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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으로부터의 탈퇴 - 국민국가 진보 개인, 반양장
권혁범 지음 / 삼인 / 2004년 2월
평점 :
아주 재밌게 읽은 책이다
민족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을 처음 접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박홍규의 평전들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국가주의에서 벗어난 아나키즘을 접하기도 했는데, 제대로 된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첫 페이지를 넘길 때만 해도 문장이 어렵고 지루했지만, 정리를 하며서 조금씩 진도를 나가다 보니 곧 책에 빠져 들게 됐다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민족주의를 처음 인식하게 된 나로서는 이 책이 상당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안에서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코드가 내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론화 된 책을 만나 반가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독재 정권의 파시즘도 못마땅했지만, 우리 안의 파시즘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화를 위해 자기 삶을 뒷전으로 미뤄 놓고 학생 운동에 헌신하는 바로 그 사람들의 조직이 실은 대단히 권위적이고 위계 질서로 이뤄진다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또 하나의 문화" 에서 펴낸 동인지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민중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는 그토록 많은 애정을 쏟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정작 자기 옆에 존재하는 아내의 힘든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문제 의식조차 갖지 않는 남편의 사상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이다
민중의 삶은 그토록 안타까우면서 자기 아내가 바깥일과 집안일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일상의 파시즘이 얼마나 개인을 강력하게 구속하는지, 또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얼마나 강력한 이데올로기인지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미국에 대해 환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요즘이야 워낙 반미가 유행이다 보니, 미국에 대해 새삼 기대할 것도 없어졌지만, 학생 시절에 미국이나 유럽에 관한 책을 읽으면 괜한 선망을 갖곤 했다
물질적인 풍요 보다는 그들의 성숙된 시민 사회의 모습이 늘 부러움을 일으켰다
이를테면 미국 대학은 연줄이 없어도, 이민자나 유색인종이어도 실력만 되면 얼마든지 교수로 채용해 준다거나, 프랑스는 파업을 하면 시민들이 연대하여 함께 문제를 풀어 나간다거나, 스웨덴이 여성의 50%가 공직을 차지할 때까지 여성 할당제를 실시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서구 사회는 나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가 서구 사회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 인권, 복지 등의 개념을 빨리 이룰 수 있도록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서구 사회에 대한 어두운 모습을 접하게 되면, 따라야 할 모범이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들어 참으로 허탈하곤 했다
정말 인간 사는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인가, 유토피아란 머릿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서구의 근대성이라는 것도 식민주의에 바탕한 부분이 많고 근대성이라는 개념 자체도 국가주의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따라야 할 모범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일정 부분은 분명히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시키고 있으므로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코드로 그것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근대와 탈근대 등을 개념적으로 세밀하게 나누는 것은 관념 놀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것이다
이슬람 세계의 여성 인권 탄압은 문화 상대주의라는 개념을 넘어 선,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훼손시키므로 반드시 시정되야 할 부분이다
부브카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못하는 그녀들의 현실은, 단순히 자국 문화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들을 말하면 서구 편향주의라는 시각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런 부분을 경계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강력한 국가주의 코드를 세 가지 원인으로 분석한다
식민지 과정을 통해 시민 사회의 탄생을 겪지 못하고 근대 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에 나라의 힘을 길러야 다시는 지배받지 않을 거라는 위기 의식이 강하다
또 분단된 후 독재 정권들이 반공을 최우선시 했기 때문에 국가 안보를 핑계로 국가의 개인 지배를 당연시 해 왔다
마지막으로 집단주의와 혈연, 가문 등을 중시해 온 유교 문화의 특성이 국가주의를 개개인에게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게 했다
국가 중심의 발전을 통해 산업의 근대화는 이룩했으나, 문화의 근대화는 실천하지 못한 셈이다
근대화가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보는 한계가 있다고 하나, 자유와 평등, 인권, 복지 등의 인류 보편적 가치 추구를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비하시켜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사실 애국심, 국력을 기르자는 표어,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대한 과도한 열정 등 우리나라의 국가주의는 일상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러한 국가주의는 민족주의와 맞물려 절대선의 경지에 이른다
즉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죽일 놈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집단주의 문화가 아주 강력한 사회다
장유유서와 충효의 강조를 통해 위계질서와 권위의식을 중시한다
튀는 사람을 싫어하고 다양성의 조직화를 통한 하나보다는, 동일인의 복제를 통한 하나를 추구한다
신문에서는 걸핏하면 국론분열을 걱정하고 국론통일을 외치지만, 7천만이 모인 사회에서 국론이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고, 전체주의적 발상인지도 모른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차이를 가진 사람을 배척한다
여성이나 장애인, 제 3세계 노동자, 동성연애자, 동거 커플 등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사회가 인정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면 폭력에 가까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우리의 집단주의 정서는 국가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반미나 촛불시위, 월드컵 과열 현상 등에 대한 분석을 읽으면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지하철 노조 등이 파업을 할 때마다 신문이나 뉴스가 왜 저렇게 선정적인 보도만 하는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왜 파업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시민의 발을 볼모로 판치는 집단 이기주의라든지, 출근길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의 모습만 내보내는 식으로 정부 기관의 대변인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월드컵 역시 마찬가지였다
월드컵 기간 내내 축구 말고는 볼 게 없을 정도로 온 언론이 오직 월드컵에만 초점을 맞췄다
왜 축구 잘 하는 게 국력과 연관되는가?
내가 제일 의문시 하는 점이었다
함께 즐기는 축제는 좋지만, 온 국민이 하나되어 마치 국운이라도 걸린 듯 신문과 TV에서 떠들어 대는 광경은,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국민이 아닌 듯한 소외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국가주의는 제국주의 등으로 폄훼하면서 정작 우리의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의식도 갖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왜 언론은 비판하지 않는가?
언론이란 여론을 종합하고 사회를 선도하는 매체가 아니라, 상업성과 권력을 쫓는 또 하나의 집단일 뿐이라는 회의가 든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 한 번 뉴스나 신문에 오르기만 하면 엄청난 일로 확대되서 엉뚱한 아우라를 뒤집어 쓰게 된다
이은주 자살 관련 보도를 보면서, 돈이 되면 더 이상 쥐어 짤 게 없을 때까지 기사거리를 만들어 내는, 그래서 결국은 그 사건이 아무 가치도 없는 게 되버리면 그 때서야 버리는 언론의 상업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에 고개를 흔들었다
신문과 TV를 신봉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설득력 있는 비판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것은 과연 국가의 해체가 가능할 것이냐는 문제다
박정희식 독재는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빠른 산업화를 이룩했고 결과적으로 오늘날 민주주의와 인권 등에 관해 논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만들었다
국가주의를 벗어나면 약육강식으로 표현되는 국제 사회에서 개인은 온전하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우리나라 같은 약소 민족에게 국가는 최소한의 방어벽으로 작동하는데, 국가를 넘어선다면 어떤 대응책이 있을 것인가?
과연 국가와 민족의 경계선을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는 가능할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을 읽어 보면 세계화란 지식인들의 성급한 환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발상은 아직은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헌팅턴 역시 촘스키 같은 자국의 지식인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이익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명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세계화, 넒은 의미의 세계 평화라는 것이 과연 실현 가능하냐는 얘기다
미국 패권주의를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 역시 국가의 힘을 길러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을 높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힘이 있다면 미국처럼 타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분단 국가라는 한계도 안고 있다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여기에 대한 해답까지 주지는 못한다
사실 이 문제는 보다 많은 담론을 통해 찾아야 할 근본적이고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자의 문제 의식 제기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본다
또한 이 문제는 한 사람의 책 한 권으로는 주장될 수 없는 거대한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비판에 머문 한계점도 분명히 있지만, 우리가 절대시 하는 국가나 민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만 가지고도 이 책의 가치를 높이 산다
절대악이나 절대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판받지 않을 이데올로기나 주장 따위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자유롭게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는 열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다양성의 인정이 국론분열 등으로 매도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집단이나 국가 등에 개인이 함몰되는 것을 경계한다
더 나아가 양심이나 성적 취향, 종교관 등의 문제로 국가나 집단으로부터 억압되는 일이 사라지길 바란다
사회란 결국 개인이 모여 굴러가는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나는 그저 힘없는 개인에 불과할 뿐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의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우리 안의 파시즘, 일상의 파시즘에 대해 눈감지 않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