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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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의 사택에서 취사를 맡고 있는 우다왕은 사단 내에서 손꼽히는 우수하고 모범적인 사병이다. 군에 들어와 오랫동안 명예로운 기록을 세운 그는 투철한 군인정신과 당에 대한 지극한 충성으로 무장되어 있다. 우다왕은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던 사단장과 그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류롄을 위해 매일 성실히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든다. 그는 부뚜막 위에 놓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쩌둥의 1944년 연설에서 따온 문구를 새긴 팻말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문제는 류롄이다. 사단장보다 열일고여덟 살이나 어린 부인은 우다왕에게 바라는 바가 있는 눈치다. 결혼 후 5년 동안 식사 시간 이외엔 사택의 2층에만 있는 그녀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다왕은 그녀에게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간부로 진급해서 고향에 있는 아내와 아들을 도시로 데리고 오는 것에만 쏠려 있다. 하지만 류롄은 우다왕 몰래 그를 의미심장한 눈길로 훔쳐보고 있었다.

어느 날, 사단장이 두 달 간 부대 정예화를 위한 연구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떠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2개월 간 사택에는 우다왕과 류롄,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류롄은 우다왕에게 명령한다. 부엌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팻말이 원래 있던 곳에 없으면, 그건 우다왕에게 시킬 일이 있으니 위층으로 올라오라는 뜻이라고.

이쯤 되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다들 짐작할 수 있으리라. 류롄은 우다왕을 노골적으로 유혹하고, 갈등하던 우다왕은 강압과 내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류롄과 격렬한 성애에 빠진다. 사단장의 아내와 취사병이 아니라 태초의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로 화한 그들은 규범이라는 굴레를 훨훨 벗어던지고 섹스에 몰두한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서로 자기가 상대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단장 집무실에서 마오쩌둥 선집이니, 마오쩌둥 초상화니, 도금 조각상이니 하는 것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가루로 만드는 장면이다. 마오쩌둥 수첩을 잃어버리는 정도로도 큰 곤란을 겪을 수 있던 시대에 이런 엄청난 불경을 맘껏 저지르다니! 독자들은 두 남녀의 방종에 환호하면서도 이들의 앞날에 걱정이 앞선다. 도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려고? 사단장이 돌아올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소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류롄은 달빛이 교교한 어느 밤, 우다왕에게 임신했음을 고백한다. 사단장의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집무실을 폐허로 만들고, 임신까지 시켜버린(사단장은 전쟁 중 총에 맞아 남자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우다왕의, 그리고 류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쩌둥의 1944년 연설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중국공산당 전사인 장쓰더가 탄광 붕괴 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마오쩌둥은 이 연설을 통해 ˝지금 중국의 인민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만큼 그들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분투하고 있고 이러한 분투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라고 강조한다. 즉,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혁명 정신의 상징적인 슬로건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말은 혁명이 아니라 성애의 트리거이다. 인민을 위한다는 위선과 거짓의 명제가 아니라, 신분과 지위를 떠나 원초적인 욕망에 몰두하는, 어찌보면 날것의 진실을 표방한다.

이 소설의 작가 옌렌커는 우다왕과 류롄의 행위를 통해 당과 군대가 실상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게 아니라 테제를 위해, 그 테제가 작동하는 권력 - 마오 주석으로 상징되는 - 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을 폭로한다. 류롄은 우다왕을 유혹하면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말을 지키려면 내 명령에도 충실히 복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갈한다. 인간이 지워지고 혁명만 남은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에서 이들은 서로의 육체를 통해 인간임을 확인한다. 이 슬프고도 우스꽝스러운 비가(悲歌)가 옌렌커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통해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바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장 존엄한 것은 체제나 사상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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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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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이후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근 1년 가까이 목도하게 된다. 이 나라의 파워 엘리트라는 자들이 내란을 옹호한다던가, 내란을 일으킨 당의 대통령 후보가 40% 넘는 표를 차지한다던가, 멀쩡한 사람들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다던가. 제일 요상한 건 한 줌 웃음거리 같아 보이던 극우 세력이 점점 덩치를 키워간다는 것. 박근혜 탄핵 때 태극기부대랍시고 설치던 노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젊은이들이 서부지법을 습격하고 반공 혐중 시위를 벌이는 장면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따지고 보면 맥주홀 폭동을 일으키기 전까지의 히틀러도 당시엔 연설을 잘할 뿐인 괴팍한 인간 취급을 받았으니까.

그럼 도대체 왜 이들은 극우의 논리에 빠져드는 걸까? 한국 기독교의 특수성 때문에? 일부 정치인들의 세대·성별 갈라치기에 설득당해서? 성과주의의 함정에 빠져서? 이것만으로는 이들이 집단화되어 강한 폭력성을 내비치는 이유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이라는 인간 같지 않은 짓을 저지른 일베들은 그저 비뚤어진 조롱이 목적이었지, 이렇게까지 대규모로 세를 불려서 폭력을 휘두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을 읽으면 그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떠돌이 노동자로 일하면서 쓴 그의 첫 번째 책인 <맹신자들>은 프랑스혁명, 나치즘, 볼셰비즘 같은 대중운동의 본질을 설명하는 일종의 잠언집이다. 그에 따르면 대중운동이 주장하는 내용 그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주장이 불러일으키는 광신과 희망, 증오와 편협이 대중운동의 본질이다. 실제로 프랑스혁명과 나치즘, 볼셰비즘은 지향점이 극과 극이지만, 운동의 행태는 거의 유사하다. 단지 그 주장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대중들에게 줄 수 있다면 그 주장은 대중운동을 타고 폭발하게 된다.

윤석열의 내란은 그동안 공고하게만 여겨졌던,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수구기득권의 프로파간다를 박살내 버렸다. 자유를 부르짖고 멸공을 외치던 자가 내란을 일으켜 독재를 하려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내란에 기득권이 동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땅의 소위 우파들이 설 자리는 한 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런 극도의 위기감, 우파가 멸망할 수 있다는 세기말적 공포감이 외려 ‘맹신자들‘을 생산한게 아닐까. 윤석열이 돌아와서 다시 대통령이 된다느니, 미국이 윤석열을 구출하고 이재명을 체포한다느니 하는 ‘윤어게인‘ 작자들의 믿음은 메시아 사상과 대단히 유사하다. 상당수의 대중운동은 종교적인 성격을 띤다는 에릭 호퍼의 통찰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지금의 시대에 절망감을 느낀 우파들은 한데 뭉쳐 개인이 아닌 집단의 뒤에 숨는다. 대중운동의 뒤에 숨으면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니 폭력성을 띄기 쉽다. 에릭 호퍼는 말한다. ˝나치 평당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극악 범죄에 대해 무고하다고 선언한 것도 순전한 허위 주장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네가 명령 복종의 의무를 짊어진 것은 중상당하고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결국 그들은 책임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나치 운동에 가담한 것이 아니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을 옮겨 본다.

˝광신자는 그의 논리나 도덕 의식을 자극해봐야 그 대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타협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신봉하는 숭고한 대의의 중요성과 정당함을 입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갈등 없이 갑자기 열광적으로 다른 대의로 갈아타기도 한다. 그에게 설득이란 없으며, 가능한 것은 오로지 전향 또는 개종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신봉하는 대의가 얼마나 숭고한 것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느냐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다 극우로 변절한 이들이 많다. 물론 돈과 권력을 좇아 돌아선 이들도 꽤 많겠지만, 에릭 호퍼의 말처럼 광신의 대상을 바꿨을 뿐인 이도 있을 터이다. 김문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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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 현대사 3 : 정치·경제 -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잡동산이 현대사 3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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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교수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마지막 권. 3권에서 다루는 소재는 정치·경제와 관련된 물건들이라 1, 2권과 겹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조선 말기부터 군사정권 시기, 특히 일제강점기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기 때문에 부득불 비슷한 이야기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3권에서는 1권에서 느꼈던, 그 시대 속 거리를 카메라로 살펴보는 듯한 신선함이 덜하다.

그래도 여전한 건 이 책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잡학다식함이다. ‘낙점‘이라는 말이 조선시대 승진대상자 명단 중 적임자라 생각하는 이의 이름 옆에 왕이 직접 점을 
찍은 데서 유래했다거나, 돈을 ‘벌다‘라는 말이 상평통보의 구멍에 노끈을 꿰어 보관하다가 돈이 늘어나면 묶은 끈을 ‘벌린‘ 뒤 돈을 더 꿰었다는 데서 왔다는 잡식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재미 뿐만이 아니다. 아래 대목에서는 전우용 교수 특유의 날카로운 언어 해석을 엿볼 수 있다.

˝흔히 선善과 양良을 하나로 묶어 ‘선량‘善良이라고 하지만, 선과 양은 다르다. 선은 ‘착함‘이고, 양은 ‘평범함‘이다. 선인善人은 성인군자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양인良人은 평민과 동의어다. 선심은 능동적, 적극적인 마음이고 양심은 수동적, 소극적인 마음이다. 그래서 선심은 ‘베푼다‘고 하고, 양심은 ‘지킨다‘고 한다.˝

세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니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서 소재를 줄이고 두 권 정도로 분량을 줄이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신문에 연재하던 칼럼을 엮은 책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뒤로 갈수록 식상해지는 걸 피하려면 새로 다듬어서 내놓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알려 주는 풍부한 상식과 그에 걸맞은 상식적이고 단호한 역사관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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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 현대사 2 : 사회·문화 -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잡동산이 현대사 2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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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을 다룬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회·문화 전반의 사물들을 주제로 한다. 사전, 동화책, 연필처럼 학습에 필요한 것들, 신문, 전화기, 라디오와 같이 소통에 필요한 물건들, 전봇대, 터널, 공원처럼 무언가를 조성하는데 쓰이는 것들, 자전거, 시내버스, 케이블카 같은 탈것들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1권에 등장한 물건들처럼 아기자기한 맛은 덜하지만 전우용 교수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과 방대한 지식은 여전히 놀랍다.

그 예시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근대 유럽인들은 자기들만이 ‘역사‘를 가진 문명인이고 다른 대륙 사람들은 야만인이라고 취급하였고, 그래서 유럽 문명의 전개 과정을 다루는 학문은 역사학으로, 다른 지역의 전개 과정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은 인류학으로 구분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강렬하게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도 인류학 서적을 읽으면서 은연 중에 인류학의 대상이 되는 민족의 야만성을 의심하지 않았나.

극장을 다루면서 ‘극장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극장 같은 국가를 만들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 파시즘’이라는 그의 설명은 또 어떤가. ‘파시즘 체제 하에서 국민은 관객과 같은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들은 멋진 장면이 나올 때 박수 칠 의무는 있었으나 그 장면에 개입할 권리는 없었다.‘는 대목에서는 감탄이 나온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잘 모르던 단어의 어원도 알려준다. ‘표 끊는다‘는 말은 근대 조선 최초의 공연장인 협률사에서 티켓을 발행할 때, 판매자가 보관하는 부분과 관객이 지참할 부분을 한 장의 표로 만들어서 판매할 때는 관객용만 따로 끊어서 주었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 한다. ‘거들먹거리다‘라는 말은 조선시대 무관의 말고삐를 잡는 사람인 ‘거덜‘이 상전의 위세를 믿고 행인들을 함부로 대한데서 나왔다는 거다.

단점이 없는 책은 아니다. 전우용 교수의 시선이 날카롭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등장하는 사물의 부정적 속성을 곧바로 현대인에 등치시키면서 지금을 사는 우리를 비판하는 것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 빈도가 잦다 보니 피로감이 적지 않게 든다. 재미있는 책인데도 왠지 진도가 잘 안 나가는 건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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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 현대사 1 : 일상ㆍ생활 - 전우용의 근현대 한국 박물지 잡동산이 현대사 1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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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산이‘는 원래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지은, 당시 떠도는 잡다한 이야기와 지식들을 정리한 책의 제목이었다. 하찮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이르는 말인 잡동사니는 여기서 유래했다. 전우용 교수는 잡동사니처럼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사소한 물건들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결한다. 별 것 없어 보이는 물건이 우리의 삶과 의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우리는 어떻게 현대인으로 변해 왔는지를 말한다.

새로이 등장한 물건은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고, 새로운 습관은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보자. 조선 시대 까지만 해도 장보기는 남자의 일이었다. 집에서 장까지의 거리가 멀었고, 장에 가서 팔고 사는 짐이 무거웠고, 장사꾼 대부분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라는 동요도 있잖은가. 1910년대 말까지만 해도 양가집 부인이 장 보러 다니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20년대부터 양상이 달라진다. 전차나 기차 같은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극장 등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이 늘면서 남녀유별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게다가 일제 치하에 들어간 조선에선 대다수의 조선인 관리들이 해직되었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관리들은 행랑채의 하인들을 내보냈고, 하인의 일은 주인 마님에게로 돌아갔다. 자연히 도시의 부잣집 마나님은 장보러 시장에 나가야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남자들은 일제에 저항하거나 일제에 봉사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남자는 어느 방향으로든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을 해야지 장보기 같은 시시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의식이 퍼져나갔다. 이렇게 시장은 여성들만의 공간이 되었다.

최근 남자들이 다시 장을 보게 된 건 양성 평등 의식의 대두라기 보다는 대형 할인점이 등장한 탓이 컸다. 자가용을 몰고 마트에 가서 생필품을 카트 한가득 구매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쇼핑 양태는 어느 정도 남자의 완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남성이 혼자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게 대중의 의식이 변하게 된다. 이처럼 ‘장보기‘에 대한 대중들의 의식을 바꾼 건 교통수단의 발달이었고 그에 따른 생활 습관의 변화였다.

<잡동산이 현대사 1>에서는 우리의 일상과 생활에 관한 물건들을 다룬다. 거울, 비누, 냉장고, 커피, 지갑, 슬리퍼, 형광등, 의자처럼 우리의 의식주에 관련된 소소한 물건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책을 읽다 보면 물건들 하나 하나에 어떻게 우리의 근현대사가 담겨 있는지를 그의 평소 말투처럼 조곤조곤 알려주는 전우용 교수의 글발과 지식에 탄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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