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 더숲히스토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 / 더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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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을 옹호해 줄 그 어떤 민족주의적 역사학도 존재하지 않고, 비잔티움 제국은 단지 반대하지만 불편한 투사체로 남았다. 누군가에게 비잔티움 제국은 전체주의와 선정주의 국가이며 낙후되고 정체된 존재이다. (p.355)

 

의고주의와 형식주의를 걷어버리고 나면 비잔티움 제국은 끝없이 변화하고 적응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 데오도로스 메토히티스가 지적했듯이 모든 제국은 태어나고, 꽃을 피우고, 쇠퇴하고, 죽었다. (p.357) 

 

 

가톨릭이기에 비잔티움은 어릴 때부터 꽤 익숙한 단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싶어진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알던 비잔티움 제국은 조각난 거울이었던 것 같다. 

 

비잔티움 제국의 경제나 사회구조, 문화나 종교 등에 대해 '완전히' 담아냄과 동시에 지중해 속에서의 비잔티움을 입체적으로 살려낸다. 작가의 진중한 문장과 풍부한 사료는 비잔티움이 마치 지금도 존재하는 곳인 듯 선명하게 느껴져서, 꽤 묵직한 책임에도 지루함 없이 읽어낼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에 비잔티움 제국에 관한 책은 몇 권 되지도 않을뿐더러, 대부분은 정치문제나 군사적인 사건들을 위주로 다루다 보니 천년 이상을 존재했던 나라가 한순간 '끝!'하고 몰락한 것같이 느껴지곤 했는데, 이 책을 통해 비잔티움의 전성기, 비잔티움의 뼈대가 되던 사상과 이념, 분열의 시작, 비잔티움 제국이 놓친 기회들, 유럽에 남아있는 흔적들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물론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 등이 가득했던 비잔티움의 깊은 내부와 이민족들의 끝없는 침략으로 멍들어가던 비잔티움의 겉면까지 고루 읽을 수 있었다. 또 번역 자체가 무척 풍성한 느낌이라 마치 잘 구성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생생했다. 

 

분열이 시작된 시기부터 몰락까지의 과정을 읽으면서는 이미 사라진 제국임을 알면서도 안타까움이 느껴질 만큼 몰입할 수 있었고, 예술적 성취에 관한 내용에서는 '로마'나 '그리스', '르네상스' 예술에 남아있는 비잔티움의 흔적들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황제나 교황 한 사람이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에서는 어떤 측면에서는, 지금도 다르지 않은 세상이란 생각에 두려움이 일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난 후, '역사는 과거의 한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더욱 견고해진다. 비잔티움의 천년의 세월 역시 교회와 성벽에, 지중해의 어딘가에서 계속 이어져갈 것이다. '종교'라는 한 조각을 전부인 줄 알고 살아왔던 어리석은 나지만 이 책으로 인해 비잔티움 제국을, 또 지중해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또 더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어떤 것이 변화하고 어떤 것을 지켜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고. 비잔티움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소화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지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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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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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이야말로 여자 색이지.

키라의 말이 끝나자 키라와 에바는 칼로 손바닥을 그어 새어 나오는 피를 새하얀 우유가 가득 담긴 야트막한 그릇에 떨어뜨린 다음 핏방울 천천히 퍼져나가 작고 붉은 꽃들을 피워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p.15) 



 

우유, 피, 열.

이건 무슨 조합이야. 이 책을 받았을 때 내가 처음 생각한 것은 이 말이다. 이 세 가지 단어는 무슨 연관이란 말인가. 더욱이 첫 장면이 우유 위에 피를 떨어뜨리는 여자들이라니. 이 책에는 스산하고 슬프며 만질 수 있다면 서늘함이 느껴질 것 같은 여자들이 여럿 등장한다. 총 11편의 단편이 묶인 이 책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시각이나 촉각 등이 느껴진다. 문장에서 온도가 느껴진다고 적는 지금도 이 표현이 맞는지 고민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그렇다. 서늘하다.

 

묘한 게 첫 장부터 끝까지 스산한데, 그렇다고 책이 덮어지지 않는다. 이상한 여자들이 궁금하고, 이상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본다면 정답이라고 동의해줄 것 같다. 분명 이상한데 이상한 여자들이 계속 궁금해지고,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이 이상한데,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 책은 그래서 우리 이야기 같고, 현실 어딘가에서 충분히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얘기 같다. 이 책을 스토리 그대로 만나는 것도 충분하지만, 각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특징을 발견해보는 재미도 있다. 이상한데 묘하고, 묘해서 끌리는 이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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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 HEAR - 듣기는 어떻게 나의 영향력을 높이는가?
야마네 히로시 지음, 신찬 옮김 / 밀리언서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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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이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상대가 속마음을 내비치는 것이 아닙니다. 속마음을 알기 때문에 남이 아닌 가족 같은 사이인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야?'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정말로 가족 같은 사이가 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p.152) 

 

 

넓은 영역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고루 사귀던 어렸을 때는 친구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알고 지내면 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며 친구의 범위를 꽤 좁히고, 더 많은 인간관계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는데, 진짜 '친구'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려움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좋은 가족, 친구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알아두면 좋을 말이 꽤 있어서 공유하고자 한다. 

 

이 책은 친구 관계보다 더 큰 영역, 잘 듣는 것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결국 내 가족에게, 내 친구에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사람이 그 외의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행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 책은 총 6가지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일단 들어라',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게 하려면 말하지 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조언하지 마라', '대화를 계속 이어가려면 침묵을 견뎌라', '너의 멘탈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경청하지 마라', '나의 가치를 올리려면 듣는 것을 즐겨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전체 내용에 공감한 것은 아니다. 상대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리스너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나의 의견과 상반되는 부분도 분명 있었으나 '그렇구나!'라는 말과 '들어준다는 것은 곧 알아준다는 것'들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이 책에서 공감했던 문장들을 기록해두고 오래오래 기억해야겠다. 

 

때로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 시간을 함께해준 친구들이 고마운 것이고. 나도 그들에게 좋은 리스너가 되어줄 수 있도록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되는 듣기'를 잊지 말아야지. 

 

* 내 마음이 충만할 때 들어줄 수 있습니다.

* 말소리가 아닌 감정을 듣습니다.

* 들을수록 나의 마음 그릇, 지식의 그릇도 점점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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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놀아요! - 창의력을 키우는 22가지 실내 놀이 북극곰 궁금해 18
라이언 아이어스 지음, 레이첼 빅토리아 힐리스 그림, 박문선 옮김 / 북극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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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코로나 시대 3년 차, 

아직도 집놀이가 어려우신 분들 있다면 집중! 

이제 고민은 <집에서 놀아요>로 종결한다. 집찔이들 다 모여! 

 

 

우리 집에는 집놀이 전문가가 산다. 나도 집순이인데, 우리 아이 역시 나만큼 집에서 잘 놀아서 내 친구들은 “집순이 둘이 참 잘 났어. 엄마와 딸 궁합 100점”이라고 할 정도. 그런 우리 아이에게 도착한 따끈따끈한 신상 도서 <집에서 놀아요>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22가지 이유를 제공해주었다. 자, 혹시 코로나 시대 3년 차, 아직도 집놀이가 어려운 분들이 있다면 이 한 권으로 고민을 종결해줄 테니 집찔이들 다 모여! 아이랑 뭐 하고 놀지 고민되는 초보 엄마도 다 모여!

 

일단 이 책이 내 마음에 쏙 든 첫 번째 이유는 “이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라는 개념에서 시작한 것. 아이가 8살이 되도록 유명한 장난감을 한번 사주지 않고 아이를 키웠던 것은 세상 자체가 놀이터고, 스스로 재미있는 놀잇감을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는데, 그 마음을 그대로 반영해준 책이랄까. 약간 심심하게 커야 더욱 창의적으로 놀 수 있다는 말을 믿는 우리 집에, 별다른 재료도 없이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22가지나 알려주는 이 책이 코로아시대, 추운 날씨에 어떻게 반갑지 않을 수 있나. 아이는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이 책을 넘기며 이미 해본 놀이, 해보지 않은 놀이로 구분해보기도 하고, 능숙하게 잘하는 놀이와 아직 서툰 놀이로 구분하여 포스트잇을 붙이기까지 했다. (2월 달력이 사라지기 전에 다 할 거라고 한다..)

 

이 책의 매력 두 번째. 어른의 도움을 최소한으로 받고도 아이가 직접 할 수 있는 놀이를 다양하게 소개하는 '비법 책'이 건방지게(?) 일러스트까지 이쁘다. 사람으로 치자면 엄친딸인가. 알록달록한 색감에 섬세함까지 챙겨 일러스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한다.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인 은신처 만들기 편의 일러스트는 색감부터 구도, 아이의 표정까지 너무 완벽해서 액자에 담아두고 싶을 지경!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담긴 꿀 팁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놀이로 변형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키워주는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한다. 

 

책에 등장하는 놀이 반 이상을 신나게 하고 논 우리 아이는 북극곰 블로그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책놀이로 “찹쌀이가 소개하는 재미있는 실내놀이”를 작성했다. 찹쌀이 추천 놀이는 요리! 특히 재미있는 요리는 주먹밥. 칼로 자르고 뭉치고 등 다양한 동작을 해서 손도 재미있고, 입도 재미있는 놀이라서 라고 한다. (조만간 요리 놀이소식지(?)를 발행한다고 하니, 읽고 싶은 분은 좋아요와 구독을 눌러주세요~ㅋㅋ) 

 

집순이 성향을 타고 나기도 했지만 '북극곰'처럼 재미있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 덕분에, 또 다양한 집놀이, 책놀이 덕분에 우리의 집콕은 오늘도 즐겁다. 아, 우리 집처럼 북극곰 책으로 책놀이를 하고 싶은 분들은 '북극곰홈페이지'에서 이처럼 다양한 책놀이를 만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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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 그림책이 참 좋아 94
최숙희 지음 / 책읽는곰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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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본성이 순하고 무른 아이다 보니, 자신이 기분이 상하는 순간에도 싫다는 표현을 잘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순간에 참고 양보하다 울컥 감정이 터지고 마는 것. 그런 아이가 안타까워 더 어릴 때는 표정 스티커를 붙이게 해 대화를 나누었고, 요즘에는 '감정 상자'라는 곳에 편지를 쓰게 한다. 나는 아이가 잠든 밤 왼손으로 그 편지에 답장을 쓰곤 하는데, 이 편지를 얼마나 더 주고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싫어하지 않는 한 계속 이어가고 싶다. 아이가 혼자 속을 끓이다 곪지 않도록 말이다. 

 

최숙희 작가님의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를 보며 내 마음이 이토록 울컥한 것은 우리 아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서도 자신의 감정을 색으로라도 표현하고, 이것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절실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은 우리 아이처럼 싫은 소리를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당연하고, 아직 감정표현이 서툰 모든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터. 

 

설렘, 수줍음, 신남, 두근거림, 알쏭달쏭함, 외로움, 포근함 등 아이들이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감정을 색으로 표현한다. 주목할 점은, 아이들의 수준에서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표현해준다는 것. 사실 어른도 종종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지 않나. 아이들에게도 무척이나 어려울 수 있는 감정들을 '왜 나랑 안 놀고 쟤랑 노는 거지? 화를 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등의 문장으로 표현한다. 처음에는 그림책에서 자신이 감정을 찾는 활동으로 시작하겠지만, 이것이 수련되다 보면 도움 없이도 기분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런 연습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반대의 과정도 좋다. 사실 우리 집에서는 늘 일러스트를 먼저 보는 편이기에, 이 책 역시 글씨를 가려두고 이 색깔은 어떤 기분일지 이야기하게 했는데, 그 과정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했고, 아이가 꺼내기 어려워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유추해볼 수도 있었다. 다른 부모님들도 이 책의 일러스트를 바라보며 아이와 기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신다면,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으실 터.

 

아이들의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알록달록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기분은 그저 반갑기만 하다. 신나는 것도, 두근거리는 것도, 화가 나는 것도, 외로운 것도-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라고 아이들이 받아들인다면 그런 마음을 지혜롭게 꺼내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겠지. 자꾸 달라진 수많은 기분이 모두 나라는 문장을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 아이도 매일매일 자신이 만나는 수많은 기분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더 많이 보듬어주고 사랑해야지. 

 

오늘 우리 아이가 감정 상자에 적어놓은 편지에 갈색으로 답장을 썼다. 최숙희 작가님의 표현처럼 포근함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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