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 - 대체의학의 진실
사이먼 싱 외 지음, 한상연 옮김 / 윤출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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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상한 것을 믿는 것일까?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스켑틱과도 통하는 책이고 마이클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떠올리는 책이다.
공동저자 중 한 명이 쓴 <대체의학이라 불리는 사기>를 먼저 읽어서 같은 내용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더 재밌고 이해하기 쉽다.
아주 명료하게 과학적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반 대중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구권에서는 대체의학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한의학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은 독특하게 의사 면허 외에 한의사라는 면허가 따로 있어 현대의학이라는 범주가 좀 애매한데 책 내용에 따르면 침술과 약초 요법이 해당되므로 대체의학 범주에 속한다.
한의학의 존재 때문인지 한국 사람들은 현대의학을 양의학이라고 따로 지칭하지만 현대의학, 주류의학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의사들은 전 세계의 표준적인 보편적 의학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동양의학, 서양의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대체의학 혹은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서양의학도 20세기 들어서 치료 효과가 입증되기 전에는 사혈이나 체액설 등을 믿었다.
책에도 사례가 나온다.
조지 워싱턴이 사혈 요법을 받다가 지나친 체액 소실로 사망했다.
대체의학을 침술, 동종요법, 카이로프랙틱, 약초요법 네 가지로 나눠서 과연 이 치료들이 임상적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했다.
침술은 두통과 구역 증상에 효과가 있는 경우가 간혹 있고 동종요법은 전혀 효과가 없으며 카이로프랙틱은 허리 통증 완화에 한해서 효과가 있다. 
약초요법은 약리효과가 있는 유효성분은 약으로 정제되어 사용하고 있으므로 약리학에 속하고 그 외에 전체 식물을 다 먹어야 하는 경우는 오히려 부작용을 걱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임상실험을 통해 임상효과를 내는지로 검증했다.
과학만능주의라는 말로 비판을 하는데 저자들은 과학이란 의견이 아니라 진리를 밝히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공정성이나 문화다원주의 이런 의견적 영역이 아니라, 치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아무 감정없이 입증하는 것이 바로 임상실험이고 의학이고 과학이다.
그러므로 실험을 통해 치료 효과가 입증되면 현대의학의 영역에 받아들여 표준적인 치료법이 되는 것이고, 효과가 없다면 배제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무작위 이중 맹검법의 설계를 통해 효과를 입증하는데 이 방법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 공들여 설명한다.
침술의 경우 아픈 부위에 자극을 주면 통증이 경감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신경자극을 통한 치료가 IMS 기법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특정 부위에 침을 놔서 다른 장기의 질병을 낫게 한다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동양의학에서 주장하는 기라던가 혈자리, 경락 같은 개념이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일종의 철학 체계라는 것이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이렇게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은 해부가 가능했는지 차이라고 한다.
일리있는 말 같다.
저자들은 동양에서는 신체 해부가 금기시됐기 때문에 당시 의사들이 신체에 대해 상상의 체계를 만들었으리라 추정한다.
오장육부나 기 같은 추상적인 철학 체계 말이다.
저자들은 대체의학이 효과가 있다고 느끼는 까닭이 전적으로 플라시보 효과라고 단언한다.
의미가 있는 치료라면 언제나 누구에게서나 일정한 효과를 내야 하는데 대체의학의 여러 시술들은 이러한 임상실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그래서 현대의학에 들어오지 못했다.
괴혈병의 치료법이 라임을 먹는 것이고, 말라리아 치료법이 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키니네를 복용하는 것처럼 효과가 있으면 현대의학에 속하게 되고, 동일한 효과를 내지 못하면 배척된다.

플라시보 효과만으로 대체의학의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저자들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주장한다.
1) 부작용 우려.
의사들이 처방하는 모든 약은 성분과 부작용, 사용 용량 등이 표기되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의학에 사용되는 약초들은 위생당국의 규제로부터 벗어나 있다.
대체의학의 약초들이 정식의학으로 인정받으려면 임상실험을 통과하여 허가받은 약들과 똑같은 기준에 맞춰 그 성분을 공개해야 한다.
2) 잘못된 의학적 조언들
비근한 예로 예방접종을 못하게 하는 안아키 같은 경우다.
잘못된 조언이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
3) 과도한 비용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크다.
저자들은 카이로프랙틱과 물리치료가 큰 차이가 없지만 비용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수치료 같은 게 해당되려나?
효과의 차이가 미미한데도 환자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이런 대체의학이 건강보험으로 허용이 된다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4) 진실의 문제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히는 과정이다.
단지 심리적 위안이라는 측면에서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현대의학 안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가기 힘들다.

현대의학이 가져다 준 엄청난 혜택, 이를테면 주산기 사망률 감소, 예방접종의 효과, 항생제, 외과적 수술, 당뇨,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 치료, 항암요법 등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의학을 불신하고 뭔가 다른 그럴 듯한 치료법이 있지 않을까 주변을 둘러본다.
꼭 같은 경우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이 종교적 심성을 갖고 있고 여전히 인류는 달에 가지 않았다고 믿고, 진화가 아닌 인격신이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믿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건강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올바른 의학적 선택을 하는 것도 중요하니 정치적 공정성, 도덕성 이런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과연 이 치료가 부작용이 없는지 효과는 입증이 됐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번역이 매끄러워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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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그림 - 명화 속 눈먼 욕망과 연애 유희
최정은 지음 / 세미콜론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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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읽을 때의 기쁨이랄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지적 충만감이 가득 느껴진다.

작은 판형에 비해 도판의 인쇄 상태도 훌륭하고 활자 크기나 편집도 가독성 있고 가벼워 보이지 않아 참 좋다.

다만 제목이 너무 진부하다.

이렇게 좋은 책이 이렇게 뻔한 제목으로 출간되다니, 책의 매력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제목만 보고 로코코 시대 명화 소개인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읽었던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저자임을 알고 기대감을 갖고 읽게 됐다.

네덜란드 정물화에 대한 흥미로운 책이었고 나를 그림의 세계로 인도해 준 책 중 하나다.

네이버에 연재된 글 모음이라는데 네이버 수준이 이렇게 높았나 싶을 정도로 17세기 네덜란드 사회와 18세기 로코코가 유행하던 프랑스 사회를 그림을 소재로 하여 너무나 깊이있게 설명하고 있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솔직히 17세기 네덜란드의 장르화는 별 재미가 없었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언제나 매혹적이지만 그냥 그림 자체로 좋을 뿐 거기에 담긴 사회상이 특별할 게 없어서인지 서술 내용도 심심했다.

그렇지만 18세기 로코코 시대로 넘어오면 정말 흥미진진하다.

역시 유럽 사회를 이끌던 프랑스의 문예사조라 그런지 프랑스 대혁명까지 이어지는 시대상이 정말 흥미롭다.

나는 루벤스 풍의 바로크 그림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와토나 프라고나르의 페트 갈랑트 회화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로코코 회화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회화의 매력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됐다.

<예술이 되는 순간> 이라는 책에서 와토의 그림 "제르생의 간판" 을 설명하면서 색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알게 됐을 때의 놀라움이랄까.

로코코 시대의 우아한 귀족들의 그림들은, 그들이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했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동양의 초일적 이상향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바로크 시대의 고전문화가 절정에 다다라 귀족들의 삶이 곧 예술이 되는 시대, 그것이 로코코 시대였고 민중들의 피땀을 전제로 한 그들의 부유함과 번성함은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파국에 이르고 말았다.

18세기는 계몽주의가 꽃을 피운 이성의 시대인데 이 시대정신을 널리 퍼뜨린 사람들이 바로 살롱의 여주인들이다.

중세 궁정에서 귀부인을 숭상하는 기사도 문화가 살롱 문화의 배경이 됐다고 한다.

여성들은 비록 공식적으로 교육을 받거나 사회 활동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귀부인들은 살롱을 열어 사적으로 계몽주의자들의 토론의 장소를 제공하고 그들을 후원함으로써 널리 퍼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이 대표적인 후원자이고, 그녀는 세브르의 도자기 산업을 이끌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규방에 갇혀 사회적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던 조선 사회 상류층 여성들의 삶이 안타깝다.

프랑스는 중세 신학으로부터 벗어나 계몽주의로 나갈 수 있었고 결국 프랑스 대혁명까지 이르러 세상을 바꾸었지만, 조선은 이렇게 꽁꽁 닫힌 사회였으니 자력에 의한 사회 변화는 불가능했던 것 같다.


좋은 책은 바로 이런 책이 아닐까 싶다.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면서 관심의 폭을 넓혀 주고 대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책.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255p

"어쩌면 그들은 풍족한 상류사회의 삶을 누리는 유쾌하고 초연한 자신들의 모습을 그림을 통해 보고자 한 것은 아닐까. 동아시아권의 표현으로 超逸 에 비할 만한, 가벼우나 경박하지 않고 초연하면서도 정중한, 우아함이 깃든 당당한 모습은 엘리트 계층이 그들 자신을 보고자 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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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빈궁일기 - 현전 유일의 궁궐 여성처소 일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 자료총서 27
정병설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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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혜빈궁일기>이지만 부제처럼 요즘 개념의 일기가 아니라 매일 일과를 기록한 일지이다.

혜빈궁일기를 소재로 글을 쓴 게 아니라 일기를 국문으로 번역한 것이라 나같은 일반 독자들이 교양서 수준으로 읽기에는 다소 지루하고 어렵다.

사도세자 사망 이후 세손을 시아버지 계신 경희궁으로 보내고 창경궁의 경춘전에서 혜경궁은 따로 살게 된다.

하나 밖에 없는 친아들, 그것도 40이 넘어서 낳은 귀한 아들에다가 대리청정을 10년 넘게 한 세자를 죽인 시아버지니 며느리 혜경궁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더군다나 시할아버지인 숙종 역시 세자를 낳은 장희빈을 죽였고, 그 앞의 인조는 며느리 강빈과 친정을 몰살시키지 않았던가.

왕가의 권력이란 일반 가정의 가족애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모양이다.

공식 일지이다 보니 한중록처럼 개인적인 소회가 없어 아쉽지만 저자의 해설을 읽으면서 당시 궁중의 풍속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다.

상궁과 내인이 40여 명에 이르고, 그 시중을 드는 관비가 또 40여 인, 남자 내관이 10여 명, 액정서 별감들이 10여 명, 거기에다가 이들을 호위하는 별군직까지 하면 100명이 넘는 인원들이 이 혜빈궁에 속해 있었다.

단 한 사람의 여인을 위해서 말이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전근대 사회의 왕이란 지고지순의 존재였던 것 같다.

왕비의 지위에 오르지도 못한 혜빈이 이런 규모로 아랫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니 왕위를 이을 세자나 임금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을까 싶다.

일지인 만큼 매일 기록이 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대전과 중궁전에 문안 든 내용만 나온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경희궁에 있는 임금 내외에게 내관을 보내 문안을 여쭌다.

재밌는 게 이렇게 매일 반복해야 하는 의례라면 순번을 정해 놓고 가면 될텐데, 오늘은 누구를 보내냐고 묻고 누가 가라 하면 갔다 왔다고 보고하는 식이다.

내관은 8~10명 사이로 위계가 정해져 있는데 그 중에서 어떤 위치의 내관을 보내는지 물어보고 지시하는 게 신기하다.

말을 내달라고 하는 것도 특별한 명령이 있어야 가능했던 모양이다.

임금이 좀 멀리 행차할 때는 따라가서 문안 드릴 수 있게 말을 내달라고 부탁하는데, 신기한 것은 내관, 별감, 상궁, 내인은 물론 의녀까지도 말을 타서 서른 필이 넘는 마패가 발행된다.

궁에서 지존을 시중드는 이들도 말을 타고 갈 만큼 높은 위치에 있었던 모양이다.

왕실 여인들은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인지 모든 문안과 행사는 전부 내관들이 대행한다.

사도세자의 생모 선희궁은 혜경궁의 시어머니인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사망시 시마복, 즉 혈연관계가 가장 약한 3개월 복상 밖에 입지 않아 안타깝다.

왕의 후궁이라는 위치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고 정치 세력을 등에 업고 정식 왕비의 자리에 오른 장희빈이 새삼 대단하게 보인다.

선희궁 조카의 아들이 과거에 급제해 인사를 오고 훗날 황해수군절도사에 임명된다.

절도사라고 하면 정3품 당상관인데 선희궁은 양반이 아닌 궁녀 출신으로 알고 있다.

양반이 아니라 해도 무과를 통해서는 당상관에도 오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자의 외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특별한 신분 상승이었는지 궁금하다.


<오류>

17p

또한 혜빈궁과 동년생인 작은아버지 홍용한이 과거에 급제했을 때도 인사를 왔다.

176p

홍용한은 혜빈궁의 작은아버지이지만 나이는 헤빈궁과 같아서 가까이 지냈다.

-> 혜빈궁은 1735년생이고, 홍용한은 1734년생으로 나온다.

211p

영조가 인현왕후의 옛집을 방문하여 그곳에 비석을 세우고 동네의 이름을 추모동이라고 고쳤다. 인현왕후는 숙종의 초비다.

-> 숙종의 초비는 인경왕후이고, 인현왕후는 계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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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건국사 - 되찾은 주몽신화의 시대
김기흥 지음 / 창비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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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저자의 전작 <천년의 왕국 신라>를 재밌게 읽어 내친 김에 같이 읽게 됐다.

2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인데, 저자의 전공이 아니라 그런지 학술적인 분석 보다는 신화를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수준이라 약간 실망스럽다.

그리고 저자는 문헌자료를 다 사실로 가정하고 그것을 역사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고고학적 발굴 내용과 맞는지 검증이 없어 아쉽다.

이를테면 삼국사기에 유리왕이 희생제의 때 도망간 돼지를 잡다가 국내성으로 천도한 사건이 나온다.

저자는 이 기록을 사실로 가정하고 설명하지만 다른 책에서는 당시 천도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저자는 온조가 주몽의 아들이고 무리를 이끌고 남하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원을 부여라 여긴다고 했다.

성왕 때는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고 중국에 보낸 외교문서에서도 자신들이 부여에서 비롯됐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또다른 책에서는 백제가 부여 이주민이라는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고 오히려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부여를 자신들의 계보에 끌어들여 당시 경쟁국이던 고구려만큼 역사가 오래 됐음을 보여주려는 시도였다는 주장이 있다.

온조의 무리가 1세기 무렵 한성 주변으로 남하하여 나라를 건국한 고고학적 근거도 부족하다고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확립된 정설이 있는 것은 아니니 학자라면 이런저런 주장들의 근거와 자신의 논거를 분명히 밝혀 주면 좋을텐데 전공 분야가 아니라서 그런지 사서에 나온 신화 내용을 독자에게 쉽게 설명하려는 수준이라 이런 부분들이 아쉽다.

저자의 주장은, 고구려 건국 신화가 5세기 무렵 광개토대왕 시절에 확립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인 1세기 대무신왕 시절에 이미 정립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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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전 - 반체제 인사의 리더에서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공자 이야기
시라카와 시즈카 지음, 장원철.정영실 옮김 / 펄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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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라는 위대한 사상가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풀어쓴 인물 중심의 평전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유학이란 무엇인가, 그 원류는 어디인가에 초점을 맞춘 사상 서적 같다.

그러고 보니 저자의 전작 <한자>에서도 갑골문의 시작이 바로 신에 대한 희생 제의 과정이었다는 주장을 다소 지루하고 어렵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동양 철학에 대해 맛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수준에 맞지 않고 어려워 100% 다 이해하지 못했다.

논어나 노자, 장자, 묵자 이런 경서에 대한 설명은 철학적인 부분이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많이 건너 뛰었다.

나에게 사변적인 철학은 여전히 너무 어렵기만 하다.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주장은 공자가 무녀의 사생아이고 유가의 뿌리가 巫祝 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관 역시 하늘에 희생 제의를 바치는 巫祝 의 일종이었다고 본다.

은나라의 수많은 갑골문에 새겨진 점복들을 생각해 보면 과연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무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유교의 근본인 仁, 사람 人과 동음이의어인 이 단어를 공자가 발명했다고 설명한다.

인이란 무엇인가?

예절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 모든 전통의 매개자가 인이라고 했다.

솔직히 다 이해를 하지는 못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내려온 모든 전통을 하나의 사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바로 인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이런 사상의 권위를 주공으로부터 빌려 왔다.

그러고 보니 주나라 시대 묘지를 연구한 고고학책에서 주례가 주나라 시대의 예법이 아니라 동주 이후 춘추전국시대 공자가 살았을 무렵 비로소 정립된 매우 최근의 사상이라는 학설을 접한 기억이 난다.

고대로부터 전해온 전통이라고 하지만 사실 매우 최근에 생겨난 예법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그리스도교의 뿌리가 유대교이고 그것을 예수 사후 그 제자들이 새로운 종교로 개혁했던 것이 떠올랐다.

최근에 읽은 이집트학 책에 의하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 역시 이집트 신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겸애와 비공을 주장한 묵가가 수공업자들의 길드 같은 조직에서 비롯되었고 유가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체계를 세웠으나 그 뿌리는 비슷하다는 주장도 신선했다.

장자의 학문도 유가와 비슷하다고 한다.

오히려 인의를 주장한 맹자는 공자의 유가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다고 했다.

유가의 핵심적인 예법으로 삼년상을 들고 있다.

왜 유가는 삼년상을 고집했을까?

왕의 패권정치를 주장한 순자마저도 삼년상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명확히 그 연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마치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돼지고기를 금기시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어쩌면 고대로부터 내려온 여러 전통들을 하나의 거대한 예법이라는 질서 속에 체계화 시키는 과정에서 그러한 엄격한 상제가 대표적인 법으로 표상화 된 것은 아닐까?

저자는 말미에 인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비슷하다고도 했다.

어제 읽은 이집트학에서 카를 차용한 것이 바로 이데아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우리 존재의 근원,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의미하는가?


내가 다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지만 그래도 유학이 뿌리가 무엇인가, 공자가 중국의 전통을 어떻게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시켰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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