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명품 살림지식총서 145
이재진 지음 / 살림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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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도 예술이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장인정신과 예술이 산업과 만났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회화도 대량 복제가 가능할 경우 명품처럼 산업화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역시 예술의 산업화가 아닐까?

책과는 또다른 의미로 말이다

처음에는 굉장한 거부감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명품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고급스런 패션 취향이라고 인정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패션은 곧 예술이다라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줄 수 있게 됐다

유명하고 인정받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다치바나의 분석대로 예술로 승격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차이를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할 최고급 소비자가 있냐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러니까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은, 각 왕실의 공주나 왕비들, 헐리우드 스타들에 의해서 예술로까지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엄청난 돈을 지불할 고객들은 줄어가고, 이제 평범한 사람들이 그 이미지를 갖기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는 사실이다

실제 헐리우드 스타들이 유명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돈주고 입는지 아주 의심스럽다

스타가 디자이너의 옷을 입어 주므로써 일반 사람들이 사게 되는 구조인 것 같다

디자이너들은 자기 제품의 홍보를 위해서 스타가 필요하고, 그들에게 옷을 입혀 주는 대신 돈은 일반 고객들에게서 벌어들인다

한달 내내 라면만 먹을 것을 각오하고 월급을 통째로 갖다 바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돈으로 말이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사치스러웠던 것 만큼 패션의 중요성도 깨달아 재봉사에 불과하던 이들을 디자이너로 승격시켜 줬다

그러고 보면 뭐든지 몰두하고 돈을 쓰면 쓸수록 취향이 고급스러워지는 것 같다

결국 문화나 예술도 부유함 속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대중 예술이 어쩔 수 없이 천박하고 싸구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에 생존에 불필요한 것에 많은 돈을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유하면 할수록 실제 삶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이나 기호품에 더욱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고, 바로 이 부유한 귀족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수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그들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갖 머리를 다 짜내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가 패션의 중심지임은 너무 당연하다

전통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워낙 명품 신드롬이 광풍이다고 표현할 정도로 심하기 때문에 거부감도 가졌지만, 결국 패션을 예술의 단계로 승격시키는 견인차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베블린이 말한 현시적 소비는, 패션의 본질을 놓친 표현 같다

물론 사람들은 돈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의상과 소품에 혹은 자동차에 그 물건이 갖는 본래의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

상류층은 중산층과 구별하기 위해 명품을 찾고, 반대로 중산층은 상류층처럼 보이기 위해 무리를 해 가면서까지 일부러 비싼 옷을 입는다

상류층이 고급스런 취향 때문에 명품을 찾는다면, 중산층은 그것이 비싸기 때문에 산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명품 산업이 거대해지면 질수록 즉 파이가 커지면서 더욱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이 됨은 부인할 수 없으리라

돈이 안 되면 누구도 뛰어들지 않는다

예술가들에게 빵을 줘야 더 열심히 창작해 내지 않겠는가?

단순히 대량 생산에 기대어 이미지만 파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장인정신을 이어가면서 최고의 디자인과 품질을 유지해 가는 명품 브랜드들의 노력을 높히 산다

패션이 예술이라면, 더이상 그들을 현시적 소비 운운해 가면서 비난할 수 만은 없으리라

따지고 보면 미술관에 걸려 있는 명작보다 훨씬 더 실용적인 예술이 바로 패션 아니겠는가?

 

부유한 곳에서 문화가 나온다는 것을 명품 산업이 잘 보여 준다

한국도 패션 분야에 눈떠서 유명 디자이너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단순히 디자인 감각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경제적인 운용 능력까지 겸비해야 세계적인 브랜드로 클 수 있다

현대는 광고 시대니까 말이다

버버리 같은 경우는 1830년대에 이미 생겼다고 하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순조 시대의 옷이 아직까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유통되고 있다는 얘기다

정말 놀라움 그 자체다

 

재밌는 것은, 어떤 브랜드든지 젊고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백여년에 가까운 전통을 잇기 위해 과거의 것만 고집하면 혹은 구태의연함에 젖어 있으면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젊은 새 디자이너를 영입하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탈바꿈 하고, 또 자체적으로 패션 학교를 운영하는 노력들이 브랜드의 명성을 유지시키고 있다

확실히 우리나라 같은 권위주의적인 시스템에서는 창의적인 디자이너가 나오기 힘들 것 같다

또 국가에서 패션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열심히 밀어 줘야 할 것 같다

소비자들은 명품이라면 밥을 굶어 가면서까지 환장을 하는데, 왜 아직도 유명 디자이너의 탄생은 요원한 것일까?

일본만 해도 겐조 등 유명한 디자이너가 많은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일본은 확실히 선진국이고 문화대국이다

일본에서는 짝퉁 들고 다니는 걸 아주 싫어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짝퉁이 많아서 패션 산업이 발전이 안 되나?

이 책 읽고 보니까 디자이너의 독창성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라도 짝퉁은 단속을 해야 할 것 같다

 

책 읽고 나니까 명품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생긴다

그 유명한 샤넬의 트위드 재킷이 뭔지도 확실히 알았고, 베르사체 드레스나 크리스챤 디올의 뉴룩도 구별할 수 있겠다

또 에트로의 패이즐리 문양이나, 페레가모의 바라 구두도 뭔지 알겠다

낮은 굽에 리본이 달린 둥근 코의 구두가 바로 페레가모 바라였다니, 그 디자인이 얼마나 유명한지 알 만 하다

가능하면 인터넷에서 다 찾아보고 싶었는데 검색하기가 쉽지 않았다

패션 잡지를 좀 봐야 할 것 같다

뭐든 노력없이 그냥 알게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명품이란 것도 말이다

 

좀 웃긴 건 검색하다 보니까 책하고 똑같이 나오는 문장들이 많다는 거다

아마 어디서 베낀 것 같다

자기만의 단어로 쓰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강준만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번 여행 이야기도 네이버 찾아 보니까 아주 똑같더라

이 책도 명품 스타일이나 유래 설명하는 거 보니까 그대로 베낀 것 같아서 좀 실망스럽다

그래도 명색이 패션 칼럼니스트인데 자기만의 언어로 쓰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하여간 책은 아무나 내는 게 아니다

필자가 되려면 그 주제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쌓아야 비로소 자신만의 책을 낼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남의 얘기 인용하려면 꼭 출처를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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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본기(史記 本紀) -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의 역사로
사마천 원작, 이인호 새로 씀 / 사회평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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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중국 지명과 제도들 때문에 좀 헤맸는데 인터넷 참조하면서 지도랑 비교하면서 읽으니까 술술 잘 읽힌다

항우와 유방이 싸우는 초한지쟁 부분에서 고전했다

이 놈의 지명들이 대체 어딘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두 번씩 읽으니까 감이 확 온다

과연 중국은 대단한 나라다

왜 중국의 인권이 그 모양인지, 그리고 그 큰 나라가 어떻게 수천년 동안 유지되어 왔는지 비로소 그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오랫동안 한 민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더욱 요원한 것 같다

공산주의가 아니었더라도 파시스트 같은 독재체제가 되기 딱 맞은 조건이다

미국과 아주 반대된다

어떤 의미로 보자면 여전히 중국은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국가 같다

그들이 단결해서 경제성장을 이룬다 할지라도 중국의 사회 복지 수준이나 창의력 같은 부분에서는 여전히 뒤쳐지지 않을까 싶다

러시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소수민족들의 힘이 약해서 구소련처럼 독립하기는 힘들겠지만, 어쨌든 공산주의 무너지면 발전하기 힘들 것 같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구어체로 쉽게 풀어 쓴 거라 읽기 편하다

이 사람이 쓴 중국 이야기도 기대된다

중국에 대한 감이 좀 잡히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역시 한자는 어렵다

한문 읽는 건 아예 포기했고 기본적인 아주 기본적인 한자라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진시황이 왜 여불위 자식인지, 어떻게 이런 비밀이 기록됐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저자 설명을 읽고 보니까 완전히 루머 같다

하긴 이게 말이 되는 얘긴가?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진시황의 정통성을 훼손시키기 위해 채록한 게 틀림없다

 

장건이 제일 대단하다

13년만의 귀국, 거기다 흉노에게 두 번이나 붙잡히고 탈출하고 결혼해서 애까지 두고 100명 갔는데 겨우 2명 살아오고, 정말 대단하다

무제가 후작에 봉할 만 하다

인간 승리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소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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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개 100배 똑똑하게 키우기
후지이 사토시 지음, 최지용 옮김 / 보누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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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00배 씩이나 똑똑해지다니!!

화장실 훈련만 제대로 시켜도 원이 없겠다

하긴, 개가 화장실만 제대로 가도 엄청 똑똑한 거지

그러고 보면 맹인견들은 엄청난 훈련을 할 것 같다

개를 개 수준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똘이에게 복종을 강요한다는 게 솔직히 어렵다

제멋대로 키워지다가 갑자기 안면 싹 바꿔서 우리에 가두고 밥도 제 때 안 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결국 똘이를 위해서 사람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대로 참을 만 하니까 앞으로도 쭉 참아야 할 것 같다

 

화장실 훈련의 핵심은 가둬 놓으라는 것이다

일단 주인이 없으면 우리에 가둬 놓고 밥도 규칙적으로 하루에 한 두 번만 준다

그래야 일정한 시간에 용변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개를 상전처럼 항상 떠받들 수 없을 바에야 일정한 정도로 인간에게 맞추는 게 개의 평생을 볼 때 더 낫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유기견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완벽하게 복종시키는 게 낫다는 얘기다

그건 그렇다

개는 서열을 중요시 하는 동물이고 지도자의 말에 철저하게 복종하기 때문에 주인을 자신의 지도자로 생각하고 그 말에 따를 때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하긴 우리 똘이도 자꾸 짖는 게 심적으로 불안해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개 입장에서 생각하기, 이게 핵심 내용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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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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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밌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책 모양이 마음에 들고, 열혈 독자의 책이라는 점에서 공감할 만한 얘기들이 많았다

솔직히 내용 자체는 별로지만, 여기 소제목들을 주제로 내 이야기를 써 보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아무래도 동거를 하는 모양이다

동거를 한다길래 30대 여성쯤 되나 했더니, 세상에 50대 후반이었다

아이는 물론 없고 남자 친구와 30년 넘게 살았다고 한다

정말 프랑스는 대단하다

동거 커플이 결혼 커플만큼 흔하고 사회적으로도 용인되는 사이라고 한다

어느 사회나 허용할 수 있는 한계치는 다르지만, 유럽의 개방적인 성의식은 참 마음에 든다

가족이 해체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선진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관용이고 여유지 않나 싶다

 

저자의 직업은 앤 페이먼처럼 편집자다

나도 이 쪽 일 했으면 좋았으련만...

은희경 직업도 편집자인데, 확실히 여기 일 하다 보면 글쓰는 재능이 막 솟아 오를 것 같다

 

책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이번에는 아주 꼼꼼하게, 사실은 강박 관념이 생길만큼 파헤치듯 읽었다

그랬더니 상당히 재밌었다

역시 뭐든 집중하고 많이 알아야 진짜 맛을 느끼나 보다

갑자기 혹평했던 책들도 내 독서력 부족 탓이 아니었는지 슬쩍 미안해진다

 

저자가 한자 번역을 많이 해 놔서 그거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네이버 사전은 정말 편하다

한자 1급 자격증을 딸까 했는데 나처럼 교양으로 알고 싶은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필요해서 찾을 때가 바로 공부할 적기인 모양이다

장서표나 판권면, 기수면 우수면 같은 책에 관련된 한자어들을 알게 되서 기쁘다

장서표가 대체 뭔가 개념이 안 잡혔는데 책도장 같은 걸 말하는 것 같다

책갈피라는 의미로도 쓰이는 것 같다

이 한자어를 알게 되서 정말 뿌듯하다

판권면은 책의 발행인이나 발행년도 나온 종이를 말하고, 기수면은 홀수쪽, 우수면은 짝수쪽을 의미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서점을 한자로 쓸 수 있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무엇보다 프랑스인들의 자잘한 일상에 대한 많은 지식이 생겼다

브르테뉴 지방이 어디인지, 카탈루니아는 또 어디에 있는지, 이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지, 서양알버섯 즉 truffle이란 뭔지 소소한 그러나 재밌는 것들을 많이 알게 됐다

내 입맛에 맞는 유학생이나 이민자들의 책이 나오길 목빠지게 기다릴 게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게 낫다는 결론도 내렸다

역시 구글은 대단하다

이미지 검색 정말 짱이다

 

벌써 61세에 달한 프랑스 할머니인 저자는, 그러나 여전히 너무 젊고 책에 대한 열정은 젊은이 못지 않다

자기만큼 책을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났다는 점에서 너무너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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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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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급하게 읽은 책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한 장면 한 장면 꼼꼼히 읽기 보다는, 다음 내용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성급하게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사실 이런 소설에서, 아니 어느 정도 수준있는 소설에서 줄거리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다지 질높은 독자가 아닌 나로서는 자꾸 결말을 빨리 알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린다

더구나 한 번에 쭉 읽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만지작거린 책이라, 더더욱 ?기는 기분으로 급하게 읽어 버렸다

이런 걸 두고 체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은희경이 제시한 새로운 갈등 관계, 자식의 삶에 관여하고자 하는 한국 아버지들의 그 가족주의가 마음에 들긴 했는데, 저자 후기를 읽으면서 약간의 반발심이 생겼다

은희경은 평론에서도 인정받고 이름만으로도 책 수 십만권은 팔아 치울 수 있는 이른바 문화권력을 가진 작가인데, 내면의 고민들, 그러니까 나같이 안 풀리는 독자 입장에서 보면 배부른 고민들에 불과한 얘기들을 후기랍시고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는 게 좀 아니꼬왔다

왠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위 배알이 뒤틀린다

진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고뇌하는 척, 실은 사소한 것에 불과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고민들을, 평소에는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그것들을, 작가후기에 멋진 문장과 함께 필력 자랑하려고 끼워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너무 꼬여 있는 걸까?

하긴 내 고민이라는 것도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봤는데, 은희경 입장에서 보면 작가로서의 고민은 있을 수 있겠다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 더 근원적인 것은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분명 내제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고민이란 것은 너무나 개성적이고 제각각이라 처음부터 크고 작고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주제 의식에 깊이 공감하는 바다

가족주의로 묶여 있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아들딸들의 공통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바로 윗상사가 서울 사람이었는데 전라도 지방으로 혼자 학교를 와서 좋았던 점은, 무리에 쉽게 어울리기 힘들고 외로웠던 점도 있었으나, 가족이나 선후배 같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진짜로 하고 싶은 걸 다 해 보고 살았다는 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고 들었던 얘기가, 타지로 떠나 있는 요즘 자주 생각이 난다

주변을 둘러  봐도 그렇고 나 역시 가끔은 차라리 가족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해 본다

가족이 없다면 한 학기에 등록금이 300만원씩이나 하는 사립 대학을, 그것도 원룸에서 살면서까지 다닐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가족이 주는 혜택만 누리고 의무나 간섭은 벗어 던지고 싶은 이기적인 욕심에 빠진다

대한민국 부모들이 얼마나 자식에게 헌신적인지는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결혼을 해서도 직장 나가는 딸을 위해 기꺼이 노년을 손자 키우기에 바치는 게 바로 대한민국 어머니들 아닌가?

자식 과외시키려고 식당 아르바이트나 가사 도우미도 자처하는 게 한국의 엄마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리는 게 또 대한민국 사회다

모든 인간관계는 give and take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렇게까지 헌신을 하는데 요구하는 게 없을 리 없다

절대적인 사랑이란 건, 부모 자식간에도 불가능한 말이다

물질적으로 바라지 않을 뿐,감정적인 기대감은 다른 어떤 나라의 부모보다도 클 것이다

 

장남이라면 더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아들의 존재는, 더구나 큰 아들의 존재는 너무 엄청나서 장남 컴플렉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요즘처럼 모든 자식들에게 골고루 경제적 혜택을 줄 수 있을 만큼 잘 살았다면 장남이고 차남이고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던 6-70년대만 해도 딸은 물론이고 나머지 아들들에게마저 똑같은 교육적 혜택을 베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라도 잘 되야 한다는, 그래서 그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장남에게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고 상대적으로 다른 자식들은 소외됐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영준과 영우 두 형제 밖에 안 나오지만 딸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얘기는 더욱 복잡해졌을 것이다

더구나 이 집안은 아버지가 건설업을 하는, 당시로서는 아주 상류층은 아니나 중산층 중에서도 윗길을 차지할 만큼, 식모를 두고 마누라가 청와대에 초청받을 정도로 유복한 집이었다

그런데도 부모의 기대에 따른 형제간의 갈등은 존재한다

 

그러고 보니, 단순히 돈이 없어서 장남만 가르치고 차남은 팽개쳐서 생긴, 가난한 60년대 집안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능력있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아버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야 하는, 자의식을 잃어버린 형제들의 갈등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상당히 현대적인 소설이다

시대배경은 60년대지만, 주제의식은 바로 21세기에 있다

그래서 내가 깊이 공감하는 것이리라

 


 

촌놈에 관한 정의도 마음에 들었다

쥐뿔도 없으면서 남이 자기 무시할까 봐 어설픈 치기와 자존심으로 버티는 마초의식 강한 놈들

촌놈의 반대는 쿨함이 아닐까 싶다

스타일은 돈을 쳐 발라 바꿀 수 있다 하더라도 감정의 세련됨까지 익히기는 참 힘들 것 같다

컴플렉스와 자기방어로 똘똘 뭉친, 편견과 독선과 아집 강한 촌놈들

사실 내 모습일수도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서울사람들에 대한 컴플렉스가 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단지 서울에 산다고 감정의 세련됨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주인공 영준이 비록 촌스러움의 대명사인 전라도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인 세련됨, 즉 쿨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쿨하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은희경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일 것이다

냉소적이고 사랑을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감정으로 치부하고, 사람과의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순정보다는 비웃음을 택하는, 그러나 삐딱하기 보다는 세상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한 절반쯤만 적응하는 그런 캐릭터들 말이다

아웃사이더 기질을 가지고 있으나 결코 그 기질 때문에 손해보지는 않는 영악스런 캐릭터들

나처럼 감정의 과잉에 빠져 사는, 거기다가 맨날 손해만 보는 아웃사이더 기질을 지닌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쿨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나도 촌놈에 불과한가?

그래도 소설 속에 묘사된 촌놈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주류를 원하면서도 진짜 주류가 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안정감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지향하는, 사실은 아웃사이더 기질이 매우 강한 사람이고 보면, 마초같은 촌놈들과는 또 일정한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다


 

영우의 모습은, 어쩌면 동생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서 사회적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다르겠지만, 거의 흡사하다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고 부모가 돌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능력이 부족한 자식으로써 말이다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것은 패륜아가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최소한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데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내버려 뒀을 경우 진짜 의미의 서민층이 될 사람들이다

의사들이 자조적인 의미로 나도 서민층이다, 하는 그 위선적인 서민 말고 말이다

 

영우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하급 공무원이나마 안정된 직장을 잡게 해 준 아버지 정욱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사실 정욱이 한 그 청탁을 아빠도 동생을 위해 해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꾸 동생에게 화를 내고 불안해 한다

정욱은 원래 건설업자로써 관공서 공사 따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고, 청탁이나 연줄 같은데는 토가 텄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알음알음으로 얼마든지 하급 공무원 같은 건 끼워 넣을 수 있는 혼란기였다

아빠가 흔히 하는 말, 세상이 바꿔졌다는 건 바로 그 청탁이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얘기와 통한다

동생은 아빠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형이었다는 식으로 분노와 서운함을 터뜨리는 영우를 보면, 동생이 아빠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같다

나 역시 텍스트를 통해 전지전능한 관점에서 두 형제의 삶을 내려다 보기 때문에 정욱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일 뿐, 실제 상황에서라면 더구나 내 경우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영준의 말에 일리가 있다

영준은 학창 시절 내내 아버지가 원하는 장남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한 번도 마음대로 해 본 일이 없다

언제나 우등생 모범생 컴플렉스가 그를 짖눌렀다

반면에 영우는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제멋대로 살아도 아버지라는 든든한 빽 때문에 결국은 제 자리로 무사히 돌아오고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롭게 산 것처럼 보인다

내가 너처럼 사람을 패서 병원비를 달라고 해 봤냐, 오토바이를 사달라고 해 봤냐, 넌 아버지가 나에게 뭐든 다 해 줬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일만 했기 때문에 해 준 것일 뿐이었다는 영준의 절규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결국 끝까지 아버지를 외면한 것도 영우가 아닌 영준이었다는 점에서, 영우보다 영준의 마음에 더 큰 상처가 있음이 분명하다

어찌됐든 영우는 아버지 덕에 하급 공무원이나마 하면서 안정된 가정을 이루었고 마지막 임종까지 지켰다

그러나 법대를 장학금 받고 들어간 영준은, 결국 아버지로부터 도망가 장례식 때나 나타날 정도로 완전히 아버지와 담을 쌓았다

그래서 영준은 가정도 이루지 않았다

 

정욱의 교육법은 옳은 것일까?

능력있는 영준에게는 완전히 틀린 것이고, 모자란 영우에게는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

결과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영우는 한 번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 본 일이 없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우처럼 살다가는 낙오되기 십상이고 아버지 정욱 역시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계속해서 영우의 방황을 처리해 준 것이리라

그러나 결국 두 아들 모두에게서 진정한 이해를 받지 못했으니 불행한 아버지라 할 수 있겠다

자식과 부모가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은희경은 또, 가족주의에 대해 슬쩍 건드려 본다

사실 소설 전체를 놓고 본다면 마을 청년들이 죽인 L의 집안과 주인공 정씨네 집안, 그리고 경쟁자 최씨네 집안의 얽히고 설킨 애증의 세월이 주제다

그렇게 서로를 미워 했건만 오히려 더욱 질긴 인연으로 묶여, 조부 정성일이 멍석말이로 죽인 L의 딸은 끔찍히도 귀하게 여기던 자신의 큰아들 재욱과 결혼했고, 막내 정욱은 또 원수 같던 최씨네의 외동딸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는다

세 집안에 드리워진 운명은 박수무당이 예언했던 것처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집단으로만 존재하는 한국인들, 특히 공동체가 아닌 그렇다고 개인도 아닌 가족으로만 정체성을 찾는 한국들인들의 혈연주의가 너무 버겁고 힘에 겹다

자식에 대한 집착이 시스템화 되어 있는 사회에서, 나는 도저히 자식을 나와 별개의 독립된 인격체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끔찍하리만큼 질긴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에 발을 딛기가 두렵다

 

영준이 사랑했던 사촌 누이 명선의 죽음이나, 아버지의 사생아인 또다른 명선의 이야기는, 사실 소설에서 방향 제시만 할 뿐 큰 역할을 못한다

소설에 삽입된 영화 역시 그저 영준의 직업이 영화감독이라는 걸 드러내 주는 것으로 그친다

그 점이 좀 아쉽다

은희경이 죽은 사촌 명선이나, 이복동생 명선이의 이야기를 플롯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거나, 영화 내용을 보다 개연성 있게 꾸몄다면 훨씬 재밌는 소설이 됐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독자들이 불만인 모양이다

물론 나는 은희경이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어쨌든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독자에게 불친절 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녀의 문장력은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새의 선물이나 마지마 춤은 나와 함께 등에 비교했을 때 재미가 떨어진다고 불평들이 대단하지만, 오히려 평론가들은 이번 작품을 더 높히 쳐 준다는 것만 봐도 그녀의 문학적 내공이 깊어 가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자기 고향이기도 한 고창, 소설 속의 K 읍에 대한 묘사력도 대단하고, 영우와 영준, 아버지 정욱 등의 심리 묘사도 놀랍다

맨 마지막에 두 형제가 상대에 대한,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라 하겠다

따옴표도 없이 줄도 안 바꾸고 쭉 이어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두 사람의 설전을 이어가는 그녀의 필력에 정말 놀랬다

너무 마음에 들어 따로 옮겨 놨다

더불어, 조감독의 촌놈 타령도 아주 마음에 든다

인간의 위악성을 파헤치는 은희경의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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