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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
강진이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5월
평점 :

이른 새벽 출근했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고, 방바닥에 넓게 이부자리를 펴는 시간.
동생과 이불 위에서 콩콩 뛰며 앞구르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기도 했다. 한참을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동생은 외할머니 옆에서 금세 잠이 들었고 나는 엄마 옆에서 알콩달콩 시간을 보냈다.
목 부분이 터져 하얀 솜이 비집고 나온 빨강 털옷을 입은 인형을 수선해주는 엄마와 눈을 맞추며 어린 가슴이 행복으로 차오르는 순간, 어린 나의 전부였던 것들. (전부였던 것들 p.61)
“내 마음이 아픈 날이 읽어 더 좋았을까? 아무튼, 이 책은 내 아픈 마음을 토닥여 주는 엄마 손 같았다. “엄마 손은 약손, 지니 배는 똥배~” 하는 그 토닥임처럼,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그 온기처럼 말이다.” 강진이 작가님의 「너에게 행복을 줄게」를 읽고 난 후 내가 기록해둔 말이다. 그 따뜻함이 두고두고 생각나서, 작가님의 팬이 되기를 자청했다. 소심한 관종인 나는 책을 무척 좋아함에도 팔로우하며 “팬”인 티를 내는 작가님이 몇 없는데, 열 손가락에 꼽히는 “평소의 언어도 닮고 싶은 작가님”에 강진이 작가님을 예정(!)해왔다. 그래서 그녀의 신간,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는 출간도 되기 전부터 목이 빠지라 기다렸다.
따끈따끈한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를 받아들자마자 단숨에 한 권을 다 읽었다. 그리고 그 날밤 다시 차를 마시며 한 번, 다음 날 아침 햇빛 아래에서 또 한 번 읽었다. 세번이나 연달아 읽으며 따뜻함에 흠뻑 취해있는데, 반찬을 주러 왔던 엄마가 책을 훑어보다가 한마디 툭 한다. “옛날에 우리 00 아파트 샀을 때, 쪼들려서 매일 거실에 이불 펴고 잘 때- 엄마는 그때가 진짜 행복했어.” 순간 까맣게 잊고 살던 시절이 거짓말처럼 확 생각나고 그때의 행복이 온 가슴에 들어찼다. 엄마와 나는 히비스커스를 마시다 말고, 히비스커스보다 더 빨간 코가 되어 추억을 회상했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는 그런 책이다. “일생에서 가장 강력한 추억”이 아니라 매일매일 있는 추억,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일”이 아니라 갓 지은 쌀밥을 입에 넣듯 편안하고 익숙한 행복. 책의 어느 페이지든 내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너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 그런 책. 나이가 더 어렸을 때는 강력한 행복이나 추억을 쫓았던 것 같다.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가치를 지니는지 미처 몰랐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는 안다. 하루하루가 우리의 호시절이고, 매일 화양연화라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은 우리 모두의 호시절이다. 우리 모두의 추억이고, 우리 모두의 일상이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강진이 작가님의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는 한번 읽고 끝날 책이 아니라, 손 닿는 곳에 두고 자주 만나보시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날에는 그저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고, 어떤 날에는 강진이 작가님의 문장을 만나며 공감하고, 끄덕이고.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지만, 강진이 작가님의 그림에는 온도가 묻어난다. 아이와 공원에서 느끼는 햇볕의 따뜻함, 엄마가 해준 밥에서 느껴지는 온기, 친구들과 학창시절에 찍은 사진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그런 온도가 묻어나는 그림이다. 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이 무엇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림이다. 그녀의 문장도 참 특별하다. 그렇다고 해서 화려하고 튀는 문장력이라는 말이 아니다. 분명 친근한 단어, 편안한 필체인데 거기서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독자의 눈을 붙잡는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하지만 빠져들게 하는 말투의 사람이리라. 그녀의 문장을 가만히 읽고 있자면 정다운 친구와 소곤소곤 수다를 떠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더 친근하고 소박한 친구의 편지같이 따뜻하다.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를 읽는 내내 나의 소박한 하루가 눈부시게 반짝이는 기분이었다. 많이 아프던 시절,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준 작가님이 “그것 봐, 살아보니 또 좋지? 아픈 거 다 지나간다 했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네 맞아요. 아프고 보니 하루하루가 진짜 빛나게 아름다워요”하고 소곤소곤, 대답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