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미술사(상) 중국편 미진아트히스토리 2
한동수 외 지음 / 미진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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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많고 도판도 선명한 편이라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편집도 본문 내용과 해당 도판을 가능하면 같은 페이지에 배치해서 독자가 쉽게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다만 무려 인류의 시작부터 20세기까지 긴 시간의 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배치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지루하다.

특히 회화가 실제 전해지지 않는 당나라 이전 시기까지는 전부 무덤에서 발굴된 부장품 위주라 흥미가 떨어졌다.

대신 당나라 이후, 특히 송대부터는 이름만 듣던 유명 화가들의 직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어 참 좋았다.

명청대로 건너오면 르네상스 이후 서양 명화들을 보는 것처럼 산수화의 수준이 굉장하고, 특히 청 후기 양주화파 등의 그림은 너무나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확실히 중국의 수묵화는 원류이기 때문인지 화보를 따라 그린 우리 선조들의 그림보다 한 차원 높다는 느낌이 든다.

당나라 때도 색이 화려한 진채화가 많이 그려졌으나 송대에 마음 수양하는 성리학 위주의 사회가 되다 보니 그림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색이 사라지고 먹으로만 사의를 표명하는 스타일로 바뀐다.

좀더 상업적이고 현세적으로 바뀐 서양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먹만으로 그린 수묵화도 참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감각적이다.

송대 이후의 도자기들도 훌륭하다.

순청자로부터 오채자기로 발전하는 과정이 도판으로 잘 나와 있다.

유럽인들이 열광했던 심정이 이해되고 오늘날 산업화에 실패해 그저 박물관 유물로만 남은 점이 아쉽다.

1권은 중국 미술이고 2권이 그 외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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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클래식 1기쁨 - 하루하루 설레는 클래식의 말 1일 1클래식
클레먼시 버턴힐 지음, 김재용 옮김 / 윌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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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데도 진도가 빨리 빨리 안 나가서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모르는 작곡가들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현대 미술가 소개하는 책을 읽을 때도 일일이 찾아보느라 한 시간에 20페이지 속도로 읽는 것처럼 이 책도 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문체도 좋게 말하면 위트가 있지만 가독성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인데 저자 약력을 보니 소설가이기도 해서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쓰다 보니 번역 과정에서 더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흔한 고전음악 작곡가와 유명곡만 늘어놓은 책은 아니라서 클래식에 대한 내 관심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저자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라 그런지 여성과 흑인 같은 클래식 작곡가들의 주변부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한 점이 참 좋다.

글 하나하나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녹아있어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느낌이 온다.

나는 클래식은 큰 관심이 없지만 위대한 작곡가나 연주가에 대한 경외심은 늘 갖고 있고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음악을 만드는 작업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야기가 있는 오페라이고 더 좋아하는 건 그 오페라가 만들어진 인문학적 배경이다.

사실 클래식이라고 하면 모차르트, 베토벤, 말러 등 19세기 정도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20세기에도 여전히! 정말 많은 클래식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저자는 클래식 작곡가에만 국한하지 않고 재즈 같은 다양한 현대 음악의 작곡가들도 편견없이 소개하고 있다.

지금도 여성 작곡가나 지휘자는 드물지만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시절에도 역사에 남는 여성 음악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정말로 시대를 앞서 가는 천재들이었던 모양이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권 작곡가들도 많이 나와 신선했다.

책에서 추천하는 곡들을 매일 한 곡씩 들어 봐도 참 좋을 것 같다.

오늘날에는 플레이 버튼만 누르면 세상 모든 음악을 다 들을 수 있으나,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연주회장으로 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 즉 다양한 음악을 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이렇게나 훌륭하고 놀라운 음악들을 만들어 내는 작곡가들은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오류>

100p

현악 사중주 C장조, 도이치 956번

-> 현악 오중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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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료 읽기 나의 역사 쓰기
김인걸 외 지음 / 경인문화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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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크기가 작은데 400 페이지가 넘어 읽기 힘들까 봐 걱정했던 책이다.

김인걸 교수의 제자들이 정년 기념으로 본인들에게 특별했던 역사 자료들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짧은 글로 쓴 모음집 형식이다.

일제 시대 이후를 다룬 맨 마지막 몇 편만 지루했고 그 외 챕터들은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새삼 이분들은 박영규씨 같은 대중 역사 저술가가 아니라 진짜 학자들이구나 느꼈다.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역사학도의 길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학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료라고 하면 겨우 조선왕조실록이나 삼국사기 정도 수준 밖에 몰랐는데 이렇게 방대한 엄청난 자료들이 산재해 있는지 미처 몰랐다.

기본적으로 한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자료 해석이 가능할텐데 전공자들도 매우 어려운 문제인가 보다.

김인걸 교수도 서문에서 대학생 때 제자들에게 한문 독선생을 붙여 준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차례 표현한다.

해서로 깔끔하게 인쇄된 자료만 있는 게 아니라 초서로 휘갈겨 쓴 자료들도 많아 판독부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오늘날 지성인들의 수준에도 어려운 게 한문이고 보면 조선시대 선비들의 학문 수준이 과연 대단했구나 싶고, 일반 서민들이 주경야독으로 과거 준비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듯하다.

김인걸 교수가 대학원 면접 때 집에 돈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제 전형필 같은 예술 후원가들의 책을 읽으면서도 느낀 바지만 학문이나 예술로 돈을 번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자산이 있지 않으면 설령 열정과 재능이 있다 할지라도 고된 학문의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 듯하다.

더군다나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남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된 계기도, 역사를 무척 좋아해서 사학과에 가고 싶었으나 철학교수였던 아빠가, 여자가 대학에 남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이과로 돌리면 어떻겠냐고 조언해 줬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무척 아쉬운 부분이었으나 요즘 대중서보다는 좀더 깊이있는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처럼 즐겁게 독서하는 수준이 내 깜냥에 맞구나 싶다.


여러 전공 분야의 저자들이 쓴 글들이라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지만 특히 19세기 조선이 세도정치로 갑자기 몰락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전에도 비슷한 주장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19세기의 세도정치는 영정조 이후로 왕권이 강화되면서 비판 세력이 줄어든 가운데, 정조가 김조순 가문을 외척으로 삼아 국정을 끌고 가려 했던 구상이 어린 임금의 즉위와 더불어 세도정치로 변질됐다고 했다.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하여 몰락했으나 일반적인 이미지처럼 백성들을 수탈하고 정부 조직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전통 사회의 안정된 통치를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흔히 생각하는 환곡의 문란도 정부에서 무조건 수탈한 것이 아니고, 부세로서 의미가 강해지긴 했으나 나름 지방관들이 구휼에 애를 쓴 내용들도 나온다.

조선 시대 생산력이 워낙 낮아 기본적으로 많은 세금을 거둘 수가 없었다는 주장도 들었던 적이 있다.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고 바로 몇백 년 전 시대인데도 사회상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걸 보면 고대 시대의 역사는 정말 더듬더듬 만지는 수준일 것 같다.

그래서 상상력도 많이 가미되고 역사 왜곡도 쉽게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병자호란 당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흔히 인조와 조정 대신들이 척화를 주장했다고 하지만, 저자는 당시 조선의 여론이 강력하게 척화를 주장했고, 오히려 조정 대신들은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강화를 맺었다고 한다.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데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무조건 싸우다가 죽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화파였던 최명길 역시 강화 맺은 것을 평생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대명의리는 비단 일부 조정대신의 주장이 아니라 나라의 모든 선비들이 주장했던, 인조반정의 매우 중요한 명분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드러나는 자료에 따르면 인조는 광해군대의 외교 정책을 물려받아 왜의 동태를 살펴 청에 전함으로써 같은 안보권에 묶으려고 하는 등 나름 노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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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20-05-2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아요

marine 2020-05-23 09:05   좋아요 0 | URL
김인걸 교수의 글은 방법론을 강조해서 좀 어렵고, 제가 잘 몰랐던 자료가 이렇게 많았나 놀랬어요.
정말 학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학위 논문 쓰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 싶어요.
 
새로 쓰는 예술사 - 한국문화 이천년을 이끈 예술후원자들
송지원 외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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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예술 자체가 아니라 예술을 후원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 신선하지만 역시 본질적인 예술 이야기가 아닌 배경들이라 좀 지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예술가가 작품을 창작해 내기 위해서는 후원자의 존재가 필수적인 만큼 그 존재도 분명히 큰 의의가 있고, 특히 대중 사회에 접어든 현대에서라면 더더욱 기업 후원자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가요나 드라마, 영화처럼 대중들이 쉽게 즐길 수 있고 그 자체가 생산성이 있는 대중문화는 창작자 혼자의 노력으로도 가능하겠지만, 순수예술은 아무래도 수익성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우니 후원자가 반드시 필요하고, 기업의 후원을 통해 일반 대중들도 그것을 함께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문화의 상관관계는 결국 책에 나온 메세나로 선순환 구조를 가져야 할 것 같다.

부를 축적하고 그 부로 예술 작품을 수집하여 사회에 환원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하는 메세나 제도가 가장 바람직해 보인다.

간송 전형필이나 윤장섭 등의 문화재 수집은 널리 알려져 있어 다소 식상했고 인천 송암미술관을 지은 이회림씨, 국립중앙박물관에 많은 문화재를 기증한 이홍근씨 편은 잘 몰랐던 부분이다.

서울에 있으면 박물관이 훨씬 더 많이 알려질텐데 굳이 지역사회에 건립한 기증자의 뜻이 인상적이다.

이 분들은 모두 개성 상인 출신으로 당시 개성박물관장이었던 고유섭의 영향을 받아 사업으로 돈을 번 후 문화재 수집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한다.

삼성 이병철 회장도 등장한다.

호림박물관이나 리움미술관은 외국에 소개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수준높은 사립미술관인데 초대 회장의 많은 지원과 애정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국가에서 박물관을 전부 지원하고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니 결국 수준 있는 소장품을 구비하고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 환원적 투자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고려 시대 최씨 정권의 문화 예술 지원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특히 고려 청자의 놀라운 발전은, 몽골 투쟁 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어렵자 자체 제작하면서 질적 향상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대장경 조판도 그렇고 이규보 등 문인들을 지원해 많은 문집들이 나온 걸 보면 권력자의 지원이 매우 중요한 듯하다.

효명세자가 세 번의 궁중 연회를 개최하면서 정재를 정리한 점도 재밌게 읽었다.

그를 도와 준 인물들도 책에서 처음 알게 됐다.

아들 헌종도 시서화에 조예가 깊었던 걸 보면 왕세자의 이른 죽음이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돈이 생긴다면 교통이 불편한 시골 등의 도서관 지원을 해 보고 싶다.

낙도에 책 보내기 운동도 있던데, 출판 문화도 턴오버가 빨라 옛 책도 좋지만 신간을 계속 구입해 줘야 도서관 이용이 의미가 있다.

지금은 엄두가 안 나지만 조금이라도 재산이 생긴다면 도서관 지원을 해 보고 싶은 꿈이 있다.

특별히 도판이 아주 훌륭하다는 언급을 해둬야겠다.


<오류>

221p

김용겸의 자는 제대, 호는 효효재로 김수항의 손자, 김창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 김창집이 아니라 김창즙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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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1
구범진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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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는 대중 인문학이라는 취지에 맞게 흥미로운 주제를 전문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재밌게 서술되어 정말 마음에 든다.

책의 서문에 나온 바대로 쉽게 설명하는 게 오히려 어려웠을 학자들인데도 어쩜 이렇게 대중의 눈높이에 딱 맞게 쉽고 재밌게 설명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최고의 학부 교수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저자의 전작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은 수치와 통계 위주이고 분량도 많아 지루한 면도 있었는데, 이번 주제는 250 페이지의 부담없는 분량이고 무엇보다 내용이 아주 재밌다.

청나라라는 한 제국의 역사를 서술하는 비교적 복잡한 주제인데도 간결하게 독자에게 제국의 속성에 대해 쉽게 설명해 준다.

청나라라고 하면 만주족에게 점령당한 중국 왕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오늘날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5족공화가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한다.

물론 청은 겉으로만 만한병용을 내세웠을 뿐 거의 마지막까지 만주족이 정치를 장악했다.

명의 영토였던 중국 본토는 한족의 관리체제로 다스렸고 이 때도 총독과 같은 고위직은 만주족이 독점했다.

그 외 지역은 중국의 황제가 아닌 칸이나 티벳 불교 등의 원리로 통치했고 이 때 토사제를 통해 상당 부분 자치를 허용했다.

즉 청나라의 황제는 중국의 역대 왕조처럼 유교 원리만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또한 러시아와 네르친스키 조약을 맺거나 조선에 사신을 보내는 등 외교 정책에는 한인들을 배제시켰다.

조선에 환관을 보냈던 명나라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청은 정3품 이상의 고위 관료들, 특히 만주족을 사신으로 보냈다.

조선이 끝까지 청의 종주권에 저항했던 이유도 있지만 완전히 복속된 18세기 이후에도 여전히 정책을 고수했던 것을 보면 저자는 청이 중국 본토의 한족과 그 외 변방의 민족에 대해 이원적인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청나라는 단순히 한족을 점령한 소수의 만주족이 세운 중국 왕조가 아니라, 티벳, 몽골, 위구르, 한족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그리고 외번으로 조선과 베트남, 유구 등을 거느렸다.

청 제국이 오스만 제국과 비슷하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까지 영토를 넓힌 거대한 제국이었으나 오늘날 터키라는 아나톨리아 반도로 축소되었다.

반면 청 제국은 비록 외몽골이 소련에 의해 독립했으나 그 외의 지역들은 전부 유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의 중국은 단순히 한족의 유산이 아니라 몽골과 티벳, 위구르를 복속시킨 청 제국의 후신인 셈이다.

오히려 청나라는 이들 지역에 대해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중화민국이 들어선 후 중앙 정부에 복속시키고 한화 정책을 시행하여 지금까지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족주의 국가가 대세이고 소련이 해체된 것만 봐도 오늘날 중국의 정책은 이들 지역에 대해 매우 폭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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