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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 - 백조는 모두 하얗다고? ㅣ 필로니모 7
알리스 브리에르아케 지음, 야닉 코트 그림, 박재연 옮김 / 노란상상 / 2023년 6월
평점 :

백조는 무슨 색인가요? 백조는 당연히 흰색인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그렇다면 질문을 살짝 바꾸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백조가 하얗다고 증명할 수 있나요?
말장난처럼 느껴지겠지만, 옛날 유럽인들은 백조는 모두 하얗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검은 백조를 보고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고, 그 후로 검은 백조는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준 예상치 못한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20세기에 활동한 철학자 칼 포퍼는 “검증하고 반증할 수 있어야 과학”이라며, 가설을 내놓고 그것을 반증하며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블랙스완을 '흑조'라고 부르곤 하지만, 검은 백조라는 이름도, 흑조라는 이름도 사실 조금 비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 검은색도 있는 거 인정. 인정했으니까 그만. 끝” 이렇게 급히 마무리한 느낌이랄까요.
노란상상의 철학 그림책, 『필로니모』의 7번째 이야기 포퍼 편을 아이와 함께 읽었습니다. 아주 예쁜 분홍색 사이 얼굴을 드러낸 백조. 그리고 아래에 적힌 “백조는 모두 하얗다고?”라는 말을 보며 아이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려나 하는 우려와, 나눌 이야기가 많겠다는 기대가 동시에 들었습니다. 언제나처럼 그림만 먼저 감상하는데, 나와는 달리 여러 색의 백조를 보고 아이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까만 백조, 파란 백조, 핑크 백조라고 말합니다. 도트무늬의 백조가 나왔을 때에야 살짝 웃으며 “달마시안백조”라고 말합니다. 아이의 무덤덤함에 저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아! 백조가 흰색인 게 당연하다는 편견은 어른들만 가지는구나.”하고 말입니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필로니모』의 7번째 이야기 포퍼 편 내용을 읽을 때에야 아이는 책의 의도를 알아채고 “아, 이거 토론게임 같은 거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와 놀이처럼 토론을 종종 진행해왔는데, 아이는 문득 그런 상황이라는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아이의 의견을 반영해, 저는 백조는 무조건 하얗다 팀, 아이는 백조는 여러 색일 수도 있다 팀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이때 아이가 한 말이 오늘 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사람도 타고난 피부나 먹는 음식, 사는 곳에 따라 다른 색의 피부가 되는데, 새도 당연히 달라지지 않을까요? 흰색처럼 보여도 조금씩 다른 흰색일 수도 있어요. 파란색이 나는 흰색, 분홍색이 나는 흰색, 회색이 나는 흰색은 다른 흰색이잖아요.”
어쩌면 아이는 이미 이 책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 모든 공부가 필요 없다는 말이 또 한 번 실감 났습니다. 물론 아이가 과학자였다면, 저 말이 전부가 아닌 음식이나 환경으로 새의 깃털이 다른 색이 되는 것을 증명해야겠지만, 8살 아이가 새로운 가설을 세워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고슴도치 맘의 눈에는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작가님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진정한 과학자는 반증하며, 반증할 수 없는 것은 과학적 진리가 된다.”는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 집은 거기에 “세상에는 '하얀 백조'만 있는 것은 아니니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철학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요?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것. 숨어있던 생각을 꺼내는 것.
노란상상의 『필로니모』는 아주 얇고 작은 책입니다. 그러나 그 안의 깨달음은 절대 작지 않았습니다. 작가님은 하얗지 않은 백조가 우리가 가진 지식을 무너뜨릴 수 없게 두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쳐다보라고 했지만, 어쩌면 이 책을 만날 세상의 많은 사람이 “하얗지 않은 백조”가 되어 사유하라는 의미는 아니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