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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혼후 - 지워진 황제의 부활
리롱우 지음, 진화 옮김 / 나무발전소 / 2018년 4월
평점 :
신간 나왔을 때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계속 미뤄두다가 드디어 읽게 됐다.
막연하게 마왕퇴 같은 황제릉 발굴기인가 했는데 그 부분은 오히려 소략하고 황제에 등극했다가 27일 만에 폐위된 창읍왕 유하의 일대기를 소설식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저자의 상상력이 좀 가미되긴 했으나 무리하지 않은 전개 덕분에 편하게 전한 시대를 둘러 볼 수 있었다.
보통 한나라 역사라고 하면 유방의 건국 당시나 여태후의 집권, 한 무제의 서역 원정, 왕망으로 인한 망국 정도 얘기하는데 이 책은 가장 조명받지 못하는 해혼후 유하 시대에 대한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안 그래도 중국 황제의 계보를 볼 때마다 창읍왕이 도대체 누구인가, 왜 며칠 만에 폐위가 됐을까 궁금했던 차다.
한 무제가 위황후의 적장자인 여태자 유거를 무고의 변으로 죽인 후 겨우 8세인 유불릉 소제가 황위에 오르게 된다.
이 무제도 정말 끔찍한 사람인 것이, 어린 아들이 황제가 되면 어머니가 정권을 농단한다고 생전에 아름다운 구익부인을 죽여 버린다.
다음 대통을 이어줄 아들을 낳은 총희들인데도 별 시덥지 않은 이유로 죽여 버리는 걸 보면 전제 군주의 권력은 21세기 후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 같다.
성종도 연산군을 낳은 폐비 윤씨를 죽였고, 숙종도 경종을 낳은 장희빈을 저주했다는 확실치도 않은 고변으로 아들이 세자로 있는데도 죽이지 않았던가.
어린 소제가 즉위할 때 아버지 무제는 곽광에게 아들을 부탁한다.
곽광은 어린 황제를 끼고 정권을 휘두르다 사후 가문이 몰락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한나라를 이끌어 가는 충신으로 묘사된다.
중국에서는 이런 평가를 받는 모양이다.
곽광은 자신의 외손녀 상관씨를 겨우 6세의 어린 나이에 12세 소제의 황후로 밀어 올린다.
다른 여자와 동침도 못하게 막아 21세에 소제가 사망하자 후사가 없었고 그래서 선택된 이가 바로 무제의 손자인 창읍왕 유하이다.
황제 사망 당시 황후는 겨우 15세였으니 자식을 낳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왜 그렇게 젊은 나이에 느닷없이 죽어 버렸을까?
그러니 독살됐다는 음모론이 횡행했던 모양이다.
이언년의 누이인 이부인의 아들 창읍애왕이 사망하자 5세 때 그 자리를 물려받은 유하는 19세의 나이에 황제로 뽑혀 장안에 들어온다.
그러나 창읍왕부에서 어려서부터 제멋대로 왕권을 휘두르며 살다가 느닷없이 천하를 손에 쥐니 실세였던 곽광을 무시하고 자기 사람을 등용하려다 결국 곽광의 외손녀인 상관황태후의 명으로 27일만에 폐위되어 다시 고향으로 쫓겨간다.
황제에 오른 이가 이렇게 짧은 시기에 폐위된 경우가 또 있나 싶다.
곽광의 위세가 과연 한 나라의 황제를 세우고 폐할 수 있을 만큼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는 다시 무고로 죽은 여태자의 손자인 18세의 선제를 황제로 세우고 조강지처를 독살시킨 후 자기 딸을 황후로 세운다.
그러나 몇년 후 그가 죽자 선제는 전처의 복수를 하면서 곽씨 일가를 몰살시키고 아내도 쫓아내 버린다.
결국 황제가 승리한 셈이다.
쫓겨난 창읍왕 유하는 죽은 듯이 자기 땅에서 살고 있었으나 재위에 오른 선제는 혹시라도 반역의 마음을 품을까 불안해 그를 다시 해혼후로 강등시켜 궁벽한 강서성 남창으로 이주시켰다.
이 불쌍한 젊은이는 한이 맺혀 오래 못 살았는지 34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 아들들에게 해혼후 자리를 물려 주려 했으나 연이어 아들 둘도 급서해 그 후손들은 서민으로 강등된다.
그래도 해혼후의 재정이 튼튼해 유하는 자신의 지하 궁전을 훌륭하게 꾸몄는데, 4세기 무렵 지진이 일어나 파양호가 넘쳐 그 땅이 물에 잠기는 과정에서 무덤이 유실되고 만다.
그 무덤이 2015년에 발굴된 것이다.
후손 입장에서는 해혼후 작위가 사라지고 무덤마저 유실되어 불행했을테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이렇게 널리 이름을 남기게 됐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황제에서 쫓겨나 일개 제후에 불과했는데도 이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부장품이 발견된 걸 보면 과연 당시 절대 권력자들의 부유함이 대단했었고, 또 한나라의 경제력도 엄청났던 것 같다.
동전이 무려 200만 개나 묻혀 있었다고 한다.
연호가 새겨져 있지 않은 걸로 보아 망자가 저승가서 쓰라는 의미로 본다.
당시 유통된 동전의 1%에 해당되는 수치라고 하니 이것을 무덤에 부장시킬 수 있는 경제력이 대단하다.
도굴되지 않은 무덤들이 이렇게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전해주니 도굴꾼들에게 파헤쳐진 무덤들이 안타깝다.
그렇지만 이 무덤도 도굴을 시도하다가 수상하게 생각한 경찰에게 잡혀서 비로소 알려진 걸 보면 경제적 동기를 이길 수 있는 경우는 드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