫 흑백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다른 흑인 병사가 군의관의 어깨를 툭 치면서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하면서 리듬을 실어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군의관도 진정이 되면서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곧 부대원들이 다같이 그 소절을 흥얼거린다
폭발 직전에 한 마디 유머가 take it easy를 만든 것이다

 

5.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막 부대에 온 신임 중위의 대사였다

이 곳을 떠나면 다시는 오지 않겠다
깨끗한 화장실, 뜨거운 샤워, 핏자, 겨자 친 핫도그...
너무나 그립다...
일상에서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전쟁터에서는 사치가 되버린 현실이 얼마나 막막하고 답답했을까?
특히 깨끗한 화장실이 그립다는 말에서 다시금 전쟁이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짓밟는지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포로학대나 점령지의 강간 등 끔찍한 범죄도 평범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전쟁이라는 무자비한 상황에 책임이 있을 것이다

 

전쟁 영웅 따위는 보여 주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래도 병사의 입장에서 그려낸 영화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은 평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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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미친 남자 - 미친 급 남자시리즈
정종화 지음 / 맑은소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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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아빠가 열심히 옛날 영화들을 수집하고 있기 때문에 덩달아 관심이 생긴다
처음에는 시간 때우기로 몇 편 보기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이게 나름대로 맛이 있다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겠지만, 확실히 시간의 흐름을 이겨낸 작품들은 분명히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보통 작품 제작 연도가 1950년대부터 시작하니까 무려 50여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영화들이다
과연 지금 내가 보는 영화들 중 50년 후에도 DVD로 팔릴 수 있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될지 궁금하다

 

이 책은 아빠처럼 고전 DVD를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딱 어울릴 책이다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를 즐겁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도 굉장히 흥미롭게 볼 것이다
나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를 읽으면서 대체 이렇게까지 영화에 미친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현실에 등장한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저자의 영화 사랑은 놀랍다
특히 앞부분에 나오는 어린 시절 추억들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유머스러운 표현들이 많아 한참이나 웃었다
그렇지만 사실 슬픈 내용들도 많다
6.25 피난 시절 부산 극장에서 거적을 깔고 본 역마차, 난방도 되지 않은 추운 겨울에 몰래 숨어 들어가 봤다는 7년만의 외출, 저녁 지어 먹을 쌀을 팔아다 표를 샀다는 얘기, 전차값으로 영화를 보고 집까지 걸어오면서도 가슴이 터질 듯하게 행복했다는 얘기 등등 국민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 어린 학생의 영화 사랑과 어울어져 약간은 눈물이 날듯한 웃음을 준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개봉이 안 된 영화도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고, 굳이 영화잡지가 아니라 할지라도 인터넷을 통해 해외 싸이트에 접속하면 좋아하는 배우와 영화에 대한 정보가 널려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TV에서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를 상영해 준 적이 있다
아마도 개봉한 적이 없는 영화였던 것 같은데 인상깊게 본 후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으려고 하니까 검색이 되질 않아 구글에서 직접 영화 제목으로 치고 검색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 영화 잡지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에 관한 기사를 많이 읽게 됐다
내친 김에 한국 기사들도 같이 검색을 했는데, 어떤 영화 싸이트에서, 미국에서 쓴 기사를 그대로 번역해서 올려 놓은 걸 발견했다
정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번역을 해 놓고서, 앞뒤 소개말 등만 첨부하여 하나의 기사를 만들어 자기 이름으로 버젓히 올린 것이다
나름대로 유명한 영화 잡지 싸이트였기 때문에 정말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다
이런 식으로 인용한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면 결국 영어 못하는 사람만 바보 되는 거 아닌가 싶어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진 계기가 됐었다 (그렇다고 진짜 열심히 한 건 아니고 각오만...)

 

그러고 보면 책을 읽다가 설명이 좀 부족한 것 같아 구글에서 기사 검색을 할 때, 방금 읽은 책에서 나온 대목이 그대로 영어로 쓰여진 것을 몇 번 본 일이 있다
출처도 밝히지 않고서 번역만 해 놓고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이다
저자 생각에는 논문 인용 같은 거창한 일이 아니니까 별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누가 그런 미국 인터넷 싸이트까지 들어가서 보겠냐고 안일하게 생각했을까?
내 성격이 꼼꼼한 게 못되서 일일이 비교대조 하지는 않지만, 간혹 이렇게 출처를 밝히지 않고 외국 기사나 글을 인용한 걸 발견하면 정말 기분이 확 나빠진다
영어 못하는 사람만 바보 아닌가 싶어서 왠지 속은 기분이 든다

 

하여간 그건 그렇고, 이 책은 어린 시절 영화에 열광한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글들이 많다
단 저자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나 같은 삼심 대는 모르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명작이라고 입에 오르내리는 영화들이라 직접 보지는 않았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특히 김지미와 엄앵란이 경쟁 관계였다거나, 김승호, 김진규, 신성일 등 유명 배우들의 일화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잉그리드 버그만이나 에바 가드너, 오드리 헵번, 리즈 테일러 등의 흑백사진도 책의 보너스다
흑백이라 그런지 더욱 우아하고 기품있고 정말 여신 같은 분위기다

 

아쉬운 점은 여러 영화를 다루다 보니 본격적인 영화 해설은 못 된다는 점이다
가벼운 영화 에세이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선별해서 한 10편 내외로 자세히 설명하는 그런 책이 있으면 좋겠다
두첸의 "세계명화비밀"처럼 범위를 한정시켜 깊이있게 설명하는 책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추천 좀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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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10-03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하시는 책은 아닌듯하지만, timeout film에서 매년 웬갖 종류의 영화를 다 망라한 책이 나온답니다. 아마존 uk 에서 살 수 있는데, 역시나 본격적인 영화해설은 못되겠지만, 레퍼런스용으로는 최고입니다.

marine 2006-10-03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존uk는 한 번도 안 들어가 봤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거친아이 2006-10-03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많이 보시고 관심도 많으시나봐요. 하긴 영화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
'흐르는 강물처럼'을 한 번 봐야 할 텐데요. 좋을 거 같아요.

marine 2006-10-0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영화를 좋아해요 "흐르는 강물처럼" 은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좀 달랐어요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그런데 좀 지루하기도 한) 영화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