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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 - 나는 아버지입니다
조옥현 지음 / 생각의창고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늙으면 죄인입니다.그래서 젊은이들도,가게에서도,지하철에서도,늙은 나를 마치 벌레 보듯 합니다.늙는 것은 죄입니다.그래서 병이 들어 아프고,만날 이도 없고,만나 줄 이도 없으며,떨어지는 꽃잎만 봐도,노랗게 변하는 나뭇잎만 봐도,눈물이 납니다.모두 늙은 죄입니다.그래도 나는 오늘도 꽃피는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나도 나이가 들면 이런 신세가 되려나...
살아있다는 것은 추억한 모금이다.나이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꽃이 지듯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끝이 있다.살아가는 날들의 모든 것이 소중하다.이 책은 아버지의 일상을 추억하며 우리곁에 언제나 머물고있는 현실의 두꺼운 유리벽으로 다가온다.마치 볼수는 있어도 행동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모순의 한 덩어리 우리들의 미래요,아버지,그리고 세월이 야속한 것이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라기 보다는 지나온 날들에 대한 추억은 우리를 눈언저리에 파르르 경련으로 다가온다.떠난다는 것은 순리이다.그것을 역행해 가면서 살아간다는 것의 기억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구순의 나이에도 병마와 사고,외로운 죽음의 두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삶의 정글에서 두려움에 떠는 약하디 약한 동물의 이면을 본다.초 고령화 사회에서 겪는 또 다른 문제이다.
핵가족은 외로운 노인 부부만을 남긴다.수입도 없는 연금에 의존해야하는 고단한 삶,그것마져도 없다면 길거리를 헤메이며 파지라도 주어야하는 현실이다.기록해야 할 전화번호가 아니라 자꾸만 나의 수첩에서 지워지는 친구들의 전화번호는 왠지 나를 슬퍼게한다.나이는 들어가도 삶에 대한 욕구를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나이가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가 슬프다.
저자는 구순의 나이에도 기억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글로 표현하고 있다.그가 들려주는 이 낮선,그렇지만 낮 설지 않은 이 풍경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모든 것을 볼 때마다 내년에도 저것을 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저 꽃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저 청개구리 소리를 내년에도 들을 수 있을까.저 은행나무는 내가 세상을 떠나도 저 자리에 서 있겠지?
또 봄은 올 것이며,또 꽃은 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들의 아버지들에게는 희망일까? 슬픔일까? 이렇게 아직 내 발로 걸을 수 있고, 내 손을 움직일 수 있을 때,자연사의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 어느 날부터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렸다고 저자는 이책에서 말하고 있다.우리나라 모든 노인들의 삶에 대한 슬픈 이야기다.우리 노인들의 현주소다.노인의 하루하루 삶이다.
TV에서 본 일본 영화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늙은 부부의 이야기였다.치매에 걸린 아내,늙은 남편이 그 뒷바라지를 한다.하지만 남편에게서 암이 발견된다.하는 수 없이 아내를 노인 시설에 보내고 자신은 병원에 입원한다.그러다 결국 홀로 세상을 떠난다.홀로 남은 부인이 남편과 함께 살던 옛집을 찾는다.함께 살아왔던 그 자리에 앉아서 지나간 날들을 떠올린다.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나와 아내,못 박힌 말뚝처럼 앉아 영화를 보았다.이것이 영화속의 우리들의 현실이다.고장난 TV를 바꾸기위해 찾아간 매장에서 나이가 70이 넘어 할부도 안된다는 소리를 듣고 저자는 천정을 쳐다보았다.숨이 멎는 것 같았다.말이 나오지 않았다.70세가 훨씬 지난 나이,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할부에서도 아웃되었다는 선고를 점원으로부터 받았다고 고백한다.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이런 슬로건을 들어본적이 있는가! 나이는 들어가고 일거리는 없고 그래서 외로워서 죽어가는 노인들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나이든 부부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다가 누구라도 먼저 세상을 등지면 자녀들에게는 찬밥신세이다.TV에 하루를 의존하고 있는 삶, 친구도, 전화를 걸어 줄 이도, 찾아갈 곳도 없는 일상이 정년퇴직 후 수 십 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