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피터 게더스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노튼과 피터의 만남을 담은 첫 권을 읽은 뒤, 다음 권은 뻔한 얘기의 반복일 것 같아 마지막 권을 먼저 집어 들었는데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주제가 담겨져 있어 많은 생각을 했다
애완동물이 죽어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한 마리 더 사면 되죠"
그 말은 꼭 딸이 죽은 어머니에게 한 명 더 낳으시죠, 이렇게 말하는 것과 똑같다
물건은 대체될 수 있을지 몰라도 (물건 역시 내가 애정을 쏟아 부으면 그 때부터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한 것이 된다) 생명을 가진 동물은 절대로 절대로 대체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면, 우리는 굳이 그 고생을 해 가며 애완동물 따위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노튼은 1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개나 고양이의 나이를 사람 나이로 환산하려면 고양이 나이*4+16을 하면 된다고 한다
그 공식에 따르면 노튼은 80세니까 적정 수명을 다 누리고 간 셈이다
물론 자연사 했으면 좋았으련만 간암으로 1년 정도 투병 생활을 하다가 갔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던 피터씨에게 고양이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 고양이가 보통 고양이인가?
두 권의 책까지 쓰게 만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스타 고양이가 아닌가
실제로 노튼이 죽었을 때 뉴욕 타임즈는 부고 기사까지 냈다고 한다
노튼의 마지막을 돌본 수의사 다이안씨는, 애완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유일한 단점은, 인간 보다 먼저 죽는 것이라고 하지만 난 반대로 생각한다
수명이 사람만큼 길다면, 즉 내가 애완동물 보다 먼저 죽을 수 있다면 남겨질 동물 때문에 쉽게 눈을 못 감을 것 같다
마치 아직 어린 자식을 두고 눈을 감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처럼 말이다
난 애완동물이 충분히 내 보살핌 속에서 평생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대체의학에 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사람에게만 대체의학이 있는 줄 알았더니, 동물들에게도 대체수의학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역시 미국은 대단하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연식을 먹이고 약초 등으로 치료를 하는 것 같다
노튼이 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후, 피터는 암 전문의에게 (고양이 암 전문의라니! 미국 수의학의 세분화에 깜짝 놀랬다) 화학요법을 받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대체의학자에게 약초 등으로 치료를 받게 할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일반 수의사가 고양이에게 불친절 하고 사무적인 반면, 대체의학자는 매우 친절하고 정서적으로 교류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나는 늘 왜 환자들이 입증되지 않는 위험한 이론에 자신을 맡기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약간은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히 질병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다
질병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약해진 몸과 마음을 함께 추스려 줄, 인간적인 관심을 보여 주는, 소통이 가능한 치료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한낱 키우는 고양이에게만 불친절 해도 화가 나는데, 자신의 몸을 다루는 의사가 자신을 사람이 아닌, 조치를 가해야 하는, 고장난 자동차 쯤으로 생각한다면 과연 누가 진료를 받고 싶겠는가?
치료의 효과라는 효율성을 떠나서 의사들이 환자에게 보다 인간적인 관심을 가져 줄 필요가 있다
나는 대체의학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들이 환자에게 보이는 전인적인 관점, 스스로 병을 이겨내게 도와 준다는, 환자가 주체가 되게 하는 인간적인 관점에 대해서는 깊이 동의하는 바다
피터가 대체의학 얘기를 꺼내자 의사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암 전문의 같은 이는, 들을 필요도 없는 미신이라고 일축한 반면, 노튼을 어린 시절부터 돌봐 온 트레츠키나 다이안 같은 이는 그런 방법도 있겠네요 하면서 관심을 보인다
누가 더 성숙한 의사인지는 금방 알 것이다
책에서 관심을 가지고 본 또 하나의 이야기는 피터의 결혼관이다
독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요즘, 피터의 독신 라이프는 관심을 갖게 만든다
1권을 출판한 후, 피터는 항의 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어떻게 잠자리를 하느냐는 것이다
확실히 미국은 유럽과 또다른 느낌이다
청교도가 여전히 위세를 떨친다고 하던데, 새삼 확인한 기분이 든다
1권에서 진실한 사랑의 단계에 접어든 피터와 재니스는, 그러나 노튼이 죽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애인 관계다
그렇다고 동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집에서 각자 생활을 하면서 연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스위티 홈을 이루는 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도 다양한 형태의 삶을 인정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터와 재니스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길 빈다
내가 키우는 똘이는 이제 겨우 세 살이기 때문에 아직은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마지막 날이 올 것이다
피터처럼 책으로 낼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똘이와의 행복한 시간들을 조금씩 기록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언젠가는 우리 식구 곁을 떠날 똘이,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오랜 시간 함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