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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 원자에서 인간까지
김상욱 지음 / 바다출판사 / 2023년 5월
평점 :

우리는 죽으면 흙으로, 즉 지구로 돌아간다. 이것은 시적인 표현이 아니다. 과학적 사실이다. 이렇게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p.144)
사실 이 문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흙이 될 내가, 흙이 될 이 책을 붙잡고 왜 이렇게 고전하고 있는가. 나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눈물을 흘리는 100% 문과지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바보구나.'라고.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된다는 것이 과학적 사실인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철학적으로 혹은 시적으로 이해하는 지극히 문과인 것이다. 그런 내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을 읽다니. 사실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손도 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은 내가 올해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책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책들과 병렬독서하는 바람에 더 오래 걸린 탓도 있겠지만, 이해하지 못한 탓에 1장만 3번 읽었다. 덮어두었다가 다시 읽으려면 앞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 독서모임 회장님이 모든 이론을 이해하려 욕심내지 말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물리학자가 보는 세상은 이렇구나, 하고 넘어가라고 조언해주셔서 그래도 끝까지 읽고 독서모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독서모임을 한 덕분에, 나는 그래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을 읽었다고,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세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읽어도 읽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여러사람의 감상을 듣는 순간 “아 이 내용이 이렇게 읽힐 수 있구나!”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문장들이 있었던 것.
어떤 분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을 읽고 우리의 삶도 창발의 과정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대부분의 원자는 죽어있고, 이렇게 살아있는 인간이 오히려 불안정한 상태의 원자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 결코 그냥 흘려보낼 상태는 아니지 않나, 또 원자로 이루어진 지구도 죽음을 향해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들으며 유한한 지금이고, 우주에서 본다면 먼지같은 우리들이지만, 그럼에도 현재 살아있는 존재이니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분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에서 집락과 다세포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마음에 닿았다고 했다. 우리는 복제인간들의 집합이 아닌, 수많은 원자들로 구성된 집락, 즉 보통의 인간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데 인간의 행동은 종종 이기적인 단세포의 모습같다며. 동떨어진 과학처럼 느껴졌던 이 책이 문득,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를 구성하는 그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이 책의 문장들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여전히 김상욱 교수가 물리학적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부분 등에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물리의 경계를 넘어야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데, 굳이 사랑까지 수식기호 안에 넣어 가설을 세우고 증명해야하나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문과인 나의 마음이다. 하지만 분명 이 책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 우리의 삶과 과학이 결코 동떨어진 무엇인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함은 분명하다.
죽움이 우주에서는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말하는 책을 읽으며, 삶에 대해 고찰하고 반성하게 된다면 사실 아이러니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원자는 내가 되고, 어떤 원자는 책이 되어 나에게 읽히고 있는 지금. 우주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찰나의 '점'인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나에겐 '선'의 시간이다. 부지런히 나의 선을 이어가야지, 혹여 간혹 끊어져 점이 될 지언정, 나는 나의 선을 부지런히 이어가리라 생각했다.
무려 3주간 고전했던 책,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머리를 쥐어뜯었던 시간이었지만 독서모임덕분에 남는 것이 많은, 오래 잊혀지지 않을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