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박홍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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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박홍규는 대단하다 그가 현실 정치 대신 학문적인 분야에 치중함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오늘 그의 책을 읽고 보니, 지식인의 정치 참여를 권력 획득의 일종으로 비판하고 있어 현실 정치에는 아무 관심도 없음을 볼 수 있는데, 아무리 똑똑하고 순결한 사람일지라도 현실 저치에 뛰어들면 흠집이 나고 자기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를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내가 읽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은 2001년에 출간된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이다 나는 이 책이 박홍규가 번역한 "오리엔탈리즘" 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나온 책이었다 솔직히 그 책을 읽으면서 크게 감동한 것은 아니었다 명성이 자자하길래 심오하고 훌륭한 책이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평이하고 감정적인 발언들이 많아 읽기 불편했다 자신이 쓴 "오리엔탈리즘" 의 아류작이라서 그런가? 차라리 새뮤얼 헌팅턴의 책은 그 국수주의적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용 자체만으로는 훨씬 더 학구적이고 분석적이라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는 주류라서 굳이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할 필요가 없었을까? 원래 마이너리티들은 큰 소리로 자기 주장을 강조하는 법인가? 어쨌든 사이드의 책은 근거가 부족하고 덜 분석적이며 감정적인 호소들이 많은 반면, 헌팅턴의 책은 철저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논지를 밝힌 점이 대조적이다 나는 헌팅턴의 책이 그 주장과는 별개로, 훨씬 더 마음에 들고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박홍규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는 서구 제국주의를 비난하고 아나키즘적인 세계를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권력이나 기득권의 포기가 과연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저 이상향으로 영원히 우리 머릿속에만 남을지도 모른다 남보다 힘이 있는 사람이, 그 힘이 주는 특혜를 무시하고 보통 사람과 똑같이 살라는 얘기는 공산주의와 다를 게 없다 결국 공산주의도 실패로 끝났지 않은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그는 서구 선진국들에게 후진국과 똑같은 권리만 가지라고 주장한다 이게 가능한 얘기일까? 더구나 국제 사회는 말 그래도 힘이 지배하는 사회인데, 도덕적으로 부당하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고 약자의 편을 드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적어도 주체성을 갖자는 말에는 동의한다 사실 그가 진짜 바라는 것은 현실적인 힘의 논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죽지 않는 베짱인지도 모른다 박홍규는 사대주의를 극도로 경계한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서양에 의해 규정되는 동양임을 간파한다 즉 동양 스스로의 주체적인 사상이 아니라 서양에 의해 정의되는 수동적이며 식민지적 이데올로기라는 얘기다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 사상의 원류인 서양 제국주의는 찬양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요즘이야 반미가 유행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을 따라가는 것이 곧 세계화이고 영어 공용론까지 대두될 정도로 미국에 대한 애정은 열렬했다 프랑스가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들을 미국과 대등하게 보기 때문일 것이다 나랑 비슷한 놈인데 앞서 간다고 생각하면 불편한 감정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일본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 박홍규나 사이드가 주장하는 주체적 인식은 공감하는 바다 일본을 배척하는 것은 서양을 추종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이고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일본의 발전상은 늘 우습게 보면서도 미국이나 유럽의 것은 무조건 추종하며 대단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사대주의 근성은 저자의 말대로 미국 유학병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 서양의 많은 고전들이 번역됐는데 우리나라는 번역본이 아주 부실하고 수도 적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일본을 번역물의 천국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은 번역을 흔히 대학원생에게 맡겨 버릴 정도로 번역 작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역이 많아 번역물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원서주의가 받들어지는 이유다 대학 다닐 때 교수님들도 그랬다 한서 번역은 믿을 수가 없으므로 원서로 봐야 하고, 일본의 경우 자기말로 번역이 많이 됐는데 번역서 보다는 원서를 보는 게 낫다고 했다 사실 원서를 보는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번역서가 더 어렵다는 말은 다 잘난 척 하는 말에 불과하다 한글로 매끄럽게 번역이 돼 있으면 공부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일본의 경우 학자가 정계에 진출하는 통로가 아예 막혀 있어 번역 같은 일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현실 참여를 주장하면서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므로 자연히 번역 작업 같은 일은 하찮게 여겨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론의 현실 적용 같은 문제는 너무 어렵고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으므로, 이론이나 제대로 하라는 저자의 비난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사이드가 정의하는 지식인이란 권력에 저항하고 모든 권위에 비판적인 주변인적 존재다 그의 이론을 적용하자면 우리나라에 진짜 지식인이란 아주 드물고 희귀한 존재일 것이다 사이드는 교육의 본질을 지식의 전달에 두지 않고, 모든 권위에 저항할 수 있는 정신의 함양이라고 했다 우리 교육과 정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다 학생과장이나 사랑의 매 따위가 학교에서 왜 사라져야 하는지를 사이드가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교육의 본질을 기존 권위에 대한 저항으로 생각하는 교육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학생은 교사가 계도하고 바로잡아야 할 객체일 뿐이다 교육의 주체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라는 말이다 사이드의 교육론은 페레의 자유주의 교육과도 일맥상통 하는데, 비단 학교 교육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가정 교육에서도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대로 원하는 길을 가라는 말인데, 과연 자식이 자기 길을 가겠다는 것을 인정할 부모가 몇이나 될까? 무한정으로 쏟아지는 애정의 이면에는 자식에 대한 지배 심리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것은 인정하고 중용의 도를 취하면 안 될까? 박홍규가 비판하는 책들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안 읽어 봐서 모르겠고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 책을 처음에는 재미없게 읽었지만 나중에 해설서를 보면서 작품의 주제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된 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로빈슨 크루소" 나 "15소년 표류기" 등을 보면 유럽인이 무인도에 가서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문명 사회를 건설하는 식으로 미화되지만, 실상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추악하며 힘에 의한 지배를 추구한다고 했다 또 순수한 미개인은 신화에 불과하고 국가나 사회 제도가 없으면 인간은 폭력적이고 야만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대영제국의 시민이라 할지라도 영국이라는 국가 밖에 있으면 자연 상태에서는 그저 야만인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박홍규는 골딩이 야만인을 흑인처럼 묘사했다고 제국주의적 발로라고 비판한다 이건 너무 지난친 비약 아닌가? 비단 흑인만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문명 이전의 상태를 묘사했을 뿐이다 오히려 대영 제국인은 무인도에 떨어져도 민주주의를 건설한다는 식의 오만함 보다 훨씬 솔직하고 자기 비판적인 것 아닐까? 가끔 박홍규의 비판을 듣다 보면 극단주의로 치닫는다는 느낌이 든다 골딩이 말하고 싶은 것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미개함이 아니라 문명 이전의 사회이다 비단 흑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박홍규 식으로 하면 문명 이전의 상태도 문명화와 마찬가지로 같은 가치를 갖는 셈인데, 그렇다면 대체 발전의 개념은 뭔가? 누가 뭐라고 해도 객관적인 발전은 부인할 수 없다 개화되고 문명화 된다는 개념을 부정하면 모든 것은 다 상대주의 내지는 다원주의로 이해되어 가치 평가 자체가 불가능 하다 좀 적당히 비판의 수위를 조절할 수는 없을까? 왠지 그를 보면 극단주의를 대하는 느낌이 든다 그가 비판한 까뮈의 "이방인" 역시 식민지 알제리인을 아무 이유없이 죽인 게 아니라, 그저 햇빛에 눈이 부셔 우발적으로 한 남자에게 총을 쐈을 뿐이다 더구나 자세히 읽어 보면 이유없이 죽인 것도 아니다 죽은 알제리인은 뫼르소의 친구를 위협했고, 당연히 뫼르소도 한 패거리로 봤다 그저 친구의 총을 맡았을 뿐이지만 뫼르소가 자신을 쏠 거라고 생각하고 방어적으로 칼에 손이 간다 햇빛에 눈이 부신 뫼르소는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서다가 우발적으로 그에게 총을 발사하고 만다 이 소설의 핵심은 뫼르소가 알제리인을 왜 죽였느냐가 아니라, 그를 죽인 후에도 전혀 변명하지 않고 사형 선고를 담담히 받아들였다는데 있다 햇빛에 눈이 부셔 총을 쐈다는 진실을 말하면 사형을 언도받고, 반대로 그가 나를 위협해서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쐈다고 거짓을 말하면 석방되는 삶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박홍규 식으로 해석하면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는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건지... 제발 오버 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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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우리 화가 이인성
황성옥 지음 / 한길아트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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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독특한 화가다
이미 30대에 대가가 되버린 사람!!
열 여덟 살부터 쭉 국선에 입상하고 스물 여섯에 추천받는 작가가 된 천재!!
확실히 우리는 천재에 대한 전설이 적은 편이다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서 그런가?
음악은 세계적인 인물이 많은데 미술 쪽은 상대적으로 약한 것 같다
훌륭한 화가의 그림을 보게 되어 정말 기쁘다

그의 그림은 강렬하고 색체 대비가 뚜렷한 것이 정말 고갱이 생각난다
제일 인상적인 것은 한국근대회화 10선에 꼽히는 "가을 어느 날" 이다
책의 표지에도 실렸다
파란 하늘과 붉은 여인의 육체가 뚜렷히 대비된다
주변 환경이 너무 붉은 감이 있긴 한데 (주제넘은 생각일 수 있지만 주변은 붉은 색 대신 다른 색으로 했으면 훨씬 뚜렷했을 것 같다) 하늘색이 정말 예술이다
더구나 그 아래 붉그스름한 여자의 나신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니까 훨씬 생동감 있다
보는 눈은 다 똑같은 건지,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역시 한국 회화 10선에도 꼽혔다
1위로 뽑힌 작품은 "경주의 산곡에서" 다
이 작품 역시 붉은 대지와 파란 하늘이 대조를 이룬다
그는 파란색과 빨간색을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정말 타히티의 여인들 같다
혹시 그도 고갱의 화풍을 따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청초하게 서 있는 칸나 그림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확실히 수채화는 좀 약해 보인다
유화의 선명하고 진한 느낌이 더 좋다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여행을 하는 방법 중 하나로 드 보통은 직접 풍경을 그리라고 했는데, 요즘 그러고 싶은 충동이 불쑥 생긴다
잘 그리든 못 그리든 그냥 내가 자연에서 받는 느낌만 표현하면 되니까 부담없이 그리고 싶다
약간의 준비만 하면 어디서든 쉽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명화를 접하면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정화된 느낌이 든다
눈이 호사를 한다고 해야 하나?

루브르나 내셔널 갤러리에 갔을 때 열심히 걸작들을 모방하는 사람들을 봤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또 어떤 예비 화가들은 그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현장 교육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그림들에 관심을 쏟으면 나도 얼마든지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이인성에 대해 알았으니 국립 현대 미술관에 가면 나는 직접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확인한 셈이다
앞으로는 주변의 것들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싶다
인문학적 교양과 예술은 인간의 존엄성을 한층 높여주는 것 같다
이렇게 여유있는 시간들이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생활의 풍요로움 대신 정신의 풍요로움을 늘 추구하면서 살았음 좋겠다
한 걸음 나아가 함께 정신적 풍요를 추구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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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미야지마 히로시 지음 / 강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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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마 히로시가 쓴 책이다
"조선과 중국 근세 5백년을 가다" 를 인상깊게 읽었던 터라 기대를 많이 했다
그 때 유희춘의 미암일기를 분석해서 보여 준 16세기 양반의 생활상이 자세히 기록되어 도움이 많이 됐다
이번 책은 통계 자료 인용이 많아서 읽기가 편하지는 않았다
내용 자체는 쉬운데 다소 복잡하다
나처럼 통계나 그래프에 약한 사람은 굳이 증거를 들이댈 것 없이 결론만 말하면 편한데, 결론은 처음과 뒷쪽 두 챕터에 불과하고 나머지 부분은 전부 통계 분석에 쓰였다
그래서 집중을 못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양반이라는 계층의 존재에 대해, 혹은 유교 문화의 전통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양반이란 계층은 유럽의 귀족이나 일본의 무사 계급과는 달랐다고 한다
사회적은 관습과 용인에 의해 인정되는 것이지, 법적으로 그 지위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의 기준은 매우 엄격해서 그 외의 계층과 절대 섞이지 않는 배타성을 보였다
그러나 세습되는 지위는 아니기 때문에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신분 계층간의 유동성이 증가해 19세기에는 양반이 무려 7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이 다 양반으로 대우받은 건 아니다
양반은 군역을 내지 않았으므로 법적으로 군역을 지지 않을 자격을 획득했을 뿐, 사회적인 의미의 양반은 아니었을 것이다

양반은 서울의 경반과 지방의 향반으로 나뉜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고 매스 미디어도 없었을 때니, 중앙 집권 국가에서 서울 지배 계층의 힘이 막상한 것은 당연하다
이른바 명문 거족인 일부 가문이 서울에서 세력을 형성했고 대부분은 자기 고향에서 터를 잡고 향촌 사회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재지 양반으로 존재했다
이 재지 양반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세거지라는 지역 기반이다
여기를 벗어나면 다른 곳에서는 양반 대우를 받기 힘들었기 때문에 한 마을에 뿌리를 내리면 곧 동족 부락이 형성됐다
서울에서 높은 관리를 역임한 송순도 담양으로 낙향한 후 그 지역에서 양반으로 인정받기 위해 애를 썼다는 기록이 세거지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동족 부락, 혹은 집성촌의 형성은 이처럼 양반들의 세력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관습의 하나로써 함부로 남의 땅에 터잡고 행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반이 아닌 계층도 한 곳에 모여 살게 된다
양반 문화의 하층민화가 이뤄진 것이다

이 향반들은 서원을 설립하고 문중이 형성되며 향약 등을 통해 마을 통치에 일정 부분을 담당한다
조선 시대 수령들은 자기 고향으로 보내지지 않고 이동도 잦았기 때문에 터를 잡고 사는 향반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지방관 파견이 드물었던 고려 시대 지방을 통치하던 향리 계층이 과거를 통해 중앙 관리로 나간 후 다시 낙향해 향반이 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들은 수령의 통치를 보좌할 수 있었다
사실 과거라는 것이 아무리 양반이 적다고 해도 3년 마다 겨우 33명을 뽑는 것에 지나지 않고, 미관말직까지 합쳐야 겨우 200여 석에 불과할 정도로 관직을 얻기 힘든 상황에서 그나마 서울 거족들의 자녀들로 채워지는 상황이었으니 나머지 양반들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상해 줘야 했을 것이다
과거에 합격하지 않았다고 지배층으로서의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면 사대부들의 나라 조선이 500년 씩이나 유지됐을 리가 없다
왕은 정치에 참여하는 일부 가문을 제외한 지방 양반들에게 지방 통치권의 일부를 나눠 준다
단 이것은 법에 명시된 권리가 아니므로 얼마든지 상황에 맞춰 임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현명한 통치법이 아닐 수 없다

일단 향반으로 자리잡으면 그 지역에서 농토를 넓히기 위해 애썼다
조선 초기부터 중기를 거치는 동안 농토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향반들의 경제적 부도 크게 확대됐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나눠 줄 것도 많았다
분재기가 재산 분배 과정을 자세히 보여 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더 이상 개간할 땅도 없고 농토 확대가 한계에 부딪치자 물려 줄 유산이 적어졌다
어쩔 수 없이 장남에게 집중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많을 때는 이 사람, 저 사람 풍족하게 다 나눠주겠지만 재산이 적으니 한 사람에게라도 집중적으로 물려 줘 부모로서 권위도 세우고 집안을 유지해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남녀 균등 상속이었다가 중기에는 아들 형제에게 균등 상속했고 후기에는 장남에게 집중적으로 상속된 이유다

간단히 말해서 조선 후기 사회가 보수적으로 변한 원인은 조선 자체의 정체성에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얘기다
유럽처럼 산업 혁명 등을 거쳐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해외로 뻗어 나갔다면 사회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근대화도 가능했을텐데, 인구가 늘어나는 것에 비해 생산량은 예전 그대로였으니 어쩔 수 없이 지배 계층은 기득권 수호를 위해 보수화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때 형성된 문화가 이른바 전통 문화다
문중이 형성되고 주자학이 하층민들에게까지 뿌리내려 가부장 문화가 전 계층을 지배하게 된다
사실 주자학이 양반에게만 국한됐다면 양반 계층이 해체된 오늘날에도 가부장 문화가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가 유교 문화, 더 정확히는 가부장 문화에 지배되는 까닭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주자학이 하층민에게까지 퍼졌기 때문에 생명력이 길어진 것이다
현대 사회에 가부장 문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저자는 유곡 권씨 집안의 고문서 분석을 통해 양반 계층의 재산 증식과 분배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양반이라고 하면 소작농에게 소작료를 받는 지주를 연상시키는데 중기까지만 해도 직영지가 많았다고 한다
이 직영지를 경작하는 것은 당연히 노비들이다
그러니 노비 수가 7,8백 명을 육박할 수 밖에
독립된 생활을 하고 지대만 바치는 솔거 노비들이 많았는데 전국에 흩어진 경우도 있었다
만약 우리나라 땅이 넓었다면 로마처럼 노예에 의해 경영되는 대농장 같은 개념이 성립될 수 있었을까?
노예에 의한 경작은 효율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주인에게 예속된 몸이라 해도 자기 것이 아닌데 열심히 안 하는 건 당연하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을 무시했으니 말이다)
자료의 주인공 권벌도 노비들의 게으름을 한탄한다
결국 후기로 갈수록 직영지는 줄어들고 소작제로 전환하게 된다

분재기를 보면 노비수가 정말 엄청나다
사실 땅은 단위 자체가 감이 안 잡히고 노비 숫자로 규모를 짐작했다
향반들은 과거를 통해 중앙 정계로 나간 것도 아닌데 재산이 계속 증식된 걸 보면 확실히 농법 개량과 개척 사업이 큰 몫을 차지한 것 같다
윤선도 같은 경우는 해남으로 내려 와 개간 사업을 통해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다
노비에 대한 권리는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죽여도 별다른 터치가 없었다
권벌은 도망간 노비 한복을 잡아 (어쩌다 잡혔을까!!) 장 80대를 친 후 관가에 넘겼는데 투옥 과정에서 죽었는데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실록을 보면 장 80은 흔히 등장하는 형벌인데 죽은 걸로 봐서 80대 정도 맞으면 원래 죽을 지경이 되는 건지, 아니면 도망가다 잡혀서 워낙 심하게 다뤄진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숫자만 해도 몇 백을 헤아릴 정도니, 양반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역자 후기를 보면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조선과 중국 근세 5백년을 가다" 에서 보면 저자는 광해군 일기가 두 부가 된 까닭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한명기가 쓴 "광해군" 을 읽으면 그 과정이 소상히 나온다
이처럼 외국 학자이다 보니 세세한 부분까지 다 챙기기가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역시 외국 문화나 역사에 대해 쓴 후 그 나라에서 번역이 되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역자도 그 점을 인정하면서 이 책이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무엇보다 조선의 고문서들을 꼼꼼히 분석한 것이 마음에 든다
서술도 어렵지 않게 쉽고 재밌게 해서 읽는 맛이 난다
식민지 지배 탓도 있지만 어쨌든 일본의 기록, 분석 문화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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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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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편하게 읽은 책이다
일단 독자의 수준을 낮게 잡은 건지, 아니면 저자들이 원래 쉽게 말하는 스타일인지 (아마 후자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휙휙 넘기면서 읽었다
도판 상태가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컬러 아닌가
사실 저자도 안타까워한 바지만 보티첼리의 그 유명한 "봄" 은 가로 2m에 세로 3m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데 겨우 몇 cm의 사진으로 보니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는가?
내셔널 갤러리에서 고흐의 "해바라기" 를 봤을 때 살아 움직일 듯 한 그 붓의 터치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또 쇠라의 "아를리느의 여름" 역시 엄청난 크기로 벽 한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책에서 작게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의 점묘법과 색의 조화가 얼마나 멋지던지 감탄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품은 직접 눈으로 감상해야 한다
옛날에 사진이 없거나 흑백 프린트 시절에는 예술품을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플란다즈의 개" 에 나오는 불쌍한 네로가 루벤스의 "성모 승천" 한 번 보는 게 평생 소원이었겠지

이 책의 특징은 그림 하나하나를 자세히 가르쳐 주기 보다는 그림을 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진중권이 쓴 듯한 현대 미술 부분은 이미 "미학 오디세이" 에서 감탄한 바지만, 조이한의 르네상스 그림 설명도 유용했다
보티첼리의 "봄" 과 "비너스의 탄생" 에 이런 뜻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도상학이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니라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후세 학자들이 해석한 결과라고 하니, 그것도 상당히 의외였다
그러니까 화가 자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로 안 그렸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비너스는 쌍둥이였다고 한다
천상의 신 비너스는 제우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 바다로 던져서 태어났고, 자연의 신 비너스는 주피터와 주노의 딸이라고 한다
"봄" 에 나오는 비너스는 옷을 입고 있는데 지상의 신으로 에로스적인 사랑을 의미하고, "비너스의 탄생" 에 나오는 비너스는 조개에 실려 오는 폼이 딱 천상의 신 비너스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육욕을 의미하는 비너스는 당연히 옷을 입어야 하고, 정신적 사랑을 의미하는 비너스는 나체로 나와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니 마네가 매춘부 옷을 벗긴 "올랭피아" 를 그렸을 때 파리 시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다

도상학적 설명을 읽다 보면 당시 화가들의 인문학적 교양이 상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예술의 수요자가 일반 대중이 아닌 귀족이었으니 이 수준 높은 구매자를 만족시키려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겠는가
요즘처럼 익명의 구매자를 위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실 아예 구매자 따위는 고려조차 안 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할테지만) 주문을 받은 뒤 그리는 것이므로 구매자의 요구 사항을 꼼꼼하게 만족시켜야 했다
물감값도 비싸서 울트라 마린 같은 비싼 물감은 성인 같은 특정 인물에게만 쓰라고까지 계약서에 명시했다고 한다
주문자의 수준이 아주 높을 경우 아예 구도나 등장하는 사물까지 다 지정을 했고 계약서와 그림이 다르면 돈을 지불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생각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예술 자체를 숭배하기 보다는 일종의 직업으로서 대했을 것이다
그러니 렘브란트나 루벤스 등이 그림을 신분 상승의 도구로 생각했겠지
르네상스 그림을 볼 때는 도상학이 절대 빠질 수 없다

베르메르의 "금의 무게를 다는 여인" 도 해석을 듣고 보니 너무 의외였다
베르메르야 워낙 아름다운 그림을 많이 그려서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저 감탄하면서 보는 화가인데, 막상 뜻을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그림 안쪽에 또다른 액자가 걸려 있는데 그 그림이 바로 백 년 전에 그려진 콜레르트의 "최후의 심판" 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비슷하긴 하다
"최후의 심판" 은 예수가 재림한 후 저울로 죄의 양을 재서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나눈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금의 무게를 다는 여인은 곧 예수님을 상징하고 그녀는 지금 인간의 죄를 저울질 하려는 것이다
다가올 최후의 심판을 기억하라는 게 이 그림의 도상학적 해석이다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에 살았을 베르메르가 괜히 저울질 하는 여자를 그렸을 리 없고, 아마 그런 의도로 그렸을 게 분명하다
당시 화가들의 교양 수준이 얼마나 높았을지 짐작이 간다

요즘 관심이 가는 화가가 독일의 뒤러다
그는 자화상을 그리면서도 마치 예수님처럼 경건하고 신비롭게 묘사했는데 그가 그린 풍경화도 정말 멋지다
저자의 설명으로는 뒤러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그림으로써, 당시 구매자인 귀족들이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못 팔았을 거라고 한다
시대가 넘어가면서 화가들이 점점 주문자의 요구사항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식 세계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뒤러가 그린 "연못 위의 집" 은 동양화의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산뜻한 수채화 같다
그림에 상징을 집어 넣으려고 했던 당시 귀족의 입맛에 안 맞았을 게 뻔 하다
시대를 앞서가는 이런 천재 작품의 진가를 알아 볼 감식안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그런 맛에 가난한 예술가를 후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남들은 그 가치를 모르지만 오직 나만은 그 가치를 발견하는 기쁨으로 말이다

아비 바르부르크란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유태인이었는데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는 대신 책을 선택했다
동생에게 장자권을 팔아 버리고 그 대신 평생 자기가 원하는 책을 사달라고 한 것이다
동생이야 처음에는 왠 횡재냐 했겠지만, 설마 6만여 권의 책을 모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당시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해 지금보다 책값이 훨씬 비싸고 귀한 책을 구하기 힘들었을테니, 형의 책값 대느라 돈 꽤나 축냈을 것이다
진짜 부럽다
평생 일 안 해도 되고 원하는 책 마음껏 사 볼 수 있고 관심있는 분야만 연구하면 되니까
아니나 다를까 바르부르크는 도상학의 이론을 정립해 미술사에 길이 남는다
독일이 유태인을 핍박하자 영국으로 그 책들을 다 옮겨 바르부르크 연구소를 세웠다
정말 멋진 삶이 아닐 수 없다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는 비단 나만 어려운 게 아닌가 보다
진중권 역시 현대 미술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난감해 한다
관람객이 버린 쓰레기조차 혹시 예술품이 아닌가 의심했다는 에피소드는 슬프기까지 한다
그는 현대 미술을 읽으려고 하는 대신 그냥 보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 느끼지, 거기서 특별한 주제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하긴 몬드리안의 추상화 등을 보면서 그냥 느껴야지, 거기서 무슨 의미를 찾겠는가?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순간 현대 미술은 끔찍하게 어렵고 복잡한 게 돼버린다
작품 자체는 안 어려운데 해석이 난해해서 해석 이해하느라 작품은 뒷전으로 밀리는 식이다
저자는 현대 미술이 퍼포먼스적 측면이 있다고 본다
즉 예술가가 직접 공연을 하면서 관객과 소통할 때까지는 좋은데, 일단 공연이 끝나 버린 후 재료만 전시하면 의미를 잃는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퐁피두 센터에 갔을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감동이랄 게 없다
르네상스 그림이야 내용 몰라도 그 정교한 묘사 기술에라도 감탄을 한다지만 헌옷 몇 개 걸어 놓는 식의 미술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건지...

그래도 에셔나 마그리트 식의 그림은 흥미로웠다
다르게 보기를 가르쳐 준다고 할까?
확실히 현대는 상상력이 중요하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점점 더 인간적으로 변하는지도 모른다
예술의 평등화, 혹은 민주화라고 이해해야 할까?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내면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점점 예술가와 관객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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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사회의 일상문화코드
박재환 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사회의 일상 영역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분석한 책이다
표지부터 확 띄는 게 마음에 든다
여러 명의 필자들이 모여 쓴 글은 통일감이 없고 다소 산만한 편인데 이 책은 비교적 괜찮다
그렇지만 간혹 수준이 떨어지는 글도 있긴 있다
지난 번 "결혼할까 혼자살까" 를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왜 박사 학위 씩이나 있는 사람들의 분석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걸까?
지식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피상적이고 단편적이며 감정적이라 읽으면서도 한심할 때가 있다
다행히 이 책의 전체적 수준은 괜찮은 편이고 각각의 글도 무난할 정도의 평균은 된다
때로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이는 글도 보이는데, 내 편견 때문인지 몰라도 확실히 교수 두 사람의 글은 정독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 사회의 특징은 전통 문화의 계승과 단절일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 모든 면에서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 생긴다
더구나 일제 지배와 6.25를 거친 후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룩했기 때문에 몸이 커지는 것에 비해 정신은 그 속도에 맞춰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전통을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민 사회의 정신 대신 과거의 이데올로기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어제 읽은 "양반" 에서도 느낀 바지만 18세기 이후 주자학이 하층민들에게까지 침투되면서 전 국민의 양반화가 이뤄졌고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족 중심주의나 체면 중시 풍조,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등이 그렇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은 대단히 낙천적이다
또 현세 중심주의라 지금 당장의 쾌락을 즐긴다
직선적인 기독교적 사관과는 달리 순환적인 사관을 믿기 때문에 샤머니즘이나 범신론적 속성도 갖고 있다
원죄 의식 대신 타인의 눈치를 보는 문화가 성행한다
정말 한국인이 낙천적일까?
음주가무를 즐긴다는 점에서는 그렇지만 과연 현대의 한국인들이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술 마시는 거 말고는 제대로 된 여가 생활이 드물지 않나?
오히려 서양 사람들이 여가 생활을 훨씬 많이 하지 않나?
내가 보기에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노동 시간은 단축되면서 여가 시간은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이 정말 낙천적이고 현세를 제대로 즐기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다

저자는 또 비언어적 교류를 지적한다
간단히 말하면 눈치 문화다
말 안 해도 알아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단점이라면 흔히 알려진 대로 상대의 뜻을 오해할 수도 있고 항상 분위기 파악을 해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또 대화와 토론이 부족하고 윗사람이나 동료들 눈치를 봐야 하니까 주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한마디로 피곤하다 이거다
공개적으로 말을 안 하니 사적인 정보망에 의존해야 하고 결국 학벌이나 지연 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 투명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신 말하기 껄끄러운 점을 상대가 알아서 파악하니까 어떨 때는 편하기도 할 것 같다
불편한 얘기는 서로 삼가하니까 인간 관계도 더 부드러울 것이고 친밀감도 높지 않을까?
결과가 좋으면 의미 부여도 좋을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지금 한국이 선진국은 아니니까 눈치 문화를 좋게 해석할 수는 없는 문제다

뭐니뭐니 해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주의일 것이다
개인주의의 서구 사회가 오히려 사회적 연대 의식이 강하다는 건 참 아이러니컬 하다
흔히 개인주의 하면 이기주의를 떠올리는데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한국 사회는 오히려 남을 돕는데 대단히 인색하다
아니, 그런 전통 자체가 없다고 해야 하나?
시민 혁명 같은 걸 경험한 적이 없으니 그런 문화 역시 부재할 수 밖에
개인주의의 성립 조건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이라고 한다
사실 남의 자유를 존중해 주지 못한다면 내 자유와 권리도 타인에게서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내 권리와 자유를 즐기기 위해서는 상대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런 전제 조건 덕분에 사회적 연대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문화는 개인 대신 우리, 더 정확히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중시한다
나만 해도 그렇다
가족의 가치관에 나 자신을 맞추고 있다
아빠 역시 가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자식의 성공이 곧 내 삶의 의미라는 식으로 말한다
자식과 부모를 따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자식과 부모를 동일시 하기 때문에 자식이 더 높은 계급으로 편입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기러기 아빠를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힐 정도다
넘치는 교육열도 교육이 신분 보장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가족을 분리하지 못하는 가족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난 가족주의를 넘어 설 자신이 없다
어떤 의미로 보면 한 사람의 개인으로 완전히 독립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나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질 않으려고 하고, 아빠는 결혼한 후에도 정신적으로 나를 데리고 있으려 한다
부모와 자식의 완전한 분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가족주의의 해체도 불가능할 것이다
가족주의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성이 상실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바람직한 대안일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개인으로 완전히 설 수 있느냐는 자아 주체성 문제로 보면 극복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야 좀 더 넓은 안목으로 사회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내 가족으로 범위를 한정하면 사회적 연대 역시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 뜨끔했던 것은 몰개성적 합일주의였다
신세대 문화라는 것도 알고 보면 그저 또래 집단과 매스 미디어를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는 저자의 일갈에 깊이 반성하는 바다
아무리 개성을 중시하고 기성 세대에게 반발하는 신세대라 할지라도 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왕따 현상이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집단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해서 전체가 한 사람을 따돌리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한다는 건 어떤 의미로 보든지 가학적이고 파쇼적인 문화가 아닐 수 없다
또 무조건 유행을 따라야 소외되지 않는 문화 역시 결국 체면을 중시하며 남의 눈치를 보는 기성 세대의 특성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조상들의 사대주의는 욕하면서도 명품에 집착하는 것 역시 결국은 사대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명품이란 것도 결국 남과 나를 구별짓는 계급적 차이의 확인일 뿐이다
그런데 명품 회사에서는 차이를 강조하면서 무리를 하면 살 수 있는, 약간 더 비싼 가격으로 대량 판매를 하고 있으니 남과 구별되기는 커녕 광고 마케팅에 놀아난 꼴이 될 뿐이다

명예 퇴직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 마음이 무거웠다
시위 구호 대신 토플 책이 들려 있다는 비유가 나를 후벼 파는 기분이었다
남들은 자기 경쟁력을 높히기 위해 애쓰는데 나만 한가하게 책을 보는 건 아닌가, 죄책감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한가하게 인문서적 보는 사람은 나 뿐이었으니까
갈수록 무한 경쟁 체제로 바뀌면서 경쟁력이 없는 사람은 화이트 컬러에서 노동자층으로 쉽게 떨어지고 만다
중산층이 얕아지는 것이다
그나마 자격증 때문에 남보다 덜 급하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본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일반 샐러리맨처럼 불안에 떨어야 할 것이다

경쟁 체제의 냉혹함과는 반대로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아주 역설적인 글이다
앞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돈 밖에 모른다고 비난하더니, 뒤에서는 무한경쟁체계라 낙오하면 큰일이라고 겁을 주니 말이다
자본을 소유하지 않으면 언제 탈락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어떻게 돈을 최우선시 하지 않겠는가!!
결국 사회 보장 체제를 확대하고 경쟁 시스템을 완화시켜야 황금만능주의도 사라진다는 얘기다
사회적 연대 의식을 고취시키려면 가족주의부터 넘어야 하고 개인주의 성립을 위해서는 남의 눈치를 보는 대신 나의 주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부분에서만 개혁해서는 소용이 없다
사회는 유기적 존재라더니 그 말이 딱 맞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환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상 숭배와 장례 문화에 정성을 쏟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황금으로 된 수의를 입혀 황골이 되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어찌보면 어처구니 없기까지 한 광고가 먹혀 들어가는 걸 보면 한국인들의 내세관은 여전히 전통적이다
1억원 하는 황금 수의라...
무덤을 치장하는 것도 결국 후손의 재력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에 불과하다
부조금이나 축의금 내는 것이 인맥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사라지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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