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재밌는 영화
특히 마지막에 섹스를 거부하던 브릭이 메기에게 한 말 "lock the door" 진짜, 죽음이다!!
문 잠그고 침대로 와!! 윽, 너무 멋지다
할 말이 굉장히 많은 영화였다
1.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폴 뉴먼을 처음 봤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미인의 대명사라는 말만 들었을 뿐 한 번도 그녀가 나오는 영화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폴 뉴먼 역시 젊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찍은 "스팅" 에서 나이든 아저씨 모습 밖에 못 봤다
두 사람, 정말 선남선녀다
특히 엘리자베스 테일러, 어쩜 그렇게 날씬한지, 지금 뚱뚱한 할머니 모습과 매치가 안 된다
푸른 눈, 앙칼진, 그러나 너무 매력적인, 말 그대로 고양이 같은 그녀, 정말 인상적이다
폴 뉴먼 역시 몸매가 너무 좋다
다른 가족들은 마치 이 두 배우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보여 주려고 일부러 못생긴 배우들을 캐스팅 한 것처럼, 너무 비교된다
2. 브릭의 아버지는 말기 암 환자인데,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의사가 몰핀을 권한다
그러자 아내 아이다와 아버지 역시, 몰핀은 감각을 마비시킨다고 거부한다
그러면서 담배를 피운다
담배 역시 통증을 잊기 위한 일종의 중독성 물질인데 말이다
사람들은 진통제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마약처럼 진통제를 맞게 되면 나중에는 진통제 없이 못 참을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물질은 복용할수록 더 많은 양을 써야 하는 것도 있지만, 몰핀이나 일반 진통제(NSAID)는 많이 쓴다고 해서 양을 늘려야 하는 종류가 아니다
그런데도 막연하게 진통제 남용이나 중독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NSAID가 addict 되는 종류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생리통이 심해도 절대 약을 먹지 않는다
심리적인 저항감이 생각보다 크다
3. 브릭은 사업가인 아버지가 가족을 소홀히 여긴다고 오해하고, 대신 친구 스키퍼를 의지하면서 성장한다
브릭이 풋볼 영웅인데 비해, 스키퍼는 아무도 스카웃 하지 않는 형편없는 선수였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아버지 덕분에, 브릭은 이 친구를 위하여 아예 프로 축구팀을 창단한다
아내 메기는 제발 스키퍼로부터 벗어나라고 간청하지만, 브릭은 아무런 수익도 내지 못하는 미식축구팀을, 오직 친구 스키퍼를 위해 경영한다
스키퍼에 대한 의존성 때문에 메기와의 관계는 계속 벌어진다
동성애 관계가 아니면서도 정신적으로 남자끼리, 부부보다 더 의존할 수 있는지 좀 의외였다
여자들이 남편 이상으로 친구를 의존하는 경우는 봤어도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도 소개된 바 있다) 남자가 아내 대신 친구를 의존하는 건 좀 의외였다
더구나 스키퍼는 브릭보다 훨씬 능력이 떨어지는 친구인데 그 친구의 직장을 위해 프로 축구팀까지 창단해 주다니!!
동성애 관계가 아닌 순수한 우정으로 그 정도까지 마음을 주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게 좀 신기하다
4. 메기는 스키퍼가 브릭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브릭이 없는 틈에 그에게 떠나라고 소리친다
경기에 패하고 술에 취해 있던 스키퍼는 오히려 메기를 유혹한다
이 때 메기는 잠깐 위험한 생각을 한다
차라리 스키퍼와 하룻밤을 자면 브릭이 스키퍼로부터 벗어나지 않을까?
그렇지만 오히려 브릭이 스키퍼가 아닌 자신을 버린다면?
결국 두려움 때문에 자리를 피했지만, 그 날 스키퍼는 자살을 하고 브릭은 메기가 그를 유혹해 잠자리를 가진 후 괴로워 자살했다고 오해를 한다
그의 죽음 이후 브릭은 알콜 중독자가 되어 인생을 포기하고, 메기를 정신적으로 학대한다
아버지는 차라리 이혼하라고 하지만 브릭은 거부한다
당연하다, 이혼하면 더 이상 학대할 수가 없으니까
만약 아내와 친구가 함께 잤다면, 아내를 증오하는 건 물론이고 그 친구까지 함께 미워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닐까?
그런데 브릭은 스키퍼가 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에 대한 믿음이 워낙 강하기 때문인지 오히려 메기가 그를 유혹해 친구를 파멸시켰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친구가 자신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는 건지도 모른다
5. 진실을 그 다음에 밝혀진다
아버지와의 격한 대립 끝에 결국 브릭은 실토를 하고 만다
스키퍼가 죽은 것은 메기와의 잠자리에 대한 괴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그 따위 일로 죽을 만큼 도덕적인 남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항상 브릭에게 심리적인 부담감을 갖고 있었던 스키퍼는, 브릭 없이 혼자 뛴 경기에서 47 대 0 이라는 기막힌 점수로 패한 뒤, 브릭이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스키퍼는 친구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혹은 위로를 구하기 위해 계속 브릭에게 전화를 했으나, 스키퍼에게 지쳐 있었던 브릭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브릭 역시 팀에 아무 도움도 못 되고 재정적인 부담감만 더하는 실력없는 축구 선수 스키퍼의 뒤를 봐 주는데 지쳐 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날 밤 브릭은 계속 울려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스키퍼는 시체로 발견된다
절박한 도움의 손길을 거부했던 브릭은, 친구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그 사실을 직면하는 게 너무 두려운 나머지, 메기가 그를 죽였다는 식으로 사실을 바꿔서 받아들인다
자신이 스키퍼를 죽였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 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무의식 중에 메기가 그를 유혹해 자살했다는 식으로 변형을 시켜야 그나마 마음이 편했을 것이고, 자신을 속이기 위해 술에 의존했던 것이다
일종의 투사라고 할까?
자기 때문에 스키퍼가 죽었는데 메기에게, 너 때문에 죽었다고 비난함으로써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다
학교에서 배운 투사가 매우 효율적으로 드러난다
6. 아버지와 브릭의 갈등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낸 아버지는, 자수성가 해서 이룬 부를 아들이 망칠까 봐 노심초사 한다
가난했기 때문에 수치스러운 기억을 가진 아버지는, 아들의 여린 감수성을 나약함으로 치부하고 성장을 제일로 생각한다
아내에게도 비싼 물건을 사 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아내 아이다는 비록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아니지만,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만족한다
그러나 여린 감수성을 지닌 브릭은, 아버지의 강력한 자기확신에 소외감을 느낀다
아마 그래서 친구 스키퍼에게 마음을 주고 의지하면서 성장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부랑자였던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또 자수성가한 사람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이미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브릭에게 아버지의 성장 제일 방식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의 비난대로 브릭은 배고픔을 몰라 팔자좋은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니가 가난을 알아? 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내 돈으로 잘 입고 잘 먹고 살아 온 니가 대체 배고픔이 뭔 줄이나 아느냐고 아버지는 비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브릭의 아내 메기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낸 메기는, 알콜 중독자가 되어 재산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남편 브릭이 한심해 보인다
그 비싼 술 계속 마시고 싶으면 돈이 있어야 할 거라고 비아냥 거린다
브릭은 돈 밖에 모르는 아내와 아버지가 혐오스럽다
누구를 탓할 수는 없는 문제 같다
사람은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사물을 본다
가난을 뼈저리게 느꼈던 아버지와 아내로써는 돈이 없으면 굶는다는 것이 모든 가치의 척도일 것이고, 반대로 풍요롭게 성장한 브릭에게 돈은 절대 가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돈을 1순위로 생각하는 아내와 아버지가 혐오스러울 것이다
7.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고 술 뒤에 숨지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는 일리가 있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든 안 하든 술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는 브릭의 태도는 분명히 잘못 됐다
아버지의 표현대로 그것은 회피에 불과하다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술에 의존해서 도망치려는 자세는, 절대로 옳지 않다
아버지와 아내 메기는 브릭의 바로 그런 회피를 비난한 것이다
허위 의식에서 벗어나라는 아버지의 일갈이 기억에 남는다
브릭은 친구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을 아내를 학대하고 술에 절어 사는 식으로 그저 징징대고 있는을 뿐이다
8. 결국 이 두 부자는 아버지의 말기 암 소식을 계기로 화해한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상처를, 또 친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직시함으로써 이겨낸 것인지도 모른다
브릭이 아내 메기와 섹스를 하는 걸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제 브릭은, 메기가 스키퍼를 유혹해서 그가 자살한 게 아니고, 자신이 스키퍼의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또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으로부터도 벗어난 것이다
아버지가 오직 돈 밖에 몰라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상처도 스스로 치유했음이 분명하다
두 부자는 화해했으니까
단지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 관계 뿐이었다면 훨씬 더 평면적인 영화가 됐을 것 같다
거기다가 술에 젖어 낙오자가 되버린 브릭의 심리 기제까지 덧붙임으로써 매우 입체적인 영화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투사라는 방어 기제를 굉장히 잘 표현한 영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폴 뉴면의 아름답던 젊은 시절을 본 것도 큰 소득이다
"뜨거운 양철 지붕"이란 남편의 친구를 유혹해서 그를 자살로 몰고 갔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메기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그 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는 바로, 눈부시게 매력적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다
고양이라는 영화 속 표현이 정말 딱 맞을 정도로 앙칼지진 그러나 너무 매혹적인 여배우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