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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위로 - 답답한 인생의 방정식이 선명히 풀리는 시간
이강룡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4월
평점 :

우주에는 위아래가 없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보통 북쪽을 위라고 여기기 쉬운 것은 그렇게 지도를 그려온 관습 때문이다. 근대 시대의 패권을 차지했던 나라들이 북반구에 대부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 달력으로 보면 마지막 날의 마지막 1초가 근대 과학의 역사인데, 마지막 14초로 확장하면 우리 인류의 역사가 된다. 그 14초 안에 우리 인류의 모든 희로애락, 그리고 전쟁과 평화가 담겨있다. 천문학 지식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주에는 위아래가 없으니 우주의 일부인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p.199)
아니, 무슨 과학책이 감동적이고 그래? 학교 다닐 때 수학과 과학을 싫어하던 완전히 문과 머리의 내가 마흔을 목전에 두고 과학책을 읽으며 질질 울었다. 나이를 먹은 탓도 물론 있겠지만, 분명히 이 『과학의 위로』는 책 자체가 그렇게 울컥하게 만드는 것도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쓰기를 가르치던 이상룡 작가가 과학을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과학이라고 감각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상룡 작가의 문장력 때문인지, 내가 성적을 벗어난 어른이 되어 읽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과학은 참으로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과학의 위로』는 '빛과 입자', '시간과 공간', '과학과 수학', '우주와 인간' 등 총 4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물론 각 주제 안에는 무한과 유한, 빛의 속성, 아날로그와 디지털, 상대성이론, 표준과 단위, 방정식, 기하학, 미분과 적분, 진화, 우주, 원소 등에 대한 진짜 '과학' 이야기를 풀어주시기도 하는데, 그보다 더 매력적인 부분은 그 학문을 삶으로 다시 느끼게 된 작가님만의 포인트를 이야기해주시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과학을 덮어놓고 모르고, 덮어놓고 싫어하던 나는 놀랍고 신기한 발견이었다. 마치 한 가수의 음악을 내 추억으로 덧칠하여 기억하는 것처럼, 작가님은 과학을 생각과 추억으로 덧칠하는 기분이었달까. 그래서 흑백이었던 나의 과학을 컬러풀하게 보이게 만들어주신다. 『과학의 위로』를 통해 위로를 주신 것뿐 아니라, 과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묘한 마법도 부리셨다.
물론 『과학의 위로』 이전에도 몇몇 과학책이나 수학책을 보며 놀라움을 느끼기도 했다. 성적을 떠나 만나는 수학과 과학은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던 것. 그것들이 학문에 대한 깨달음에서 빚어진 놀라움이었다면, 『과학의 위로』는 과학이 너무나 일상적이라서 놀랐다. 어느 누가 미분과 적분을 두고 어머니의 사랑을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읽으며 왜, 학창시절 이해하지 못한 미분을 이해하고 있는가!
참 안타까운 것이, 시험이라는 제도를 벗어나 배우는 학문은 다 각각의 매력이 있다. 문학은 다정한 할아버지 같고, 역사는 모든 것을 품고 안아주는 엄마 같다. 그런가 하면 과학은 꼭 직진남같다. 헷갈리게 하지 않고, 밀당같은 거 하지 않고 딱 나만 좋아해 주는 그런 듬직한 사람 말이다. 『과학의 위로』를 만난 후 그 직진남은 더욱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는 느낌이 든다.
이강룡 작가의 『과학의 위로』는 누구나 아는(정확히는 안다기보다 배운 적은 있는) 과학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주는데, “아무나 못 하는 이야기”로 만들어낸 책이다. 감동적인 책이 효율도 있기 어렵고, 지식서가 감동까지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과학의 위로』는 감동과 지식을 잘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값싼 '뷔페처럼'이 아니라, 한식·중식 쉐프를 같이 모셔온 것 같은 느낌이다. 잘 차려놓은 과학 밥상, 독자는 그냥 떠먹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