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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기대치에 미치는, 그보다 조금 더 좋은 그런 책이었다
사진도 너무 예쁘고 무엇보다 저자의 글솜씨가 읽어줄만 하고, 책을 내는 나름대로 서브 작가는 되는지라, 무조건적으로 인터뷰이들을 찬양하지도 않고 적당히 관찰자적인 시점으로 평하는 게 부담없어서 좋았다
지승호 인터뷰는 꼼꼼해서 좋긴 한데, 역시 인터뷰이들에 비해 사회적 위치가 현저히 딸리는지라 강의듣는 학생처럼 경탄하면서 인터뷰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
반대 이론 같은 건 있을 수도 없고 감히 자기 위치에서 인터뷰이 말을 이러쿵 저러쿵 평론할 수 없다는 느낌을 준다
역시 책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건 작가의 글솜씨다
이문열의 서재가 가장 궁금했다
그 다음은 공지영
나머지 작가는 관심이 별로 없어서인지 그냥 그랬다
읽고 나니 여섯 명 다 좋았다
일단 인터뷰이 수를 적게 잡은 게 좋았다
꼼꼼하게 관찰하고 적당한 분량을 할애할 수 있어서 내용에 충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자 여자 셋 씩 비율을 맞추고 김용택 시인 같은 지방 출신에게도 한 자리 준 것도 균형적으로 보인다
얼마나 멋진 시도인가!
작가의 서재를 구경시켜 주다니!!
사진도 참 예쁘게 잘 찍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자체는 사실 별로 의미가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책 분위기를 밝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이런 유명 작가들 말고 순수한 독서인들, 아마추어 책벌레들, 성실한 책 소비자들의 서재를 취재해 보면 어떨까 싶다
일반인이 어렵다면 표정훈 같은 책 칼럼니스트들은 어떨까?
책 팔아서 밥을 충분하게 많이 먹고 살 수 있는 이 위대한 작가들은, 솔직히 너무 대단하게 느껴져 감히 비교 선상에 세울 수가 없어서다
내 눈에는 그들이 일단 전업 작가이고, 그냥 작가도 아닌 대중에게 팔리는 본격문학 작가라는 점에서 우러러 보일 정도다
그래서 그들의 서재가 무척이나 부러우면서도 감히 따라 할 엄두가 안 난다
평범한 소비자에 불과한 나 같은 사람이 수천 권의 책을 꽂은 서재와 작업실을 가져도 될지, 스스로 용납이 잘 안 되는 까닭이다
너보다 더 대단한 놈들도 많으니까 걱정말고 책에다 돈 쏟아 부어도 된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책벌레들, 책과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가진 생활인들의 서재를 취재한 책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처럼 한 대여섯 명으로 제한해서 말이다
공지영은 책이 오락이라고 했다
그녀도 나처럼 모든 의문점의 해답을 책에서 찾는다
요리가 하고 싶으면 먼저 요리책부터 사고, 자녀교육에 문제가 생기면 자녀교육 책부터 주문한다는 그녀의 쾌활한 답변에 얼마나 공감이 가던지!!
노동운동 팔아서 부자됐다는 비난만큼, 그녀의 서재는 가장 화려해 보였다
심하게 화려한 건 아니라고, 작가의 분수에 어긋날 정도는 아니라고 저자가 애써 변명조로 말하지만, 작가 서재가 좀 화려하면 안 되나?
그리고 작가의 글 수준이 논란의 대상이 되지, 사생활이나 취향 따위가 대체 왜 논의거리가 되야 하는가?
그녀 방에 있는 스툴이 마음에 든다
기대고 책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이문열 서재의 소박함에도 놀랬다
그는 생각보다 검소하고 질박한, 투박한 사람 같다
외곬수고 항간의 비난과는 달리, 권력욕의 화신이라기 보다는 자기가 믿는 신념, 복고주의와 전통 옹호주의를 지키려는 고집쟁이처럼 느껴진다
서원의 부활!!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한다면 이문열의 생각처럼 꽤 낭만적이고 멋질 것 같다
그는 고향과 작업실에 두 곳의 서원을 두고 있다
3년 동안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고전 공부를 하고, 글쓰기 연습을 해서 등단하는 작가가 있다면 내공이 꽤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긴 요즘은 김영하처럼 가벼운,감각적인 문체가 팔리는 시대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도 고전 공부를 하고 싶다
이문열의 숙생들처럼 집중적으로 한 곳에 모여서 토론도 하고 많이 하고 싶다
그러나 그의 한탄처럼 요즘 세상에 누가 3년씩이나 고전 공부에 시간을 바칠 것이며, 또 3년 과정 마쳤다고 학위 주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아무 것도 인정받지 못하는데 어떤 미친 놈이 선뜻 지원하겠는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서원 같은 형태의 공간이 사회에 뿌리 내렸으면 좋겠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작가 김영하의 서재도 멋있었다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얗다는 어느 팬의 묘사가 딱 떠오르는 인상이다
마트에서 우연히 와이프를 만났는데 굉장한 미인이더라는 말도 생각난다
그 정도 능력있는 작가라면, 혹은 그 정도 수준의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라면, 그만한 위치에 있는 작가의 비서 노릇을 하려면 왠만한 미인은 되야 할 것 같은 당위가 느껴진다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하루키 같은 작가의 아내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김영하도 마찬가지다
이런 수준있는 작가를 옆에서 써포트 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한 가족으로써, 아내로써 설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김용택의 서재는 앞의 다섯명과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독학으로 공부하고 대학도 안 나온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신분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일단 지방 사람이니까 촌스럽고 투박하다
그래서 서울 작가들과 느낌이 아주 틀리다
그 여자네 집, 이라는 시는 정말 좋았다
혼자 사모하던, 그러나 도시 처녀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소박한 시골 소녀를 짝사랑 하던 시골 청년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 오는 것 같다
역시 다양성의 공존이 중요하다
신경숙의 서재도 비교적 크고 화려한 편이었다
산업체 고등학교를 나와서도 문단의 주류에 편입하고 평론가와 결혼한 그녀의 인생 내공이 상당해 보인다
그녀의 작업실 구조가 마음에 든다
한쪽 벽면은 책으로 채우고 반대쪽 벽에 긴 책상을 두고 글을 쓰는데, 옆 창문은 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블라인드로 완전히 가릴 수 있다) 책상쪽 벽 안쪽에는 기타를 치는 폐쇄 공간과 반대쪽에 샤워실을 둔 구조가 정말 편리하게 느껴진다
참고해 볼 만한 작업실 구조다
일단 긴 책상이 마음에 든다
여기저기 늘어 놓고 살아야 하므로 책상은 옆으로 긴 게 편할 것 같다
책상을 놓은 안쪽 벽에 샤워실과 방을 따로 만들어 문 없이 통과할 수 있게 한 점도 신선한 아이디어 같다
화장실 가려고 작업실을 나갈 필요가 없으니 집중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영하는 매우 활발한 인상을 주는데, 한국예술학교에서는 자폐아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만큼 연극하는 사람들은 활동적이라는 것이다
김영하가 자폐아면 나같은 사람은 완전히 정신병 수준으로 취급받을 것 같다
그는 아이를 안 낳기로 한 모양이다
동지를 얻은 것 같아 기쁘다
강은교 시인은 50이 넘었는데도 얼굴이 곱다
공지영도 참 예쁜데 그녀도 젊었을 때 미인이었을 것 같다
시는 안 좋아해서 강은교라는 이름만 알고 있다
그런데 문득문득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마음에 떠오르는 어떤 감정들, 특히 설명하기 힘든, 그러나 북받쳐 오르는듯한 격렬한 감정을 표현할 때 글로 쓰려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면서 연결도 잘 안 되는데, 이럴 때 차라리 몇가지 시어로 내뱉는다면 훨씬 잘 표현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이를 생각할 때 문득문득 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경우, 서사보다 시가 훨씬 쓰기 편할 것 같다
작가들의 서재를 둘러 보면서 마음이 너무너무 따뜻하고 예뻐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너무 부럽고 감히 모방할 수 조차 없다는 기분도 든다
나도 내 서재를 가지고 싶다
더 정확히는 내 작업실을 갖고 싶다
집과는 독립된 공간을, 책으로만 채운 공간을 갖고 싶다
집과는 별개로 원룸 하나를 별 무리없이 작업실로 꾸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좀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