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내게 꽤 익숙한데, 그의 작품은 굉장히 섬세하고 잔잔하며 담담했으며 때로는 난해하게 다가온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자꾸 끌리는 매력적인 작품들이었기에 그녀의 작품은 꼭 찾아 읽어보게 된다. 나에게 난해함과 이해의 사이에 존재하는 그녀의 일상은 어떨까? 글처럼 그녀의 일상은 늘 섬세할까? 항상 소설 속에서 존재하던 그녀의 일상과 만난다는 건 굉장히 설레이는 일이다.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가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말이지 읽고, 쓰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읽고 쓰는 일을 둘러싼 에세이집을 만들지 않겠느냐, 하는 제안이 들어왔을때, 그래서 나는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략) 멋진 책 한 권을 읽었을 때의,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마저 읽기 전과는 달라지게 하는 힘, 가공의 세계에서 현실로 밀려오는 것, 그 터무니없는 힘. 나는 이 에세이집 안에서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 중, 본문 211,212p)
이 책은 I 쓰기, II 읽기, III 그 주변 총 3파트로 나누어 읽고 쓰는 일에 대한 글을 담아내고 있다. 늘 가공의 인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써왔던 작가가 이제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그녀의 소설 속에서 때로는 난해함을 느꼈던 나는 이 에세이를 통해서 그 난해함을 이해가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한껏 들떴다. 그래서일까? 독자 입장에서의 나는 II 읽기 부분에 더 주목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은 어디에 있든, 뭘 하고 있든, 혼의 절반은 그쪽 세계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다시 펼칠 때면, 그쪽으로 가는 느낌이 아니라, 그쪽에 돌아온 느낌이죠. 그걸 좋아해요. (본문 93p)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곳을 떠나는 일이고, 떠나고 나면 현실은 비어 버립니다. 누군가가 현실을 비우면서까지 찾아와 한동안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책을, 나도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129p)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인지, 여느 에세이와 달리 또 하나의 소설을 읽는 기분을 들게하는 문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작가의 소설에서 느꼈던 느낌과는 다른 순수하고 소녀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한동안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이미 그 바람을 이룬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난, 편안하게 이 책 속에서 머물면서 한동안 그쪽으로 간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도피인 동시에, 혼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한 연습이기도 했다. 혼자서 여행하는 것, 사물을 보는 것, 이해하는 것, 그리고 혼자 살아가는 것의, 간단한 연습이기도 했다. (본문 10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