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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평점 :
남독의 폐해인가 읽은 책인 줄 몰랐다.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정리할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시간이 좀 지나면 까마득하게 잊어 버리는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전에 읽었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들.
고골의 탐식과 절제 사이의 괴로움에 대한 부분이 그랬다.
많이 먹는 것은 기독교에서 7대 죄악으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라 끊임없이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고 보면, 또 전통사회에서 배고픔은 너무나 흔한 생존의 문제였으니 공동체를 유지함에 있어 절제는 필수적인 덕목이었을 것 같다.
자원이 적기 때문에 무한정으로 욕구를 채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종교의 금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먹을 것을 멀리 하지만 본능을 억압하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욕구가 솟아오른다.
다이어트 하는 여자들이 폭식하는 거랑 비슷한 심리 상태 같다.
러시아 문학은 거의 읽어 보지 않았지만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잉여인간, 반복되는 삶의 범속성, 음식을 매개로 하는 금욕과 절제, 빵에 투영되는 민족의식, 러시아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의 대립.
하여튼 너무 재밌다.
유튜브에서 강연하는 걸 우연히 들었는데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전달 능력도 아주 좋으신 분이었다.
<닥터 지바고>에 대한 해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감명깊게 보고 야심차게 책에 도전했는데, 정말 너무너무 지루하고 개연성이 없고 지바고라는 인물이 이해가 안 가서 억지로 완독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라라와 유리의 사랑 이야기 같은데 소설에서 사랑은 매우 작은 일회적 에피소드에 불과하고 지바고라는 인물이 러시아 혁명이라는 시대적 파도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서사도 아니고 시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여느 주인공처럼 괴로워하거나 대의명분을 가지고 맞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이도저도 못하는 고뇌하고 무능력한 지식인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데 저자의 해석을 읽어 보니, 반복되는 우연성은 비평가들로부터 소설의 약점이라 지적받은 부분이라 했고, 작가가 추구하는 인간상은 거대한 역사라는 배경에서 개인성의 회복을 찾으려는 모습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본 <패왕별희>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중국에 공산당이 들어서고 문화혁명이라는 엄혹한 시기를 거치면서 점차 파괴되어 가는 한 인간의 삶, 통속 영화 같으면 민족과 이념을 위해 개인사를 버리고 독립 운동에 나서야 할텐데, 이 영화는 파괴되어 가는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참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공산주의 혁명은 전통 사회의 부가 일부 상류층에 편중되어 있어 인민들이 굶주리기 때문에 그 부를 공평하게 나줘 주겠다는 명분으로 성공했다.
그럼에도 왜 여전히 끔찍한 기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
중국만 대약진 운동으로 아사자가 많았는 줄 알았는데, 소련도 1920년대 엄청난 기아에 시달렸다고 한다.
수년 사이에 죽은 이들이 2000만이라고 하니, 대국이라 재난의 스케일도 참 크다.
부를 독식하는 봉건사회의 지배자들을 다 처단했는데도 왜 이렇게 많은 인민들이 굶어 죽는 것인가?
일당 독재는 또 어떤가?
인민을 사랑하는 착한 독재자는 괜찮은 것인가?
마지막 챕터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동물적 욕구만 남은 본능적인 인간과 존엄성을 가진 인간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묘사한다.
아무리 생존의 위협이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다 해도 인간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수 있고 그것이 짐승과 인간의 차이를 가르고 존엄성을 지키게 된다는 주제 의식을 잘 보여준다.
나도 무척이나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보통 책에 소개된 소설을 읽지 않으면 내용이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저자는 맛깔스럽게 참 잘 풀어낸다.
400 페이지 남짓 되는 책이지만 술술 잘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