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 - 지구상 가장 찬란했던 진화와 멸종의 연대기
스티브 브루사테 지음, 양병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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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어 보는 과학책이다.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너무 재밌다.

저널리스트를 꿈꿨다는 저자답게 재밌게 글을 쓸 줄 안다고 할까.

지루한 공룡 생활사나 발굴 이야기만 나열하지 않고 자신의 어린 시절과 이 분야의 대가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삽입해서 독자들에게 마치 수필 읽는 느낌을 준다.

공룡도 공룡이지만 고생물학자가 된 저자의 이야기가 더 재밌었다.

미국은 정말 공룡이 대중화 된 모양이다.

마치 우리가 유적 답사 가는 것처럼 공룡 화석 발굴하러 애호가들과 함께 사막으로 떠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대중들에게 공룡을 강연하러 다니는 학자들이 명성을 얻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스타라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칼 세이건이 괜히 유명해진 게 아니었다.

대중적으로 이렇게 과학의 관심도가 높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기자를 꿈꾸던 저자는 그 나이 아이들처럼 공룡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는데 폴 세레노라는 유명한 교수의 강연을 따라 다니며 그 사람의 기사를 전부 스크랩 하고 심지어 직접 전화도 하고 이메일도 보내더니 급기야는 그에게 수업을 듣기 위해 진로를 바꿔 시카고 대학 고생물학부에 입학하게 된다.

정말 놀라운 성장기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이돌 따라 다니다 가수가 된 경우인가?

폴 올슨이라는 어린이도 자기가 사는 지역에 공룡 화석들이 발견되자 이 곳을 유적지로 지정하기 위해 닉슨 대통령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내 일을 성사키기고 그 역시 유명한 고생물학자가 된다.

미국 어린이들은 정말 진취적이고 사회가 이런 활동들을 지지해 주는 분위기 같다.

학자들 역시 어린이들의 관심을 무시하지 않고 성실하게 대답해 주고 격려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소행성이 충돌해 백악기 단층이 바뀐 이탈리아의 구비오라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 10대 소년이 직접 그 논문을 발표한 학자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보고, 이 분은 또 상세하게 그 곳을 알려주고 훗날 학계에서 다시 만나 그 때 일을 회상한다는 아름다운 스토리!

심지어 이 학자의 아버지는 무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분이다.

미국의 과학 발달이 최첨단에 서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라는 제목답게 나로서는 놀랄 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1) 가장 놀라운 주장은 공룡의 후손이 곧 새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일부 공룡이 깃털을 갖게 되고 새로 진화했다는 정도이지 모든 공룡이 다 깃털 공룡일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공룡은 파충류이므로 비늘이 있지 온혈동물처럼 깃털이라니.

그러고 보면 이제 공룡은 변온동물이 아니라 조류처럼 온혈동물로 생각해야 하는가?

더 신기한 건 날개가 단지 날기위해 진화된 것이 아니라 몸 구조가 생존에 적합하게 발달하다 보니 우연히 날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공룡 이야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그 깃털은 날개를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보온과 과시 목적으로 작용했고 나는 것은 여러 과정에서 정말 우연히 획득한 능력이라고 한다.

공작새의 꼬리처럼 과시 목적의 깃털 달린 공룡이라니!

깃털까지 화석으로 남기 힘들어 그 동안 매우 드물었으나 랴오닝 성에서 엄청나게 많은 깃털 공룡들이 매주 발굴된다고 한다.

매월 새로운 공룡들이 계속 이름을 갖게 된다.

모든 공룡이 다 새로 발전한 것은 아니고 우리가 무섭게 생각하는 수각류, 간단히 말해 이족 보행을 하면서 무시무시한 턱과 이빨을 가진 엄청난 크기의 육식동물, T-rex 같은 애들이 몸집이 작아지더니 어느날 갑자기 새가 된 것이다.

기낭이라고 들숨과 날숨에 다 산소 공급을 할 수 있는 고효율 폐, 즉 기낭이 있고, 뼈는 가벼우며 쇄골이 융합되어 오늘날 새처럼 차골이 생긴다.

사실 공룡이 거대한 크기로 자랄 수 있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에 나온 것과는 달리 T-rex 는 너무 커서 자동차를 따라잡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릴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10여 톤에 달하는 엄청난 거구가 치타처럼 시속 100km 로 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인간보다는 훨씬 빨라 16~40km/h 속도로 뛸 수 있었고 이런 상황이라 달려서 잡기 보다는 매복해 있다가 엄청난 두개골로 한방에 박아 버린 후 바나나 길이 정도의 엄청난 이빨로 무려 뼈까지 씹어 버린다고 한다!

먹이감의 뼈에 이빨 자국이 남아 있다니 정말 놀랍다.

뼈를 씹어 먹을 정도의 파괴력이면 과연 지구상 최고의 괴수였던 듯하다.

또 놀라운 것은 이들이 혼자 다니는 게 아니라 집단으로 사냥을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새처럼 군집 생활을 하고 알을 낳으면 아이들을 양육했다.

그런데 너무 작은 크기로 태어나므로 일정 기간 보호해 주지 않으면 자연계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 같긴 하다.

또 재밌는 게 이들은 새처럼 한번에 급속하게 자란다.

조금씩 계속 자라는 게 아니라 급성장을 하는데 이것도 온혈동물의 증거라고 한다.

보통 30년 정도 살았다고 하니 수명도 길다.

이들은 백악기에 활동했으므로 이 때는 이미 남반구와 북반구로 대륙이 갈라진 후라 오늘날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는 이 공룡들을 볼 수 없고 대신 다른 종류의 육식동물들이 등장한다.

티 렉스는 북아메리카와 아시아의 패자였다.


2)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공룡이 왜 멸망했는지다.

내가 어려서 처음 공룡책을 읽을 때만 해도 소행성 충돌설도 있다고 소개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소행성 충돌은 공룡의 공식적인 멸망 원인으로 정립된 모양이다.

다만 소행성만이 유일한 원인인지 아니면 이미 공룡이 몰락해 가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한 방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있나 보다.

소행성 충돌로 70%의 생물종이 멸종했으나 양서류와 거북이나 악어 같은 파충류, 그리고 우리의 조상인 포유류는 살아 남았다.

소행성이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후 핵폭탄 10억개가 터진 것과 맞먹는 엄청난 에너지 분출로 인해 이른바 핵겨울이 왔다.

식물들이 광합성을 못해 죽어가자 초식공룡이 죽고 그 위에 육식공룡도 먹이사슬 파괴로 멸종하고 만다.

반면 수중 생활을 병행하던 양서류나 악어류 등은 호수에 몸을 숨겨 버텼고 포유류도 땅을 파고 들어간다.

새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덩치가 큰 공룡들은 불바다가 되고 다시 추워진 육지 밖에는 피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먹잇감이 없자 포유류는 식물 대신 다른 것들을 먹으면서 버틴다.

잡식성이 생존에 유리했던 것이다.

공룡은 비록 백악기 말에 생존에 실패했으나 이들도 페름기 화산 폭발로 인한 생태계 변화로 전 생물종의 90%가 멸종할 때 잘 살아 남아 텅 빈 지구를 점령하고 1억 5천만년 동안 번성했다.

그러나 백악기 말 소행성 충돌 때는 그 행운이 포유류에게 찾아온 셈이다.

덩치 큰 최상위 포식자들이 사라졌으니 50만 년이 지나 생태계가 정상화 되자 땅 속에 숨어살던 포유류들이 밖으로 나와 전 지구를 채우고 번성하게 된다.

결국 자연 상태의 급격한 변화에 살아 남은 자들이 자손을 이어가는데 이것은 예측하기 힘든 우연과 행운의 기묘한 조합 같다.


어려운 과학책이 아니라 흥미진진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공룡의 생활사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고, 또 마치 에세이를 읽듯 문장력 자체가 훌륭해 정말 재밌게 읽었다.

번역도 아주 매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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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미술의 미의식에 대하여
이주영 지음 / 미술문화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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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려운 미학서일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술술 잘 읽힌다.

뒷부분의 추상주의 개념에 대한 설명은 현학적인 기술이 많아 좀 지루하긴 했다.

그렇지만 소재가 우리에게 친근한 한국 근현대 미술이라 그런지 훨씬 친숙하고 편하게 다가온다.

단점은 역시 도판!

좋은 도판을 싣는다는 게 참 어려운 문제인가 보다.

어둡게 인쇄가 돼서 작품이 갖는 강렬한 색감을 느낄 수 없어 너무 아쉽다.

그렇지만 본문에 언급된 작품들을 가능하면 많이 소개하고 있어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린 오지호의 <남향집>이나 임직순의 <모자를 쓴 소녀> 같은 작품들은 색채감이 워낙 밝고 강렬해서 그런지 한 톤 낮춰서 인쇄된 것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김관호의 자화상이나 김인승의 인물 등을 보면 정말 너무 잘 그리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미학적 기쁨을 주는데 그럼에도 세계적인 화가가 못 되는 걸 보면 미술사에 이름을 널리 남긴 이들은 도대체 얼마나 천재들인가 싶다.

성재휴나 이응노, 김기창 등 수묵담채의 추상적인 표현도 참 좋았다.

먹이 갖는 특성을 잘 이용해 형식은 전통적이나 내용은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개성적이고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본 책에서는 고희동이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나 실력이 별로라서 귀국 후에도 계속 작품 활동을 못하고 동양화로 돌렸고, 협회의 이권 다툼에 추한 말년을 보냈다고 평가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고희동의 자화상 두 점을 소개하면서 미학적으로 훌륭하고, 특히 일제에 협력하기 싫어 서회협회전에만 출품하고 선전에는 일체 작품을 내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친일 경력이 없음을 높이 평가했다.

사실 자화상만 보면 평범한 감상자의 눈에는 고전적이고 멋지게 느껴진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항상 한복만 고집한 점도 인상적이다.

왜 화단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항상 추상에 대해 모호하기만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무언가를 끌어내려는 시도, 형태가 아닌 선과 색채의 순수조형요소에서 실존에 대한 정서적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곧 추상회화가 아닌가 싶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이인가?

감각 저 너머의 실존적인 것, 작품을 보고 그것을 떠올리는 것은 관람객의 몫인데 보통 형상이 표현된 구상회화에서 정서적 환기는 훨씬 쉬우니, 60년대의 앵포르멜 운동이나 모노 크롬 회화가 관념성에 치우쳐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비판도 이해가 된다.

예술의 본질은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정서의 환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뒷부분에서 설명하는 비판적 리얼리즘, 간단히 말해 민중회화는 너무나 직설적이고 주장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느낌이라 미학적 기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쉽게 말해 너무 노골적이고 주제의식이 선명하여 마치 그림이 서사의 하위 개념인 것 같다.

민중회화를 이렇게 공들여 설명한 책은 못 본 것 같아 의미있게 읽기는 했으나 수단으로서의 회화는 매력적이지가 않다.

관람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둬야지 선명한 주장으로서의 회화는 불편하다.


책의 주제인 한국적 미의식에 대해 저자는 자연합일을 꼽는다.

자연을 극복하는 것이 서양회화라면 한국인은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되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미감을 추구한다.

간단히 말해 기교보다는 무기교 무장식 소박미의 달항아리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화려한 찻잔보다 이도 다완을 최고로 치는 일본의 경우도 비슷할 듯하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말하는 조선미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엄격한 비례미의 기하학적 추상보다는 정서적 환기를 일으키는 서정적 추상이 대세를 이룬다.

김환기의 작품을 보면 한국적 미가 무엇인지 금방 느껴진다.

형상이 있는 반추상이 아니라 완전 기하학적 추상을 추구한 유영국의 산 시리즈를 봐도 확실히 차가운 서양 추상과는 다른 느낌이다.


궁금하면 바로 미술관으로 달려가서 직접 작품을 볼 수 있는 우리 회화들을 대상으로 한 미학서라 훨씬 실감나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근현대 우리 회화에 대한 책들이 더 많이 나와 감상하는 기쁨을 많이 누렸으면 좋겠다.

난 추상은 잘 모르기도 하고 관심이 적었는데,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정규 전시회를 보고 색다른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책에서 보고 말로 설명하는 것과 직접 작품을 대면했을 때 받는 감정의 고양은 또다른 것 같다.

가급적 많은 작품들을 직접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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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풍경과 사유 - 한국고대사의 경험과 인식 학문의 이해 3
이강래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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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되는 제목과는 달리 좀 지루했다.

고대인의 사유체계에 대한 이야기이긴 한데 삼국사기 같은 사료를 성실히 분석하는 수준이라 특별히 다른 관점을 얻지 못해 알고 있는 지식의 반복 느낌이다.

다만 고대인들이 사서를 기록할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이긴 했다.

오늘날처럼 역사서를 쓸 때 원인과 결과, 배경에 대해 깊이 고찰하기 보다는 하늘의 뜻이 인간사에 반영된 것은 아닌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유교적 기준에 합당한지에 중점을 두고 기술하다 보니 요즘 관점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료 비판이 매우 중요함을 새삼 느꼈다.

일식이나 혜성 같은 자연현상 등을 열심히 기록한 것도 17세기 서구처럼 과학적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천재지변이 인간사에 보내는 하늘의 메시지라는, 천인상관설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사료에 나온 기록들을 너무 자연주의 관점에서만 해석해서는 진짜 본질을 놓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왕조가 멸망하려면 하늘도 왕을 버렸을 것이라는 게 당대인들의 생각이니 그 징조를 자연에서 찾는 식이다.

그렇다면 설화는 진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질 게 아니라 설화에 드러난 당시 생활상에 중심을 둬야 할 것 같다.

저자는 건국 시조들의 여러 이적들에 대해, 아마도 고대인들이 자연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당시로서는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에 대해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덧붙여 오랜 전승이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론한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 관점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읽고자 하는 철학적 관점에서 자연을 본다면 기적들이 과연 많을 것 같기도 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기적들이 왜 현대에는 안 일어나냐는 질문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결국 사서란 고대인들의 가치체계에 근거해 기술한 것이고 전승 과정에서 많은 변형이 이뤄졌을테니, 올바른 역사 이해를 위해서는 고고학적 유물과 대조해 봐야 할 것 같다.

물질자료 자체가 역사적 의미를 바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고, 또 사서에 기록됐다고 해서 사실 자체는 아니니 결국 사서의 내용을 고고학적 유물로써 뒷받침 될 때 비로소 완벽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형사취수혼은 유목 사회에서 혼자 된 형의 아내를 부양하기 위한 제도인데, 자매끼리 연이어 결혼하는 것은 뭔가 궁금했었다.

책을 보니 이런 제도를 자매역연혼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혼인은 집안끼리 일종의 동맹을 맺은 것이라 시집보낸 딸이 죽으면 다시 자매나 조카를 그 집안으로 보내 관계를 존속시킨다.

특히 아이를 낳지 않고 사망하게 되면 남자 집안에 생산을 못해 준 것이므로 이어서 다른 자매를 다시 보내주는 것이다.

누구와 결혼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집안과 혼인을 맺느냐가 중요한, 집단적인 결속의 과정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홍타이지의 첫번째 부인 역시 아이를 못 낳자 그 조카가 다시 시집와 순치제를 낳았던 것 같다.

개인 사생활의 발명은 지극히 근대적인 관점이라가고 하더니만 과연 그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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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새로 읽기
주보돈 지음 / 주류성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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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가야전을 인상깊게 보고 좀더 알고 싶어 선택한 책이다.

300 페이지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기존의 알려진 내용과 약간 다른 부분도 있어 다른 책도 참조해야 할 것 같다.


1) 가라는 대체적으로 고령의 대가야를 가리키는 말이고 대가야가 국가로서의 위상을 거의 정립했던 것으로 본다.

이 부분은 가야전 도록에서도 명시됐었다.

임나는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가야 연맹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금관가야가 고구려의 남정 이후 쇠퇴했고 낙동강 무역량이 감소하면서 내륙의 대가야가 철 생산을 매개하면서 왕국 수준으로 커 갔다고 한다.

보통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온 가라를 금관가야로 보지만, 저자는 대가야로 생각한다.

금관가야가 광개토왕의 남정 이후 몰락하여 고령 지역으로 이주한 것이 아니라, 원래 대가야 세력이 자리잡고 있었고 5세부터 부흥했다는 것이다.

남제에 사신을 보낸 가라국왕 하지도 저자는 대가야로 추측한다.

내륙에 있던 대가야는 섬진강을 이용하고 백제와 친선 관계를 유지한다.

저자는 그 밑에 있는 함안의 아라가야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기술한다.

워낙 사료가 적어 대부분 추정치이긴 하나 일본서기에 나온 기록을 중심으로, 안라가야는 신라의 공격에 대항하여 안라회의 등을 주최했고 대가야와 함께 일정 부분 세력을 유지했다고 본다.


2) 저자는 369년 근초고왕의 영산강 정복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조에 나온 기사에 120년을 더하면 대략 시기가 맞다는 것이다.

과연 근초고왕이 영산강까지 남정하여 마한을 복속시켰는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분분한 것으로 안다.

지난번 여러 학자들의 논쟁을 읽어보면 고고학적으로는 전혀 복속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므로 거의 성왕 시기까지 백제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저자는 마한이 워낙 백제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쳐져 고구려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굳이 마한을 직접 지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간접 지배 방식으로 내버려 뒀다는데, 상식적으로나 고고학적 관점에서나 공감이 안 되고 국력의 한계였을 것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목라근자가 왜의 군사들을 이끌고 와 마한을 점령한 것으로 나오는데 저자는 근초고왕의 지휘 아래 목라근자가 원정하여, 侯 개념으로 봉작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개로왕이 전사한 후 수도를 옮기면서 남쪽으로 내려온 백제는 국력을 키워 영산강 유역을 정복해 갔지만 가장 큰 목표를 한강 유역 탈환이었으므로 신라와 동맹하고 가야와 왜까지 끌어들여 고구려에 맞섰으나 신라의 배신과 관산성 전투 패배로 성왕이 허무하게 죽고 난 후 결국은 망하고 만다.

더불어 백제에 의존하고 있던 가야 역시 신라에 망하고 만다.

제일 먼저 항복한 금관가야는 진골 귀족으로 우대했으나 마지막까지 버틴 대가야는 피지배층으로 복속시켰다.


가야는 삼국처럼 확고한 중앙집권적 왕조 국가를 만들지 못하고 사라져 버려 늘 실체가 모호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윤곽이 조금씩 잡히는 느낌이다.

가야라는 하나의 큰 나라나 연맹체가 있는 게 아니라 낙동강과 섬진강을 중심으로 한 작은 소국들이 서로 연합한 게 바로 가야가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금관가야나 대가야, 아라가야 등이 비교적 규모가 커서 역사에 흔적을 남겼던 것 같다.

마한 54개국처럼 가야도 여러 소국들의 집합체이고 독자성을 가졌으나, 신라가 사로국에서 중앙집권국가로 커가면서 점차 잠식되어 사라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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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
허남린 외 지음, 국립진주박물관 엮음 / 푸른역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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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 선택을 잘하고 있다.

읽는 책마다 다 재밌고 유익하다.

400 페이지 정도 되고 여러 학자들이 기고한 책이라 어려울까 봐 약간 긴장했는데 술술 잘 읽힌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전시회 후 도록 형식으로 발간된 책인가 보다.

한국 학자들이 쓴 부분은 가독성 있게 잘 읽힌 반면 중국과 일본 학자들이 쓴 글은 번역이라 그런지 눈에 쉽게 안 들어와 아쉽다.

그래도 정유재란을 직접 참여한 다른 나라의 시선으로 본다는 점은 신선했다.

중국 학자의 글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조명 연합군이 승리한 이유가 엄청난 은 덕분이었다고 한다.

어떤 주장을 내세우는 건 아니고 당시 전쟁에 얼마나 많은 은이 들어갔는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어 약간 지루했지만 하여튼 명나라 재정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장거정의 개혁 이후 명 조정이 재정 보충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원정이 가능했다고 한다.

장거정 평전을 읽었을 때도 재정 건실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상세하게 써 있었다.

어린 황제를 위해 국가 재정을 탄탄하게 만들어 줬건만 만력제는 수년 간 태업을 하더니 이웃 나라 전쟁에 엄청난 돈을 다 써 버리고 결국은 망국의 길로 가고 말았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조선의 황제냐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은본위제가 이미 확립이 됐는지 명은 모든 군수물자와 병사들의 월급을 은으로 지급했고 반대로 조선은 은이 있다고 쉽게 물자를 구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달에 애를 먹었다.

선조 하면 무능함의 표본으로 그려지지만 군사력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와중에 조선 조정도 나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애를 많이 썼음을 보여준다.

선조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천조국의 군사들 뿐이니, 조선 조정은 명을 계속 참전시키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의 주제는 임진왜란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정유재란이다.

임진왜란 때 명의 참전으로 물러간 후 4년 동안이나 강화 교섭이 이뤄지지만 실패하고 다시 1597년도에 재침한 것이 정유재란이다.

이 정유재란은 왜 일어난 것일까?

도요토미가 다음 해 8월에 죽었으니 조금만 교섭을 더 끌었어도 재침은 없었을텐데 참 아쉽다.

교섭을 이끌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런 사실을 흘리며 조선 조정에 좀더 시간을 끌어달라는 언질도 수차례 준다.

그런데도 조선 조정은 강화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고 오직 명군이 복수를 해주길 바라며 일본 측 제안은 무응답으로 일관한다.

사실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정유재란은 강화 교섭의 실패 때문에 벌어졌는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책의 대표저자인 듯한 분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측의 무응답이 원인이다.

철군 명분을 찾던 도요토미 입장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물러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적당한 명분을 찾기 위해 다시 침략했고 이 때는 전라도 경상도 지역의 실제 지배를 목표로 삼는다.

살육전을 통해 조선 조정을 압박해서 눈에 보이는 항복 표시를 받아내려 한 것이다.

오히려 임진왜란 때는 중국을 치러 가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최단시간에 북상하고 조선인들과는 크게 부딪치지 않았으나 정유재란 때는 처음부터 남부 지방 점령이 목표라 지역 사회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코를 베어 가는 등의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일본은 조선을 무시한 채 명나라와 강화 교섭을 시도하지만 명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이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책봉 이상의 조건은 들어줄 수 없었고 조선 역시 일체의 강화 시도를 전부 무시한 채 외교적으로 명 조정에 압박을 넣어 이들을 섬멸해 달라고 하니 결국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조선 백성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가 막히고 끔찍했을까.

무응답으로 응한 조선 정부의 작전도 결과적으로는 옳았다고 저자는 평가하지만 민중 입장에서 보면 재침을 외교적으로 못 막은 것이니 끔찍한 실패가 아닐까?

도요토미 역시 전국을 통일하고 그 역량을 내치에 쏟아 도쿠가와 막부 같은 튼튼한 중앙정부를 만들었으면 늦게 본 아들이 끔찍하게 죽지는 않았을텐데 허황된 판단으로 동아시아 전체를 전쟁에 휩싸이게 했으니 실패한 정치가인 셈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승전했음에도 이미 전라도 남부 해안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육군 때문에 정박하지 못하고 물러났다는 점이다.

해전의 승리만 강조했을 뿐 이런 디테일한 전후 사정은 언급하는 책이 없어 아쉽다.

순천왜성에 갇혀 있던 고니시 부대가 일본으로 탈출하기 위해 명의 장수 유정과 진린에게 많은 뇌물을 쓰고, 구원하러 온 시마즈 부대와 합류하던 중 벌어진 전투가 노량해전이다.

이순신 입장에서는 적이 달아나는데 원조국이라고 온 군사들이 그대로 보내주려 하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싶다.

오죽하면 총대장이 앞장서서 함대를 지휘하고 그 와중에 사망하게 됐을까.

나중에라도 정조 때 이 훌륭한 위인의 업적이 평가받게 되서 정말 다행스럽다.

정유재란 당시 한중일 세 나라의 국제정세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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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20-04-1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사둔게 있는데, 어서 읽어봐야 겠네요.ㅎㅎ

marine 2020-04-16 08:33   좋아요 0 | URL
임진왜란이 아니라 정유재란에 초점을 맞춘 게 흥미로웠습니다.
왜 다시 재침이 일어났느냐 그 부분을 분석한 게 흥미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