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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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성 문제와 계급 문제 어떤 게 더 먼저인가?

김규항은 페미니즘을 부르주아 여성들의 신선놀음 따위로 격하시켰다고 저자는 흥분하지만, 어떤 문제에 있어 우선순위는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면 먼저와 나중은 어쩔 수 없이 구분될 수 밖에 없는 거 아닐까?

만약 전문직 여성이 페미니즘을 주장한다면 그건 돈많고 시간많은 여자들의 말장난에 불과한 것인가?

정희진의 말마따나 "대다수의 여성들은 가사 노동과 임금 노동 두 영역에서 남성보다 두 배로 일한다"

팔자좋은 부르주아 여성이 아니라면 요즘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고 서민층, 그러니까 노동자 계층의 여성들은 훨씬 적은 임금으로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김규항은 윗쪽을 보고 있고 정희진은 아래쪽을 보고 있지만, 둘 다 틀린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교수 같은 지식인 계층의 여성 페미니스트들 얘기를, 과연 식당일 같은 막노동을 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긴 하다

결국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매우 이질적인 다양한 계층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이런 식의 이분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전체로 뭉뚱거리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얘기 아닐까?


 

이 부분은 인정한다

가정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경실이 남편에게 구타당했을 때, 남편보다 잘 나가는 아내에 대한 컴플렉스라고 동정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아내에게 치여 사는 남편을 동정하는 분위기였다

한국 사회에서만 용납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해자가 피해 여성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기 때문에 남편이 더 큰 피해자라는 황당한,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설득력 있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바로 여성에게는 다른 어떤 사회적 권력 보다도 성별 권력이 더 압도적으로 작용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성별을 독자적인 사회 모순, 정치 제도로 인정하지 않는 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제를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진다

정희진 말대로 집에서 설거지 안 하기는 마르크시스트든 파시스트든 마찬가지다

남성 중심 논리로 여성을 억압하기는 둘 다 똑같다는 얘기다

그렇게 따지면 아빠 말대로 진보라는 것 역시 권력을 잡기 위한 명분에 불과한 게 된다

만약 정희진의 비난대로 진보 세력을 규정한다면, 대체 진보라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너희도 똑같다는 말 밖에 더 되는가?


 

1. 가정폭력은 개인의 일이 아니다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서 가정이란 말을 빼고, 폭력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해결책이 나온다

 

2. 정신대 문제는 여성의 인권 침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 남자들에 의한 성폭력은 문제가 되고, 한국 남자들에 의한 성폭력은 괜찮다는 인식을 버리자

정신대 문제를 민족주의로 환원시켜 버리면 여성 폭력이라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우리도 일본 여자들을 강간하자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또 국가 위주의 과거 청산 대신 민간 차원의 과거 청산이 필요하다

 

결국 아빠가 말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서정주나 이완용 같은 일부 몇 사람에게 친일 혐의를 씌운다고 해서 친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IMF 때 많은 직장인들이 실직되면서 여성 근로자를 우선적으로 내보낸 이유가, 남자들은 가장이라는 명분 때문이었다

즉 여자는 직장 그만둬도 남편이 있기 때문에 더 낫지 않냐는 것이다

마치 히틀러가 독일 여성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함으로써 (가족주의와 모성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가장인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 부모 가정도 많고 이혼률도 높은 상황에서, 여성이 가장인 경우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남편이 실업자인 경우도 많고 독신 여성도 많다

여성이 가장인 경우는 회사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는가?

결국 이런 논리는 남편이 가장으로써 직업 활동을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정상적 범주에 들지 않는 모든 경우는 다 비정상으로 간주되어 차별의 근거가 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는 국가주의와 다를 게 없다

개인의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또 모든 인간을 집단으로 범주화 시킨다

그 범주 내에 들어가지 않는 개인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


 

"일상의 폭력이 인권의 문제로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차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의 일상을 규율하고 있는 외모, 학벌, 나이, 서울 중심주의 등으로 인한 차별 사안도 인권 침해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일상 폭력을 인권 문제로 제기한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서울 중심주의는 대다수의 지방민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TV를 보면 의례껏 서울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대한민국의 5천만 시청자들이 서울 지리와 문화를 다 알고 있을 것을 전제한다

드라마야 그저 잠깐 즐기는 것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현실에서도 이런 일들이 너무나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다

서울에 대한 지방의 소외 문제는, 학벌 문제 만큼이나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모든 권력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즉 모든 담론과 사건들이 다 서울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지방민들은 끼어들 자리조차 없다

지방 대학 교수조차도 이름만 걸어 놀 뿐, 활동 무대는 서울이다

진짜 지방에 거주하는 교수들은 중앙 무대에서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논객들이 교수 타이틀을 얻기 위해 이름만 지방 대학에 걸어 놓는 식이다

서울 중심주의는 문제 제기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희진은 성매매의 완전 근절을 외치는 것인가?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들도 노동자라면서 노조 설립을 주장했을 때, 인권위원회 같은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반대했다

성매매를 노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남자들에게 자신의 성을 파는 행위를 통해 먹고 산다

그런데 만약 성매매가 불법화 되고 처벌의 대상이 된다면 간단히 말해서 밥그릇을 뺏는 행위가 되고, 또 도덕적 비난도 계속 감수해야 할 것이다

성매매의 완전 근절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어떤 의미로든 섹스는 본능적인 것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제도라 할지라도, 식욕만큼 강렬한 게 바로 성욕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즉 이성과의 합의를 통해 성욕을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은 돈을 주고서라도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면 최악의 해결책, 폭력을 통해 성을 사는 강간을 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여성의 권리, 이런 시각 말고 좀 더 보편적인 개념으로 성 문제를 보면 안 될까?

인신매매 같은 강제적인 과정을 통해 성매매를 하는 것 말고, 자발적으로 성판매를 하는 경우는 정당한 노동의 행위로 인정하면 안 될까?

아무리 관념적이고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도 성매매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과연 모든 남녀가 가정 안에서만 혹은 파트너 하고만 섹스를 할 수 있을까?

파트너를 만들 능력이 없는 사람은 평생 성욕을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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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존 버거 지음, 박홍규 옮김 / 아트북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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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카소도 마찬가지로 그의 독립성을 유지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사람과 섞일 수도 있어다. 그의 상업적 성공은 그런 협력의 증거다. 또한 그가 출연한 영화, 포즈를 취해준 사진, 응한 인터뷰도 마찬가지 증거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아무리 순수했다고 해도, 그의 정력에는 매우 약삭빠른 사업가 기질이라는 얼룩이 배어 있다.

 이는 피카소가 위선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성공 때문에, 그가 브란쿠시보다 덜 진지한 미술가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실패는 그 자체가 도덕적이라고 보는 낭만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세속에서의 실패는 그 자체로 하나의 불행일 뿐이다. 피카소는 브란쿠시와 다른 기질을 가졌고, 그의 기질이 그의 천재성을 보존하면서도 성공하게 만들었다.

 

 왜 그는 스스로를 이상화했는가?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왜 그는 자신의 천재성이 지닌 원시적인 성향을 그토록 신중히 보존하여 그것이 고상한 야만인의 수호자로 봉사할 수 있도록 했는가? 그것은 이기심이나 허영심의 결과는 아니었다 자신의 고상한 야만인을 이상화함으로써 그는 루소처럼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비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평생 혁명가였다는 진지한 믿음의 근거였다 또한 그 자신을 혁명가라고 믿게한 것이기도 하다 비록 동시대 유럽인 중에서 피카소만큼 현대 정치와 직접 접촉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가 스페인으로 돌아갔다러다면 의심할 바 없이 그는 달리 발전했으리라. 스페인에서라면 그는 더이상 자신을 야만인으로 의식하지 않았으리라 이러한 의식은 피카소 자신과 그를 둘러싼 낯선 환경의 차이가 낳은 결과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 차이는 피카소를 이국적으로 보게 만들었고 어느 정도로는 그가 이것을 조장했다 왜냐하면 그가 이국적이 되면 될수록 그는 자신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상한 야만인에 더욱 가까워졌다 또한 자신을 이국적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좀더 강력히 비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에 대한 피카소의 태도 속에 숨어 있는 역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피카소의 근본적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철저히 위장되어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어려움이다 그의 조국에서 추방당한, 다른 세기에 속하는, 자신이 사는 부패한 사회를 비난하기 위해 그 자신의 천재성이 지닌 원시적 성격을 이상화하는, 그래서 자기만조겡 빠진,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끝없이 일해야 하는 미술가를 상상해보라 그의 어려움은 어떤 것일까? 인간적으로 너무나도 외롭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외로움이 그의 예술에서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무엇을 그릴지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가 주제를 모두 소진했음을 뜻할 것이다. 그는 정서나 감정 또는 감흥을 소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것을 담아낼 주제를 소진했다는 뜻이리라. 이것이 피카소의 어려움이었다. 자신에게 무엇을 그릴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그 질문에 혼자 답해야 한다는 것.


 

존 버거가 피카소를 비판하는 핵심이 담긴 글들이다

간단히 말해 그는 천재라는 자기확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자체를 불필요하게 느꼈고 연구를 통한 회화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자기 내부에 있는 고상한 야만인의 정서를 계속 키우면 그만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그는 주제가 없다고 했다

 

"벨리니의 누드, 브뤼겔의 마을, 호가스의 감옥, 고야의 고문, 제리코의 정신병원, 쿠르베의 노동자들, 이 모든 것들은 미술가가 이전에는 무시되거나 버려진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한 결과였다"

 

말하자면 피카소는 이런 주제가 없었다

깊이 연구하고 천착할 주제가 없었고, 다만 자신의 천재성에서 기인한 감정이나 정서 등을 그림에 쏟아내면 그만이었다

뭐든 그리기만 하면 환호를 받았으니 더더욱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신뢰하고 유일한 믿음의 근거로 삼았을 만 하다

 

피카소가 스페인으로 돌아갔더라면 절대 고상한 야만인 정신을 계속 유지하지 않았을 거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프랑스는 이미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가장 발전한 사회였고 반대로 그의 고향 스페인은 봉건 제도 하에 있는 전근대적 사회였다

그러니까 스페인에서는 고상한 야만인 그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고상한" 이라는 형용사가 붙으려면, 반드시 현대적인 모순이 가득한 사회, 기술 발전과 진보에 따라 민주주의와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는 근대적인 사회에 살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스페인은 아직도 고상한 "야만인" 상태였으니, 현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굳이 고상한 야만인 개념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는 야만 그 상태였다

그러니 피카소가 고상한 야만인 운운하는 것은 전혀 혁명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진보와 발전을 외쳐야만 현 사회에 대한 혁명이 가능했으리라

 

놀라운 것은 망명자가 어떻게 가장 현대적인 사회에서 그토록 열렬하게 완벽하게 받아들여졌나 하는 것이다

망명자라고 하면 고국에서 추방당해 이방인으로써 외국의 주류 사회 언저리를 헤매는 불쌍하고 처량한 정서를 생각하기 쉬운데, 피카소는 정반대로 이국에서 가장 열렬하게 환영받았고, 오히려 그 사회의 모순을 비판함으로서 혁명가 이미지까지 얻어서 더욱 투쟁적인 지식인으로 떠받들여졌다

그러니까 혁명가이면서도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가장 부유한 화가였으니 매우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까?

존 버거는 최고의 부를 누리면서도 스스로를 혁명가라고 느꼈던 근거가 바로 고상한 야만인 정서라고 했다

그것은 자신의 천재성에 근거한, 내면의 본능 같은 거라고 했다

그 본능에 기대어 그림을 그리면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혁명가가 되어 더욱 많은 관중들이 환호하고 엄청난 부가 동반되는 상황이니, 그가 굳이 연구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으리라

주제가 없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존 버거는 피카소의 이중성을 철저하게 파헤쳤다

물론 그가 위선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존 버거가 피카소에게 진정한 혁명가의 기질이 없었고 자본주의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위선자라고 말했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교조적인 비난이고 예술을 논할 필요도 없는 유치하고 수준낮은 짓이리라

과학도 그렇지만 예술 역시 어떤 이데올로기에 끼워 맞춰 비평이란 걸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나는 과학만큼이나 예술도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하는 게 아니겠는가?

만약 이데올로기에 의해 평판이 좌지우지 된다면 굳이 예술을 위대하다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결국 공산주의가 망한 것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 휴머니즘을 무시하고 예술을 이데올로기에 종속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어쨌든 이 천재 예술가의 속마음을, 혹은 정신 세계를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까발린 평론가는 흔치 않을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그림 자체가 아닌 화가의 일상 생활이 하나의 평론이 되서 돌아다닐 정도로 엄청나게 추앙받는 우리 시대 최고의 천재 피카소의 이중성을 분석하려면, 엄청난 내공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할 것 같다

사실 나도 약간 의문이긴 했다

공산주의에 가담한 화가가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토록 열렬히 숭배되고 최고의 부를 누렸을지 굉장히 궁금했고 모순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모든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세계 대전이, 피카소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저자의 말에 깊히 동의한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는 전쟁이나 사회 변화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평생을 자신의 천재성에 기대어 산 사람이다

또 사회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면 우리가 굳이 그를 천재로 떠받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년에 감소되는 육체적 능력을 슬퍼하면서 그린 소묘 연작들을 보면 묘한 감동이 온다

특히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누드를 그리고 그 앞에 가면을 쓴 난쟁이 노인을 마주 배치한 소묘들은, 피카소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 든다

이 화가는 확실히 솔직하고 자기 생각을 밝히는데 거침이 없다

어쩜 난쟁이 노인과 젊은 여자라는 아주 노골적인 배치를 했을까?

더구나 그 노인은 젊은이의 가면을 쓰고 있다

정말 대단한 발상이 아닌가?

나는 이렇게 성적으로 위축되고 늙었지만 (그래서 난쟁이로 표현한다) 여자에게는 젊은 얼굴로 대쉬하고 싶은 속마음!!

그러나 결국 그녀는 그 가면쓴 난쟁이 노인 대신 차라리 원숭이를 택하고 만다

한 달 간 그린 소묘의 마지막 그림에서 노인은 사라지고 원숭이와 여자만 남았다

오, 정말 대단한 피카소가 아닌가!!

 

그러고 보면 성적 욕망이란 예술의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되는 것 같다

또 그 욕망을 자연스럽게 표현해야만 위대한 예술이 될 것 같다

억누르고 고상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가짜가 되버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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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
이선주 지음 / 민연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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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로 읽을만 했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 봤어도 됐을 뻔 했다 아니면 사진을 좀 줄여서 가격을 낮췄더라면 좋았으련만. 신변잡기는 일체 없고 프랑스 사회를 나름대로 분석한 글 같다 마지막에 실린 가벼운 파리 감상문은 차라리 빼는 게 좋았을 정도로, 개인적인 내용이 일체 없다 일반적인 외국 체류 에세이가 아니다 그런데 문화 비평서로 보기에는 좀 약하다 전문적인 내용이 부족하고 그저 스케치에 불과한 느낌이다 어쨌든 80점 정도는 줄 수 있겠다

 

홍세화 때문에 유명해진 똘레랑스를 비판한다고 해서 눈길을 끌었는데, 반대 입장은 당연히 아니고 좀 오버 아니냐, 이 정도로 끝낸다 다른 프랑스 소개 책에서도 똘레랑스 보다 솔리다리떼가 더 중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다 사회적 연대, 뭐 이런 얘기인데 자유, 평등, 박애 중 정체가 모호한 박애가 바로 연대의식과 연결된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자선이나 3세계 국가에 대한 후원, 이런 것도 해당될 수 있겠다

 

확실히 프랑스는 절대왕정 시기에 최고 강대국이어서 그런지 자존심이 남다름을 느낀다 식민지를 많이 거느려서 그런지 몰라도 자국 내 문제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 전인류적인 거시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이 든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지구 평화 운운할 일이 있을까? 자국 문제도 해결 못해서 늘 낑낑대는데 지구촌 평화, 혹은 3세계 문제는 너무나 먼먼 얘기같다 아프리카 난민들 얘기 나오면 한국 고아나 돌보라는 식으로 대꾸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의 실체다 보면... 여러가지로 이 문화대국은 부럽다

 

선진국에 대한 동경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경제적인 발전도 그렇지만, 사회적 성숙도는 후진국과 비교가 안 된다 그들 역시 비슷한 고통의 시기를 먼저 겪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숙한 사회가 됐을 것이다 30년 근대화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고 흉내도 낼 수 없는 성숙함이 어쩔 수 없는 동경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면 결국 한국도 유럽이나 미국처럼 변해가지 않을까? 개인의 자유는 좀 더 확대되는 방향으로, 신자유주의 경제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고, 동성애나 동거 등도 허용되는 방향으로 나갈 것 같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가족 제도의 붕괴도 겪게 되겠지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독신을 하나의 정상적인 선택으로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프랑스의 경우, 동거와 결혼의 차이를 모르겠다 동거 커플에게도 법적 권리와 의무가 주어진다면 결혼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결혼은 동거보다 조금 더 법적 구속력이 많은, 그냥 정도 차이에 지나지 않는 걸까?

 

성인이 된 자식들이 부모와 함께 살면서 자주 다투는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구조적 문제인가 보다 프랑스의 캥거루족은 탕기족이라고 부른다 대학 입학과 함께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지만, 대학 등록금을 낼 재주도 없는 애들이 과연 독립할 수 있을까? 하긴 프랑스는 대학 등록금이 없으니까 생활비는 알바로 벌면 되긴 하겠다 미국 역시 학자금 대출로 학생 각자가 해결한다고 한다 성인이 되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힘든 일인 것 같다 자유를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력도 포기해야 하는데 부유하면서도 자유로움을 원하는 이기적인 젊은이들이 늘고 있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더욱 탕기족이 늘고 있다고 한다

 

복잡한 프랑스 대통령과 총리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하긴 이런 내용은 내 책 아니었으면 대충 읽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자책으로 봤던 프랑스 얘기 중에서 2002년 르펜이 1차 결선 투표에 당선돼서 너무 황당했다는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무심코 지나가서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었다 오늘 보니까 조스팽 총리가 성공적인 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1차 투표에서 극우파 르펜에게 져서 정계은퇴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극우파가 나쁜 이유는 사회 불안과 가난, 실업 등을 모조리 이방인들 탓으로 돌려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고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외친다는 데 있다 노동력 많이 필요했던 70년대에는 값싼 인력을 몽땅 데려와가지고, 이제 와서 니네 때문에 일자리 없어졌으니까 너희 나라로 꺼지라는 이 뻔뻔하고 어처구니 없는 태도!! 아무런 정책도 없으면서 그저 사회적 약자에게 모든 문제의 책임을 떠넘겨 정권을 잡아 보려고 하는 이 파시스트들!!

 

드골 이후 1981년에 미테랑이 대통령이 됐고, 7년 임기 후 1988년에 또 재선되서 1995년까지 장기집권했고 1996년에 죽었다 1995년에 시라크가 대통령이 됐고 2002년에 다시 재선됐다 86년도에 시라크가 총리가 되면서 좌우동거 체제를 이루었고, 93년도에 발라뒤르가 총리였고, 97년에는 조스팽이 총리를 지냈다 좀 독특한 제도다 보통 국방, 외교는 대통령, 내무는 총리가 맡는다고 하는데 엄격한 분리는 아니라고 한다 어느 나라마다 그 나라만의 특성이 정치 제도를 독특하게 발전시키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만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최다득표자 2명을 놓고 2차 투표를 한다는 방식은 국민 통합에 좋을 것 같다 특히 프랑스처럼 대통령 후보가 무려 16명이나 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제도다

 

2공화국 3공화국 하길래 대체 이게 뭔가 했더니, 이제 좀 감이 잡힌다 혁명 이후 프랑스 역사는 학교에서 배울 때부터 늘 헷갈리고 7월혁명이니 2월혁명이니 하는 것들도 정확한 의미를 몰랐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1제정이 성립된다 그 유명한 자코뱅 당과 지롱드 당이 나오고, 로베스피에로의 공포정치가 실시되 루이 14세의 목이 잘린다 공포정치에 염증을 내던 중, 나폴레옹1세가 황제에 즉위해 1제정이 성립되고, 엘바섬으로 귀양가자 다시 루이 14세의 동생인 루이 18세가 즉위해 입헌 군주제가 된다 복고 정치로 돌아가려고 하자 폐위된 후 샤를 10세가 즉위하는데 이 사람도 언론의 자유를 탄압해 7월 혁명으로 쫓겨나고 이른바 시민의 왕인 루이 필리프가 즉위하는데,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요구하는 2월 혁명이 일어나 (1848년) 나폴레옹 3세가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2공화국이 수립된다 이 놈은 다시 황제로 등극해 2제정을 세우지만, 보불전쟁에서 패해 (그 유명한 비스마르크에게 패함) 쫓겨나고 3공화국이 들어선다 이게 2차 대전까지 간다 독일군에게 점령당하 뒤 비시 괴뢰 정부가 수립되면서 3공화국은 막을 내리고, 2차 대전 후 드골이 임시 국민투표에 의해 4공화국을 세우고 대통령이 되는데, 알제리 사태를 계기로 국민투포를 통해 다시 5공화국으로 바뀌고 오늘날에 이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철종과 고종 시절에 이 엄청난 변화들이 몰아치고 있었던 셈이다 갑자기 흥선대원군이 개혁 정치를 했으면 (메이지 유신처럼) 조선이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

 

개인주의 극치는 사데팡, 즉 경우에 따라 다르다, 라고 말해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내 일 말고는 관심없다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이런 무관심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연대감인 솔리다리테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나도 시위를 하고 파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남의 시위권과 파업권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라고 한다 경찰과 선생님들까지 파업하는 거 보면 정말 프랑스 파업 문화에 예외란 없는 것 같다 이 나라는 의사들이 파업해도 별로 욕 안 먹을 것 같다

 

동성애에 대한 법률적 인정이 프랑스에서도 이루어졌음 좋겠다 일단 서구 사회가 먼저 수용해야 우리 같은 후진국도 따라갈 모범이 생기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미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했다 사실 동성애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적 취향의 표현일 따름이다 국가를 전복시키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결혼을 못하게 하고 억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가 제도의 근본인 가족 제도가 무너진다고 하지만, 입양을 허용하면 얼마든지 다음 세대를 양육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요즘처럼 애를 안 낳으려는 시대에 독신자나 동성애 커플의 입양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독교적인 편견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하여간 프랑스 시장조차 동성애자라고 커밍 아웃을 했다고 하니, 과연 프랑스의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는 한국과 아직은 비교할 수준이 아닌 것 같다 게이 프라이드 축제가 있는데 6월이 되면 게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행진을 한다고 한다 뉴욕에는 소방관 게이들 모임이 단체 행진을 한다고 하니, 과연 동성애가 일반적인 현상이긴 한 것 같다

 

사회적 연대의 강조로써 마음의 식탁이라는 행사가 있다고 한다 우리식으로 하면 사랑의 밥퍼 운동, 뭐 이런 거 말이다 노숙자들에게 겨울철 3개월 동안 공짜 식사를 제공하는 운동이다 놀랍게도 프랑스의 유명 연예인이 주축이 되어 많은 연예인들이 무료 공연에 참석해서 이슈를 만들었고 오늘날 대표적인 자선 행사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역시 문화 선진국의 연예인답다 또 소액 기부자들에게 조세 혜택을 줘서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게 해 줬다 (콜뤼쉬법) 우리나라도 소액 기부자들의 세재 혜택을 주면 기부 문화가 좀 더 활성화 되지 않을까? 역시 제도 정비가 우선인 것 같다 프랑스 자선 행사의 특징은 축제성으로 볼 거리가 풍부하고 (연예인들이 많이 참석하고 가장 무도회 식으로 꾸미고 행진한다) 기부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봉사에 의한 연대의식 이 세가지를 들 수 있다 일단 축제처럼 즐긴다는 것이 마음에 들고, 자원봉사 위주의 실천적이라는 것도 아주 좋고, 기부 내역의 투명성이야 전제 조건일 것이다

 

똘레랑스는 용서와 관용의 의미라고 한다 다름에 대한 인정이라기 보다는, 좀 더 우월한 처지에서 나보다 못한 이의 입장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존중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여간 종교전쟁을 치루면서 발생한 개념이라고 하니, 신교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만 하다 어떤 의미로든 차이에 대한 인정이야 말로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한국처럼 전체주의적,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한 나라는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질서와 조화를 깨는 것으로 인식되니 이래저래 창의력 발휘하기 힘들다 결국 21세기를 이끌어 갈 주요사상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와 연대의식인 것 같다

 

어떤 의미로든 미국식 패권주의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빅 브라더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적당한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 국경이나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져 전지구적인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올 날은 아직 멀었을까? 우주인이라도 나타나야 지구는 하나라고 느끼게 될까?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인종끼리의 유전자 차이는 너무나 작기 때문에 인종차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한다 프랑스에 사는 알제리인도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떳떳히 믿을 수 있고, 한국에 사는 동남아인들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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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41
서정민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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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총서의 장점, 간단하게 정리가 된다

이런 책은 특성상 절대 많은 범위를 아우르려고 하면 안 된다

범위를 최소한으로 좁게 잡아서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교회의 역사가 아닌, 한국 교회의 역사로 한정지은 것이 마음에 든다

교회 하면 기독교 즉 개신교만 의미하기 때문에 천주교는 맨 처음 신앙이 전해질 때를 제외하고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18세기 후반에 자생적으로 천주교가 발생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학문적으로 받아들인 종교를 신앙의 대상으로 승화시킨 조선 남인 선비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사람들이 아닐까?

하긴 새로운 대안으로서 혹은 도피처로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특히 남인들은 주도권을 상실한 채 무력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서학은 비단 종교 뿐 아니라 서양 학문과 기술까지 의미하기 때문에 어쩌면 유학에 대한 대안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한국 천주교가 정치권과 강하게 대립했고 핍박받았던데 반해, 기독교는 정교분리를 내세웠다

의료와 교육 분야에 역점을 두고, 가능하면 정부와 대립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기독교가 신사참배 문제와 부딪치면서 강하게 반발한 것을 두고, 저자는 정교갈등이 아니라 교교갈등이었음을 강조한다

일제의 식민 통치에 반발한 것이 아니라, 국가신도라는 우상숭배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기독교가 실제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냐는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기독교는 특히 한국 기독교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교조적이다

왜 가장 낮은 이들에게 오신 예수님의 예언적 활동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걸까?

배타적이고 교조적인 기독교인들의 행태를 보면,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거부감이 든다

더구나 단군의 목을 자르는 행위는 폭력이라고 밖에는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기독교가 사회 지도층의 중요한 종교가 됐으면서도 한국의 종교로써 대표될 수 없는 이유를, 토착신학화의 실패라고 본다

불교나 유교가 외래에서 전래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것으로 탈바꿈한 것에 비해 여전히 기도교는 외래 종교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불교의 수용 역사가 천여년을 넘지만, 단순히 시간의 문제로 넘어가기엔 걸리는 요소들이 많다

 

이승만 정권 때 기독교는 거의 준국교 수준이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기독교인이라는 징표는 하나의 신분증이 되어 사회적 특권과 연결됐다

더구나 이승만은 미국 사회에서 활동한 장로였으니, 기독교식 문화가 익숙하고 편했을 것이다

이기붕 당선을 위해 집회까지 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역설했다니, 한국 기독교의 정교유착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만 하다

모든 종교는 기득권화 될 때 타락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예수님은 분명 기존의 지배 질서를 거부하고 가장 낮은 이들에게 강림하셨는데 왜 그 분을 쫓는 이들은 위로의 상승을 그렇게도 열망하는 것일까?

오직 성경만 의지하고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근본주의자들일수록 더더욱 사회의 소외 계층은 외면하고 교조화되고 기득권층과 결탁해 권력을 누리려고 한다

카톨릭의 부패를 보면서도 개신교 역시 똑같은 절차를 밟아가는 것이다

그나마 카톨릭은 로마 교황이라는 강력한 지도자라도 있어서 하나의 통일된 체계를 유지했으나, 개신교는 신앙 해석의 자유가 인정된 이래 수많은 교파들을 양산했다

교회의 분열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지만, 한국에만도 수백개의 교단이 있다는 건, 또 서로를 이단시 하고 자기 교단만 옳다고 우기는 건 아무리 봐도 좋은 현상은 아니지 않을까?

더구나 사이비 기독교의 횡행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이단이나 정통의 기준도 모호하긴 하지만, 교주를 신격화 시키고 재산 헌납을 강요하고 종말이 임박했다고 집단 생활을 강조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든 용납하기 힘들다

 

한국 기독교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

저자는 토착 신학화를 통해 문화적으로 동화되어야 하고, 민중신학을 통해 소외계층에게 눈을 돌려야 하며, 평신도들의 역할이 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회의 기득권화나 성취 위주의 교세 확장 등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기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건 나쁘지만, 소외 계층을 감싸 안는 것은 중요한 역할이 아니겠는가?

개인의 내제적 구원이나 기복신앙만 중시하는 현세적 태도를 줄이고, 역사와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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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정조
박현모 지음 / 푸른역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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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이건 정말 인간승리다

대체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혹시 내가 사학과 학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지난 번 [중국, 이것이 중국이다]도 한자어가 많고 분량이 많아 고생을 좀 했지만 그래도 이 책 보다는 훨씬 쉬웠다

한 번 옥편을 찾아 보니까 이것도 관성의 법칙인지, 계속 찾게 되서 진도가 안 나갔다

물론 한자는 익히면 반드시 보답을 한다

다음번에 그 한자가 나왔을 경우, 확실히 인지가 된다

한 번에는 못 외우더라도 다음 번에 또 나오면 그 때는 확실히 알게 된다

문제는 현재 안 쓰는 단어들이 많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쓰는 한자어와 우리가 쓰는 한자어의 뜻이 전혀 다르고 간체자를 쓰기 때문에 한자 공부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의 진짜 뜻을 알 것 같다

오히려 일본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자는 알지만 한자어를 현재 사용하지 않거나 다른 의미로 쓰기 때문에 낯설고 익히기가 아주 힘들었다

어찌어찌 해서 다 읽었다

사실 뿌듯하다

저자는 참 성실하고 분석적이며 무엇보다 완벽주의인 것 같다

이덕일 책을 읽어 보면 그 사람도 실록을 이 잡듯 뒤진다는 느낌이 드는데 박현모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중언부언이 좀 많긴 하지만, 논리의 일관성 면에서는 나쁘지 않다

원래 역사가란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들인가?

그러고 보니 임용한 역시 실록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행간을 읽으려고까지 한다

아, 정말 역사는 세세하고 치밀한 학문이다

 

당위적인 접근 말고 이렇게 실질적이고 비판적인 접근이 좋다

저자의 말대로 아무리 의도가 좋았더라도 정치는 결과로 심판받는 게 아닌가?

정치가가 어떤 의도로 접근했는지 충분히 파악해야 하지만, 결과가 어땠냐가 판단의 근거가 되야 한다

정조 하면 개혁 군주, 문화 군주라는 좋은 이미지만 있지, 왜 그 다음 대에 느닷없이 세도정치가 등장하고 조선이 몰락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순조가 아무리 어려서 즉위했다고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60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계속됐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은 한 가문이 나라를 수십년 간 좌지우지 할 그런 만만한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

 

저자의 분석대로 정조가 붕당을 너무 견제한 나머지 공론 정치 자체를 와해시켰기 때문인 것 같다

적어도 노론독재는 세도정치 보다는 나은데 노론 자체를 와해시켜 버리니, 이제는 아예 견제할 세력도 없이 한 가문에서 모든 것을 독차지 해 버린 것이다

정조가 오래 살고 아들 순조가 성년이 된 후 즉위했다면 조선은 어떻게 변했을까?

대원군 같은 강력한 국왕세력이 10년을 집권해도 즉 세도정치를 일소에 타파했더라도 위정척사라는 잘못된 지배이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근대화에 실패했고 식민지로 전락해 버렸다

조선은 적어도 극동에 위치했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유럽 열강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할 만큼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을텐데, 중국도 아닌 일본이 느닷없이 근대화에 성공하는 바람에 희생양이 됐다

일본이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체질개선에 성공할 무렵, 조선도 시류에 발맞춰 개혁 개방을 했더라면 일본처럼 서구열강에 낄 수 있었을까?

중국의 이념적 지배를 너무 오래 받아 일본보다 독립성이 약하고 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은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정조 역시 위청척사론을 주장하고 동도서기론과 함께 요순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구나 조정의 공론을 아예 없애야 군왕과 백성 사이에 비로소 바른 정치가 들어선다고 했을 만큼 대의정치에 대단히 부정적인 전제 군주였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정조는 근대적인 군주가 아니었다

과거의 유교 전통에 어울리는 전제군주다

전제군주를 중심으로 근대화가 가능했을까?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 세력을 타도했지만, 왕은 상징적인 존재였을 뿐 실제 권력은 하급 무사들이 잡았다

입헌군주제였단 얘기다

개혁개방이 한창이던 19세기 후반에 정조가 왕이 됐다면 조선의 역사는 바뀌었을까?

그는 성왕론과 군사론을 주장할 만큼 왕의 자격 조건에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으니, 적어도 19세기 왕들처럼 무력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세도정치 하에 있더라도 그 구조를 깼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과연 일본처럼 완전히 서구식으로 근대화를 이루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정조는 투철한 유학자다

심지어 그는 패관문학을 금지시키는 문체반정까지 내린 인물이다

시란 풍속의 교화에 힘쓰고 나라의 대의명분을 밝히는 데 써야지 감상이나 읊조리고 있으면 안 된다고 소설체를 금지시켰다

또 줄창 주장하는 것이 요순시대 삼대의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신하들 못지 않게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명분론에 집착했다

신하들을 제압하기 위해 신하들 보다 더 철저하게 유교의 명분론에 천착했고 더 많은 경서를 읽고 해박한 지식으로 신하들을 압도하는 왕이었다

박현모의 평가처럼 정조가 미완의 개혁가로 남은 가장 큰 이유를, 나는 명분론에 집착하는 유학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는 조선 초기나 중기의 안정적인 시대, 혹은 유학이 여전히 사회의 중요한 이념으로 순기능을 가질 때 의미있는 인물이었다고 본다

18세기는 적극적인 세계 변화에 대응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었다

시대적 한계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렇지만 서학도 전파되고 천주교 문제로 윤지충 등이 처형될 만큼 여기저기서 사회 변화의 시류가 감지됐다

저자의 지적처럼 정조가 서학 문제를 단순히 남인에 대한 노론의 정치 공세로 격하시켜 무조건 잠재우고 봐야 한다는 식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보다 발전적인 토론이 되지 않았을까?

하긴 이미 심각한 교조주의와 일당 독재론에 빠지 노론이 절대로 결단코 용납할 리 없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서학을 기술적인 측면에서라도 전혀 수용하지 못한 게 아쉽다

 

노론이라는 엄청난 기득권 세력의 수백년에 걸친 정권 장악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은 쿠테타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개혁은 불가능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은 한 번도 정권을 내놓지 않았고 반대당들의 씨를 말렸으며 임금까지 택군하는 지경에 이른다

노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왕위마저 위태롭다는 두려움을 갖게 한 것이다

이러니 조심성 많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노론을 배척하는 아들 사도세자는 너무나 위험한 인물이었고 이 상태로 왕위에 오르면 노론에 의해 쫓겨날 위험마저 있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더구나 아버지인 자신에게 반역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정조의 한탄대로 다음 보위를 이을 세손이 있는 상황에서 영조의 선택은 그의 말대로 종묘를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던 셈이다

 

노론 체제에서 성리학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너무나 강력한 이데올로기였다

성리학에 반대되는 이를테면 서학 같은 대안적인 이념을 가진 세력의 쿠테타는 불가능 했을까?

그러고 보면 노론 세력이 구축한 조선 후기 사회는 나름대로 안정성이 있었던 것 같다

어찌됐든 정권 수호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서인반정 이후 반군 세력을 해체시키지 않고 5군영에 편입시켜 자신들의 세력 하에 둔 점이나, 금난전권을 통해 시전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점, 국혼물실 정책을 통해 왕비를 자파에서 낸 점 등을 보면 이들의 정권 유지는 대단히 철두철미 했던 것 같다

서학을 중심으로 한 남인들의 쿠테타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메이지 유신처럼 완전히 확 갈아엎고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가정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18세기 조선은 성리학으로 위부터 아래까지 똘똘 뭉친 나라라 일본처럼 서구화 되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층민들의 생활마저 좌지우지 할 정도로 통제력이 엄청났던 것 같고 아직까지도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는 살아 움직인다

어쨌든 후대 왕들이 적어도 정조만큼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왕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강하게 가졌다면 세도정치로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 참 아쉬운 대목이다

순조는 비록 열 한 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40대 후반까지 30년이 넘게 집권했다

단순히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세도정치가 됐다는 건 안이한 변명에 불과하다

순조는 정치력이 부족했고 왕으로서의 책임감도 아버지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졌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태종이나 세종 혹은 영조나 정조 같은 왕이었다면 같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정치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살아서 즉위했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대리청정 시기에 나름대로 정치력을 발휘했다고 하지만 역시 가정에 불과하다

순조의 손자 헌종이 겨우 8세의 나이로 즉위한 점은 조선으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헌종 역시 비록 20대의 나이에 죽긴 했으나, 십여년을 통치했다

정치는 안동김씨나 어머니인 풍양 조씨 일가에게 맡겨 버렸던 게 분명하다

그 다음 철종이야 나무하다가 왕이 된 사람이니 더 말 할 것도 없다

 

요점은 정조 이후 어린 나이에 왕이 즉위하여 대비나 특정 가문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 왕으로서의 책임의식 부재,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 성리학 교조주의 등이 조선을 식민지로 끝장나게 했다는 점이다

왕조가 잘 되려면 정궁이 아들을 많이 낳아서 후계자 문제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져야 하는 법인데, 후기로 갈수록 왜 중전들의 불임이 심했는지 모를 일이다

원경왕후는 아들 넷과 딸 넷을 낳았고, 소헌왕후는 얼마나 금슬이 좋았는지 아들 여덟과 딸 둘을 낳았으며, 정희왕후도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았다

문정왕후도 딸 넷에 아들 하나, 인렬왕후도 아들 넷을 뒀다

그런데 선조의 왕비 의인왕후부터 불임이더니만, 인현왕후나 인원왕후 모두 불임이었고, 영조비인 정성왕후도 불임이고 경종은 본인이 불임이고, 효의왕후도 불임이었으니 참 불행한 일이다

혹시 왕들이 임신이 안 될 만큼 합방을 안 한 게 아닐까?

의학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은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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