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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오테라피 - 독서치료, 책속에서 만나는 마음치유법
조셉 골드 지음, 이종인 옮김 / 북키앙 / 2003년 5월
평점 :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유용했다
"독서의 역사" 는 결국 읽다 포기했지만 이 책은 열심히 읽었다
인터넷 시대에 문학이 갖는 의의에 대해 정의해 준다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독서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부터 바꾸라고 한다
실제로 독서가 심리 치료에 이용되는 예를 제시하는데, 사실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삶에 문제가 생길 경우 과연 책 한 권을 읽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독서로 마음의 치료를 할 정도가 되려면 어느 정도 읽기 수준이 되야 한다고 본다
전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이 심리적인 문제가 생겼다고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불가능 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W같은 애가 과연 책 읽으면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책 읽으라고 권해 주면 오히려 화를 낼 거다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유용할 것 같다
심리 치료이 핵심은 카타르시스에 있다
소설의 주인공에게 완전히 빠져 들어 마치 내가 직접 그 상황을 경험한 것처럼 감정을 분출시키는 것이다
소설에 빠져 들기는 쉽지만 완전히 동일시 되는 건 사실 어렵다
내가 직접 소설 속의 상황을 경험하지 않는 이상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완벽하게 빠져 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카타르시스라는 건 단순히 동일시 되는 것 외에도, 내면에 있는 감정을 완전히 밖으로 내다 버리므로써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인데 실제 경험이 아닌 가상 체험, 즉 독서를 통해 이 정도까지 느끼는 건 솔직히 어려운 거 아닌가?
어느 정도의 동일시와 예방 효과는 있다고 본다
배수아의 소설을 (부주의한 사랑) 읽을 때 나는 불륜에 대해, 혹은 규격에 벗어난 삶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됐다
주인공은 유부남을 사랑해서 양부모에게 버림받았고 직장도 그만둔다
결국 그 유부남이 집으로 돌아간 후 살기 위해 중국집 웨이스트리스로 취직한다
괜찮은 중산층에서 어느새 하층 노동 계층으로 떨어진 걸 보면서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보통 불륜을 그릴 때는 경제적 상황은 제쳐 두거나 넉넉한 쪽으로 그리기 마련인데 (먹고 살기 힘든데 사랑이 가능하겠는가!)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좀 리얼하게 묘사했다
삶의 실체를 들여다 본다는 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솔직히 그 유부남이 여자 주인공을 떠났다는 게 충격이 아니라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그 상황에 놀랬다
인생 함부로 살아선 안 되겠다, 뭐 이런 다짐을 했다
전경린의 소설을 읽을 때도 상당히 몰입을 했다
일단 그녀의 섬세한 문체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남자 주인공의 멋진 모습에 꽤 빠져 들었다
미흔이 규에게 반하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이종원이 규 역할을 맡았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이종원을 떠올렸다
나는 잘 생기고 쿨한 남자에게 빠져 드는 미흔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면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K는 잘 생긴 건 아니었지만 내 눈에는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 사람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하나?
규에게 집중하는 미흔의 그 심리 상태를 나도 겪어 봤기 때문에 꽤 많이 공감하고 마치 실제처럼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혼을 아직 안 해서인지 미흔과 남편 효경의 관계는 별다른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을 하는 것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은 제대로 느끼기 힘들다
만약 전혀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생생히 느낄 수 있다면 작가가 아주 훌륭하게 글을 썼거나 (마치 폴 오스터처럼) 본인의 상상력이 대단한 경우일 거다
저자는 독서의 장점으로 이 상상력을 든다
매스 미디어는 아무 힘을 안 들이고도 눈 앞에 장면을 보여 주지만, 책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머리를 써서 스스로 그 장면을 만들어 내야 한다
즉 사고의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하면 생각할 필요가 없는 텔레비젼을 보고 좀 더 여력이 남으면 생각해야 하는 독서를 택한다
독서는 대단히 능동적인 과정이다
물론 어느 정도 감정이입이 되고 집중할 때에만 그렇다
확실히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텔레비젼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을 생각하면 아무리 영상 매체가 발달해도 여전히 책의 가치는 그대로 유지될 것 같다
나는 비교적 소설을 안 읽는 편이다
베스트셀러는 유치해서 안 보고 고전은 어려워서 쉽게 못 읽는다
수준있는 독서를 하자는 생각 때문에 인문 교양 서적 위주로 읽는다
그렇지만 이 책에 따르면 정보 획득의 목적을 떠나서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 감정을 풍부하게 해 주고 많은 위안을 준다
사실 요즘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독서를 하라고 권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가 난무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독서의 효과는 정보 획득에 있지 않다
사실 뭔가를 얻으려면 요즘 같은 시대에는 시간 낭비일 수도 있다
책을 읽으므로써 자기 삶을 다시 돌아 보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여러 감정에 대한 반응 기제를 배울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돌아 보는 것, 이것이야 말로 독서의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저자는 책을 통해 생활의 변화를 끌어내는 과정이 길고 느리지만, 분명히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 치료에 독서 기법을 이용하는 것이리라
요즘 나의 고민이 단순히 책만 읽고 생활 태도에 전혀 반영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이 말에 약간의 위로를 얻었다
계속 하다 보면 결국은 변한다는 얘기다
앤서니 라빈스가 말한 새로운 신경 회로의 형성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것 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인 독서를 하려고 한다
느낌이 안 오는 책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대신 공감할 수 있는 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보고 내 경우에 대입하면서 내 감정을 더 많이 드러내는 능동적인 독서를 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처럼 남독 수준의 빠른 읽기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책을 아껴서 읽는다는 어느 일본 독서가의 말이 떠오른다
소설 같은 경우도 메모를 하면서 플롯 구조를 파악하는데 애쓸 필요가 있다
"오만과 편견" 같은 경우 메모하지 않았다면 곧 중심을 잃고 헤맸을 것이다
18세기에 쓰여진 작품이라 그런지 모든 상황이 너무 낯설어 몰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첫 십여 장에 집중하라는 충고가 맞는 걸까?
시작 부분에 제시되는 인간 관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니까 뒤로 갈수록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간단히 메모를 하면 집중할 수는 있는데, 대신 속도가 느려져 나중에는 메모하다가 흐름을 놓치기도 한다
내 책이면 가볍게 책에 메모도 하면서 줄도 긋고 편하게 읽을텐데 그게 좀 아쉽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같은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더구나 요즘처럼 한 주에 10권 이상 읽는다면 책값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중에 글을 쓰려면 원전이 있긴 있어야 할 거다
개인 도서관을 위해 예산을 세워 놓으라고 한다
서재라는 말 보다 얼마나 듣기 좋고 거창한지!!
어제 읽은 책에서도 6만권의 장서를 소유한 사람이 나오지만, 나도 그런 꿈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런 경우는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읽는 것보다 모으는 것에 더 의의를 두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가치있고 우아하며 고상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인형이나 우표 모으는 것 보다는 말이다!
이 곳 공공 도서관에는 약 2만 권의 책이 있다
아주 넓은 공간은 아니다
꼼꼼하게 배치한다면 아파트 큰 방 하나만 비우면 충분히 많은 책을 소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방 하나를 서재로 짜면 절대 공간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다
더구나 내가 읽은 책으로만 채운다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책을 소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에 대한 소유욕, 내 손때가 묻은 책으로만 진열하기,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붙받이장을 만들듯 서재를 아예 벽에다 짜서 넣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새 책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다시 읽기는 힘들 것이다
하긴 "닥터 지바고" 같은 책은 다음에 읽으면 다른 느낌일 것 같다
"호밀밭의 파수꾼" 이나 "위대한 게츠비"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 지금 읽은 것과 나이 들어 읽는 느낌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직장을 옮기게 되면, 즉 도서관 갈 시간도 없고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하면 그 때는 사서 읽을 생각이다
한 주에 한 권만 읽어도 괜찮지, 뭐
그 때부터는 책을 열심히 모아야겠다
저자는 학교가 문학을 어렵게 만든다고 안타까워 한다
충분히 일리있는 지적이다
그 역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친 사람이지만, 문학이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본연의 기능을 잃고 대학 교수들 밥먹여 주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시간의 시련을 이겨낸 고전일수록 더욱 접근하기 어렵다
있는 그대로 텍스트를 읽고 내 식으로 감동하면 되는데 일단 학문으로 자리 잡으면 너무 엄청난 가치를 부여해 모든 것이 어려워진다
세익스피어가 위대한 건 알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다 높이 받드는 건 넌센스라는 얘기다
대학 교수나 평론가들의 이런 태도가 정작 책을 독자로부터 유리시킨다
당장 국어 시간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저 시나 소설로 느껴도 될 것을 거기다 밑줄 긋고 무슨 의미인지 받아 적고 시험보고, 그러니 개인적인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겠는가?
만약 내가 국어 선생이라면 어떻게 할까?
대학이라면 또 몰라도 중고교생에게 수능 강의 이외의 형식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
대안 학교도 아닌데 그 따위로 수업하면 쫒겨날 거다
또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그러니 페레가 세운 모던 스쿨에서는 교사에게 전권을 주는 대신 그 교사는 수업 준비를 엄청나게 해야 했다
정해진 룰이 없으니 스스로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다
나라면 문학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
일단 학기초에 혹은 학기 시작 전에 필독 도서 목록을 나눠 주고 그 책에 대해 토론한다
당연히 한 클래스 숫자는 적어야 한다
가능하면 10명 이내로
먼저 책에 대한 각자의 느낌을 발표하고 내가 등장 인물이나 플롯, 문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그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거다
수업 평가는 얼마나 참여하느냐, 또 학생이 제출하는 에세이 등으로 주관적인 평가를 한다
(이렇게 하면 내신 성적 때문에 학부모들이 객관성이 없다고 들고 일어나겠지)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보다 자유롭고 개인적인 독서가 되지 않을까?
어차피 선생 될 일은 없으니까 애들에게 교육시키면 어떨까?
"현대 한국 사회의 일상 문화 코드" 를 읽고 느낀 거지만, 교육이란 특히 자식 교육의 경우 학원만 보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참여다
양육이란 단순히 자식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성장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행위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면 자식 키워도 부질없다는 생각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아직까지는 아이를 낳는 일에 회의적이지만, 낳을까 싶은 생각도 한 번씩 해 본다
독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애 성격이 책 보다는 춤추는데 끌리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래도 날 닮았으면 좋아할 것 같기도 한데, 동생 생각하면 전혀 안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아이랑 같이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한 느낌을 서로 얘기하면 참 재밌을 것 같다
아이가 자라면서 경험하는 것을 엄마가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양육하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 큰 의미를 줄 것이다
그러려면 학원에 보내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시간 투자를 아이에게 많이 해야 하는데 전업 주부도 아니고 애가 인생의 목적도 아닌데 현대 사회에서 자아 실현과 제대로 된 양육이 양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쨌든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함께 책을 읽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여행이야 말로 (특히 해외 여행) 경험의 폭을 넓히는 가장 큰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식은 부모의 대리물이 아니고 나와는 별개의 인간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자식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맹목적인 경쟁적 교육에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애가 성공하면 기분 좋은 일이고 실패해도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양육하는 과정에서 기쁨과 의미를 느껴야지, 그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려다 보면 결국 아이도 나도 다 같이 불행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