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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으면서 잠시 기억속에 묻어두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을 담은 이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보다는 1990년대초 고등학교를 다닌 내 또래들에게 더욱 끌릴거라 생각된다.
추억을 생각하게 하고, 그 시절에 가졌던 고민을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시간이였다.
그 시절 한창 인기를 끌었던 "뉴키즈 온더 블럭"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최불암 시리즈’의 허무개그, 생쥐를 먹고 얼굴을 쭉~ 뜯어내던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브이’ 등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르고, 이런저런 별명으로 불리우던 선생님들도 (솔직히 다시 기억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선생님도 있었으나, 다시금 생각나는 것은 그것 또한 하나의 추억이기 때문이겠지?) 생각나고, 학교앞 분식점의 쫄면과 떡볶이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채 시간에 쫓기어 달리던 그 시절,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며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주인공 ’김은효’가 미국 버지니아의 총기난사 사건을 통해서 친구 연희를 떠올리고, H를 생각하고 그리고 다시 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떠올리듯이, 나는 책을 쫓아, 아닌 주인공 은효를 쫓아서 그렇게 지난 옛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었다.
은효는 어쩌면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능력없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고(나는 능력없는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은효는 청렴결백한 부모님을 원망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뭐하나 잘 하는 것 없는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니 말이다.
은효는 중학교 시절 공부를 아주 잘 한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고, 혼자임에 익숙하다. 하지만, 등하교길을 같이 손잡고 걸어가며 수다를 떠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사춘기 소녀이다.
그런 은효는 자신을 미워하는 아이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같은 재단이 같은 고등학교에 가는 대신 외국어고등학교를 지원했지만, 자신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던 그들과 익숙해지기에는 또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는 그 시절의 교육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 시절의 교육현실이 지금과 사뭇 다르지는 않다.
수업내용은 "너네 이거 다 알지?" 라는 말과 함께 넘어가 버리고, 외국어를 배우겠다는 목적으로 들어간 학교에서는 외국어를 배우기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맛보는 것이 현실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이미 외국어에 능통한 아이들, 외국에서 몇 년을 살아본 아이들이 모국어를 이야기하듯 술술술 대화하는 그들을 보면서 은효가 느끼는 좌절은 지금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이 느끼는 좌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경을 끼고, 교정기를 낀 은효는 자꾸 움추려드는 모습이 보인다. 책 표지에 등장한 그림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은효는 아직 딱히 원하는 것도,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이리라.
어른들의 말이 맞다면, 꿈은 대학에 간 뒤 천천히 찾아보아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건 어쩌면 미술시간에 쓸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준비하는 일과 같은 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더라도 스케치북과 크레용이 있으면 조금 늦게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그릴 수 가 없다.
(출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본문 106페이지)
은효는 그 시절에 내가 했던 고민을,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하는 고민을 보여준다. 성적, 친구, 꿈, 미래, 부모, 가족 등 우리가 한번쯤 해봤음직 했던 고민과 생각과 행동들.
목둘레가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엄마를 부끄러워했던 것,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했던 가정에 대한 불만,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 같은 자신에 대한 한없는 좌절, 꼴찌에서 10등한 성적에 대한 불만, 그리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친구에 대한 애정 등 은효를 통해서 나는 나를 보았다.
은효는 결국 입시에서 탈락하는 고비를 마셨지만,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갖는다. 이 이야기가 저자의 고등학교 시절을 풀어놓았기 때문에 그 용기는 더 많은 희망을 보이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안경을 끼고, 교정기를 낀 은효의 모습은 초등학교 5학년인 내 딸의 모습과 겹쳐진다. 몇년 후 내 딸도 안경을 끼고, 교정기를 끼고, 여드름이 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을 "찐따"라고 생각할까?
그때 이 책을 보여주어야 겠다. 결코 찐따가 아니라는 것을...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겠다.
신은 우리 인간에게 오직 ’현재’라는 시간만을 허락했으니,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야겠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있는 ’현재’가 바로 내게 가장 귀중한 것 중 하나 아닐까?
나는 이번 전기에 결과가 좋지 못해서 후기는 포기하고 재수를 시작했어.
힘들겠지만 그것이 내게 주어진 길인걸.....다시 시작해야지..
(출처: 본문 202~203페이지)
나는 지금 스케치북과 크레용이 준비되어 있는가? 어쩌면 이제 내게 미술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