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오바마 북클럽 1
조지프 오닐 지음, 임재서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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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 대통령이 읽은 책이라기에 관심이 갔다. 세계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로서 어떤 종류의 책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지도 궁금했고,,, 제목부터가 네덜란드라.. 

이 책에선 기.승.전.결의 형식을 띠지 않은 어떤 때는 현재의 모습과 심정이, 어떤 때는 하나의 벌어진 일에 대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교차적으로 나열되고, 아주 긴 문장이 주인공 한스의 심정을 나타낸다. 번역가의 노고가 아주 힘들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살아가는 네덜란드인 증권맨인 한스와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출신인 피부가 아주 까만 흑인인 척과의 관계가 주를 이루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만난 두 이방인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한 쪽은 탄탄한 애널리스트로서, 다른 이는 자신이 어릴 적 부터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았던 트리니다드토바고란 나라에서 이주해와서 갖은 아이디어로 삶을 개척해 온 사람이다. 한스와 아내 레이첼간의 별거로 이어진 것에서 온 공황상태와 좌절감, 그리고 제 3의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아내를 보면서 괴로워하는 가운데, 뉴욕이란 도시에서의 임시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운전 실습 중에 척의 차를 타고 연습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첫 만남은 우연찮게도 크리켓 운동경기장에서 심판으로 나선 척을 보는 것으로 시작이 됬지만... 

자신의 아이디어로 교묘히 한스를 데리고 다닌 척은 때론 두 여인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이해 못할 논리를 펼치지만, 한스에게 충고한 후회하지 않으려면 바로 런던으로 가서 부인을 찾으란 말엔 진심어린 충고가 들어가 있다. 서로 다른 목적하에 살게 된 미국이란 거대제국의 뉴욕에서 척이 주장한 이론은, 특히 상업적인 면이나, 하나의 동심체를 이루려면, 크리켓이란 운동을 통해서 가능하고, 또 그것을 이루려는 목적이 뚜렷하게 서 있는 척에게 한스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결국 현실이란  척이 생각하는 이민자로서 미국이란 공동체에 다른 이방인이 아닌 하나의 미국시민으로 진정 살아가려면 무언가 그들 백인들과의 교류가 필요하고 그것이 명색이 스포츠이긴 하지만 진정한 승리자의 정신과 유대강화를 위해선 이것이 아주 유효하단 생각을 갖고 있는 반면, 한스는 어디까지나 미국이란 나란 자신에게 있어서 잠시나마 머물다 간 텃새 개념의 임시거처란 인식을 갖고 있는 아주 상반된 개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까스로 레이첼과의 부부관계를 회복하고 있는 가운데 어떤 미종의 나쁜일에 끼어든 척의 살해 소식과 그 유해가 2년만에 발견됬고, 경찰과 부인에게 말하는 시점의 한스의 심정은 척에 대해서 갖는 감정은 자신이 한 때 외롭고 우울하고 방황의 자리에 있을 때 그나마 그의 주위에 있었던 사람은 척과 크리켓을 하는 친구들이었단 사실에 어떤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나라 네덜란드에서의 추억, 미국이란 나라에서 브룩클린의 도시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네덜란드 지명, 이런 것들은 어쩌면 현실에서 역사적인 대형사건이 나도(9.11 테러사건) 가까이 있었던 한스에겐 물 흐르듯 흘러가는 하나의 삶의 연장선이 아니었나 싶다.런던아이에서 부인과 아들을 바라보면서 척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또 다른 삶의 정착지인 영국이 한스에겐 또 다른 네덜란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아주 흥미롭지도 , 맛갈난 글의 단어는 눈에 띄진 않지만 그래도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어떤 모종의 쓸쓸함과 유목민적인 생활을 드러낸 것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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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른 차일드
키스 도나휴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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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신선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소재 자체가 우리의 동양적인 전설이 아니라서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말하는 우리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라고 불러달라는 가짜  헨리데이가 아내인 테스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 것과, 진짜 헨리 데이가 애니 데이로 살아가는 동안 느낀 고백을 스펙이란 파에리에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각각 한 파트당 헨리 데이와 애니 데이의 생각과 성장과정,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이 때론 귀엽고, 안타깝고 슬프고, 사실을 알고자 하는 진실 앞의 몸부림이 읽어가는  동안 동화가 되어가게끔 글을 엮어가는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다. 흔히 캐니언 연대기 처럼 벽장 속에 뛰어들어가서 전혀 다른 세계로 빨려가서 겪는 동화같지만 작가는 이에 허를 찌른다.  파에리로 1세기간 살아온 구스타프가 어는날 숲 속에서 헨리데이란 어린이를 여러 동료 파에리와 함께 납치해서 자신과 바꾼다. 그 때부터 인간의 사회로 동화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이어지고, 때론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독일말이나, 피아노 앞에서의 자연스런 동작에 대해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찾기 위한 기억의 노력이 뒤따른다. 반면, 진짜 헨리데이는 파에리들에 의해서 애니 데이란 이름으로 불려져 그들과 같이 삶을 영위하게 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동화속의 작고 예쁘고 어떤 마술적 힘을 지닌 요정을 생각한 내겐 그들의 생활 묘사 장면이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묘사한 점이 흥미를 이끌었다. 살기 위해서 인간이 살고 있는 지역에 가서 의.식을 훔치는 장면이나, 애니데이가 부모, 동생들을 잊지 않으려는 부단의 노력과 기록에 의지해 가는 모습은 흡사 감옥에 갇힌 억울한 죄수가 자신의 누명을 벗고자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30이 넘어가고 그 사이에 가짜 헨리데이는 자신의 조상과 자신이 체코에 살던 독일인으로 자신을 납치한 파에리에 의해 살게된 과정, 가짜 구스타프는 평생 말 없이 피아노만 치다 살다간  사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인간 여인인 테스에게 고백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기로에 선 심정, 아들 에드워드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자신의 전철처럼 납치될 거란 두려움에 떨며 사는 심정, 반면에, 애니데이 또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헨리데이란 인물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서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 과정, 끝내 도서실에서 부딪친 같은 이름을 가지면서도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  두 인물의 상봉... 서로간의 언어가 다르기에 받아들이는 느낌 과정을 묘사한 점이 가슴이 아파왔다. 마지막에 애니데이가 자신의 인간의 삶을 헨리 데이에게 양보하고 스펙을 찾아 떠나가는 점, 헨리데이가  오랜 정신적 방황을 그치고 자신이 한 인간의 삶을 대신 살아가게 된 맘을 "스톨른 차일드"란 음악으로 나타내고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교회에서 연주를 하는 헨리 데이를 밖에서 들여다 보는 애니데이와 교회 안의 또 다른 헨리 데이의 눈 마주침은 그래서 더욱 아련하다. 평생을 헨리데이로 살아가면서도 또 다른 진짜 자신의 이름인 구스타프에 대해 고뇌하고 자아를 찾는 과정의 파에리와 가족을 잊지 않으려고 부단의 노력을 했지만 끝내 파에리의 삶으로 살길 결정한 애니데이의 삶이 음악이란 매개체가 하나의 숨통을 틔어줬다. 화해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머물고자 하는 두 주인공의 고백이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인간은 물론이고 요정이지만 인간처럼 사랑의 감정을 가진것으로 묘사한 점이 기존의 요정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묘사가 되어 새롭다. 그래서 인간과 더불어 살고자 해던 욕심이 과해서 어린이를 납치하고 그 분신으로 살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감정표현법이 마치 곁에서 지켜보는 제 3자의 마음으로 지켜본 것 같은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시점이 되면 과거를 놓아버려야 되는 법이야.  

인생이 다가오도록 마음을 여는 거지"                         

이 말로서 헨리 데이나 애니 데이  모두에게 그간의 삶의 짐을 덜어 놓는 한 마디가 아닐까?  

그들 모두에게 새로운 인생의 따뜻함이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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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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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가에 대한 책은 처음이다. 책 앞면을 보니 옆집 아저씨같은 통통한 모습의 작가의 사진이 실려 있어서 우선은 호기심이 일었다. 사우스브로드가 뭔 뜻인지는 책을 통해서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지역 이름이고, 이 지역의 태생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레오 킹이란 소년의 어린시절부터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다. 8살 때, 항상 자신을 보살펴준 형 스티브의 자살 목격후 그 충격으로 정신병원을 다녀야 했던 레오는 그 후 고등학교 파티 때 형이 좋아했던 미식축구 선수의 부탁으로 주머니에 코카인을 맡아줬다가 오명(실제론 그의 이름을 밝혔다면 누명을 쓰지 않았을 터인데도,,,) 을 뒤집어 쓰고 소년 보호 감찰 대상이 되어 친구를 사귈기회 조차 박탈당하게 된다. 레오 자신이 그 어두운 아픔을 간직한 채 만나게 된 고아원으로 오게된 친구 (쌍둥이, 나일즈와 스탈라), 건녀편 이웃집 으로 이사온 쌍둥이, 그 외의 상류층 계층인 프레이져와 채드, 몰리, 흑.백 분리주의가 없어졌다곤 하나 그 시대상으로도 아직까진 어울릴 수 없는 색깔의 차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된 아이크를 만나게 됨으로써 자신의 터널을 헤쳐나가게 된다. 뚯하지 않게 알게된 엄마와 아빠의 10여년 이상된 러브스토리가 곁들여지고 독특하게 미국 남부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진 이 소설은 작가가 남성이라고 느낄 수 없는 사물을 표현하는 글 솜씨가 아주 부드럽다. 아주 극단적인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남부 백인들의 의식속에서도 훈훈하게 백인과 흑인을 비하하는 별명조차도 이 두 소년의 우정을 갈라놓진 못한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밝힘으로서 돈독한 우정을 다져가고, 성인이 된 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던 어는 날 유명 배우가된 시바가 돌아오고 에이즈에 걸린 오빠를 같이 찾자는 부탁에 모두 힘을 합쳐서 그 오빠가 사는 (그들이 친구이기도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찾아볼 유력한 장소를 알게되어서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리고 몰리와 레오의 사랑얘기도 곁들여진다. 어쩌면 레오의 말 처럼 몰리의 남편 채드의 일방적인 출세의욕주의와 상류층으로서 몸에 밴 행동의식이 결합이 된 바람기에 질린 몰리의 일방적인 유혹일 수도 있겠지만, 레오 또한 고등학교 시절 요트 클럽에서 처음으로 만난 몰리에게 사랑에 빠진 것을 고백한 장면도 다음 2편에선 어떻게 그 세 사람의 관계가 이어질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군데 군데 이것이 미국식 유머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대화체라든가 호수의 묘사, 아버지와 고기를 잡으로 가는 장면, 파티 장면등이 모두 남부에서 행해지는 일상으로의 초대같아서 왜 이 작가가 유명한지 어는 정도는 짐작이 되는 것이 많다. 한 소년이 자라서 청년이 되어서 인생의 청춘기를 보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잘 묘사되어 있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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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나라에서
히샴 마타르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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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자신의 성장기와 어느 정도 사실적인 일이 포함이 된 소설이다. 현 정권의 권력자인 카다피가 있는 레바논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9살난 소년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와 정치, 여인네들의 삶이 들어있다. 술레이만이란 어린이가 겪는 때론 이해 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와 같은 또래 친구인 캄의 아버지가 끌려가서 TV에 공개적인 처형장면을 보는 장면, 알콜중독자인 엄마의 모습, 사업으로 인해서 항상 바쁜 아버지의 모습과 그리운정이 담담하게 , 때론 그런 담담함이 정말로 어린이의 시선이기 때문에 아프고 눈물이 흐른다. 예로부터 로마시대에 아름다운 휴양지로 알려진 레바논의 베이루트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독재에 항거하고 처형당하고, 때론 자백으로 인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술레이만은 아버지가 있을 땐 괜찮다가도 없으면, 제빵가게에서 구한 하얀 물을 마시면서 한 없는 회한의 여인의 억울한 삶을 들어줘야한다. 그럴 땐 밖에 있다가도 자신이 엄마의 옆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이슬람 여인들이 겪어야하는 제도권에서 여인의 한이 서린 엄마의 삶을 알게된다. 단지 14살에 남자친구와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오빠에 의해 지금의 아빠와 얼굴 한 번 못보고 결혼하게 된 사연, 자신을 낳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 자식으로서 태어난 술레이만을 보고 엄마로서 느낀 죄책감이  이슬람에서 금지된 술을 빌어서 모든 얘기를 쏟아낸다. 그런 엄마를 보고 어느날 아빠가 소리없이 끌려가고, 그런 아빠의 책을 모두 불사르게 되지만 마지막 한 권을 숨겼다 아빠를 쫓는 사람에게 그 책을 보여주는 행동은 철 없는 어린이의 행동도 보여준다.  머리를 굽혀 간신히 구해낸 아버지의 비참한 모습을 본 충격과 이집트로 부모에 의해 떨어져 살아가게된 술레이만이 회상의 형식으로 엮는 글 속엔 현재의 이슬람의 모습과 그 속에 독재의 정권하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모습이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아 아프다. 학업만 마치면 돌아가리라 생각했던 일이 징집이 떨어지자 회피자로 등록이 되고 이집트에서 뿌리를 박고 살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저 안타깝고 아버지의 임종조차 보지 못하고, 15년이 흐른후에야,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낳았던 나이가 된 술레이만이  비행기가 아닌 먼 시간을 달려서 온 엄마를 만나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의 이산 가족 상봉을 보는 것 같은 동포애를 느낀다. 저자 자신의 아버지가 실제로 생사도 모른채 살아간다는 저자의 삶이 얼마나 회한의 세월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어디까지나 허구의 소설 속 이야기 장치로서 정치적 상황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 뿐 실제 자신의 생각한 소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작가의 소신을 밝힌 대목에선 어떤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이 어느 정도 내포되어 있단 생각이 든다. 구미권도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작가의 나라 소설이란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 소설이다. 그야말로 남자들의 나라에서 남자들에 의해 행해진 남자 아이의 성장기를 통해 본 모든 민초들을 대표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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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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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란 소설가를 처음으로 접한것은 "더 로드"란 책으로 이미 영화화 되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저자란 말을 듣고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이 소설가의 특징이랄수 있는 아주 매마른 문체, 따옴표 없는 대화체, 신에 대한 인간의 구원의 문제들을 적절히 양념을 해가면서 보여주고 있다. 총 3부작이라는데 우선 내가 든 것이 바로 이책.더 로드가 어느 날 지구가 망한 아주 삭막한 미래를 근거로 했다면 이 국경을 넘어는 서부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가운데, 그 속에서 세상과 부대껴가는 소년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13살에서 20살 까지의 빌리란 소년이 겪은 모험담이라면 모험담이랄 수 있는 이 소설은  아주 흥분이 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웅이 나타나는 모험담이 아닌 인디언과 미국 , 멕시코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을에서 벌어진 늑대를 두고 인생의 여정이 시작이 된다. 멕시코에서 넘어온 새끼를 밴 영리한 늑대를 잡기위해 덫을 놓는 장면을 묘사한 글은 영화를 보는듯 그 문체가 아주 자세하고 곁에서 보는 것 같은 사실감을 준다. 덫에 걸린 늑대를 멕시코로 되돌려주기 위해서 말을 타고 국경을 넘기시작한 것을 필두로 가는 도중 마을에 들러서 사람들이 베풀어준 음식에 대한 호의 , 길가의 여럿 사람들을 만나고, 늑대를 개와 싸움을 벌려 그 경기를 지켜보게 된 무기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어린 소년으로서는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항하기란 너무 역부족이었다. 서서히 늑대와 교감이 되고 소년의 뚯을 어느 정도 알았으리라고 짐작되는 늑대의 행동은 그래서 더욱 애틋했다. 오로지 소년과 자신의 뱃속에 있는 새끼, 그리고 사납게 단련이 된 투견들의 공격을 견디며, 온 몸이 피와 멍으로 물든 그 동물을 빌리는 총으로 죽이고 편안한 안락의 삶으로 이끈다. 다시 길을 떠난 빌리와 늑대의 이별, 그리고 집에서의 충격은 읽어 가는 동안 아주 마음이 아팠다. 부모가 인디언의 공격으로 죽고 7마리의 말이 없어지고, 동생 보이드만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말에 말을 찾으러 다시 동생과 멕시코로 두번 째 국경을 넘는다. 그 곳에서 길에서 만난 소녀에게 말을 주고 다시 자신들의 말을 발견하곤 그 말을 찾기위해서 애쓰는 어린 두 형제의 삶이 그저 고달파 보이는 것은 그 당시의 서부의 삶이 아주 각박하고 말이란 동물이 없인 생활의 터전 자체가 힘들단걸 보여준다. 말의 대부분은 찾았지만 그 와중에 보이드가 심한 부상을 당하고 어느날, 소녀와 보이드는 소리없이 떠난다. 말을 찾기 위해 추격해 오는 무리들로 인해서 잠시 보이드와 헤어진 빌리는 모은 말들도 부상당하거나 죽어서 흐지부지된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빌리의 신체적 문제로 인한 군대 입영이 불허가 되고 여기저기 떠돌이 목장 생활을 하다 다시 동생을 찾기 위해서 세번 째 멕시코로 향하면서 빌리는 어는새 20살의 청년이 된다. 뚜렸한 어느  삶의 정착지도 정하지도 못하고 목적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빌리에겐 하나의 소망이었던 동생의 만남이 그의 죽음과 그 유해를 미국으로 데려가던중에 만났던 강도, 그리고 여러사람들의 다양한 얘기속엔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의 구원의 종교적인 이야기가 곁들여서 나온다. 아주 다양하게 만나는 장님, 집시, 신부님,,,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인생의 여정 자체가 내가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누굴 원망해서 탓할 수 만은 없는 그저 흘러가는대로 언젠가 가다보면 태양은 떠오르고 그 삶은 계속 시작이 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동생을 묻고 동생의 개였던 동물이 이상한 몰골로 다시 나타나지만 파이프로 다시 내쫓고 우는 마지막 장면에선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혈혈단신의 빌리의 앞날이 그려지는것 같아서 내내 씁씁함을 지울 수없었다. 어른들의 힘을 내세운 이기심과 그 당시에 아무런 의심없이 음식을 내주고 이야기하며 잠자릴 제공해 주는 대목에선 인간미가 흐른다. 매번 읽고 나서도 다음엔 다른 책을 읽고 싶단 생각이 들게 하지 않는 작가지만(그것도 작가의 재주라면 재주?) 그래도 손을 놓고 나면 뭔가가 표현이 안되는 감정이 느껴지는 이유는 뭔지, 잘 모르겠다. 아주 희망적인 밝은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기에 그런진 몰라도, 이 책을 놓는 순간 내 손엔 또 다른 평원의 도시가 들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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