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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평점 :
얼마 전 <그건, 사랑이었네>를 통해서 처음 저자 ’한비야’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구호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 베스트셀러 작가가 내가 아는 그녀의 전부였었으나,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따뜻한 사람인 한비야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녀가 하고 있는 가슴 뛰는 일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었고, 그녀가 건네주는 촛불을 기꺼이 받아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마음속에는 한국에도 도와줄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품고 있던 사람이었다. 물론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들의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이왕이면 우리나라의 소년소녀가장, 소아암 어린이들을 먼저 도와주어야 마땅하지 않겠냐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옹졸한 인간인가를 깨달았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라는 개념을 ’우리나라’의 한정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 아이들에게는 세계를 향해서 눈을 뜨라고 다그친다. 참 말도 안 되는 교육이다.
이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독이 있음을 알면서도 풀을 먹는 아이들에 대해 알고는 그런 생각을 감히(?) 품지 않는다.
내 가슴 속에 이미 ’우리’는 세계의 모든 나라를 포함시키는 통 넓은 (?) 엄마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이제 저는 그만 돌봐주시고 아프가니스칸 어린이들을 돌봐주세요.’ (출처: ’본문 62p)
겨우 유치원이나 다닐 만한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이 구절은 나에게 또 다른 ’우리’라는 개념을 새겨준 말이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나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식으로 살아간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 채,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많이 행복해야 한다는 식의 나만을 위한 삶.
그런데, 유치원 다니는 아이는 전 재산이었을 저금통을 통째로 보내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을 적어 내려갔다. 부끄러움에 자괴감마저 든다.
이 책을 읽어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전쟁으로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는 현장에서 일하는 한비야가 괜스레 멋스럽게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 나도 결혼 안하고 먹고 살만큼 돈만 있다면, 한비야처럼 할 수 있다는 쓸데없는 자만심도 가져봤었다. 얼마나 바보스러운 일인가?
이 책속에서 저자는 긴급구호 요원으로 일하던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었고, 그렇게 나의 바보스러움을 깨달아가게 되었다.
그런 오지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통에서의 모습을 담았는데, 왜 저자의 글은 즐거움과 행복함이 묻어나는 것일까?
처음엔 그녀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법이라 생각했었다. 지독한 환경도 즐겁게 다룰 줄 아는 그녀만의 스타일이라 생각했으나,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이 일을 통해서 얼마나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글 속에서 묻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불가사리 중 겨우 몇 마리를 살리는 일이지만, 그 불가사리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거지는 것이라는 어부의 대답이 자신의 마음과 같다고 한 그녀의 글처럼, 그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결혼은 안했지만, 딸은 셋이라며 딸 자랑을 늘어놓는 그녀의 글은 행복하기만 하다.
책을 통해서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전쟁 때문에 미쳐있었다는 소년병과 소녀병, 쓰나미에 휩쓸려가는 동생을 구하지 못한 열두 살짜리의 꼬마,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후 여동생은 자신처럼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을 벌고 싶다는 소녀 가장, 커피 색깔의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아이들 등 나는 한비야를 통해서 세계 곳곳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라는 따스한 마음을 가슴속 새길 수 있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한국이 아닌 세계를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세계화의 눈을 크게 뜨라고 말한다. 방 한쪽 벽에는 ’세계 지도’를 붙여놓고, 한국보다 더 넓은 무대에서 너의 꿈을 펼치라고 한다.
내가 말하는 그 무대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드넓은 세계의 모든 부분은 아니다. 화려하고 풍요로운 곳이 아닌 곳, 기아와 질병과 가난이 있는 곳도 우리 세계의 단면이다.
’진정한 세계화’ 라는 것은 그 단면까지 볼 수 있는 마음까지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저자 한비야는 내 마음에 촛불을 켜주었다. 나는 그 촛불을 기꺼이 활활 타오르도록 할 것이다.
99도의 고비를 넘기고 물이 끓는 100도가 될 수 있도록, 그녀가 건네준 99도의 촛불을 이제 나의 마음과 용기로 1도를 채워 넣을 차례가 되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얼굴로 살고 싶다. 부모님이 물려준 이목구비 예쁜 얼굴이 아니라 밝고 환해서, 당당해서, 쉽게 포기하지 않아서, 매사에 최선의 최선의 최선을 다해서 사랑스럽고 예뻐 보이는 얼굴로 살고 싶다. 쥬디가 찍어준 사진 속의 나처럼. (출처: 본문 13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