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공범자들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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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이 참 신선했다
그런데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는 도통 짐작이 안 갔다
책을 읽어 보니, 참으로 기가 막힌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부시와 빈 라덴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듯, 박정희와 김일성 역시 권력 유지를 위해 상대방의 지속을 원했고, 오늘날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민족주의도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북한측의 도발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좌익 성향의 진보 정권이 들어서려면 선거 기간 동안 조용히 있어야 할 북한이, 오히려 갑작스런 도발을 시도하므로써 안보라는 걸림돌을 만들어 우익 쪽에 유리하게 만드는 북한의 의도가 자못 궁금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북한 지배층과 남한 우익 세력의 적대적 공범 관계가 유지됐던 것이다
서로를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상대는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다
실상 남북 모두 통일 자체를 원한다기 보다는 통일이라는 명분 속에서 개인을 희생시키면서 권력을 강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통일은 그저 수사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일본의 민족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민족주의적인 적대감을 지속시키면, 일본 역시 그것에 대한 방어로써 자신들의 민족주의를 강화시킨다
일본 우익 세력의 교과서 파동도 실은 한국의 민족주의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고구려사 역시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과거 고구려 영토에 대한 역사적 주권을 주장하는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대응으로써 중국 역시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변방 정권으로 포함시키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민족주의가 강화되면 될수록 힘의 논리가 지배할 것이므로 결국 가장 손해를 보는 쪽은 국력이 약한 우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또 국력을 강화시키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고, 동북아의 적대적 긴장 관계는 영원히 해제되지 않을 것이며, 북한과도 일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저자는 세습적인 희생자 의식을 버리고, 희생자가 먼저 묶인 끈을 풀자고 권한다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의 힘을 닮고 싶은 모방의 하나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국력이 약해서 당한 것이므로 힘을 키워 제국주의에 대항하자는 것이 민족주의의 요체가 아닌가?
우리를 강조하는 민족주의는 외국인 노동자와 장애인, 여성, 탈북자, 연변 교포 등을 타자화 시킨다
우리라는 테두리를 치면 그 바깥 쪽에 있는 사람들은 차별받게 된다
자유와 평등을 구현시켰다는 프랑스 대혁명이나 미국 독립 혁명도 비백인을 배제시켰다는 점에서 시민적 민족주의라는 굴레를 벗을 수 없다
저자는 21세기 포스트 민족주의를 향한 자세로써 시민의 주체로써 자신을 타자화 시키는 연습을 하라고 권한다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합법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도 다른 범주를 적용하면 타자화 되서 차별받을 수 있다
관동 대지진에 분노하기 전에 조선에서 벌어진 중국인 학살에 대해서도 분노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민족주의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주장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나치즘과 파시즘의 등장을 보면서 대체 아무런 권력도 없던 저들이 어떻게 갑작스레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세계 대전을 일으켰는지 무척 궁금했었다
이 책은 대중독재라는 개념을 통해, 1차 대전 이후 패전국 국민으로 전락한 독일과 이탈리아인들이 그들을 열렬히 환호하고 정권을 쥐어 줬음을 명백하게 보이고 있다
전근대가 신체적 형벌 등을 매개로 대중을 지배했던 반면, 근대는 과학과 기술을 토대로 좀 더 교묘하게 권력을 행사한다
나치즘과 파시즘은 아래로부터의 지지를 획득했다고 한다
자본가와 결합하여 노동 계층을 억압할 것 같은데, 실은 일자리 창출이나 빵의 공급과 같은 사회적 뇌물 공여를 통해, 일상에서는 불만이 표출되지만, 전체적인 체제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형식을 이끌어 낸 것이다
특히 이러한 대중 독재는 후진국의 근대화라는 당면 과제 앞에서 힘을 발휘한다
일단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보자는 명분 아래 대중은 독재자를 찬양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대중들은 권력에 의해 개인의 삶을 억압당하면서도 국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착각 속에 빠진다
박정희식 개발 독재가 갖는 명분도 전형적인 후진국의 근대화론에 입각한다
국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소비는 문화로 정착되어 권력의 지배를 당연시 하고, 오히려 독재자를 찬양하게 된다

민족주의가 갖는 지배적 속성과, 국가주의와 결합하여 파시즘적 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공감한다
그렇지만 이미 세계가 자본주의로 재편성 된 후 뒤늦게 뛰어든 후진국들은 과연 어떤 식으로 근대화를 이룩해야 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박정희를 그리워 하는 우익들은, 짧은 시간 내의 산업화를 개발 독재의 정당성에 대한 근거로 들이댄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아니었다면 과연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가능했을까?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후진국의 근대화를 단시간 내에 이루어야 했던 한국의 특수 상황에 대한 저자의 대안이 아쉽다
국가주의가 단시간의 성장을 가져 왔다는 평가에 대해서 지나치게 인색하지 않았냐는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과거에 효용성이 있었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근대를 넘어 탈근대로 가자는 저자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과거의 성장 동력에 대한 평가가 너무 인색한 것 같아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사를 변경사로 보자는 주장도 무척 신선하다
민족이나 국가라는 개념이 근대의 소산이라고 보면, 고대사를 오늘날의 관점으로 재단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한민족의 조상이 되는 예맥족이 세운 나라라고 해서 역사적 주권을 내세우는 우리나,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있기 때문에 변방 정권으로 보겠다는 중국이나 고구려라는 나라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에 동의한다
결국 고구려사는 동북 아시아 공통의 역사로서 의논되야 한다는 것이다
국경의 개념으로 제한하지 말고 변경으로서 연구하자는 주장은, 고구려라는 나라의 본질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동의한다
서로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오늘날 중국과 한국의 힘의 대결은, 현재의 관점으로 고대사를 재단한다는 우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말처럼 쉬운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일단 변경사라는 개념조차 생소한데 국가를 넘어선 연구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유럽 연합이 설립된 후 국가의 개념을 넘어서 각 지방의 역사를 연구하는 붐이 일었다는 일례는 우리에게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

전체적으로 어려운 얘기가 많았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으나 과연 그 대안은 무엇이냐, 또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지을 수가 없다
선명한 주장들과는 달리, 그것을 뒷받침 하는 근거들이 워낙 방대하고 학술적인 서술이 많아 읽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함몰되어 우리가 아닌 이들을 타자화 시키고 그들을 차별한다는 문제 제기만으로도 나에게 충분한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더구나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고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나 연변 교포, 탈북자, 장애인 등, 국민의 범주에서 벗어난 객체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새로운 자각도 생긴다
이를테면 나 자신은 당당한 국민의 한 사람이라 생각했으나, 실은 나 역시 차별의 논리로 재단당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흑인들을 무시하는 한국인이, 백인에게 차별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민족이라는 거대한 명분 속에 성적, 계급적 투쟁을 하찮시 한다는 저자의 비판에도 깊이 공감했다
가장 큰 문제로 나머지 문제들이 서열화 되어 하부 구조로 종속된다면, 자신들이 비판하는 제국주의와 다를 게 뭐가 있겠냐는, 민족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식민지 시대에 민족과 정신을 강조하는 식민지인 엘리트들이, 국가 권력을 빼앗긴 대신 문화 권력이라도 잡겠다는 심리가 숨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웃사이더인데, "나의 조국" 이 나와 무슨 상관있겠냐는 버지니아 울프의 탄식이 새삼 실감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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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03-05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임지현이 엮은 책만 두 권을 내리 읽었는데요
평가를 좀 보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수적 민족주의를 벗어난 동아시아 연대를 꿈꾸는 진보적 소장학자들'의 외피를 쓰고, 일본 극우파의 논리와 연결되는 글을 쓰는 부류들이 좀 있는 것 같아서 말예요.

marine 2005-03-07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못하면 조선일보나 우익 세력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은 편이죠 특히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해 일부 친일파만 처단하면 다냐는 식의 논리는 잘못 이용될 가능성도 높구요 그렇지만 그 사람의 진심은 그게 아니라고 믿어요 책에서 진정성이 보이더라구요 자기 논리를 너무 확대해서 전개하면 다소 엉뚱한 쪽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지만요 스스로도 그걸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prongkiller 2005-04-01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개념조차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주제에 소모적인 논쟁만 일삼고 있는 학계의 모습을 보면 하루하루 치가 떨립니다. 어떤 정치체제 혹은 사상이든 그 속성은 굉장히 다중적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맹신은 굉장히 해롭다고 봅니다.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 국민국가 진보 개인, 반양장
권혁범 지음 / 삼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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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밌게 읽은 책이다
민족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을 처음 접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박홍규의 평전들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국가주의에서 벗어난 아나키즘을 접하기도 했는데, 제대로 된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첫 페이지를 넘길 때만 해도 문장이 어렵고 지루했지만, 정리를 하며서 조금씩 진도를 나가다 보니 곧 책에 빠져 들게 됐다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민족주의를 처음 인식하게 된 나로서는 이 책이 상당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안에서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코드가 내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론화 된 책을 만나 반가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독재 정권의 파시즘도 못마땅했지만, 우리 안의 파시즘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화를 위해 자기 삶을 뒷전으로 미뤄 놓고 학생 운동에 헌신하는 바로 그 사람들의 조직이 실은 대단히 권위적이고 위계 질서로 이뤄진다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또 하나의 문화" 에서 펴낸 동인지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민중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는 그토록 많은 애정을 쏟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정작 자기 옆에 존재하는 아내의 힘든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문제 의식조차 갖지 않는 남편의 사상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이다
민중의 삶은 그토록 안타까우면서 자기 아내가 바깥일과 집안일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일상의 파시즘이 얼마나 개인을 강력하게 구속하는지, 또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얼마나 강력한 이데올로기인지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미국에 대해 환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요즘이야 워낙 반미가 유행이다 보니, 미국에 대해 새삼 기대할 것도 없어졌지만, 학생 시절에 미국이나 유럽에 관한 책을 읽으면 괜한 선망을 갖곤 했다
물질적인 풍요 보다는 그들의 성숙된 시민 사회의 모습이 늘 부러움을 일으켰다
이를테면 미국 대학은 연줄이 없어도, 이민자나 유색인종이어도 실력만 되면 얼마든지 교수로 채용해 준다거나, 프랑스는 파업을 하면 시민들이 연대하여 함께 문제를 풀어 나간다거나, 스웨덴이 여성의 50%가 공직을 차지할 때까지 여성 할당제를 실시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서구 사회는 나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가 서구 사회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 인권, 복지 등의 개념을 빨리 이룰 수 있도록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서구 사회에 대한 어두운 모습을 접하게 되면, 따라야 할 모범이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들어 참으로 허탈하곤 했다
정말 인간 사는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인가, 유토피아란 머릿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서구의 근대성이라는 것도 식민주의에 바탕한 부분이 많고 근대성이라는 개념 자체도 국가주의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따라야 할 모범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일정 부분은 분명히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시키고 있으므로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코드로 그것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근대와 탈근대 등을 개념적으로 세밀하게 나누는 것은 관념 놀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것이다
이슬람 세계의 여성 인권 탄압은 문화 상대주의라는 개념을 넘어 선,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훼손시키므로 반드시 시정되야 할 부분이다
부브카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못하는 그녀들의 현실은, 단순히 자국 문화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들을 말하면 서구 편향주의라는 시각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런 부분을 경계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강력한 국가주의 코드를 세 가지 원인으로 분석한다
식민지 과정을 통해 시민 사회의 탄생을 겪지 못하고 근대 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에 나라의 힘을 길러야 다시는 지배받지 않을 거라는 위기 의식이 강하다
또 분단된 후 독재 정권들이 반공을 최우선시 했기 때문에 국가 안보를 핑계로 국가의 개인 지배를 당연시 해 왔다
마지막으로 집단주의와 혈연, 가문 등을 중시해 온 유교 문화의 특성이 국가주의를 개개인에게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게 했다
국가 중심의 발전을 통해 산업의 근대화는 이룩했으나, 문화의 근대화는 실천하지 못한 셈이다
근대화가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보는 한계가 있다고 하나, 자유와 평등, 인권, 복지 등의 인류 보편적 가치 추구를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비하시켜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사실 애국심, 국력을 기르자는 표어,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대한 과도한 열정 등 우리나라의 국가주의는 일상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러한 국가주의는 민족주의와 맞물려 절대선의 경지에 이른다
즉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죽일 놈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문화가 아주 강력한 사회다
장유유서와 충효의 강조를 통해 위계질서와 권위의식을 중시한다
튀는 사람을 싫어하고 다양성의 조직화를 통한 하나보다는, 동일인의 복제를 통한 하나를 추구한다
신문에서는 걸핏하면 국론분열을 걱정하고 국론통일을 외치지만, 7천만이 모인 사회에서 국론이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고, 전체주의적 발상인지도 모른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차이를 가진 사람을 배척한다
여성이나 장애인, 제 3세계 노동자, 동성연애자, 동거 커플 등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면 폭력에 가까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우리의 집단주의 정서는 국가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반미나 촛불시위, 월드컵 과열 현상 등에 대한 분석을 읽으면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지하철 노조 등이 파업을 할 때마다 신문이나 뉴스가 왜 저렇게 선정적인 보도만 하는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왜 파업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시민의 발을 볼모로 판치는 집단 이기주의라든지, 출근길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의 모습만 내보내는 식으로 정부 기관의 대변인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월드컵 역시 마찬가지였다
월드컵 기간 내내 축구 말고는 볼 게 없을 정도로 온 언론이 오직 월드컵에만 초점을 맞췄다
왜 축구 잘 하는 게 국력과 연관되는가?
내가 제일 의문시 하는 점이었다
함께 즐기는 축제는 좋지만, 온 국민이 하나되어 마치 국운이라도 걸린 듯 신문과 TV에서 떠들어 대는 광경은,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국민이 아닌 듯한 소외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국가주의는 제국주의 등으로 폄훼하면서 정작 우리의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의식도 갖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왜 언론은 비판하지 않는가?
언론이란 여론을 종합하고 사회를 선도하는 매체가 아니라, 상업성과 권력을 쫓는 또 하나의 집단일 뿐이라는 회의가 든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 한 번 뉴스나 신문에 오르기만 하면 엄청난 일로 확대되서 엉뚱한 아우라를 뒤집어 쓰게 된다
이은주 자살 관련 보도를 보면서, 돈이 되면 더 이상 쥐어 짤 게 없을 때까지 기사거리를 만들어 내는, 그래서 결국은 그 사건이 아무 가치도 없는 게 되버리면 그 때서야 버리는 언론의 상업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에 고개를 흔들었다
신문과 TV를 신봉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설득력 있는 비판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것은 과연 국가의 해체가 가능할 것이냐는 문제다
박정희식 독재는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빠른 산업화를 이룩했고 결과적으로 오늘날 민주주의와 인권 등에 관해 논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만들었다
국가주의를 벗어나면 약육강식으로 표현되는 국제 사회에서 개인은 온전하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우리나라 같은 약소 민족에게 국가는 최소한의 방어벽으로 작동하는데, 국가를 넘어선다면 어떤 대응책이 있을 것인가?
과연 국가와 민족의 경계선을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는 가능할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을 읽어 보면 세계화란 지식인들의 성급한 환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발상은 아직은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헌팅턴 역시 촘스키 같은 자국의 지식인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이익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명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세계화, 넒은 의미의 세계 평화라는 것이 과연 실현 가능하냐는 얘기다
미국 패권주의를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 역시 국가의 힘을 길러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을 높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힘이 있다면 미국처럼 타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분단 국가라는 한계도 안고 있다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여기에 대한 해답까지 주지는 못한다
사실 이 문제는 보다 많은 담론을 통해 찾아야 할 근본적이고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자의 문제 의식 제기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본다
또한 이 문제는 한 사람의 책 한 권으로는 주장될 수 없는 거대한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비판에 머문 한계점도 분명히 있지만, 우리가 절대시 하는 국가나 민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만 가지고도 이 책의 가치를 높이 산다
절대악이나 절대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판받지 않을 이데올로기나 주장 따위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자유롭게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는 열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다양성의 인정이 국론분열 등으로 매도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집단이나 국가 등에 개인이 함몰되는 것을 경계한다
더 나아가 양심이나 성적 취향, 종교관 등의 문제로 국가나 집단으로부터 억압되는 일이 사라지길 바란다
사회란 결국 개인이 모여 굴러가는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나는 그저 힘없는 개인에 불과할 뿐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의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우리 안의 파시즘, 일상의 파시즘에 대해 눈감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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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5-03-0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이 책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

클리오 2005-03-0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삼인에서 계속 이런 문제의식의 책을 내는 것 같네요...)

marine 2005-03-0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제 서재에서 처음 인사드립니다 재밌게 읽으실 거예요 ^^
클리오님, 삼인 출판사가 이런 책을 많이 내나 보네요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어요 ^^

우상 2005-07-1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혁범 선생님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여기서 뵙는군요..얼른 사서 읽어봐야 겠네요.선생님에게 배우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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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이 참 처연하고 고풍스럽다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어 보니, 소금밭이란 몹시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의미한다
김장을 하려면 배추에 소금을 뿌려야 하듯, 뭔가를 이뤄 내기 위해 견뎌야 하는 힘든 상태를 저자는 소금밭이라 명명했다
그 표현이 참 신선하고 마음에 든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보면 메밀밭을 온통 흰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과는 다른 의미지만 둘 다 비슷한 정도의 산뜻함이 느껴진다
삶에 지치고 힘들어 있을 때 도서관의 서고에 들어가 오래 된 책들을 펼치고 책장을 넘길 때의 그 서늘한 감촉은, 잠깐 동안의 쉼표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나도 가끔 도서관에 가면 엄청나게 늘어선 책들 속에서 힘이 불끈 솟는 걸 느낀다
난 아직 어려서일까?
삶에 패배한 경험이 아직은 적기 때문인지, 도서관의 책들을 보면서 할 수 있다는 괜한 자신감이 생기는데, 저자는 중년의 나이를 반영하는 듯, 책에서 그저 작은 위안이나 휴식을 얻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서평들이 많았다 강유원의 표현을 따르자면 이건 서평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감상들을 늘어 놓은 잡문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이런 수필류가 훨씬 좋다
이명원은 비평가라고 하지만, 본격적인 문학 비평은 피곤하다
알라딘의 리뷰를 읽을 때도, 자신의 삶에 비추어 격렬하게 느낀 점을 피력하는 글들이 좋다
딱딱하고 분석적인 감상문은 피곤하다
나는 리뷰를 읽으면서 그것을 쓴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느낀 점을 마구마구 풀어 내는 리뷰를 좋아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명원의 이 책들도 100% 공감할 수는 없었다
일단 서평 대상이 되는 책을 읽었어야 말이 통하지 않겠는가
내가 읽은 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럴 때마다 짧은 독서 수준을 한탄하게 된다

표정훈의 책에서도 느낀 바지만, 저자 역시 비평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한이 많은 것 같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사실 나도 끊임없이 내 직업에 대해 갈등하고 회의하고 고민한다)
요즘처럼 책을 안 보는 시대에 책 비평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비평가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영국문학기행" 을 쓴 김인성의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감탄했지만, 그녀 역시 제대로 된 창작물을 내지 못하고 그저 비평에 머물러야 함을 애닯파 했다
그래도 이명원의 경우는 본격 문학 비평이라도 하는 사람이지만, 표정훈 같은 사람은 출판에 관한 일을 써서 먹고 사는 에세이스트이니, 그의 고민이 더욱 클 것 같다

강준만이 문학 비평을 하자, 문단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니가 문학에 대해 뭘 아느냐였다고 한다
저자는 외부 비판에 대해서도 열린 눈을 갖지 않으면 출판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게 바로 우리 안의 파시즘일까?)
저자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로 태어난 이상 남자가 기득권층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100%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므로 일부 페미니스트에게 아무리 자신이 페미니스트라 주장한달지라도 공격을 받는다고 한다
그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기득권층임을 인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을 완전히 포기하라니,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추천하는 "행복한 페미니즘" 을 읽고 싶다
페미니즘이란 모든 차별을 거부하는 운동이므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는 흑인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허균에 관한 대목은 흥미로웠다
허균이라면 기껏해야 홍길동의 저자라는 사실 밖에 모르는데 개인사를 들어 보니 꽤나 호기롭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특히 명문대가에서 태어났음에도 기존 체제에 적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려한 이 비극적인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
북학의를 쓴 박제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놀랍게도 박제가는 청나라 말을 쓰자고 제안한다
이명원에 따르면 박제가는 앞으로 100년도 못 돼 멸망할 청나라를 유토피아로 극찬했고, 완벽하게 그들을 따르자고 주장했다
영어 공용론을 주장한 복거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청나라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있던 18세기 조선과 전지구적인 세계화가 이루어진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그렇긴 하지만, 미국을 따라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보수 우익들의 주장은 과거 역사에 비춰 볼 때 아무래도 억지스런 면이 있다
시대착오적으로 비추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가벼운 수필들이 많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정중동일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으면 좋았으련만, 주로 책을 읽고 생각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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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 2005-03-0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 안의 책들을 대충 읽기라도 했으면 별이 4개쯤 되었을텐데..저도 별세개였거든요. 이명원님의 글은 참 좋더라구요. ^^

책속에 책 2005-03-2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님말처럼 신선하고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강유원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나를 또 우울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런 서평집을 읽을 때는 반드시 거기 나온 책들을 먼저 읽었어야 하는데, 읽은 책이 거의 없다
그러니 수박 겉핥기도 아니고, 도무지 저자가 소개하는 책의 매력에 빠져 들 수가 없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도 아니고,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쓴 것인데 공감할 수가 없으니 나는 그저 이 책의 글자만 읽고 있는 셈이다
저자가 서평의 칼날을 날카롭게 세웠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지만, 나는 아직 즐길 수준이 안 된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책 중 10% 정도 밖에 읽지 않았으니, 서평집을 읽겠다고 책을 펴든 내 만용에 웃음이 나온다

강유원이라는 사람은 자부심이 참 강한 것 같다
정식으로 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회사원이라고 한다) 책 읽는 수준은 퍽 높다
일부러 서평을 쓸만한 책들만 모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소개된 책들 중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
기껏해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정도일까?
다음부터 서평집 고를 때는 내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자
무지하게 속상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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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3-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서평집은 그게 문제죠. 저도 겹치는 책이 별로 없어서 속상해할 것 같군요. 혹시 사더라도 거기 언급된 책들을 읽고난 뒤에 읽어야 할 것 같네요.

kleinsusun 2005-03-0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고 강유원 비판하는 글을 썼었거든요.
그 글을 읽고 강유원의 제자(강유원은 모대학의 철학 강사랍니다)가 제 글에 대한 비판을 제 홈페이지 방명록에 올리고, 제 글을 강유원 홈페이지에도 올렸었죠. 한바탕 해프닝이었어요. ㅋㅋ 제가 쓴 글에서 강유원을 이렇게 표현했죠. "똘똘이 스머프".
심한 반발을 느낀 책이었어요.

marine 2005-03-0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룬데 마태우스님, 여기 소개된 책들이 제 수준에서 읽을 만한 게 별로 없더라구요 옛날에 "서재 결혼시키기" 읽을 때도 저자가 감동하던 책들이 다 듣도 보도 못한 것이라 좀 멍했던 기억이 나요

클라인수서님, 저도 수선님의 리뷰 보고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은 겁니다 알라딘의 저자 소개를 보면 철학 강사도 하지만 회사원이라고 쓰여 있길래 배수아처럼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줄 알았어요 수선님의 리뷰를 비판한 사람이 바로 그 제자였군요 음,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한 걸요??

마늘빵 2005-03-0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유원은 동국대 철학과에서 철학박사를 받았고, 웹에디터?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합니다. 철학은 영원한 취미로, 일은 따로 이렇게 하고 있는 셈이죠. 대단한 독서광이고 한겨레21엔가 씨네21에 글을 쓰기도 했답니다. ^^;

marine 2005-03-01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 21이 맞을 거예요 문화일보에도 서평 기재하는데, 고미숙의 열하일기 리라이팅을 쓰레기라고 비판해서 그린비 출판사 사장이랑 설전을 벌였더군요 현재 회사는 그만뒀다네요? 이 분의 홈피에 들어가 봤는데 책에 대한 태도가 너무나 확고하고 엄격해서 남이 뭐라 한다고 해도 콧방귀도 안 뀔, 자긍심이 대단한 분 같아요
 
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은 참 좋은데, 내용은 참 없다
혹시 헌책방 순례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헌책방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영 아니올씨다다
책은 종이질이 얇아 가볍고 좋은데, 안의 내용까지 깊이가 얇다 보니 실망스럽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헌책방 풍경을 찍은 흑백 사진들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조희봉이 쓴 "전작주의자의 꿈" 이 더 나은 것 같다

책에 관한 책을 읽는 까닭은 책을 사랑하는 나의 열정을, 글솜씨 좋은 사람이 술술 풀어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처럼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수준의 글을 읽다 보면 좀 화가 나려고 한다
그래도 일단 책으로 묶으려면 어느 정도 글빨은 되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헌책방을 가보지 않기 때문에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헌책방들을 들여다 보면서, 다양한 문화의 공존에 대해 생각했다
디지털 첨단 문화를 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꾸질꾸질한 헌책방에 죽치고 앉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것에 몰두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문제이고, 그것의 가치는 비슷한 무게를 지닌다고 믿는다
요즘 세상에 헌책방 같은 델 왜 가냐고 해 버리면, 갑자기 슬픈 생각이 밀려온다
정작 나는 헌책방을 이용하지 않는데도, 내가 가진 소박한 다른 취미들마저 도매금으로 하찮게 여겨지는 것 같아 몹시 서글퍼진다
대한민국 사회는 주류에 대한 욕망이 강한 곳이다
그래서 비주류는 늘 슬프고 약자의 설움을 감수해야 한다
헌책방 문화도 일종의 비주류다
넓게 보면 디지털 시대에 책에 탐닉한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비주류일지도 모른다
출판의 위기란 비주류로 전락한 책의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사회적 지표일 것이다

선두 그룹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숭앙받고, 나머지는 다 천시되는 그런 독재적인 분위기가 사라졌음 좋겠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개인은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기 보다는, 책은 책 나름대로, 컴퓨터는 컴퓨터 나름대로 각자의 가치를 지니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헌책방도 마찬가지로 우리 문화의 하나로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면 좋겠다
헌책방 하면 구질구질 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그래서 곧 사라질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떠올렸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헌책방이 가진 숨은 힘을 발견했다
인터넷 마케팅 등으로 판로를 넓히고 있다고 하니, 비록 대학가에서는 그 위상을 잃고 찾기도 힘든 뒷골목 등으로 쫓겨 났다고 하나, 절대 그 명맥이 쉽게 끊어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헌책방은 또 하나의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지적대로 헌책방에서 살아 남는 책이라면, 두 번 읽어도 아깝지 않을 책일 것이다
시대를 넘어서 다양한 세대에게 읽히는 책이 바로 고전 아닌가?
그렇다면 헌책방에서 거래되는 책들은 독자들에게 그 수준을 인정받는 책이리라
헌책방 주인들도 안 팔리는 책, 안 찾는 책은 안 산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단 헌책방에 진열된 책들은 최소한의 가치는 획득한 셈이다
수많은 책들이 난무하고 금세 사라져 버리는 요즘 같은 세상에, 헌책방에 살아 남는 책들은 나름의 저력을 가졌을 것 같다

나는 지방에 살기 때문에 헌책방을 쉽게 접하지 못한다
저자의 아쉬움처럼 우리나라의 서울 중심주의는 지방 사는 사람들에게 문화의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것 역시 문화의 다원성을 가로막는 방해 요인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서울로 상경하게 되면 헌책방 순례라는 재밌는 취미를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일단 헌책방은 가격이 싸기 때문에 많은 책을 사는데 부담이 없고, 절판된 책들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90년대 초반에 출판되는 책만 해도 대부분이 품절이라 구하기 어려운데 헌책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헌책방을 둘러 보다 보면 뜻밖의 성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좋은 책들을 찾아내는 성과 말이다

헌책방 문화라는 독특하고 고전적인 이야기를 좀 더 다듬어진 문체로 재밌게 풀어 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치 옆사람에게 얘기하는 식의 가벼운 문체와 깊이가 얕은 내용이 독자를 실망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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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3-0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주변에 헌책방이 많은데도 잘 안갑니다... 품절된 책을 구할 때는 해당 출판사에 찾아가 사곤 했지요... 그래도 어쩌다 헌책방에 갈 때면 몇권 사가지고 옵니다. "별로 안싸네!" 이래가면서요.

marine 2005-03-0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헌책방은 익숙치가 않네요 그런데 품절된 책은 그 출판사로 가면 되는 건가요? 전 주로 도서관에서 찾습니다 헌책방 가격이 크게 싼 건 아니군요

2005-03-06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3-06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5-03-0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덕분에 방금 답변 쓰고 왔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

2005-03-07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5-03-0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하이드님? 저자가 답글 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의외의 반응에 놀라게 되는 것 같아요 전 번역자가 제 리뷰 고맙다는 칭찬만 두 번 받았다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했답니다 어쨌든 하이드님,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05-03-12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그 옛날 한번 가서 바가지 쓴 이후로 안 갑니다. 사실 헌책방에서 구해야할 정도로 사고 싶은 책도 없구요. 아 있긴 있는데 개인적으로 새책을 선호하는지라.

marine 2005-03-14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헌책방에 생각보다 신간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몇 권 고르는 재미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기회가 되면 전 한 번 가 보고 싶어요 저도 새책 좋아하는데, 부담없이 책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책값이 아주 싸지는 않다고 하더군요

2014-12-20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