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에서 개인 분업화가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면, 지역 간 그리고 국가 간 분업은 어떨까? 이러한 분업을 상황에 따라 도시-농촌 사이 역할 분담이나 국가 간 무역, 세계화 등 서로 다른 무미건조한 용어로 표현하지만, 이 모든 개념을 포괄하는 본질은 ‘자본이동이나 유출‘이다. 우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국가 간 무역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중학교 사회 교과서는 ‘무역 장점‘을 이렇게 가르친다. “분식집 주인보다 라면을 더 잘 끓이는 축구선수라 할지라도 축구 시즌에는 축구에만 집중하고 라면은 분식집에서 사 먹는 편이 유리하다. 축구선수가 라면을 끓이는데 걸리는 시간 동안 축구 경기를 통해 벌 수 있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때 축구선수는 축구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교과서 설명이 간결한 만큼 우리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미국 경제학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 일부인 '타이거 우즈가 자기 집 잔디를 깎지 않는 이유'에 착안하여 우리나라 교과서가 쉽게 바꾸어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 ’비교 우위’ 이론 예시는 이처럼 무척 다양한데, 이 이론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다.
리카도 설명이 까다롭긴 하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와 크게 다르진 않다. ‘영국은 직물 1마를 짜는데 100명이 필요하며, 포도주 1병을 양조하는데 120명이 필요하다. 반면 포르투갈은 직물 1마를 짜는데 90명이 필요하며, 포도주 1병을 양조하는데 80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예시를 보면 포르투갈이 모든 상품에 대해 영국에 절대 우위가 있기에 직물과 포도주 모두를 자급자족하면 되지, 굳이 영국과 무역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회비용‘을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영국은 포도주를 양조하는 인력 120명을 전환하여 비교우위가 있는 직물 짜기에 120/100=6/5 단위만큼 더 투입할 수 있다. 반면에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양조하는 80명을 직물 짜기로 전환하더라도 고작 직물 80/90=8/9 단위를 짤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포르투갈 입장에서 굳이 자급자족하느니 영국에 포도주를 수출하고 직물을 수입해 오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특정 상품에서 절대 우위를 갖더라도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라는 점이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핵심이다.
그런데 리카도 예시는 두 가지 문제가 있어 이해하기 어렵다. 두 국가 생산력 특징과 소비 필요량이 설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처지에서 보면 첫 번째 문제는 직물을 생산하는 인력을 포도주 생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여부다. 질적인 인력을 양적으로 전환 가능한지는 논의하지 않기로 가정해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포르투갈 혼자 생산한 포도주를 두 나라가 소비할만한 양인지 가늠할 수 없다. 이를 다소 보완한 또 다른 비슷한 예시를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쓴 『세상 물정의 물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전체가 부분의 단순 합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네트워크 효과, 곧 ‘무역의 장점’을 설명하며, “협력[분업]은 하나 더하기 하나를 둘보다 더 크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지역이 배타적으로 특화된 상품을 생산하면, 생산 총합이 더욱 커지면서 세상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가 제시한 예시는 다음과 같다.
“두 도시가 연결되면 마술 같은 일이 생긴다. 한 도시 생산물을 다른 도시와 교환할 수 있게 되면 연결되기 전에 비해 두 도시가 생산할 수 있는 재화 총합이 늘어난다. 예를 들면 첫 번째 도시 A는 자체 생산력으로 하루 반나절에 빵 200개, 나머지 반나절에 버터 1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자. 두 번째 도시 B는 하루 반나절에 빵 100개, 나머지 반나절에 버터 200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자. 두 도시가 연결되어 물품을 교환할 수 있게 되면, 하루 종일 일해서 첫 번째 도시 A는 빵’만’ 400개, 두 번째 도시 B는 버터’만’ 400개를 생산할 수 있다. 이를 서로 교환하면 각 도시 사람들은 사이좋게 빵 200개와 버터 200개를 먹을 수 있다. 교환 이전 두 도시 전체 생산량인 빵 300개와 버터 300개보다 각각 100개 늘어난 셈이다. 도시 연결은 하나 더하기 하나를 둘보다 크게 만든다.”
그런데 그의 주장을 우리 현실에 실제 적용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두 도시는 서로 ‘사이좋게’ 빵과 버터를 교환할 수 있을까? 각 제품에 가치[가격]를 대입해보자. 예를 들어 빵 한 개 가치를 20원, 버터 한 개 가치를 10원이라고 하자. 두 도시가 빵과 버터를 교환하지 않고 각각 빵과 버터 모두를 생산하여 자급자족한다면, 각 도시 생산물 총가치는 도시 A가 5,000원(빵 200개 X 20원 + 버터 100개 X 10원), 도시 B는 4,000원(빵 100 X 20원 + 버터 200 X 10원)이다. 도시 A와 B의 생산물 총가치 차이가 그리 크게 나지 않는다.
반면 두 도시가 연결되어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만 생산하게 되면 도시 A가 빵만 400개 만들어 생산 가치는 8,000원(빵 400개 X 20원)이다. 도시 B는 버터만 400개 만들어 생산 가치는 4,000원(버터 400개 X 10원)이다. 두 도시 생산물 총가치가 더 크게 벌어져 교환 이전보다 두 배 차이가 난다. 도시 B는 교환하기 이전 자급자족하던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가난해져 부유한 도시 A가 생산한 빵을 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산이 향후 더욱 지속될수록 도시 B는 점점 더 가난해져 가난이 대물림 된다. 도시 A의 경제 발전이 도시 B의 희생과 가난 ‘덕분’이라면 우리는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 라울 프레비시는 “비교우위론이 저개발국가의 진정한 경제발전을 가로막는다. 저가 1차 상품을 수출하고 고가 공산품을 수입하면 자본은 계속 유출되고 사회경제 발전에 필요한 기술개발은 묘연해진다‘며 자신의 ’종속 이론‘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처럼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자본 이동이나 유출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위 예에서 ‘빵 한 개 가치를 20원, 버터 한 개 가치를 10원이라고 하자’고 단순하게 가정했지만, 국가 간 상품 가격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상품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에서 자동으로 결정된다고 알고 있지만, 자유시장 메커니즘을 가로막는 큰 힘이 있다. 대표적인 일이 독점이다. ‘상대적으로 독점화되어 있는 지역은 자유시장 법칙을 따르는 지역에 비해 높은 가격을 유지하여 훨씬 많은 이윤을 거둘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그만큼 더 부유해진다. 한 시장에서 여러 생산자가 같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고 경쟁하는 상황과 한 상품을 독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황 사이에는 명백하게 힘의 불평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독점이 지배하는 지역과 자유시장이 지배하는 지역 간 상품 교환은 다수 독점 생산과정을 보유한 국가로 자본이 흘러 들어가는 궁극적인 결과를 양산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드는데, 독점은 왜 발생할까? 한 국가가 잘 살지 못할수록 독점 상황이 더 일반적일까? 오히려 그 반대다. 경제학은 자본주의 작동 핵심이 수요-공급 법칙을 따르는 ‘경쟁’이라고 알려주지만, 자본주의 학문의 ‘꽃’인 경영학은 조금 더 솔직하게 답을 알려 주는 편이다. 보통 대학교 4학년쯤 돼서야 세상 이면에 놀라지 않을 시기에 배우는 경영학 분과가 ‘경영 전략(strategic management)’이다. 이 분과 대표 학자인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포터 교수는 기업이 이윤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경쟁 우위(sustainable competitive advantage) 전략은 ‘독점’밖에 없다고 귀띔한다. 그의 산업구조 분석 모델[five forces model]은 기업이 다양하고 체계적인 경쟁 회피 전략을 소상하게 알려준다. 자주 언급되는 김위찬 교수의 ‘블루 오션’ 전략도 독점을 지향한다. 기업이 이윤을 지속적으로 얻는 방법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밖에 없기에 기업가는 경쟁을 피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제학자 리오 휴버먼은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독점이 더욱 확산되고 공고해지는데, 이는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한 속성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경쟁적이고,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믿는다면 당신은 속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은 결합과 합병, 통합, 트러스트, 위탁 등 독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점이 이윤을 늘리며, 경쟁은 이윤을 줄이는데, 자본가가 경쟁을 왜 하겠는가? 제품 생산이 몇몇 기업에 집중됨에 따라 경쟁에서 독점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초래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경쟁이 독점으로 바뀌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경쟁’ 그 자체 속성에 기인한다.”
기업 경쟁은 서로 적대적인 기업 수가 많아지면 격렬해지지만, 기업들 규모가 커지면서 약화된다. 경쟁은 언제나 많은 중소기업이 망하면서 점차 사라지는데, 이렇게 망한 중소기업 일부분은 승리자가 차지하고 나머지는 사라진다. 기업들 사이 경쟁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점차 소수 기업만 규모가 커지는 일이 발생한다. 자본주의 핵심은 경쟁인 듯 보이지만, 마르크스가 예견한 듯 자본 집중으로 이어진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욱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활용하기 위해 공장 규모를 키워야 하며, 경쟁이 더욱 파괴적으로 진행되면서 소규모 경쟁자들은 뿌리째 뽑혀 나간다. 이후 덩치가 커진 기업들은 이러다간 모두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카르텔이나 트러스트, 기업 합병 등을 통해 공동 생존을 확보한다. 결국 기업 합병은 살아남은 기업들이 경쟁을 피하고자 의지하는 수단이다. 이런 독점 현상으로 소수 사람에게만 소득이 집중된다.
독점 기업은 상품 가격을 높게 유지할 뿐 아니라, 이익 극대화를 위해 상품 질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예시가 전구나 나일론 스타킹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모어 소방서에는 100년이 넘도록 지금도 빛을 발하는 전구가 있다. 바로, 이 전구는 1895년 셸비일렉트로닉이 제작한 것으로 당시 특허를 따냈다. 셸비일렉트로닉은 광고에서 ‘수명 최장’이라고 자랑스럽게 알렸다. 하지만 이 회사는 1914년 다른 중소 전구 업체들과 함께 제너럴일렉트릭에 흡수됐고 ‘100년 전구’(센테니얼 라이트) 기술도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그 뒤 제너럴일렉트릭과 네덜란드 필립스, 독일 오스람 등 거대 기업들은 세계 전구 시장을 나눠 먹으려고 카르텔을 결성했고, 전구 수명을 1,000시간으로 통제했다. 훗날 드러난 카르텔 내부 문건은 1,000시간 한도를 어기면 징벌을 가한다는 벌칙표도 들어 있었다. 소비자가 전구를 자주 사서 갈아야 기업 이익을 늘릴 수 있기에 수명이 긴 전구가 전혀 달갑지 않았다. 다른 예로, 미국 듀폰이 1934년 나일론을 개발했을 때 질기기가 이를 데 없었다. 진창에 빠진 자동차를 나일론 스타킹으로 끌어내는 광고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명이 긴 새 상품을 소비자는 반겼지만, 스타킹업체들은 불만이 컸다. 듀폰은 햇빛이나 공기 속 산소와 작용해 스타킹 올이 쉽게 나가게 하는 소재를 나일론에 추가했다. 나일론 스타킹 수명이 단축되자 판매가 급증했다.‘
이처럼 독점으로 자본을 집중시켜 상품 가격이 높은 국가와 소규모 기업의 자유 경쟁으로 상품 가격이 낮은 국가가 서로 무역을 하게 된다면 자본이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 국가 내에 다른 두 지역, 곧 도시와 농촌 사이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이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같은 결과가 일어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도시와 농촌의 역할 분담으로 농촌 자본이 도시로 빨려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이를 의도적으로 악용하는 데 있다. 예컨대, 가난한 농업 국가가 상업이나 공업 국가로 전환하여 성장하려고 할 때, 종잣돈이 충분할 리 없다. 신용이 낮은 가난한 나라에 외국이 차관을 충분히 제공할 리도 만무하다. 이럴 경우 농촌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곡물을 팔아 번 돈[자본]을 도시[공업 지역]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농촌 생산성 향상 운동은 ‘농촌 잘살기’ 운동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세기 초 소련이다. 1930년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대공황으로 경제 상황이 최악이었지만, 당시 소련만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당시 소련 경제 발전 정책을 향후 우리나라가 모방한 것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당시 러시아의 경제 성장 원동력도 농촌에서 도시로 자본을 이동시킨 결과다.
‘1920년대 말 소련은 신속한 공업화를 위해 자금을 효율적으로 조달할 방법을 고민했다. 공업화는 자본재를 생산할 노동자를 입히고 먹여야 하며, 또 공장과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재도 마련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사회 전체 생산물에서 자금을 따로 떼어둔다면, 그 돈으로 외국 자본재를 사 오는 것도 가능했다. 소련 노동자 다수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므로(그중 대다수는 자급자족형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런 돈 대부분은 농업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자명했다. 급진 공산주의자 레온 트로츠키와 경제학자 유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는 농업 생산물을 낮은 가격으로 수매하지만, 공산품에는 높은 가격을 지급하며, 게다가 농업 이윤에 무거운 조세를 메기는 식으로 농촌에서 최대한 돈을 뽑아내는 방법을 제시했다. 또 개인들이 조각조각 나누어 갖고 있던 땅뙈기를 대규모 집단 농장으로 합쳐서 농업을 더 효율적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공업의 신속한 팽창을 위해 최대한 많은 자원과 노동력을 그곳에 바쳐야 하기에 농촌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홀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권력을 거머쥔 뒤 트로츠키와 프레오브라젠스키 노선을 따랐으며 그것도 그들 제안보다 훨씬 더 빠르고 더 가혹한 방식으로 추진해나갔다. 1930~31년 소련 정부 수매량은 2천2백십만 톤에 달했고, 이를 1928~29년과 비교해보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양이었다. 집산화를 통해 많은 자금이 정부 수중에 들어가자 소련 공업화는 1930년대 몇 차례의 5개년 계획을 토대로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소련 공식 통계를 보면 1930년대 공업 연평균 성장률은 약 16퍼센트나 되었다. 1928년에 저개발 국가였던 소련은 1938년이 되면 주요 선진국이 되었다.‘
국가 발전을 나쁘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발전은 전적으로 농촌 희생 위에 이루어진 일이다. ‘18세기 이전에는 인류 대다수(85~95%)가 농촌에서 생활했다. 농촌이 있었기에, 인류는 도시 생활의 불안정을 극복하고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인류 생존은 농촌 마을의 회복력에 의존해 왔다.’ ‘대공황 이전 미국이 이따금 찾아오는 불경기를 막아낼 수 있었던 원인은,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거의 농업에 종사하며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 미국과 세계 경제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도시화하고 기계화된 미국에서 대공황으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수백만 노동자들에게는 돌아가 농사를 지을 땅이 없었다. 엄청난 실업률 속에 통계는 사실상 무의미했다. 역사가 중에는 실업률이 40퍼센트 내지 50퍼센트에 육박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농촌이라는 이웃 공동체 없이는 인간은 도시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농촌에서 도시로 더 이상 자본이 유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화폐’는 자본 유출 방지 장치로 보아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 많은 지자체는 꽃 축제 등 각종 행사에 입장료를 받는 대신 같은 액수의 지역화폐인 지역 상품권으로 되돌려주고 있다. ‘화폐를 지역 사회 수중으로 서서히 되찾아오고, 국가가 독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화폐는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지역 사회가 화폐에 예속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 사회에 뿌리내린 진정한 통화 정책을 창안해야 한다. 주민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통화 흐름은 가능한 한 지역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 또한 경제적인 의사 결정도 가능한 한 지역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가 화폐를 독점하면서 지역 사회 발전을 장려하는 것은 독한 술로 알코올 중독 환자의 해독을 시도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현재 ‘세계화’라고 부르는 자본이동 자유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세계화’ 물결에 동참했다. OECD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은 자본거래 자유화(자본이동 규제 완화 및 외국인 투자 제한업종 폐지), 정부 규제 완화, 서비스 시장 자유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외교관이었던 사토 마사루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세계화를 동반하며 제국주의로 발전한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소속 경제 저격수였던 존 퍼킨스는 경제 저격수들이 “미국이라는 제국 건설을 위해 다른 나라 자본이 미국 기업과 미국 정부로 유입되게끔 상황을 연출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나는 경제 저격수였다. 경제 저격수란 대기업과 미정부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엘리트 조직, 즉 현대판 ‘살인 청부업자’를 일컫는다. 내가 담당한 임무는 제3세계 국가들을 속여 강탈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기업들은 자사에서 갈망하는 무언가를 보유한 나라를 찾아낸다. 그 대상은 귀중한 자원일 수도 있고 전략적으로 의미 있는 부동산일 수도 있다. 그런 다음, 경제저격수들이 출동해 세계은행을 포함한 각종 국제기구에서 엄청난 금액의 돈을 빌려야 한다고 해당 국가 지도자들을 설득한다. 지도자들은 국제기구에서 빌린 돈이 직접 자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발전소나 항만, 산업 공단 등 인프라 구축을 담당할 미국 기업에 돈이 흘러 들어간다는 정보를 제공받는다.
몇 년이 지난 후, 경제 저격수는 그 나라를 다시 찾아가 말한다. “몇 해 전 빌린 엄청난 규모의 대출을 갚기 힘들어 보이는군요.” 그 나라 지도자가 두려움에 몸을 떨기 시작하면 경제 저격수는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몇 가지를 제안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석유(혹은 다른 자원)를 저의 회사에 싸게 팔고, 우리 회사 업무 진행을 어렵게 만드는 환경법과 노동법을 폐지하고,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다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저희가 원하는 조건에 따라 귀국 생산 제품에 무역장벽을 세우고, 귀국 공익시설, 학교, 기타 공공기관을 민영화하여 미국 기업에 매각하고, 이라크 등지에서 활동하는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 전문화[분업]나 소규모 자유경쟁 기업과 대규모 독점 기업 사이 협업[분업], 농촌과 도시 사이 역할 분담[분업], 저개발국가와 선진국 사이 무역[분업] 등 모든 상황에 자본이 이동하며, 이에 따라 각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점차 심해진다. 지구 전체 자본을 총자본이라고 본다면, 지구가 자본을 축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잉여가치는 총자본 내에서 개개 자본이 부등가 교환을 할 때 발생한다. 이 개념을 경제학자 피에르 조세프 프르동보다 더 쉽게 설명한 사람은 없는 듯하다. “A가 생산자 B에게서 이익을 취한다면, 경제원리에 따라서 B는 C에게서, C는 D에게서 다시 그만큼의 몫을 회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이러한 일은 결국 Z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Z는 누구로부터 회수할 것인가? 만일 그가 최초 수혜자 A로부터 회수한다고 하면, 이미 누구에게도 이익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되며 따라서 자본축적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산업 사회도 같은 것이니, 한 사람이 이윤으로 부자가 되려면 다른 한 사람이 가난해져야만 한다는 것이 입증된다. 왜냐하면 A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Z가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 이동과 축적이라는 덫에 딱 걸렸다. 게다가 자본 축적은 화폐로 인해 더욱 심화된다. 그렇다면 화폐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