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역사 1 -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읽은 신라와 신라인 이야기
이종욱 지음 / 김영사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종욱씨가 쓴 "고구려의 역사"를 읽은 후 저자의 의견에 많이 공감했기 때문에 다시 그가 쓴 "신라의 역사" 를 읽게 됐다
고대사는 워낙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가설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많아 단정적으로 말하기 참 어렵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저자의 의견처럼 사료를 신뢰해야 한다고 본다
왕국 형성 과정을 그린 삼국사기의 초기 자료를 부정한다면,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료들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화랑세기 역시 위작 논의가 끊이지 않지만, 연구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저자는 현 국사학계에서 실증사학의 일부로써 신뢰성을 부인하고 있는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 부분을 받아들인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 어떤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주장에 수긍을 하게 된다
그만큼 주장이 논리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현 국사학계의 입장은 노태돈 교수의 부체제설을 받아들여 원삼국 시대를 모두 이 학설로 설명한다
신라의 경우, 6개의 부가 있고 혁거세는 그 중 가장 힘이 센 부의 수장이었다는 것이다
박, 석, 김 이 세 씨족이 힘이 셌기 때문에 번갈아 가면서 6개 부의 대표격인 이사금 등의 위치를 차지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부체제설은 왕권을 부인하고 연맹체적 성격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이종욱씨의 입장은, 혁거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이미 6개의 촌락보다 확실하게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는 쪽이다
6개 촌의 촌주들이 모여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를 왕으로 세운 것을 봐도 단순히 촌의 대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6개 촌의 구성원이 아닌 혁거세는 어디에서 왔을까?
저자는 혁거세를 이주민 집단의 대표로 생각한다
후에 왕위에 오른 석탈해나 김알지 역시 우월한 무기와 조직을 가진 이주민 집단으로써 혁거세 집단과의 혼인 동맹 등을 통해 번갈아 가며 경상북도 일대의 사로 6촌을 지배했다고 본다
사로 6촌의 자체적 공동체 설에 대하여, 이주민 집단의 지배라는 정반대 입장을 보인 것이다
저자는 이주민 집단을, 연의 공격으로 국토를 빼앗긴 고조선 세력의 남하라고 생각한다
위만조선이 성립된 후 남하한 준왕의 무리라고도 보고, 부여와 고구려 세력이 백제를 세웠듯, 사로국으로도 내려왔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로 고분총에서 발견되는 고조선 시대의 표지 유물인 비파형 동검을 든다
기존 세력을 제압하고 소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주민 집단이 철제 무기와 농기구 등으로 확실하게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로 6촌 시대를 거쳐, 이주민의 유입 후 소국이 되고, 다시 주변 소국과 경쟁하는 소국연맹 단계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소국을 병합해 신라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6촌을 6부로 생각하고 그 대표들 중 하나가 왕으로 선출됐다는 부체제설과 전혀 다른 발상이다
특히 저자는 소국 시대를 소국연맹과 소국병합의 두 단계로 구분하는데 가야의 경우 멸망할 때까지 소국연맹 단계였던 것에 비해, 신라는 이미 3세기 무렵 소국병합의 중앙집권적 국가가 됐다고 주장한다
신라의 왕권이 연맹체의 수장에 불과한 가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결과적으로 가야를 복속시켰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미 1세기부터 사로국의 주변 소국병합이 시작됐고 3세기 중반에 이르면 거의 주변 소국을 다 복속시켰다
그러나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 위서의 동이전에는, 3세기 중반까지 진한의 12개국이 연맹체적 성격으로 존재했다고 전하고, 이것이 현 주류 사학계의 부체제설 근거라고 한다
저자는 삼국지가 주변 국가들의 역사서가 아닌, 교역을 위한 문화지리지 성격을 띠기 때문에 오히려 삼국사기 쪽을 더 신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 생각에도 중국 역사가가 과연 머나먼 동쪽 끝 오랑캐 땅의 국가 성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저자는 삼국지의 기자가 진한 12국을 언급한 것이, 낙랑과의 교역 주체 차원이었다고 본다
3세기 무렵은 이미 사로국에 의해 진한, 즉 사로국을 중심으로 한 연맹체가 대부분 통합되어 갈 시기, 즉 소국병합 단계인데 낙랑을 통한 원거리 무역시 개별적인 소국들의 무역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아직 완전한 국가체를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정치적 지배권은 사로국에 뺏겼으나 중국, 특히 낙랑군과의 원거리 무역은 과거 공동체들이 자치적으로 개별 무역을 했고, 중국 측에서는 이들을 각기 독립된 국가로 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3세기 중반까지 진한이라는 소국 연맹 왕국 상태에서 느닷없이 4세기 내물왕 이후 중앙 집권체제가 완성됐다는 것은, 그 가운데 병합 과정을 제외시켜 버린,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한다
내 생각에도 어느날 갑자기 중앙집권체제가 등장했다는 건 국가의 발전 단계를 무시한 비약같고, 분명히 사로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 소국들 병합 단계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됐을 것 같다

 
사로국이 우위를 점했던 것은, 원거리 무역이 가능한 위치 덕분이었다
북쪽으로는 소백산맥, 동쪽으로는 태백산맥, 아래로는 변한에 막혔기 때문에 진한 연맹체가 낙랑과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바닷길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고, 덕분에 항구쪽을 차지한 사로국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철제 무기와 농기구 등의 수입을 통해 사로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의 우위를 점하고, 주변 소국들을 병합해 나가고 4세기 중반 내물왕의 등장 무렵 마립간이라는 칭호와 함께 중왕집권적 국가의 기틀을 세운다
교역이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성골에 대한 정의도 일리가 있다
성골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 신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즉위는 성골 집단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부분 같다
성골이란 왕과 그 형제들의 가족을 일컫는 신분이었다
고구려가 왕위 부자 계승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왕의 형제들을 죽였던데 비해, 신라는 왕의 형제에게 갈문왕이라는 독특한 직위를 부여했고, 갈문왕의 자식들은 왕위의 정당한 계승권을 갖게 된다
이들은 왕이 살아있을 때 궁궐에서 거주했고 왕이 죽으면 새왕의 즉위와 함께 궁을 떠나 진골 신분이 된다
이 과정을 족강이라고 표현하는데 진골이 되면 더 이상 왕위계승권을 가질 수 없다
저자는 진골과 성골의 차이는 왕위를 계승할 수 있냐 없냐를 가를 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가졌기 때문에 아들 없이 사망한 진평왕 이후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성골이라는 이유로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또 화백제도 등을 통해 신라를 진골 귀족들의 연합정권 등으로 보는 시각에도 반대한다
법흥왕에서 진덕여왕까지 이어지는 성골의 왕위 계승은, 절대적인 왕권을 의미한다
이것은, 고구려를 귀족연합정권으로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시각이다
만약 진골이 성골과 큰 차이가 없는 신분이었다면 고대 사회에서 두 명의 여왕 즉위가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선진 문물의 전수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많이 느꼈다
당시로써는 중국화가 곧 세계화였을 것이다
"빈곤의 종말" 에서도 해양무역이 가능한가 여부가, 절대빈곤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했다
국가를 형성하는 고대에는, 선진문물의 수입 여부가 생존과도 직결된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1권에서는 사로6촌부터 성골 마지막 왕인 진덕여왕에서 끝이 난다
신라 초반부 역사를 꼼꼼하게 잘 설명하고 있고, 신라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기술한 점이 마음에 든다
생각만큼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진흥왕 이후부터는 자주 들어 왔기 때문에 술술 나갔지만, 혁거세부터 시작해 내물왕을 거쳐 지증왕에 이르는 고대사 부분은 꼼꼼하게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쾌한 수납백과 - 작은 집 넓게 쓰는
삼성출판사 편집부 엮음 / 삼성출판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요즘 수납 때문에 골머리를 썩던 터라 무척 반가웠다
우리 집은 네 명의 식구가 45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다지 좁은 편은 아니지만, 옛날식 아파트라 공간 활용이 잘 안 되어 있고 동생과 내가 이미 커 버렸기 때문에 각자 옷 관리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공간 부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거기다가 아빠의 책까지 쌓여 집에 들어오면 좁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남들은 어떻게 공간 활용을 하고 사는지 무척 궁금했다
잡지에 소개되는 인테리어 기사들을 가끔 보지만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쉽게 따라하지 못했는데 이 책은 주로 소품을 활용한 예가 많아 참조해 볼 만 하다

 
더구나 곧 독립할 예정이기 때문에 어떻게 좁은 공간을 활용할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아쉬운 점은, 주부들을 독자층으로 하기 때문에 주방과 아이들 방 활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20평 미만의 소형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여성들을 위한 수납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책이 따로 나오면 좋겠다
이 책에서는 딱 두 명의 독신자가 나오는데, 그나마 한 케이스는 65평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독신자였기 때문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의 공간에 관한 골치거리는 아마도 옷이 아닐까 싶다
내 옷이 특별히 많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언제나 옷장은 꽉꽉 차 있고 늘 더 이상 둘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 남들은 어떻게 옷과 신발, 가방 등을 보관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책에서는 주로 주방과 아이들방 수납 노하우가 나와서 큰 도움은 못 됐다
대부분 붙박이장과 행어를 이용하는 것 같다
큰 바구니나 박스 등도 철지난 옷을 넣는 데 이용한다
그렇지만 사실 옷은 눈에 띄는 곳에 진열해 놓지 않으면 이용하기 힘들어진다
이 책에 소개된 독신자는 방 하나짜리 18평 아파트에서 사는데 아예 방을 드레스룸으로 개조하고 마루에 침대를 놨다
혼자 산다면 참조해 볼 만 하지 않나 싶다
아무래도 거실의 침대는 쇼파 겸용이 될 수 밖에 없고 식탁도 책상 대용으로 쓰일 테니까 좀 불안정 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내 경우는 책 수납도 문제다
아예 책 수납만 전문으로 소개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유명 작가들의 서재를 탐방한 "작가의 방" 도 좋았지만, 책이 많은 일반인들의 서재 꾸미기 노하우는 어떨지 궁금하다

 
요즘 드는 생각은, 불필요한 물건들은 가능하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정리를 잘 하더라도 결국 한정된 공간에 수납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다
특히 유행 지난 옷 같은 경우, 언젠가는 입겠지 싶어 옷장에 처 박아 두지만 결국 먼지만 쌓일 뿐 못 입고 말기 때문에 가능하면 버리려고 한다
옷 살 때 쓴 돈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지만, 몇 년 동안 입기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나 싶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품질의 옷을 사도 시간이 지나면 왠지 촌스럽고 보관상의 문제도 생긴다
명품은 대를 물려서 쓴다는데 정말 그게 가능한지, 실제로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가방이나 시계 등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이 있긴 한건지 궁금하다

 
다른 물건은 다 버리겠는데 (특히 옷) 책은 항상 골치거리다
아직까지 문제집이나 전공 서적 외에는 한 번도 책을 버린 적이 없다
남한테 받은 책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내가 산 책은 지극히 내 취향이기 때문에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언젠가는 다시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읽은 책을 또 읽은 적은 거의 없다
항상 관심가는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고 시간은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 읽으려고 보관한다기 보다는, 책에 대한 애착 때문에 차마 못 버리고 이사 갈 때마다 박스에 한 무더기씩 집어 넣어 오곤 한다
난 아무래도 서재 정리 노하우에 관한 책을 봐야 할 것 같다

 
독립을 하게 되면 당장 쓰는 물건이 아니면 버리려고 한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좁은 아파트로 갈 게 뻔 한데 과연 내 짐이 다 들어가기는 할지 걱정된다
특히 유행지난 옷은 과감하게 정리하자
수납 아이디어도 좋지만, 결국은 짐을 줄이는 것이 공간을 넓게 쓰는 근본적인 방법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 그 끝나지 않는 의문
이희근 지음 / 다우출판사 / 200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각만큼 아주 재밌는 건 아니다
저자의 전작인 "한국사는 없다" 를 인상적으로 봤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내 평소 생각과 다른 것들이 많아 고개를 갸웃거릴 부분이 많았다


저자는 고구려의 왕권이 미약했다고 본다
5부 체제설에 이어 귀족들의 연립정권이 들어섰다고 보고, 연개소문의 쿠테타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나는 이종욱씨가 쓴 "고구려의 역사" 가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뜻 이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같은 사료를 보고도 정반대로 해석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워낙 사료 자체가 부족한 고대사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다양한 시각의 책을 많이 접해야 한다

고대사 최대의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는 가야국 허황후 이야기기는 무척 새로웠다
오래 전에 허황후가 과연 어디 출신인가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는 아유타국의 난민이었던 허황후 일족이 중국에 정착한 후 다시 가야국으로 건너 왔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 근거로 왕후사에 장식된 쌍어문 문양이 인도의 아유디아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고, 보주태후라는 허황후의 작위가 중국의 보주 지방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마치 한 편의 미스테리물을 읽듯 허황후의 발자취를 찾아 중국을 거쳐 인도까지 건너간 일정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당시 해양 기술로 보나, 불교가 전파된 시기로 보나, 허황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저자는 허황후가 왜에서 건너 온 해양 세력이라는 입장을 편다
일견 듣고 보면 일리있는 소리 같기도 한데 역시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가설로 남을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백제가 요서 지방을 경영했다는 것도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저자는 자치통감 등의 기록을 들고 있지만, 당시 백제의 국내 정세 등을 미뤄 볼 때 과연 식민지를 두고 어느 정도 수준의 통치를 했는지는 의심스럽다
고대사는 워낙 자료가 적기 때문에 다양한 가설들을 세울 수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것이 옳다고 주장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다

 

고려 시대로 넘어 와 무인 정권이 왜 왕조를 개창하지 않았나에 대한 주제는 무척 흥미로웠다
왕을 마음대로 갈아 치울 정도로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최충헌이 새 왕조를 개창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무신 정권 자체가 여러 세력이 있었고 정국을 완전히 장악할 만큼 확고한 권력 기반도 없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차라리 왕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그 권위에 기대어 권력을 휘두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것과는 다르게 당시 무신정권의 수준으로는 왕조를 뒤엎고 새나라를 세울 역량이 부족했다고 본다
다른 책에서도 최충헌이 왕실과의 혼인에 목을 맬 정도로 고려 왕조에 대한 동경심이 컸다는 말이 나온다

 

남이가 진짜로 반란을 꾀했냐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다
저자는 남이를 고변한 유자광이 사림들의 원수이기 때문에 남이의 역적모의마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한다
남이가 실제로 반란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자광의 고변은 정당한 것이 된다
그 증거로, 유자광이 중종 반정 이후 귀양가서 죽었을 때, 다른 공적은 다 뺏더라도 남이의 역모를 고변해서 얻은 익대공신 칭호는 돌려 줘야 한다는 상소문을 든다
글쎄...
예종이 남이를 경계하고 싫어했던 것은 분명한데 과연 진짜 구체적으로 역모를 꾀했는지는 의심스럽다
내가 읽은 다른 책에서는, 남이가 구체적으로 역모를 기도했다기 보다는, 예종 즉위 이후 느닷없이 병조판서에서 ?겨난 수치심에 못 이겨 노골적으로 불평을 하다가 유자광에게 걸려 든 것으로 보고 있다
나도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 쪽이 맞지 않나 싶다
이래서 민감한 주제들은 다양한 관점의 책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사료를 놓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하는 걸 보면, 단 하나의 진실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동학이 미륵과 연관됐다는 주장도 새로웠다
동학이 어떻게 해서 전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됐는지 그 과정이 무척 궁금했는데 저자는 당시 민간에 널리 퍼진 정감록과 미륵 사상을 동학과 연계시켰다고 본다
동학이 꿈꾸는 대동 세상이 바로 미륵이 왕림하는 새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때 새 세상이란 학계의 평가처럼 반봉건적인 근대적 사회는 물론 아니고, 민씨 일족을 처단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수준의 어찌 보면 다소 순진하고 소박한 사상이라고 평가한다
전적인 예로 전봉준은 고종이 일본군에 의해 위협을 당할까 봐 함부로 공격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전근대적인 사회였던 조선 말기의 농민들이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의 근대적 사상을 주장하기는 역부족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 대한 비판에서도 드러란다
박지원의 양반전이 양반 제도를 비판하는 반봉건적 혹은 근대적 가치관을 보여 준다는 일부 평가에 대해 저자는 반대한다
실학 역시 근대적인 사상이라기 보다는 주자학의 폐단을 수정 보완하자는 쪽이었고 오히려 고대의 이상향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적인 학문이었다고 평가한다
서구의 역사 발전에 맞춰 우리 역사를 해석하다 보니 무리하게 근대 사상의 도입을 끼워 맞춘 꼴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다
양반전에서 박지원은 양반 제도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다고 양반이라는 신분을 판 어리석은 양반을 비난한 것이다

 

이 외에도 홍경래의 난이 서북 차별에 반대한 농민 전쟁이 아니라, 광산 노동자들을 용병으로 고용한 일부 서북 잔반들의 권력 투쟁이었다든가, 상평통보가 유통된 배경이 상업의 발전이라기 보다는 양난 이후 피폐해진 재정을 메꾸기 위한 정책이었다는 등의 흥미로운 주제가 많이 들어 있다
또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로 유학한 이후 발달된 화폐 경제를 본따서 주전의 유통을 주장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의천의 경제적 안목을 평가해 주기도 하고, 고려 시대 소군의 존재를 통해 아무리 왕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모계가 천인이면 왕위계승에서 소외되어 출가해야 했던 고려 왕실의 순수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국사책에서 의문이 들지만 중요하지 않게 다루던 것들을 짚어 주는 느낌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브레히트 뒤러 - 가짜 코뿔소를 그린 화가 내 손안의 미술관 4
디터 잘츠게버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150페이지 밖에 되지 않아 부담이 없고, 큼직큼직한 도판들이 많아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림책들은 일단 도판 때문에라도 가격이 매우 비싼데 이 책은 150페이지라는 작은 분량 때문에 책값도 1만 2천원이라는 착한 가격이다
일단 부담이 없어서 좋다
그림책을 사면 처음 살 때의 호기심과는 다르게 읽다가 지친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작가가 뒤러의 일생을 이야기 하듯 꾸몄기 때문에 더 쉽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뒤러는,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화가다
자화상을 보고 반해 버렸다
어떤 미술책에서 뒤러의 자화상을 소개하면서 당시 화가치고는 드물게 많은 자화상을 남긴, 자의식이 매우 강한 화가라고 평했다
자신을 마치 예수님처럼 그렸다는 것이다
그 책의 저자가 좀 오버를 했는지, 이 책에 나오는 자화상들은 과히 그렇게까지 오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15세기 말 독일의 유명 화가였던 이 미남 화가의 자화상은 나에게 깊이 각인됐다
렘브란트도 자화상으로 유명하지만, 뒤러처럼 멋지지가 않아서 관심이 덜 간다
준수한 독일 청년의 모습이 정말 보기좋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가꾸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스스로 예술가의 품위를 높히기 위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에서도 충분히 드러나지만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이지적인 남자였을 것 같다
불행히도 말라리아에 걸려 5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당시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요절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피카소나 마티즈처럼 오래오래 살아 인류에게 기쁨을 더 많이 선사하면 좋겠다

 

이 책은 15세기 인도에서 처음으로 유럽에 들여온 코뿔소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다
코뿔소 앞에 왜 "철갑" 이라는 단어가 붙었을까?
코에 뿔이 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진기한 동물이긴 하지만, "철갑코뿔소" 라는 이름 때문에 중세 유럽 사람들이 더욱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철갑코뿔소라고 하면 꼭 진짜로 온 몸에 철갑을 두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철갑 따위는 없다
나도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코뿔소 사진을 찾아 봤는데 그냥 평범한 동물 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15세기 유럽 화가들은, 코뿔소 앞에 붙은 "철갑" 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이 진기한 동물을 그릴 때 항상 철갑을 두른 모양으로 표현했다
기사들이 갑옷을 입는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그림들이 나왔는데 한 번도 코뿔소를 본 적이 없는 뒤러의 그림이 가장 뛰어나다
동물, 심지어 벌레들까지도 세밀하게 관찰했던 이 훌륭한 관찰력의 소유자인 화가는, 한 번도 코뿔소를 본 적이 없지만 화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가장 그럴듯한 코뿔소를 그려냈다
심지어 진짜 코뿔소의 그림이 나왔는데도 여전히 뒤러의 코뿔소 그림이 진짜로 인정받을 정도였고 20세기 초까지도 생물학 교과서에 실렸다고 하니 당시 뒤러의 이름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만 하다

 

만약 이 화가가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가 됐을 것 같다
그 정도로 관찰력이 매우 뛰어나고 정말 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정밀하게 그린다
바닷가재나 게 등을 그린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랬다
판화 작업을 많이 했던 뒤러는, 목판화를 만들 때도 전 과정에 참여해 꼼꼼하게 감독을 했다고 한다
당시 화가는 대장장이나 목수 등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종의 하층 직업군에 불과했으나, 예술가적인 자존심과 자각 의식이 강했던 이 화가는, 보지 않고 대충 기존의 자료에 의존해 베껴 내는 당시의 관행을 거부하고 직접 눈으로 관찰해 꼼꼼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탈리아 등으로 여행도 많이 다녔다
직접 눈으로 봐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러는 예술가적 자존심만 높은 천재는 아니었다
장사 잇속에도 밝아 판화가 처음 발명됐을 때 적극적으로 판화 사업에 뛰어들어 하층민들에게 싼 값으로 수백장의 판화 그림을 팔므로써 많은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판화는 한 번 새겨 놓으면 100장 정도는 문제없이 찍을 수 있어 단 하나의 작품 밖에 못 만드는 유화화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익을 주는 사업이었다
경제의 흐름을 잘 분석한 화가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지에까지 이름을 떨쳐 여러 도시에서 연금을 주며 데려가려고까지 했다
난 뒤러의 이런 사업적 수완이 참 마음에 든다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고흐처럼 사회의 냉대를 견디며 불행하게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며 평생 가난과 멸시에 시달렸던 예술가의 삶은, 너무나 안타깝고 고통스럽다
피카소처럼 자신의 능력에 걸맞게 사회가 인정을 해 주고 돈도 많이 버는 그런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실력은 쥐뿔도 없는데, 혹은 창의성이라고는 없는 진부한 예술가가 단지 화단이나 문단의 역학관계를 잘 이용해 많은 치부를 하고 명성을 얻는다면 동시대인들의 관람객들에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런 예술가들은 시대가 지나면 다 사라질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을 시대가 알아 보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뒤러가 연금도 많이 받고 사업가로도 성공했다는 책의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

 

아내 아그네스와는 9살 차이가 나는데 당시의 관습에 따라 얼굴도 보지 않은 채 혼인했다
라틴어 공부까지 했던 자의식 강한 예술가였던 뒤러에게, 14세에 시집온 시골 처녀 아그네스는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뒤러는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수개월씩 집을 비웠고 평생에 걸친 방랑 생활 동안 아내를 데리고 간 적은 딱 한 번에 불과했다
자식을 몇이나 낳았는지 연표에 나오지 않아 무척 궁금하다
루벤스처럼 아내를 너무나 사랑해 그녀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뒤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초상화도 남겼는데 특히 어머니는 죽기 며칠 전에 그린 그림이라 병마와 싸우는 초췌한 인상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의 어머니는 무려 열 여덟 명의 아이들을 낳았으나 뒤러를 포함해 겨우 셋만 살아 남았다고 한다
열 여덟 번의 출산과 세 명에 불과한 아이들...
당시 의학 수준이 얼마나 낮았는지 실감이 난다
그러나 그 엄청난 횟수의 출산에도 불구하고 수명을 다한 걸 보면, 뒤러의 어머니는 비교적 건강한 분이셨을 것 같다

 

뮌헨에 가서 알테 피나코텍을 들르지 않았던 게 정말 아쉽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뒤러의 그림들, 특히 그의 자화상들을 관람하러 가고 싶다
그림 뿐 아니라 화가의 잘 생긴 얼굴이나 성격, 생애 등도 매력적이라 관심이 많이 간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9-21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긴 걸로 본다면 저는 에곤 쉴레에게 반해버렸더랬어요. 더더군다나 그가 그린 여인들은 어떤 면모가 성스러워 보였거든요. 뒤러는 `완전무결한 나'라는, 초상화 아래 쓰인 대목에서 넘어갈 뻔 했더랬습니다. 후훗

marine 2006-09-2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좋은데 얼굴까지 잘 생기면 금상첨화죠^^

토르토르 2006-10-1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러는 자식이 없었대요 ^^ 지금 뒤러에 대한 보고서 쓴다고 이것저것 읽고 있어요

marine 2006-10-1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저도 그럴 것 같았어요 아내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화형
수아드 지음, 김명식 옮김 / 울림사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예상했던 것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나는 아주 끔찍한 학대를 상상했었다
그래서 읽기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너무 분노하고 너무 가엾어서 책을 읽다 던져 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이 됐다
명예살인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과연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꼈기 때문에 이 책 역시 그런 증언으로 나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미리부터 겁을 먹었다

 
그러나 내용은 다소 달랐다
책의 주인공 수아드의 어린 시절은 물론 견디기 힘든 학대였고 또 읽는 이로 하여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상식 이하의, 어쩌면 인권 유린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고통스러운 고백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웃기는 우월감처럼 비출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학대받고 노예처럼 남자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그런 문화권에서 태어나지 않음이 정말 다행스럽다


1957년 생인 수아드는 이스라엘과 대치 중인 요르단의 서안 지구에서 태어난 후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집에서 농사를 짓고 양치는 일을 했다
그녀는 55년생인 우리 엄마보다 두 살 어리다
엄마 역시 6.25를 막 치른 후 전쟁으로 폐허가 되버린 가난한 극동 아시아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찌됐든 엄마는 대학 교육까지 받았고 지금 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수준으로 어려운 농촌에서 태어난 두 여자의 삶은 왜 그렇게 다를까?
아랍 여성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농촌에서는 여성의 교육을 불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오히려 교육을 받으면 불행해진다고 믿었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분명히 부작용도 있지만, 지식 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아드의 마을 남자들은 폭력이 일상화 됐다는 느낌이 든다
마을에서는 서열에 따라 움직이지만, 가정에서 남자는 왕이 된다
아내와 아이들, 특히 딸들을 소유하고 처분할 권리를 갖는 것이다
수아드는 자신의 아버지와 남동생은 물론이고 마을 대부분의 남자들이 폭력적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당연한 결과다
그들은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 전혀 죄의식을 갖지도 않고 오히려 가정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인간의 본능 속에 내제된 폭력성을 아무런 제재없이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통치 방식을 그대로 보고 배운다
아들은 아버지의 지위를 위협하지 않는 한에서 모든 집안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다음 주인이다
수아드네 집에서 하나 뿐인 남동생 아사드는, 누나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어머니에게까지 머리채를 잡아끄는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어머니의 존재는 한국의 가부장 문화처럼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권위를 갖는 것도 아니고, 딸들보다 약간 나은, 그러나 여전히 노예 비슷한 위치에 있는 듯 하다


수아드는 어머니 역시 아버지로부터 무수히 맞았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렇게 엄청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그녀의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고 딸에게 망을 보게끔 만든다
얼핏 생각하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남편과 살면서 대범하게도 바람을 피울 수 있다니, 사랑이라는 본능은 두렵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수아드는 어머니가 다른 사내를 만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왜냐면 아버지에게 있어 어머니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노예에 불과하고 채찍으로 때리기나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 하다고 믿은 것이다
너무 기막히고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여동생은 수아드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오빠 아사드에 의해 전화줄에 목이 감긴 채 죽임을 당한다
심지어 그녀의 마을에는, 바람났다고 소문난 여자를 그녀의 오빠들이 죽인 후, 그 머리를 잘라 동네에 조리 돌린 일도 일어난다
정말 이게 사실일까?
너무 무서워 믿고 싶지가 않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에 의해, 그것도 복수심에 불타는 남편이 아닌, 친오빠들에 의해 끔찍한 살인이 일어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명예살인에 관한 기사를 읽어 보면, 죄를 저지른 여자를 (주로 간통) 친정 집에서 죽여야 그 집안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부정을 저지른 여자들은 (강간을 당했어도 마찬가지다 강간범을 죽이는 게 아니라 강간을 당한 딸이나 여동생을 죽인다) 집안의 위신을 깍이지 않기 위해 가족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만약 부정한 여자를 가족이 죽이지 않으면, 그 가문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공동체 내에서 축출된다고 한다
그러니 딸이나 여동생을 살해하는 수 밖에
그녀들을 죽이지 않으면 가문 전체가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한 것이다

 

수아드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의 꼬임에 빠져 혼전에 임신을 하고 만다
그 남자를 잡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몸을 허락하고 임신이 됐으나 남자는 그녀를 버린다
아랍 세계에서는 결혼 전에 자신과 관계를 했을지라도 그녀와 결혼을 하면 명예가 상실되는 것이라고 한다
파샤드라는 이 남자는, 혼전임신까지 된 수아드와 차마 결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파샤드에게는 불명예스러운 결혼이 될 테니까
결국 파샤드는 도시로 도망치고 수아드는 임신 6개월째 형부에 의해서 불에 태워진다
가족들이 일부러 집을 비운 사이, 형부가 악역을 떠맡아 빨래를 하고 있던 수아드에게 석유를 뿌린 후 라이터를 켠 것이다
죽이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어쩌면 이렇게도 끔찍하고 잔인한 방법을 택했는지 정말 그녀의 부모에게 물어 보고 싶다
혹시 혼전임신한 여자는 불에 태워 죽이라는 율법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차라리 전화줄에 목졸려 죽은 그녀의 여동생이 행복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동네 사람들에 의해 기적적으로 살아나 병원으로 옮겨진 수아드는, 그러나 혼전임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병원에서도 치료가 거부되고 방치된다
온 몸이 화상을 입었으나 아무런 처치없이 소독도 해 주지 않아 그녀의 주변에는 화농 냄새로 코를 찌르고, 턱은 가슴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양 팔도 화상입었을 때 상태 그대로 가슴께에 달라 붙어 있다
이 일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자, 수아드의 어머니가 찾아와 그녀에게 독약을 건넨다
니가 죽어야 남동생이나 형부가 경찰에 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는다고 빨리 죽으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그러나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누가 이런 상황을 단지 문화의 차이, 혹은 이슬람 문화의 고유성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명백한 인권 유린이고 살인에 불과하다
이런 명예살인이 아직도 관습이라는 미명하에 사회의 가장 약자인 농촌 여성들에게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슬프고 끔찍하다
진보란 바로 이런 끔찍한 문화를 사라지게끔 하는 게 아닐까?

 

수아드는 프랑스 인권 단체에게 구출되어 우여곡절 끝에 스위스로 가서 치료를 받고 결혼도 한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은 아무리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진보적이고 복지가 잘 되어 있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100% 행복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수아드는 스위스로 온 후 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고통을 겪는다
나는 이런 솔직한 심정까지 고백한 점이 참 마음에 든다
인권 단체에 의해 구출된 후 지금은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걸로 끝내도 될텐데, 그녀는 그 후의 괴로운 심정까지 가감없이 다 고백한다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문화와 관습 속에서 20년이나 자란 사람이, 느닷없이 말도 알아 들을 수 없는 낯선 인종들이 사는 도시에 떨어져 살아가야 했을 때 적응하는 게 힘든 것은 너무 당연하다
더구나 그녀가 서구 사회의 가치를 접하게 될수록,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가족들의 폭력과 살인 행위가 견딜 수 없는 상처로 다가왔다
걸핏하면 채찍으로 때리던 아버지의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단지 결혼 전에 임신을 했다는 이유 만으로 자신에게 석유를 끼얹어 불을 붙인 가족들을 용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웨스트 뱅크 지역에 살 때만 해도 여자란 맞는 게 당연하고 혼전임신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으나, 스위스로 건너 온 후 그러한 행위가 얼마나 부당하고 또 끔찍한 일이었는지 자각하게 됐다
더구나 화상의 상처가 온 몸에 남아 여름에도 팔과 다리를 드러낼 수 없어 칭칭 감고 다니기 때문에 그녀의 정신적 외상은 지울 수 없는 게 되버렸다
가엾은 수아드...
그녀는 날마나 몸에 불이 붙는 악몽에 시달렸고 가스불만 봐도 노이로제 증상을 일으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또 당시 임신 상태였던 아들을 스위스로 데려 온 후 입양시켰다는 사실 때문에 엄마로써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몹시 괴로워 한다
이제는 책을 낼 정도로 많이 호전됐지만 여전히 그녀의 상처는 다 아물지 못했고 어쩌면 평생 동안 극복해야 할 숙제로 남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Burned alive" 다
살아 있는 채 불태워진다는 뜻이 너무나 실제적으로 와 닿는다
잔혹한 여성 학대 혹은 살인이 단지 문화적 차이로 방관될 게 아니라,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수아드 역시 자신과 같은 불행한 여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라며 용기를 내 고백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신분 노출을 꺼린다
가족이 외국으로까지 쫓아 와 죽인 예가 있기 때문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6-09-20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인줄 알았어요. 어찌나 내용이 가혹하던지...ㅠ.ㅠ 정말 끝나지 않는 비극이군요. 늘 진행형으로 비극을 맛봐야 하다니.... ㅡ.ㅜ

turbulence94 2006-09-20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을 수 없는 일이긴하지요.. 내 보기에 저 문화를 인권유린이라고 해석하는 서구사회의 시선이 아랍과 서방세계가 대립하는 한 원인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들에게 그런 시선은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수도 있는 거죠. 아랍세계의 여성들이 서방세계의 여성에 비해 짐승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그것이 안타까운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잘못이라고 그들 스스로 깨우치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네가 하는 짓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이라고 말하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싸울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언젠가는 그들은 바뀔 겁니다. 우리는 좀 더 세련된 행동으로 그들을 우리가 옳다고 믿는 길로 인도해줘야합니다. 인권유린이네 뭐네 이런 극단적인 단어는 사용하지 말고 말이죠.............

marine 2006-09-20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어떤 게 인권유린일까요? 문화의 상대성과 절대적인 인간의 존엄성은 마땅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사회 역시 비판받아 마땅한 일은 비판해야죠 이중잣대를 놓고 약자이기 때문에 너그러운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반대합니다

marine 2006-09-20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그게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더 슬픈 것 같아요 인간의 존엄성을 높힌다는 차원에서 우리 모두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안타까운 것은, 도시보다는 농촌 사회의 여성들이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된다는 거죠 이슬람 사회의 가장 약자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관습이 적용되는 것 같아요

나그네 2006-10-21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진보세력들은 이슬람의여성인권유린에 엄청나게 관대한고같습니다.
그들이 서구에비해 약자니 이런식의 인권유린도 문화의상대성이라는 이름으로 옹호되는거죠
블루마린님의말씀대로 문화의상대성과 절대적인 인간의존엄성은 구분되야합니다.
서구가 하는건 무조건 나쁜거구 제3세계에서 일어나면 문화의상대성으로 비난해서는 안되는건가요?
이런 이중적인태도가 더욱 여성과 어린이등 사회적약자의 인권을 악화시키고있다는생각들은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marine 2006-10-2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중잣대가 문제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