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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노블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뭔가 가벼운 틴 소설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기쁨과 슬픔에 빠지게 된다. 죽음... 이란 무거운 소재를 무겁지 않게, 하지만 가볍지만은 않게 소개해주어 우리의 인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도와주는 책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파격적인 책 제목에, 엥? 하는 마음에 펼쳐든 책. 처음엔 아, 순진하고 순수한 남녀 사랑 이야기이구나... 하며 읽다가, 사랑 이야기 보다 더 깊은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나도 모르게 췌장암을 앓고 있는 야마우치 사쿠라와 뭐든 다 잘 들어주는 순수 소년 시가 하루키(그 소년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어찌나 목 빠지게 읽었던지...) 매력에 빠지게 된다.
내가 만약 암에 걸렸고, 1년 밖에 살 수 없다면, 난 무엇을 할까?
나 역시 고등학생밖에 안된 앳된 나이였으면?
소설 중간중간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누군가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라는 걸 알고 살고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점.
내일 당장 강도에게 총을 맞거나 (일본이 총을 소지할 수 있는 나라인지 확인해봐야겠다), 차 사고가 나거나, 소설 주인공 소녀처럼 암에 걸렸을 수도 있는 현실.
죽음을 향해 모두가 달려가지만, 누구는 매시간을 소중하고 가치있게 사용하고, 누구는 그저 그냥저냥 살아가는데.... 난 어떻게 활용하며 살고 있나..를 생각하게 된다.
소녀가 암이 자신을 무기력하고 아프게 만들기 전에 차라리 자살을 하겠다며, 목매달아 자살하기 좋은 밧줄을 사러 다니는 장면을 보며, 속으로 얼마나 무서울까..를 생각하게 하며 또 한 번 마음이 짠했다.
소녀가 죽기 전에 가진 돈을 다 써버릴 것이라며 무한리필 고깃집, 케이크 등 단 것을 파는 파라다이스 음식점에 가며,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모두 외로운 존재가 맞구나를 공감하기도 했다. 짧은 1박2일 여행도, 너무 풋풋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최근에 읽은 책들이 다 "죽음"과 직결되어서 그런지, 그리고 명절이 다가와 시부모님, 친부모님을 회상해서 그런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매일 하게 된다.
죽고 싶다, 이런 거 말고, 그래~ 우리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데, 마치 우리는 평생 죽지 않고 살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60세가 넘으신 엄마가 종종 말씀하신다. 옛날 같았으면 진작에 죽었을 나이인데, 현대의학이 발달해서, 지금은 덤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엄마의 지금의 삶은 덤이라고. 그래서 살아있을 때 즐겁게 살다가 기분 좋게 죽을 거라고.
70세가 넘으신 아버님이 종종 말씀하신다. 내 친구들은 다 죽었다고. 자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렇게 아픈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그러니 건강이 최고라고. 젊다고 대충 살지 말고 건강하게 살라고.
책을 읽으며 비슷한 연관어로 다른 책들을 회상하곤 하는데, Twilight, Fifty Shades of Grey, The fix, Conspiracy in Death 등등... 이 자꾸 생각이 났다.
"Twilight"에서는 뱀파이어 Edward 와 순수 인간 Bella와의 사랑을 나누며, 죽음이 그들의 사랑을 깰 수밖에 없기에, Bella는 Edward와 함께 있고 싶어 뱀파이어가 되겠노라 자청하고, 뱀파이어 Edward는 사랑하는 여인 Bella의 영혼을 죽일 수 없다며 거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물론 그것 외에 많은 내용이 담겨있지만, "죽음"이란 관점에서 보면 결국 아무리 사랑해도 죽음이 그들을 갈라서게 할 것이니, immortal 죽지 않는 자가 되려 하는 것이겠지. 그래서 우리네 인간들이 자꾸 이런 판타지 소설에 끌리겠지. 우린 모두 다 죽을 거니까. 사랑을 하든 안 하든.
"Fifty Shades of Grey"에서도 주인공 Christian 이 사랑하는 여인 Anastesia에 대해 over protection을 하는 이유가, if anything happens to Ana, Christian cannot bare his life without her,라고 하는데, 결국 부와 명예와 명성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여인이 죽으면 다 소용없다는... 뭐 그런... 죽음밖에 그 둘을 break apart 할 수 없으니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소설도 그렇다. 만약 그 소녀가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다소 rackless 한 행동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을까? 암이 걸렸다 한들, 정말 암으로 사망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며 무방비 상태에서 소녀에게 일이 일어났다. 정말 나 역시 충격이었다.
나도, 이참에, <공병문고>까지는 아니겠지만, 유서를 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얼마 없지만 가지고 있는 자산정보나 은행 아이디 비번, 좋아해서 이 책은 꼭 갖길 바라는 책들 등을 신랑, 부모님,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어 편지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진심으로 진짜 실천하리라.)
우리는 한 번밖에 없는 이 삶을 너무 too much 고민하고 재고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건 아닌지... 난 아니다고 부정하고 싶지만 결국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대로 있는 게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 나는 혹시 소설에 나오는 친절한 클래스 메이트처럼 책 속에 파묻혀서 누군가를 알려고 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는 건 아닌지... 그것이 꼭 나쁜 건지....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며 산다면, 나의 하루 일과가 달라질까? 매일매일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아침 햇살을 바라보는 것도, 좀 지치는 일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산다면, 나의 식단부터 달라질 순 있겠다. 크허허허
"날씨 참 좋다. 이런 날에 죽어버릴까"라는, 도무지 어떤 식으로 반응해주기를 원하는지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들려와서 일단은 그녀에 대한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써 싸악 무시해주는 방법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맹수와 눈을 맞춰서는 안 된다는 느낌으로. pg 42
생각해보니, 먹는 것도 귀갓길과 똑같았다. 나의 한 입과 그녀의 한 입은 본인이 느끼는 가치가 완전히 다른지도 모른다. 물론 원래는 달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범죄자의 '묻지 마'식 폭주를 만나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나와 이제 곧 췌장의 병 때문에 죽게 될 그녀의 식사에 가치의 차이 따위,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명백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죽은 다음이리라. pg 68
깨달았다.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을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나도, 범인에게 살해된 피해자도, 그녀도, 어제는 살아 있었다. 죽을 것 같은 모습 따위, 내보이지 않은 채 살아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게 바로 어떤 사람이든 오늘 하루의 가치는 모두 다 똑같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pg 80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소설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막다른 곳에 몰린 다자이 오사무의 정신이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지만, 단순히 음울하다는 말로 정리될 만한 내용은 아니야. pg 96
아무려나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여태까지 살아왔다. 나로서는 지금의 이 상황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녀가 없어진다면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소설의 세계에 파묻혀 살아간다. 그런 나날로 돌아간다. 결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그걸 이해해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pg 108
비 오는 날이 싫지는 않았다. 비가 가진 페쇄감이 내 마음에 잘 어울리는 날들이 많아서 비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은 없었다. pg 167
그녀는 타인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온 인간이다. 표정이나 인간성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에 반해 나는 ㅏ족 이외의 모든 인간관계를 머릿속의 상상으로만 완결시켜왔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나를 싫어한다는 것도 모두 나만의 상상이고, 내게 위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타인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포기한 채 살아왔다. 그녀와는 정반대로, 주위의 어느 누구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것으로 괜찮으냐고 굳이 묻는다면 좀 난처하긴 하지만. pg 208
산다는 것은 아마도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 그걸 가르켜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 거야. pg 222
그녀가 죽었다.
세상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다.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나는 여전히 만만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남겨져 있다고만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른다.
최소한 나는 어느 누구에게나 내일이 보장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다. 나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그녀에게는 당연히 내일이 있는 것처럼 생각했었다.
아직 시간이 있는 나의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이미 시간이 없는 그녀의 내일은 약속되어 있다고만 생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신이었던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생명만은 이 세상이 잘 봐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다 없었다.
세상은 차별하지 않는다.
건강한 몸을 가진 나 같은 인간에게도, 병을 앓아 머지않아 사망할 그녀에게도, 그야말로 평등하게 공격의 고삐를 풀지 않는다. pg 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