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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박홍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역시 박홍규는 대단하다 그가 현실 정치 대신 학문적인 분야에 치중함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오늘 그의 책을 읽고 보니, 지식인의 정치 참여를 권력 획득의 일종으로 비판하고 있어 현실 정치에는 아무 관심도 없음을 볼 수 있는데, 아무리 똑똑하고 순결한 사람일지라도 현실 저치에 뛰어들면 흠집이 나고 자기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를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내가 읽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은 2001년에 출간된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이다 나는 이 책이 박홍규가 번역한 "오리엔탈리즘" 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나온 책이었다 솔직히 그 책을 읽으면서 크게 감동한 것은 아니었다 명성이 자자하길래 심오하고 훌륭한 책이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평이하고 감정적인 발언들이 많아 읽기 불편했다 자신이 쓴 "오리엔탈리즘" 의 아류작이라서 그런가? 차라리 새뮤얼 헌팅턴의 책은 그 국수주의적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용 자체만으로는 훨씬 더 학구적이고 분석적이라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는 주류라서 굳이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할 필요가 없었을까? 원래 마이너리티들은 큰 소리로 자기 주장을 강조하는 법인가? 어쨌든 사이드의 책은 근거가 부족하고 덜 분석적이며 감정적인 호소들이 많은 반면, 헌팅턴의 책은 철저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논지를 밝힌 점이 대조적이다 나는 헌팅턴의 책이 그 주장과는 별개로, 훨씬 더 마음에 들고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박홍규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는 서구 제국주의를 비난하고 아나키즘적인 세계를 꿈꾸지만 현실적으로 권력이나 기득권의 포기가 과연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저 이상향으로 영원히 우리 머릿속에만 남을지도 모른다 남보다 힘이 있는 사람이, 그 힘이 주는 특혜를 무시하고 보통 사람과 똑같이 살라는 얘기는 공산주의와 다를 게 없다 결국 공산주의도 실패로 끝났지 않은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그는 서구 선진국들에게 후진국과 똑같은 권리만 가지라고 주장한다 이게 가능한 얘기일까? 더구나 국제 사회는 말 그래도 힘이 지배하는 사회인데, 도덕적으로 부당하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고 약자의 편을 드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적어도 주체성을 갖자는 말에는 동의한다 사실 그가 진짜 바라는 것은 현실적인 힘의 논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죽지 않는 베짱인지도 모른다 박홍규는 사대주의를 극도로 경계한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서양에 의해 규정되는 동양임을 간파한다 즉 동양 스스로의 주체적인 사상이 아니라 서양에 의해 정의되는 수동적이며 식민지적 이데올로기라는 얘기다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 사상의 원류인 서양 제국주의는 찬양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요즘이야 반미가 유행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을 따라가는 것이 곧 세계화이고 영어 공용론까지 대두될 정도로 미국에 대한 애정은 열렬했다 프랑스가 미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들을 미국과 대등하게 보기 때문일 것이다 나랑 비슷한 놈인데 앞서 간다고 생각하면 불편한 감정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일본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 박홍규나 사이드가 주장하는 주체적 인식은 공감하는 바다 일본을 배척하는 것은 서양을 추종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이고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 일본의 발전상은 늘 우습게 보면서도 미국이나 유럽의 것은 무조건 추종하며 대단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사대주의 근성은 저자의 말대로 미국 유학병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 서양의 많은 고전들이 번역됐는데 우리나라는 번역본이 아주 부실하고 수도 적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일본을 번역물의 천국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은 번역을 흔히 대학원생에게 맡겨 버릴 정도로 번역 작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역이 많아 번역물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원서주의가 받들어지는 이유다 대학 다닐 때 교수님들도 그랬다 한서 번역은 믿을 수가 없으므로 원서로 봐야 하고, 일본의 경우 자기말로 번역이 많이 됐는데 번역서 보다는 원서를 보는 게 낫다고 했다 사실 원서를 보는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번역서가 더 어렵다는 말은 다 잘난 척 하는 말에 불과하다 한글로 매끄럽게 번역이 돼 있으면 공부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일본의 경우 학자가 정계에 진출하는 통로가 아예 막혀 있어 번역 같은 일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현실 참여를 주장하면서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므로 자연히 번역 작업 같은 일은 하찮게 여겨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론의 현실 적용 같은 문제는 너무 어렵고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으므로, 이론이나 제대로 하라는 저자의 비난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사이드가 정의하는 지식인이란 권력에 저항하고 모든 권위에 비판적인 주변인적 존재다 그의 이론을 적용하자면 우리나라에 진짜 지식인이란 아주 드물고 희귀한 존재일 것이다 사이드는 교육의 본질을 지식의 전달에 두지 않고, 모든 권위에 저항할 수 있는 정신의 함양이라고 했다 우리 교육과 정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다 학생과장이나 사랑의 매 따위가 학교에서 왜 사라져야 하는지를 사이드가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교육의 본질을 기존 권위에 대한 저항으로 생각하는 교육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학생은 교사가 계도하고 바로잡아야 할 객체일 뿐이다 교육의 주체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라는 말이다 사이드의 교육론은 페레의 자유주의 교육과도 일맥상통 하는데, 비단 학교 교육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가정 교육에서도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대로 원하는 길을 가라는 말인데, 과연 자식이 자기 길을 가겠다는 것을 인정할 부모가 몇이나 될까? 무한정으로 쏟아지는 애정의 이면에는 자식에 대한 지배 심리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것은 인정하고 중용의 도를 취하면 안 될까? 박홍규가 비판하는 책들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안 읽어 봐서 모르겠고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 책을 처음에는 재미없게 읽었지만 나중에 해설서를 보면서 작품의 주제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된 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로빈슨 크루소" 나 "15소년 표류기" 등을 보면 유럽인이 무인도에 가서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문명 사회를 건설하는 식으로 미화되지만, 실상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추악하며 힘에 의한 지배를 추구한다고 했다 또 순수한 미개인은 신화에 불과하고 국가나 사회 제도가 없으면 인간은 폭력적이고 야만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대영제국의 시민이라 할지라도 영국이라는 국가 밖에 있으면 자연 상태에서는 그저 야만인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박홍규는 골딩이 야만인을 흑인처럼 묘사했다고 제국주의적 발로라고 비판한다 이건 너무 지난친 비약 아닌가? 비단 흑인만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문명 이전의 상태를 묘사했을 뿐이다 오히려 대영 제국인은 무인도에 떨어져도 민주주의를 건설한다는 식의 오만함 보다 훨씬 솔직하고 자기 비판적인 것 아닐까? 가끔 박홍규의 비판을 듣다 보면 극단주의로 치닫는다는 느낌이 든다 골딩이 말하고 싶은 것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미개함이 아니라 문명 이전의 사회이다 비단 흑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박홍규 식으로 하면 문명 이전의 상태도 문명화와 마찬가지로 같은 가치를 갖는 셈인데, 그렇다면 대체 발전의 개념은 뭔가? 누가 뭐라고 해도 객관적인 발전은 부인할 수 없다 개화되고 문명화 된다는 개념을 부정하면 모든 것은 다 상대주의 내지는 다원주의로 이해되어 가치 평가 자체가 불가능 하다 좀 적당히 비판의 수위를 조절할 수는 없을까? 왠지 그를 보면 극단주의를 대하는 느낌이 든다 그가 비판한 까뮈의 "이방인" 역시 식민지 알제리인을 아무 이유없이 죽인 게 아니라, 그저 햇빛에 눈이 부셔 우발적으로 한 남자에게 총을 쐈을 뿐이다 더구나 자세히 읽어 보면 이유없이 죽인 것도 아니다 죽은 알제리인은 뫼르소의 친구를 위협했고, 당연히 뫼르소도 한 패거리로 봤다 그저 친구의 총을 맡았을 뿐이지만 뫼르소가 자신을 쏠 거라고 생각하고 방어적으로 칼에 손이 간다 햇빛에 눈이 부신 뫼르소는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서다가 우발적으로 그에게 총을 발사하고 만다 이 소설의 핵심은 뫼르소가 알제리인을 왜 죽였느냐가 아니라, 그를 죽인 후에도 전혀 변명하지 않고 사형 선고를 담담히 받아들였다는데 있다 햇빛에 눈이 부셔 총을 쐈다는 진실을 말하면 사형을 언도받고, 반대로 그가 나를 위협해서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쐈다고 거짓을 말하면 석방되는 삶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박홍규 식으로 해석하면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는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건지... 제발 오버 좀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